함께 모여 부루마블 할 때면 부루마블의 주인이 꼭 가장 먼저 시작을 했다. 뭐 주인장 어드밴티지 같은 거였다. 주인 녀석은 알토란같은 나라에 멈춰 그 나라에 호텔을 지었다. 운이 좋을 땐 더블이 걸려 한 턴에 두 개의 나라를 사기도 했다. 물론 그 나라엔 모두 호텔이 올라갔다.


두 번째로 시작한 녀석은 운도 없이 방금 사논 나라에 걸리곤 했다. 호텔이 올라간 나라에 지불 할 돈은 녀석이 가지고 있던 돈의 절반이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아 주인 녀석이 사 놓은 나라엔 걸리지 않았지만 카드를 뽑는 곳에 걸렸다. 나라를 갖지 못한 거다.

초기부터 돈이 가장 많은 주인 녀석은 비싼 유럽 쪽 나라를 사기 시작했다. 스톡홀름, 런던, 뉴욕 등 땅 값만 해도 비싼 이 나라에 호텔을 지었다. 


나도 부지런히 나라를 사 나아갔다. 유럽 같은 좋은 땅은 아니어도 동남아 쪽의 싸고 잘 걸릴 만한 나라도 몇 개도 가졌다. 주인 녀석도, 두 번째로 시작한 녀석도 자주 내 나라에 걸리곤 했다. 유럽처럼 몇 백만 원의 통행료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소소히 돈을 모아가고 있었다.


주사위가 몇 바퀴 돌았을까 나의 말은 주인 녀석의 가장 큰 나라인 유럽 쪽의 한 나라에 서고 만다. 통행료는 무려 400만원. 동남아 쪽 나라와 시작점에서 받는 월급인 20만원을 열심히 모아 유럽 쪽의 한 나라를 산 나는 400만원이라는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나는 녀석에게 지금 가지고 있는 200백만 원만 먼저 받고 나중에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인 녀석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단칼에 거절했다. 그래도 나는 한 번 더 간곡히 부탁했다. 이번 한번만. 딱 한번만 봐달라고 매달렸다. 소용없는 일이었다. 나는 결국 지금껏 열심히 모아 산 유럽 쪽의 한 나라를 은행에 매각했다. 그리고 나온 돈은 고스라니 주인 녀석에게 넘겨줘야했다. 주사위가 던져진 시작부터 열심히 노력해 얻은 꿈같은 나라를 한순간의 잃은 순간이다. 


다음 턴. 주인 녀석은 내가 좀 전에 은행에 매각한 유럽의 나라를 내가 준 돈과 본인의 돈을 합하여 구매했다. 이로써 유럽 쪽 라인은 주인 녀석의 독점을 이뤄졌다. 이 라인을 지나기 위해선 더블이 걸리지 않는 한 반드시 어떤 곳이든 통행료를 지불해야했다. 운이 좋게는 100만 원, 운이 나쁘게는 400~500만 원 까지. 주인 녀석은 가끔 인심을 베푸는 듯 자투리 돈은 깎아 줬다. 물론 나머지 통행료를 내기위해선 내가 한푼 두푼 모아 얻은 나라를 팔아야 만 했다.


나라를 하나 둘씩 잃은 나에게 가장 큰 소득은 출발지점을 돌면 은행에서 나오는 월급 20만원이었다. 그 소득도 카드 뽑는 자리에서 ‘세금을 내시오’ 한마디면 몇 푼 남지 않았다. 그리곤 예전 유럽 라인 한편에 내 나라가 있었음을 기억하며 또 다시 주사위를 굴린다. 출발점의 월급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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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食)은 생물이 활동하는 에너지를 만드는 행위로써 단순 생산 활동에 그치지 않고 만남, 대화시간 등 다양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다는 즐거움은 포기하기 힘든 욕구중 하나다. 그럼 거두절미하고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행복감을 전해주는 식사를 혼자 한다는 것에 대해 한국은 얼마나 관대할까?


누군가 식사를 한다고 한다면 무의식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누구와?”이다. 식사를 한다고 하면 누군가 함께 먹는 다는 인식이 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식당을 봐도 혼자서 먹기 보다는 여럿이 먹을 수 있게 되어 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혼자보단 2인 이상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그게 우리나라의 정서일 것이다. 그럼 여기서 질문 하나 던지자면 ‘혼자 밥을 먹어본 적이 있는가?’이다. 질문 자체도 유치하다. 이 질문에 내 대답은 ‘있다’다. 그러나 사실 혼자서 밥을 먹기 시작한지 오래되지 않았다.


대학 시절만 해도 혼자서 밥을 먹는 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학교를 다니다 보니 주변에 항상 사람이 있던 것도 사실이고, 시간을 내기 편하다보니 식사 약속을 잡기도 쉬웠다. 그래서였는지 함께 밥 먹을 이가 없으면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이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건 일본여행 후였다.


친구와 함께 일본여행 중 가장 어색했던 것이 식당에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친구와 함께 밥을 먹으러 온 우리가 다 어색할 정도로 혼자서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말 처음엔 어색 그 자체였다. 한편으로는 ‘왜이리들 혼자서 먹을까?’하는 생각도 들며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도 사회생활을 하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누군가와 만나 한 끼 식사를 할 시간을 만들기보단 조금씩이지만 혼자 먹는 것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정확힌 익숙해졌다.


혼자 먹는 적적함이 익숙해지면 다음으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 주변의 관심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유독 주변에 관심이 많다. 주변에서 무엇을 하는지 누구와 왔는지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인근 나라인 일본과 비교했을 시 우리나라 주변 관심 수준은 거의 병적으로 높다. 그러니 식당에서 혼자식사를 한다는 건 많은 관심을 끄는 행위일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일본의 무관심적인 정서보단 지나칠 수도 있는 우리나라의 정 많은 관심이 좋다. 이러한 관심이 때로는 주변의 범죄도 막아주며 훈훈한 이야기도 전해주니 말이다.


혼자 생활하며 식사하는 인구가 많은 일본의 경우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잘 되어있다. 식당엔 혼자 먹을 수 있도록 칸막이가 되어 있는 식당도 있으며, 작은 테이블도 잘 갖춰져 있다. 편의점엔 혼자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이며 레토르트 제품이 가득하다. 거기에 혼자서 밥 먹는 사람을 위한 비디오까지 있을 정도니 혼자 식사하기에는 일본은 천국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주변관심만 조금 익숙해진다면 혼자 밥 먹기에 좋은 나라다. 웬만한 식당에서 음식은 포장이 가능하고, 배달문화는 세계 최고 수준인지라 주변 신경 쓸 필요도 없다. 또 한솥 도시락을 시작으로 맛도 좋고 저렴한 도시락들도 많이 등장해 혼자 식사하기가 좋아 졌다.


혼자 밥 먹는 것은 핵가족과 골든 미스 등 혼자 사는 사람이 늘면서 생긴 사회적인 문화다. 또한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생활에서 누군가와 시간 맞춰 밥 한 끼 먹을 시간이 없는 안타까운 우리현실이기도 하다. 아직은 어색할지 모르지만 이제는 조금씩 익숙해져야할 문화라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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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0 06:34



얼마 전 참 구미가 당기는 드라마를 발견했다. 주말드라마인 ‘청담동 앨리스’가 그것인데 현재 3화분밖엔 방영되지 않았지만 시작부터 아주 흥미로웠다. 특히 여자의 허영심과 된장녀로 화두를 던져 신랄하게 비난하는 모습은 아주 신선했다.

줄거리는 대략 신데렐라 스토리다. ‘노력이 나를 만든다’라는 신조를 굳게 믿고 사는 한세경(문근영 분)과 세계적인 명품유통회사 아르테미스의 최연소 한국회장인 차승조(박시후 분), 이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다. 그런데 일반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하기엔 이 드라마는 너무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노력형 긍정녀인 세경은 온갖 노력으로 취업에 모든 것을 내건다. 하지만 사회에서 돌아오는 것은 처음부터 가지지 못한 부에 대한 차별이다. 이에 반해 세경보다 못한 고등학교 동창인 윤주(소이현 분)는 남자 잘 만나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사모님이 됐다. 

드라마 속 지금까지의 결론은 구질구질 노력보단 ‘인생은 한방이다’를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말엔 남자인 나로서는 동감할 수 없다. 왜? 이젠 한방도 없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옛말에 ‘개천에서 용 났다’라는 말이 있다. 이젠 이 말도 틀렸다. 예전 소 팔아 대학 다니던 시절엔 가난한 집 장남 공부시켜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집안도 살아나고 모든 것이 해결됐다. 개천에서 용이 난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돈이 없으면 공부를 할 수가 없다. 법조인이 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로스쿨에 가야한다. 로스쿨 중 등록금 가장 싼 곳이 975만원이다. 거기에 이천만원이 넘는 로스쿨도 25곳 중에서 12곳이나 된다. 이천만원. 강남의 30~40평되는 아파트 사는 사람이면 모를까 부엌하나, 방 한 칸에 온가족 모여 사는 집에선 그런 돈을 마련할 수 있을까? 난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학자금 대출에 손을 벌린다. 그리곤 학기동안 잠 아끼며 아르바이트를 한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음 학비를 위해서. 근데 최저임금 오천 원도 안 되는 나라에서 과연 한 학기 동안 다음 학기 학비를 마련한다는 것은 가능할까? 자기 용돈이나 벌면 다행이다.


학비를 마련 못한 학생은 휴학을 한다. 휴학을 하니 졸업은 늦어지고, 졸업이 늦어지니 취업도 늦어진다. 갚지 못한 학자금 대출은 점점 이자가 불어가고 한번 피어보지도 못한 꽃다운 청춘은 이미 신용불량자가 되어있다. 이젠 개천에서 용 따위는 나지 않는다.


한방의 대명사인 로또도 다를 바 없다. 523회 로또 1등 당첨자는 총 7명. 이들에게 돌아간 1등 당첨금은 17억 8026만원. 17억 가지고는 강남에 아파트 하나 못산다. 한방이라고 말하기에는 집 한 채 못 사지만 그래도 평생 월급쟁이 생활로는 이 돈도 못 모을 거 같으니 그 운수에 감사할 따름이다. 한 평생 놀고먹을 만한 한방도, 방법도 이제는 없다. 드래곤 볼을 모아 소원을 빌지 않는 한 없다.


“한방을 노리지마라.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해라. 그럼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다” 어느 책의 이야기처럼 성실히 노력하면 성공할 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다. 근데 지금 현실에서 노력은 최선의 선택도 성공의 지름길도 아니다. 가진 것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발악이다. 공든 탑이 안 무너질 것 같은가? 성실과 노력으로 쌓아 올린 공든 탑 따윈 돈 쳐 바른 대기업 굴삭기 한방이면 끝이다. 지금 세상의 노력은 운보다 못한 존재고 노력만으론 아무것도 안 되는 시대다.


그러고 보면 ‘청담동 앨리스’는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지 않다. 어떤 짓을 하던 노력만으로 주인공은 성공을 이룰 테니까. 오히려 지금 사는 세상이 더 드라마 같다.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지같은 시나리오의 막장 드라마.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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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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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왜왔니] 1. 거문도 고도민박.


거문도는 200여만평의 서도와 그 절반정도 크기의 동도, 가운데 약 33만평의 고도, 이렇게 3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3개의 섬이 둥글게 모여 외부의 거친 파도와 풍랑을 막아주고 있어 예부터 천혜의 항만으로 불리워진 곳이다. 이 세 섬 가운데에 100만평의 바다가 펼쳐져 있고, 남북으로 뱃길이 트여있다. 


한반도 뿐만 아니라 오도열도, 대마도와 매우 가깝고, 홍콩과 블라디보스토크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아시아 진출의 교두보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라 근대 열강국들이 호시탐탐 노렸던 섬이다. 실제로 영국이 1885년부터 1887년까지 약 3년간 이곳을 불법 점거한 사건은, 거문도가 지정학적, 군사학적으로 매우 긴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군이 떠난 직후에 고종황제가 거문도에 거문진을 설치하고 수군 주둔을 위한 관청을 세운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이다. 


              ▲ 거문도의 전경 


일제가 거문도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러-일 전쟁이 벌어지던 당시부터다. 일제가 러시아 함대를 격파하기 무섭게 1904년 서도의 수월산에 일본인에 의해 등대가 설치되었고, 일본해군이 주둔하면서 해저통신시설을 갖추어졌다. 그리고 1905년 한일협약이 체결된 후 일제 민간인이 본격적으로 마을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1906년 일본인 우편전신소가, 1910년에는 순사주재소가, 1914년에는 일본인 소학교가 문을 열었다. 특히 학교가 세워졌다는 것은 일본인의 거문도 이주가 얼마나 활발했는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1918년 일본인 어업조합 설립, 1923년 거문항 세관출장소 건립에 이어 1920년대부터는 세 섬 중 고도에 아예 일본인 집단촌이 대거 형성되면서 그들의 신사까지 세워졌다. 거문도는 해방직전까지 일제의 주요 군사요충지로서, 그리고 어업전진기지로서 철저하게 기능했다. 고도 선착장에 내려 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일본식 근대주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 일본식 주택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고도의 모습

         

               ▲ 상단 왼쪽부터 1. 거문도 등대 2. 일제 신사터 3-4. 영국군 묘소 


고도민박은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1층은 부부가 사는 살림집으로, 2층은 민박용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2층의 경우, 일제시기에 지어진 건축형태와 구조의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이 집은 1925년에 지어진 전형적인 일본식 근대주택이다. 집주인의 아버지 생전 말씀에 의하면,  이 집은 어업 무역상으로 활약하던 일본 여성 나가기치에 의해 지어졌다. 집에 쓰인 모든 목재는 일본에서 공수해 온 것으로, 일체의 못을 사용하지 않고 목재결구방식을 통해 세워졌다. 그녀의 부친은 일제의 고위급 장성이었으며, 그녀의 어업무역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후문에 따르면, 그 여성의 집안은 거문도, 여수, 목포, 부산 등을 오가며 어업 중개무역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여 한 때 전라남도 10대 갑부에 손꼽히기도 했다. 현재 집주인의 조부가 당시 그 무역상의 서기로 활동하면서 어업중개 무역을 익혀 나아갔고, 해방이 되고 나서 자연스레 이 집을 인수받았다. 건물 면적은 총 88평으로, 일제강점기 상류층 일본인 가옥양식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거문도 고도민박 외관의 모습(현재)


              ▲ 거문도 고도민박 과거의 모습(1960년대 추정): 동그라미 표시가 되어 있는 집이 오늘날의 고도민박이다. 



가파른 박달나무 계단을 올라 2층에 다다르면 마치 일본 본토의 전통가옥에 방문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운데 큰 방 2개를 중심으로 하여 총 11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간 곳곳에 일본문화의 건축양식과 소품들이 비치되어 있다. 모든 방에는 다다미가 깔려 있다. 




              ▲ 거문도 고도민박 내부 전경


거실 전면에 도코노마가 갖추어져 있다. 도코노마는 집안의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공간으로서, 벽 쪽으로 공간이 움푹 들어가 있고, 바닥이 조금 높게 솟아있다. 도코노마 한 가운데에는 향나무 기둥이 서 있는데, 자세히 보면 갖가지 동물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제단과 불단을 모시는 공간으로 사용되거나, 진귀한 족자나 병풍, 도자, 다기와 같은 소품들을 비치해두는데, 이 집이 경우 집주인의 모친이 사용하던 반닫이와 일본식 망와와 화로를 장식용품으로 갖추어 두었다. 


일본식 특유의 천정 밑에는 정교하게 짜여진 문양장식이 보인다. 나무결 마디마디 사이가 매우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장식기능을 하면서도 방과 방 사이의 통풍을 원활히 해 주는 기능을 한다. 이 문양 장식의 수와 종류, 정교함의 수준이 높을 수록 그 집의 위상을 높이 알아주는데, 이 집 안에 벽장과 천정 주변으로 수많은 목재 문양장식이 있는 것을 미루어볼 때 과거 중개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획득한 여성 무역상의 기운이 느껴진다. 


미닫이 형식의 문도 볼거리 중 하나다. 쇼지, 후스마와 같은 장지문, 그리고 일본식 유리 장식문이 방 곳곳에 달려 있다. 문을 닫으면 각 공간의 기능이 나뉘고, 문을 열면 집 전체가 하나의 공간으로 통하는 일본인 특유의 공간분할방식을 엿볼 수 있다. 방 안으로 들어가면 오시이레 즉, 붙박이 벽장이 보인다. 지진이 잦은 일본 본토의 특성상 가구보다는 물건의 흔들림을 최소화할 수 있는 붙박이 벽장을 선호한 그들의 생활양식이 담겨있다. 



              ▲ 거문도 고도민박 내부 전경(천정, 천정장식, 붙박이 벽장, 화로, 망와, 후스마 등) 


이 집은 일제강점기 일본인 이주 집단촌의 산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조선 수탈사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는 곳으로, 일제강점사의 산 교과서와 다름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은 실제 사람들이 이 곳에 묵어가며 직접 일제역사의 산실을 체험하고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박제된 문화재'로서가 아닌 이 집이 갖고 있는 일본문화를 방문객이 직접 만져보고 느껴볼 수 있는 장인 것이다. 





집주인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들려준 이야기 중 가장 가슴에 남았던 것은 이 집의 역사적 가치라든지 건축적 특징에 관한 것보다도, 그가 어렸을 적 이 집에서 겪었던 아주 소소하고도 소중한 추억거리였다. 이야기 끝물에 넌지시 물어봤다. "어렸을 적에 이 집에서 살던 생각은 안 나세요?". 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청소기를 가만히 내려놓으시고는 차분히 주위를 둘러보신다. 그리고는 조용히 웃으시면서 말을 이어간다. 


"아...예전에 국민학교다닐 때 말야. 학교 끝나면 내가 2층에서 그렇게 숨바꼭질을 했단 말야. 친구들 데려 와서는 몇 시간이고 그렇게 노는 거야. 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어. 여기저기 방문이 많잖아. 저기 숨었따가 문을 살짝 열고 또 다른 데로 얼른 도망가서 숨고 말야. 아...그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는 얘기만 몇 번을 반복하신다. 절로 흥이 나서 손짓 발짓 다 해가며 설명을 해주신다. '이 불편한 거 왜 안 바꾸고 사냐' 이래저래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민박 손님들도 제법 많다고 한다. 아예 집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손님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물론이란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2층만은 고칠 수 없다고 못을 박아 말씀하신다. 1층은 살림집으로 바꿔놓고, 유독 2층의 모습만은 끝까지 지키고, 매일같이 쓸고 닦는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손님들의 '특별한 민박체험', 그것보다는 할아버지의 '특별한 숨바꼭질의 추억과 애정'이 담겨 있는 곳이니까.  



[숙박 및 교통정보는 거문도 고도민박 홈페이지 http://www.godoinn.com/ 참조] 


Written by 선장

Photo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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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나를 알기에 더더욱 슬퍼지네.. 

                                                                - 회상Ⅲ/김태원



~♫~~

익숙해진 핸드폰 알람음, 가장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바꿔 놓았건만 ― iPhone4의 ‘공상과학’ 사운드, 사람 속을 뒤집음과 동시에 달팽이관에서 고막을 거쳐 외이도까지 쭉 긁는 느낌을 줌 ― 그 조차도 어느새 귀에 익어버린다. 평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하루의 시작과 함께 분주하기만한 어느 아침 날. 


여전히 잠에 취해 옷매무새를 가다듬다가 바지 주머니에서 남몰래 숨어 있던 동전 500원과 해후(邂逅)하게 되는 그런 날이 꼭 있다. 그럼 보통 우리는 살며시 미소를 짓게 된다.

 

딱 그 느낌과 그 타이밍이다. 군더더기가 있으면 안 된다.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말이다. 단지 그 느낌의 남자로만 남아있으면 된다. 크게 신경 쓸 사람도, 마음 가는 사람도 아닌, 그냥 바쁜 하루의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하지만 가벼운 미소 정도는 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백원은 너무 작고, 천원부터는 너무 크다. ‘왜 이 돈이 주머니에 남겨져 있지?’ ‘무슨 돈이지?’하며 불안해진다. 심지어 대형마트에서 백원을 넣고 카트를 쓰느냐 오백원을 넣느냐에 따라 카트 회수율과 정돈 상태가 달라진다고 한다. 아직 동전오백원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거슬리지는 않는 존재인 것 같다. 디지털 공상과학 사운드와는 그 차원이 다르다. 


함께 있으면, ‘기적’이라는 단어밖에 생각나지 않던 사람, 이 <동전오백원> 카테고리의 글들은 그 한 명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받쳐질 것이다. 10년이란 세월동안 내 마음 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 ―그 세월은 한 남자를 500원이라는 값어치로 흥정을 맺게 만들었지만 ― 그렇다. 바로 당신을 위한 글이다. 


앞으로 해적단 수컷들의 눈물겨운 구애 공세를 기대하시라. 당신은 그저 오백원 만큼의 미소만 지어주면 된다. 



* 작곡가 김태원씨는 작곡을 할 때 첫사랑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 역시 이뤄지지 않은 아픈 사랑이다.

* 이글의 초안은 2009년 6월 여름날이다. 언젠가부터 한 코미디언이 “궁금하면 500원~”해서, 나의 동전오백원 프로젝트가 희화화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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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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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는 비싸다, 그리고 맛있다.]


친구와 함께 식사를 한 후 커피를 마시기 위해 스타벅스에 들렀다. 나는 카라멜 마끼아또,  친구는 프라프치노를 시켰다. 뭔가 입이 심심해서 디저트로 초코 케익도 하나 주문했다. 커피 두 잔에 케잌 하나의 가격은 대략 1만 7천원. 참고로 이날 친구와 먹은 점심은 6천 원짜리 냉면이었다.


나는 대학시절 내내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보냈다. 단순 서빙이 아니라 직접 커피를 만드는 일을 했다. 그래서 커피 맛이라면 간 정도는 제법 볼 줄 안다. 내가 커피 만들던 당시까지만 하더라도(제대 무렵이니 2005년 쯤이다) 커피숍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작은 영세 브랜드가 동네에 몇 군데 있었을 뿐이다. 커피숍을 찾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았다. 커피 문화라는 자체가 사실상 전무했던 시절이다. 


2007년, 2008년 쯤 부터였을까. 스타벅스, 커피빈, 할리스, 엔젤리너스, 투썸플레이스 등 유명브랜드 커피숍이 대로변 곳곳에 두각을 내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동네 PC방 생겨나듯이 동네 온 천지에 우후죽순 퍼져 나갔다. 동네길 한 구간에 스타벅스만 4곳이 몰려 있는 것도 봤다. ‘이 정도면 경쟁이 아니고 같이 망하자는 건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 예상과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기만 했다. 평일에 가나 주말에 가나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있기가 그렇게 힘들었다. 


멈출 줄 모르고 전국 각지로 무섭게 번져가는 커피숍 열풍. 이쯤해서 경쟁사를 물리치기 위해 가격을 내리거나 파격적인 혜택을 줄 법도 한데 여전히 그들은 가격에서만큼 요지부동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오히려 최근 몇 달 사이 모든 유명브랜드 커피숍이 가격을 인상했다. 언론의 공격을 피해갈 수는 없는 법. 공영방송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커피가 이유없이 비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들끓기 시작했다. 


시사프로에서는 커피 원가와 해외 브랜드의 가격을 비교하면서 우리나라 커피가격에 거품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을 지적했고, 교양프로그램에서는 각양각색의 커피브랜드를 놓고 브랜드를 뗀 상태에서 맛을 비교하여 사실상 가격과 상관없이 ‘맛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결국 ‘맛의 변별성도 없으면서 브랜드 값만 취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한 거다. 


이제는 직장인 점심 한 끼보다 프라프치노 한잔이 더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만 되면 커피숍은 직장인들로 늘 북적 북적댄다. 언젠가 스타벅스 50% 할인행사를 했던 날이 생각난다. ‘그래도 비교적 한적한 스벅에 가면 사람들 별로 없겠지?’라는 생각에 직장인이 몰리지 않을 3시쯤을 노리고 버스 타고 시청 쪽 구석탱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나의 엄청난 오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꼬리를 물고 물어 건물 밖까지 이어지고 있는 광경에 그만 넋을 잃었다. 모두들 1시간이건 2시간이건 기다려서 반드시 먹고간다는 그 불타는 의지하나로 한여름의 땡볕을 견디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기왕에 먹는 거 유명브랜드에서 먹지뭐’ 이런 간단한 생각이었다면 벌써 줄을 이탈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대중이 반드시 브랜드의 품격만을 따져 커피를 마신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각종매체에서의 거듭된 가격 공격, 거품 마케팅의 이슈화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스타벅스를 찾아간다. ‘퇴근하고 7시 스타벅스에서 만나’, ‘영화보고 스타벅스가서 커피한잔 마실까’, ‘집에 가면서 스타벅스 들러 테이크아웃하자’. 길거리 여기저기에서 쉽게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왜일까? 왜 스타벅스를 이렇게도 고집하는 걸까? 한방에 정리할 수 있다. 맛있으니까.


스타벅스가 우리 동네에 처음 들어섰을 때, 그리고 친구로부터 스타벅스의 프라프치노가 그렇게 맛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속으로 ‘그게 맛있어봐야 커피지 뭐 별거 있겠냐?’ 내심 비웃었다. 하지만 직접 먹고 난 후 사정이 달라졌다. 생각 그 이상으로 너무 맛이 좋았다. 감탄의 감탄을 하면서 ‘그래, 이 정도는 만들어야 마실만하지’라는 맛의 감동이 혀에 각인됐다. 그 후 나는 달달한 게 생각날 때마다 스타벅스를 찾아가 프라프치노를 시켜놓고 천천히 그 맛을 즐기는 취미가 생겼다. 


스타벅스 뿐만 아니라 다른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들도 각자만의 개성 있는 맛을 갖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 내 생각과 지인들의 생각을 조합하여 몇 개 회사의 캐릭터를 얘기해보면 이렇다. 




[스타벅스] 거의 다 맛있다. 프라프치노는 기본이고, 한 여름철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원두가 좋고, 맛의 기복이 덜하다. 어떤 메뉴든 레시피가 안정적이어서 일단 길에서 눈에 띄면 들어간다. 따듯한 아메리카노는 핸드드립으로 마실 것을 추천한다. 


[커피빈] 뜨거운 아메리카노는 스타벅스보다 낫다는 평이다. 카페모카도 대표적인 심볼이다. 스타벅스의 바닐라라떼를 먹느니 커피빈 카페모카를 마시는 편이 더 낫다는 평도 많다. 


[폴 바셋] 카페라떼는 이 이상으로 맛있을 수 없다. 어떤 레시피를 썼는지 정말 궁금하다.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스타벅스와 커피빈을 모두 능가한다. 


[할리스] 커피빈 만큼은 아니지만 카페모카가 꽤 맛있다. 아메리카노도 중상 정도의 점수를 줄 수 있다. 


[이디야] 역시 카페모카다. 조금 인스턴트한 맛이 나긴 하지만 ‘달달한 어린이 입맛’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투썸 플레이스] 어떤 커피음료든 굉장히 진하다. 카페인 섭취에 역점을 두는 사람은 좋아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싫어한다. 뭣 모르고 에스프레소 시켰다가 호되게 당한 외국인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투썸 커피를 ‘독약커피’라고 부르기도 한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평가의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는 곳이다. 


언젠가, 맥도날드에서 한 때 자사의 2000원 짜리 커피와 유명브랜드 커피를 비교하는 광고를 엄청나게 때린 적이 있다. 한편으로 궁금하기도 해서 햄버거는 입에 대지 않은 채 맨 입으로 한번 마셔봤다. 하하, 맛이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보리차도 아니고 숭늉도 아닌 것이 일종의 ‘숭늉커피’ 같았다. ‘구수하다’라는 표현이 딱 맞다. ‘소비자를 물로 아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커피의 수요가 많지 않던 당시에는 그런 가격 마케팅이 일부 먹혀들어가기도 했겠지만 이제는 사정이 다르다. 커피 소비자 역시 바리스타 만큼 맛에 대한 분별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더 이상 낮은 가격으로의 ‘뻥’ 마케팅은 안 통한다는 거다. 





어느 사이 커피 가격을 문제시 삼는 기사와 뉴스들이 하나 둘 고개를 숙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대중이 기꺼이 그 가격을 감수하고 먹는데 언론이 가타부타 이야기를 해 봐야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언론보다 똑똑한 것은 대중이다.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대형 프렌차이즈 가운데에서도 몇 군데는 '최악의 맛‘으로 소문이 난 곳도 있다. 어디 대형뿐이랴. 유명 바리스타가 큰 꿈을 가지고 만든 커피숍들도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주저 않는 사례들도 즐비하다. 마케팅 면에서 압도적으로 밀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대중이 원하는 ’보편적인 맛‘의 레시피를 강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물의 포장지도 중요하지만 선물의 내용이 말짱 꽝이면 대중의 시선에서 멀어진다는 사실부터 알아야 한다. 일단 맛이 좋고 볼 일이다.  


Written by 선장 & 선의

Photo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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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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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14 15:10

    맞아요. 먹는 건 맛이 1번입니다ㅋㅋㅋ 비싼고 맛난 걸 내돈주고 사먹을 때의 쾌감 ㅋㅋㅋ


록맨의 전설


패밀리라는 게임기인 하드웨어를 가졌다고 하나 소프트웨어인 게임팩이 한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한 게임만을 계속할 수도 없는 것 또한 현실이었다. 그래서 이것의 대안책이 바로 합본팩이었다. 

합본팩은 팩 하나에 여러 가지 게임이 들어있는 것을 말하는데 작게는 몇 개에서 많게는 백단위의 합본팩도 있었다. 대게 합본팩은 1~2개의 메인 게임과 나머지 잡다한 게임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 메인게임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 잡다한 게임은 거의 쓰레기 수준의 게임이었다. 간혹 쓰레기 게임 속에서 조금은 할 만한 게임을 발견할 때도 있지만 그런 일은 드물었다. 


합본팩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팩 겉면에 붙어있는 그림이나 게임명이 실제 게임과 다를 때가 있다는 점이었다. 한번은 겉면에는 상당히 괜찮은 게임이 붙어있어 단숨에 샀더니 정작 게임을 돌렸을 때는 다른 게임이 나오는 것이었다. 헷갈릴 수도 있겠다 싶을 정도도 아닌 게임이 들어있었는데 그 게임하나 보고 산 나로서는 허탈하기 그지없었고 바로 오천원을 주고 팩을 교환했다.


합본팩의 현실이 그렇다보니 대게는 그냥 단일팩을 사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다. 다행히 나는 처음 패밀리를 샀을 때 단일팩을 하나 함께 구입 했었는데(물론 어머니가 사주신 거지만) 그 팩이 바로 록맨(Rockman)6였다. 





일본 캡콤(Capcom)사에서 만든 액션게임인 록맨은 지금에서도 명작으로 뽑히는 작품인데 작은 파란색의 로봇인 록맨이 나와 스테이지를 정하고 각 스테이지의 보스를 클리어 하는 방식의 게임이었다. 

록맨의 재미중 하나는 각 보스마다 지닌 속성과 무기가 있는데 록맨이 그 스테이지의 보스를 물리쳤을 때 물리친 보스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각 보스마다 상성을 잘 이용하면 보스공략을 쉽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상성을 찾아내면 쉬웠지만 사실 못 찾을 경우 보스 공략은 지옥이었다.


이밖에도 로봇이라면 최강의 메리트인 합체도 가능했는데 록맨의 친구(?)인 랏슈(개의 모양을 하고 있는 로봇이다)와 합체해 비행모드나 헤비모드로 변형해 비밀통로를 찾아 이동할 수 있었다. 

이 비밀통로를 잘 찾아내는 사람이 동네 아는 형 중엔 꼭 한명씩은 있었는데 나는 그 형이 플레이하는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다 집에서 내가 직접 해보고는 했다.


록맨은 재미있는 게임이 확실했지만 어려운 게임인 것도 확실했다. 특히 횡스크롤 액션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에너지에 굉장히 인색했다. 웬만하면 보스 만나기 전에 큰 에너지 하나 정도는 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거늘 이 게임은 그런 게 없었다. 에너지 없으면 그냥 보스를 만나서 죽는 게 속편했다. 그러면 보스 바로 앞에서 에너지가 가득 찬 체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실 에너지가 가득 차있어도 문제였는데 록맨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강력한 적도 아니고 거대한 적도 아니었는데 바로 ‘가시’였다. 

침모양의 가시던 성게모양의 가시든 닿기만 하면 한방에 죽었다. 에너지가 아무리 많이 차있어도 삐융삐융하며 터졌다. 이게 나는 참 죽을 맛이었는데 컨트롤이 정교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이라 게임을 진행하는데 있어 가장 고비는 바로 가시였다. 


한번은 위와 아래 모두 가시로 되어 있는 곳을 지나가야 했는데 적당히 점프버튼을 눌러 넘어가야했다. 근데 이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서만 수십 번을 죽었고 나중엔 게임팩을 던질 번하기도 했다.



또 패스워드도 문제였다. 당시 록맨은 게임 저장방식이 아닌 패스워드 입력방식이었다. 스테이지를 깼을 때나 죽었을 때 패스워드를 보여주는데 이것이 상당히 복잡했다. 나는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적어 놔야 할지도 걱정이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어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록맨을 할 땐 항상 공책과 연필을 준비해놓고 스테이지를 깼을 때 마다 공책에 적어놨었는데 이를 보고는 어머니께선 “공부를 그렇게 해봐라!”하며 핀잔을 주시고는 했다. 


게임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너무 티내며 게임하는 게 볼썽사나운데 좀 더 쉽게 패스워드를 만들었다면 그나마 눈치는 덜 받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8비트 게임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듯이 록맨은 빛나는 역작이었고 재미와 몰입도가 높은 게임이었다. 그 후 슈퍼패미콤, 플레이스테이션 등등 고사양 게임기에서 록맨이 나올 때마다 나는 소프트웨어를 구입해 플레이하고는 했는데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은 없었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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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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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1996)]


"아버지는 없지만, 난 살아있어. 세월은 가고 절대 영원한 건 없지. 하지만 중요한 건 인생은 멈춰 있지 않다는 거야. 포기하지 말고 결국 살아가야 해. 모든 순간에서 이유를 찾아야 해."


현존하는 천재 피아니스트 데이빗 헬프갓의 일대기를 그린 명화, Shine의 마지막 명대사다. 아내 길리언의 도움으로 중년의 나이에 피아니스트로서의 인생을 되찾은 데이빗은 성공적인 콘서트 데뷔 후 고향에 잠든 아버지 피터 헬프갓의 무덤을 찾아간다. 수많은 고통과 시련의 과정을 거쳐 독보적인 피아니스트 한 사람으로 재기하기까지, 그의 혹독하고 아름다운 삶에 대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지독하리만큼 '아빠와 아들'의 애증스러운 관계의 틀에서 이야기를 풀어나아가고 있다. 


영화의 시작부는 8살의 데이빗이 마을에서 열린 어린이 연주대회에 참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하는 데이빗이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I'm gonna win, gonna win, win, win, win..."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다짐의 다짐을 머릿속에 각인시키며 차분히 피아노에 앉아 쇼팽의 폴로네이즈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형편없는 연주실력에 지쳐 떨어진 심사위원 벤 로덴이 데이빗의 놀라운 연주에 감고 있던 눈을 번쩍뜬다. 뒤이어, 데이빗이 연주하는 피아노의 바닥바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피아노가 앞으로 점점 밀려간다. 연주 중 불상사가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데이빗은 당황하지 않고 의자에 왼발을 걸어 죽죽 앞으로 끌고 나가면서 연주하더니 나중엔 아예 일어서서 곡을 끝까지 완주해낸다. 사회자가 "완벽해요. 완벽한 연주입니다." 감탄을 하자. 데이빗의 아버지 피터는 자랑스러운 얼굴로 읊조린다. "제 아들입니다. 제 아들."






그러나 데이빗은 그 연주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아빠와 아들은 조용히 체스를 두기 시작한다. 아들이 체스에서 수세에 몰리자 아버지는 체스판을 쾅쾅 내리치며 이야기한다.  


"또 지겠구나 또 지겠어. 항상 이겨야 돼! 이겨야 된다구! 데이빗, 내가 너만한 나이 때였단다. 아주 예쁜 바이올린을 샀단다. 참 아꼈는데 그게 어떻게 된 줄 아니?"

"네, 박살났어요."

"그래! 박살났지!. 데이빗, 넌 운이 매우 좋은 녀석이야. 할아버진 음악을 싫어하셨단다. 넌 아주 운이 좋은 애야. 말해봐."

"전 아주 운이 좋아요."

"그래, 아주 좋아. 이거나 치워라."


아버지 피터는 거실 끝에 조용히 앉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의 연주를 듣기 시작한다. 데이빗에게 피아노 연주를 가르치는 피터의 마음 한 켠에 자신이 아버지에게 받았던 음악에 대한 냉대와 멸시의 아픔이 깊게 깔려 있음을 서두에서부터 비춰준다. 그날 밤, 데이빗은 새벽에 피아노 앞에 앉아 낮에 들었던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을 조그마한 손으로 떠듬떠듬 연주한다. 그 소리에 깬 아버지가 나와서는 아들을 자랑스럽게 쳐다본다. "아빠, 저도 이 곡을 칠 수 있을까요?" "물론이지, 언젠간 칠 수 있을거다." 아들을 꼬옥 껴앉는 아버지의 모습. 라흐마니노프의 위대함을 데이빗을 통해 완수해 내겠다는 피터의 보상심리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장면이다.  


피터는 연주회 당일에 특별상을 주러 집까지 찾아왔던 심사위원 벤 로덴을 떠올린다. "우승이 아니니 패자가 된거죠."라고 일축하여 그를 돌려보내긴 했지만, 데이빗이 라흐마니노프를 연주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실력을 뛰어넘는 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찾아간 벤 로덴은 데이빗을 따듯하게 맞아준다. 벤은 데이빗의 천재성을 감지하고, 어떤 레슨 비용도 받지 않고 그의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완성시켜 나아간다. 피터는 라흐마니노프를 계속 요구했지만 벤은 일언지하에 거절하며 기본기인 모차르트부터 가르친다. 그리고 천재의 탄생. 데이빗은 각종 피아노 대회에서 수도없는 상을 거머쥐며 클래식계의 단연 스타덤에 오르게 된다. 이런 데이빗을 세상이 그냥 놔둘리가 없다. 한 대회에서 미국 장학금 유학의 기회가 찾아오고야 만다. 그러나 데이빗은 여기서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라는 난관을 만나게 된다. 피터는 데이빗에게 이야기한다. "미국엔 갈 수 없다. 우린 한 가족이야. 가족은 함께 있어야 돼. 이게 가장 현명한 길이란 걸 안다." 단호한 아버지에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던 데이빗은 큰 시름에 빠지게 된다. 




곧이어 영국 왕립학교 전액 장학금 입학이라는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온다. 두 번째는 달랐다. 데이빗은 아버지의 혹독한 반대를 뿌리치고 집을 떠난다. 무작정 문을 박차고 나가는 데이빗에게 피터는 소리친다. "지금 나가면 다시는 못돌아 온다. 데이빗, 가지마라 부탁이다." 그 말을 뒤로 한 채 데이빗은 떠났고,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피터는 그동안 아들의 수상에 관한 기사 스크랩을 꺼내 모두 불태워 버린다. 


천재에게는 천재를 알아주는 스승이 있다고 했다. 영국 왕립학교에서 새로운 음악의 삶을 연 데이빗은 제 2의 아버지 파크스 교수를 만난다. 만남의 시작은 Franz Liszt의 La Campanella의 연주로 열린다. 피아노 건반을 땅!땅! 누르며 파크스가 외친다.  


"잘봐, 데이빗! 공격적으로 쳐봐! 악마처럼!" 

"줄이 끊어지기라도 하면 어쩌죠?" 

"리스트도 줄을 끊어먹었지." 

"네 맞아요"

"딴 데를 보지 말고 악보에 시선을 고정시켜."




파크스가 데이빗에게 '악마의 연주'를 요구한다. 기본의 단계에서 이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한 인간의 개성을 폭발적으로 뿜어내는 격상의 단계임을 암시한다. 위대한 스승 파크스의 지도 하에 데이빗은 점점 천재 본연의 기질을 뿜어내기 시작하고, 그는 곧이어 다가올 오디션 연주회의 곡을 결심하게 된다. 그의 아버지 피터가 그렇게도 간절히 원했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 3번. 


"라흐마니노프...정말인가? 3번은 불멸의 곡이야. 미치지 않고서야 연주할 수 없네."

"전 충분히 미쳤다고 생각하는데요 선생님, 그렇지 않나요?"




끝없는 노력의 노력, 연습의 연습. 쉬지 않고 반복되는 악보와의 사투, 건반과의 전쟁.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반미친사람의 모습으로 라흐마니노프 곡을 완성해가는 데이빗의 마음 한 켠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연습하는 피아노 앞에는 아버지와 다정하게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는 신문기사 스크랩이 붙어있다. 데이빗은 이 불멸의 곡을 완주함으로써 아버지를 떠난 죄스러움을 만회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연주회 당일을 맞게 된다. 그리고 파크스는 음악적으로 자신의 대를 계승할 최고의 제자 데이빗에게 말한다. "내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연주하게." 스승과 제자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곡의 카텐차 부분이 흘러나온다. 이 곡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사람에겐 그야말로 소름 그 자체의 씬이다. 




오디션 연주회에서의 데이빗의 환상적인 손놀림은 이 명작의 하이라이트다. 이 곡은 데이빗 헬프갓이 직접 녹음한 것을 내보낸 것인데, 대단히 특출하다고까진 말할 수 없겠지만 유명 연주가들과 비교했을 때 적어도 내공면에서는 결코 부족함이 없다. 보드랍게 건반을 어루만지며 선율의 능선을 넘어가다가도 급히 꺾어지는 협곡을 만난 것처럼 굽이굽이 쉴새없이 몰아치는 연주로 이 곡이 가지고 있는 악마와 천사의 대비성을 면밀하게 그려낸다. 오케스트라의 화려한 협연으로 타건의 정점을 찍은 데이빗. '브라보', '앵콜'. 사방천지에서 갈채박수가 쏟아진다. 지구 한편에는 아버지 피터가 서 있다. 아들의 완벽한 연주를 듣고 끝내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그의 손엔 아들의 어렸을 적 수상메달과 녹음곡이 꼭 쥐어져 있다. 




그러나 데이빗은 연주 직후 심각한 정신분열에 빠져 천재 청년으로서의 꽃을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한 채, 정신병원에서 갇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파탄의 지경에 이른다. 유아기로의 퇴행. 피아노를 쳐서는 안된다는 의사의 경고에 그는 매일같이 피아노가 있는 쉼터 앞에 가서 차마 들어가진 못하고 그저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하지만 데이빗은 병원의 피아노 재능기부로 온 한 여교사에 의해 발견되어, 곧장 퇴원수속을 밟게 되고 병원 인근의 한적한 마을의 한 집에서 생활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 인생의 서막을 알리는 절대절명의 기회가 찾아온다. 


'길잃은 개'로 마을사람들에게 홀대받던 데이빗. 집안의 피아노를 연주할 수 없게 되자, 인근의 피아노가 있는 작은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사람들의 멸시어린 눈빛과 비난을 뒤로 하고 피아노 다리에 왼발을 걸고 앉는다. "데이빗, 제발." 만류하는 레스토랑 주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피아노 전체를 단숨에 훑어내듯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을 연주하여 대중을 격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이 곡은 데이빗 역을 맡은 레프리 러쉬가 직접 연주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때부터 레스토랑은 데이빗 헬프갓의 명연주를 들으러 오는 관객들로 언제나 만원을 이루게 된다. Liszt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모두 숨을 죽이고 곡에 빠져있다. 차분히 내려앉는 마지막 건반에 관객은 모두 마음을 내려놓는다.  




한편, 신문기사에서 데이빗의 소식을 접하게 된 피터는 그날 밤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수십년만의 아버지와 아들의 재회. 여전히 아버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아니? 어떻게 된 줄 알지?" 어린 시절 그 때의 데이빗에게 매일같이 던졌던 그 질문으로 자신과 아들과의 관계를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아들을 달라졌다. "아뇨, 어떻게 됐어요? 어떻게 됐는지 몰라요." 애써 아버지의 간곡한 질문을 외면한다. 아버지의 아들 데이빗으로서가 아닌, 인간 데이빗으로 살고자 하는 심정이 바로 이 장면에 잘 나타나 있다. 




아버지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꿈꾸고 싶어하는 데이빗. 그에게 혜성같은 여성이 나타났다. 휴가 차 친구의 레스토랑에 놀러온 점성술사 갈리안은 데이빗을 만나게 되고, 그의 순수한 열정과 감성에 푹 빠지고 만다. 짧았던 휴가 동안, 그녀는 그 대신 편지를 써주기도 하고, 데이빗의 라이벌 로저 우드의 연주회에 데이빗을 데려가기도 하고, 바닷가에 그를 데려가서 마음껏 뛰놀게 해주었다. 고심끝에 결국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에 끼어있던 약혼자의 선물반지를 뺀다. 그리고 평생 데이빗의 반려자로 살기로 결심하고, 그의 피아니스트 재기를 알리는 콘서트를 후원한다. 





연주회 마지막 곡은 자신의 스승 파크스와 처음 호흡을 맞췄던 그 곡,  Franz Liszt의 La Campanella로 장식한다. 청년시절 라흐마니노프 피협 3번을 완주했을 때 쏟아졌던 그 갈채의 환호가 다시 터져나온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그 자리에 없었다. 마음의 안식처인 자신의 아내, 오랜 세월을 묵묵히 기다려 준 그의 어머니와 형제들, 자신의 기본기를 닦아준 벤 로덴이 힘찬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가족과 스승이 그를 다시 일으켜 주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정신질환 후 데이빗이 늘 중얼거리던 말이다. 아버지에게 냉대받은 그 아들 밑에서 자란 아들의 삶은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아버지, 나아가 자신의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는 죄책감의 반대급부로 인해 데이빗의 뇌 속에는 '나의 잘못이다'라는 명제가 깊게 뿌리박힌 한 인간의 모습이 서 있다. 우리의 삶에서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과 그 영향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는 거꾸로 '나의 잘못이 아니에요'라는 말을 너무나 듣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피아노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었던 데이빗 헬프갓. 결국 그는 가족과 그의 소중한 지인의 도움으로 새 삶을 얻었다. 


라흐마니노프 제 3번은 아무나 칠 수 있는 곡이 아니다. 이 불멸의 곡이 탄생하기까지 라흐마니노프 역시 작곡 실패에 대한 뼈아픈 기억에서 붉어진 트라우마를 벗어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결국 그 곡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감동과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혹독한 시련을 겪고, 그것의 아픔과 절실함을 곡에 쏟아붓지 못하면 이 곡은 주저앉아 버린다. 모두들 애초에 연주하지 않을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결국 데이빗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했고, 트라우마에서 허우적댔던 지난날의 외로움과 고통, 자아분열의 응어리를 혼신을 다해 연주에 담아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그렇게 만만히 볼 성질의 것이 아니다. 나의 인생 전반에서, 나의 마음 어딘가에서 꿈틀대고 있는 그 무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 되돌아봄의 시간이 필요할 때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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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에 대해 익숙해진다. 이것은 사람이 학습하고 숙달하는 것에 대한 하나의 증명이기도 하다. 낯선 것을 낯설지 않게 만드는 사람의 기능.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이 사는데 참 편리한 것이다. 


담배를 처음 피기 시작한 무렵, 옷에 밴 담배 냄새에 엄마는 매번 잔소리를 하셨다. 방에 들어오실 때마다 “이놈의 담배 냄새 때문에 니 방엘 못 들어오겠다.”라며 핀잔을 놓으셨다. 그런데 이것도 10년 가까이 되자 그 냄새에 익숙해지셨는지 언젠가부터 잔소리가 멈춰섰다. 나쁜 담배에 엄마가 적응한 것이다. 


어디 담배 뿐 만이랴. 통증도 익숙해진다. 얼마 전 운동을 하다 다친 손목이 계속 시큰하다 싶더니 나중에는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 왔다. 손을 딛고 일어 설 때마다 신경이 무척 거슬렸는데 그 때 마다 ‘병원가야지’라는 생각보다 그냥 ‘아프구나, 이러다 말겠지.’하며 내버려뒀다. 아픈 손목에 익숙해지니 그것도 원래부터 아팠던 것처럼 치부해버리고 만다. 아픈 손목에 내 자신을 이해시킨 것이다. 


예전 처음 아이폰4를 샀을 때 금이야 옥이야 상처 날까 케이스를 구매하러 다닌 적이 있다. (당시에는 굉장히 초반이라 케이스가 별로 없었다) 케이스 하나 사러 용산까지 갔는데 케이스 하나에 1~2만원을 넘어 비싼 것은 3~4만원까지 했다. 결국 “무슨 케이스하나에 몇 만원이나 하는거야?” 투덜대며 그냥 빈손으로 돌아왔다. 궁여지책으로 액정 필름을 인터넷으로 구매를 했는데 그것도 무려 2만 4천원을 주고 구매했다. 결제 클릭을 누르는 손이 덜덜 떨렸다. 물론 비싸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스마트폰이 대중화되었을 때,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몇 만원씩이나 하는 케이스를 자연스럽게 사서 아무렇지 않게 착용하고 다니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나고 보니 ‘케이스는 원래 비싸잖아?’로 생각이 굳어졌다. 높은 가격에 내 자신을 맞춘 것이다. 


최근 TV에서 가수 현아를 본적이 있다. 배를 훤히 드러낸 짧은 티에 짧은 핫팬츠를 입고 흡사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춤을 격렬하게 추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2000년도에 가수 박지윤이 성인식으로 가요프로그램에 나왔을 때 배를 드러내는 옷을 입고 나온 장면이 기억난다. 당시 공영방송에서 배를 노출했다는 이유로 시정조치 명령을 받았고 나중엔 천으로 배를 슬며시 가린 채 ‘씁쓸하게’ 노래를 했다. 하의실종이 대세인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그때는 무슨 조선시대였나 싶겠지만 노출에 썩 익숙하지 않던 당시는 그랬다. 노출이 익숙한 지금, 우리는 현아의 몸 털기 춤을 봐도 몸짓에서의 야한 느낌은 받아도 그 옷차림에서 예전과 같이 ‘아니 이런 노출을 하다니 말이나 돼?’하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격렬해져 가는 매스컴에 내 자신의 눈을 맞춘 것이다. 


근래에 있던 내곡동 사저 문제가 터졌을 때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사실 대통령의 비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집권 중에 그 비리의 온상이 표면으로 솟아오른 것은 처음이다.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 ‘물타기’가 시작되었다. 이후 대통령 친인척 비리가 줄줄이 표면에 올라왔을 때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충격 또 충격’이라는 느낌으로 연결되기 보다는 오히려 ‘당연하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최근 검찰비리 역시 비슷하다. ‘떡검이 그렇지 뭐’ 하는 생각 먼저 들었다. 고위 간부층의 악랄한 비리에 내 윤리기준을 맞춘 것이다. 


나영이 사건 이후, 초강력 아동성범죄가 아니면 뉴스에 제대로 잡히지도 않는다. 그 정도로는 이슈거리도 안 된다 싶은가보다. 성범죄 뿐 만일까? 이젠 웬만한 살인사건은 ‘저 죽일놈’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이 흉흉하니까’로 체념의 선을 긋고 TV 채널을 돌려 버린다. 한 30명 쯤 죽이면 ‘오, 신기록 갱신!’ 감탄하며 뚫어지게 감상하려나? 미국에 버금가는 초강력 연쇄살인은 아직 대한민국 시민에겐 익숙하지 않으니 말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편리한 거다. 뇌의 신경을 천천히 무마시켜 가면서 확실히 단순하게 생각하도록 해준다. 그래서 편안해지기 위해 반사회적, 반인륜적 범죄에도 함께 익숙해져버린다. 정확히 말하면 ‘익숙해져야 한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래야만 온갖 나쁜 것들이 판치는 작금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written by 선장 &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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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타다] '사'가 '공'을 이기다. 

4호선 당고개행 열차에 중년 남자 넷에 여자 한 분이 지하철에 들어섰다. 족히 50대가 넘어보이는 분들로, 동창모임인지 굉장히 시끌법적하다. 노약자석칸을 모두 점령했다. 껄껄대며 뭐라뭐라 고래고래 큰 소리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10대 무개념 청소년 무리처럼 장난식으로 욕을 주고받더니 급기야는 남자 대 남자 시비로 이어진다. 지하철에 스피커를 달아놓은냥 쩌렁쩌렁 울린다. 여자까지 나서서 말리지만 어림도 없다. 불쾌해진 사람들이 하나둘씩 내리고 옆칸으로 옮겨간다.


멱살을 잡고 싸우기 직전, 한 사람이 제대로 약점 잡혔다. 공격자가 친구 체육교사라는 점을 이용, 대중에게 '이놈이 체육교산데 이렇고 있다'며 대외적으로 욕을 한다. 체육교사 친구가 그때서야 흠칫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이를 부득부득갈지만 몸짓은 좀전같지 않다. 교사는 상대 친구에 대해 사회적 지위로 공격할 건덕지가 없는지 딱히 그에 맞는 대응은 못하고 "으이구, 띠띠자식 너!!!"만 반복비트로 돌린다. 그리고 사람들이 혹여나 자신을 영상이나 사진으로 담고 있는지 예의주시한다.

상대는 '너 이 놈 잘 걸렸다' 쾌재를 부르며 "여러분! 이 체육 교사라는 인간이 자기보고 양아치니까 덤벼보랍니다. 덤벼! 한판뜨자 여기서! 이 띠띠띠야!!! 예라이 이 띠띠띠야! 하하나원참!" 반복비트를 돌린다. 이제는 여유롭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치려면 쳐보라는 식의 느긋한 제스처를 취해보이며 싱긋 웃기까지 한다.

친구들이 뜯어 말리고 말려 결국 약 올리는 친구를 질질끌고 먼저 하차한다. 교사는 못내 찝찝한 듯 내리지는 못하고 결국 노약자석에 다시 주저앉아 씩씩댄다. 몇 분 가지 않아 서서히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는 일어나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실례가 많았습니다!" 큰 목소리로 90도로 허리숙여 사죄의 인사를 한다. 이쪽 저쪽에서 "그러게 죄송할 짓을 왜 해요!", "나이 먹고 왜 저래 쯧쯧...", "아 그냥 내려요!" 볼멘 소리가 터져 나온다. 

어른들 세계의 최대 공격 포인트는 갈등이 생겼을 때 상대의 공적, 사회적 지위를 대중에 노출시켜 전의를 상실케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소식이라면 나누어 갖는 한국사회에서는 매우 유효한 전략이다. 단순한 싸움 하나가 일단 SNS에 번지면 입소문으로 이야기에 살이 붙고 붙어 나중에 돌이킬 수 없는 설화가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그의 신변과 가족의 안위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공인인 그는 그게 가장 두려웠던 것이다. 


[지하철에서 내리다] '공'이 '사'를 이기다. 

안국역 지하철에서 인사동 방향으로 나가는 출구길목에 무려 네 명의 거지가 앉아있다. 가장 안쪽의 거지는 할아버지다. 선비처럼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렸다. 낡은 베낭과 몇 개의 비닐봉지, 여정에 필요한 지팡이도 있다. 통조림 철통 하나를 덩그러니 던져두고 느긋하게 깍지를 끼고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다. 구걸보다는 노숙에 비중을 뒀다. 


두 번째 거지는 50대가 좀 넘어보이는 중년 남자다. 옷으로 온 바닥을 휘젓고 다녔는지 지하철 바닥과 옷 색깔이 비슷해졌다. 사람이라기보다 조형물 같다. 모자를 벗어 사람들에게 "도와주세요~도와주세요~"를 계속 외친다. 그러나 구호소리가 절실해 보이진 않는다. 대충대충 한다. 쓸쓸하게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간다. 


세 번째 거지는 할머니다. 상대적으로 바깥에 앉아있어 추울 법도 하다. 두터운 외투에 모자를 꾹 눌러 쓴 채 잠이 들었다. 작고 하얀 그릇 하나만 갖고 나왔다. 동전 500원짜리 한 개, 백 원 짜리 한 개만 덩그러니 들어있다. 


마지막 거지는 비교적 젊어보이는 중년 남자다. 공장에서 입을 법한 엔지니어 작업복을 입고 있다. 원래 직업이 그것인지, 아니면 어디서 주워입었는지는 알 수 없다. 엄동설한의 바깥쪽 계단에 착 엎드려서는 두 손을 정성스레 모아 하늘로 치켜 올렸다. 그러나 그의 손에 올려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칼바람이 쌩쌩분다. 언제까지 저 자세로 견딜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들 모두 12월 대목을 알고 있고 이곳에 모였다. 그리고 인사동에서 삼청동을 오가는 사람들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한 길목에 네 명은 너무 많다. 이래서는 사람들에게 호소하기 어렵다. '고객'은 누굴 선택해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제각기 다른 포즈와 다른 옷을 입고 있어도 대중의 입장에서는 변별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부랑자건 노숙자건 거지건 사기꾼이건 알길이 없다. 육해공 군인이 휴가 때 모두 군복에 칼 다리미질로 말끔히 다려입고 나와도 대중의 눈에는 그냥 '군인' 두 글자로 통하는 것과 같다.  


결국 사람들은 맨 끝자락에 서서 종을 흔들고 있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공인구호기관의 구세군 함에 지폐를 넣는다. 지금은 불경기다. 두 번 돈을 넣지 않는다. 경쟁이 아니라 공멸이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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