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도 해는 뜬다] 해는 기다리지 않는다

 

  ....어윽!

 

  변기에 앉아 힘을 준다. 쾌변이다. 잠시 행복감을 느낀다. 며칠 규칙적인 생활을 했더니 장운동이 좋아진 모양이다. 물을 내리고 옷매무새를 추스르다 문득 생각한다.

 

  '잠깐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아, 맞다. 해돋이 보러 하늘공원에 온거지.'

 

  그렇다. 나는 해가 뜨는 것을 보려고 하늘공원에 왔다. 시계를 본다. 오전 7시 53분이다.

 

  새벽에 휴대폰 알람소리에 잠이 깼다. 몇 번을 고민하다 '일.어.나.자.'라고 중얼거리며 정신을 차렸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용케 옷을 찾아 입고 집을 나섰다.

 

  녀석의 기운을 느낀 것은 그때였다. 용트림을 하는 녀석을 달랬다. 괜찮아, 라며 녀석을 잠재웠다. 그게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버스를 타고 하늘공원에 왔다. 커피와 음악도 빠뜨리지 않았다. 공원 동쪽에 있는 하늘계단을 오르며 상쾌한 설렘을 느꼈다. 어제와 달리 날씨가 좋았다. 별이 보였다. 오늘은 기필코 해돋이를 보리라 다짐했다.

 

  하늘계단 꼭대기의 전망대에 자리를 잡았다. 하늘공원까지 갈까 고민하기도 했다. 높이 차이도 크지 않아 보이고, 무엇보다 시야를 가리는 나무가 없어 마음에 들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7시 20분, 해뜨기 24분 전이었다.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몸을 움직여 추위를 녹이기도 하고, 해가 뜨리라고 생각되는 곳을 향해 휴대폰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기도 했다. 조금 추운 것만 빼면 아주 완벽했다.

 

  사건은 항상 중요한 순간 직전에 터진다. 사건은 오전 7시 41분에 일어났다, 범인은 녀석이다. 추운 날씨 탓으로 녀석이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

 

  '이런, 3분, 3분이다. 제발 좀 가만히 있어.'

 

  아까와는 달리 온몸의 기운을 끌어모아 녀석을 무력진압했다. 순순히 말을 듣는 듯 하더니, 녀석은 방심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박을 풀고 달아났다.

 

  7시 43분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선택을 해야 했다. 해돋이냐, 팬티냐. 결정은 빨라야 했다. 순간 화장실이 있으리라고 생각되는 곳을 향해 냅다 달렸다. 선택은 팬티였다.

 

  장소는 하늘공원 입구이고, 방향은 북서쪽이다. 북동쪽만 되었어도 달리며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정북만 되었어도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리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북서쪽이다.

 

  뒤를 돌아볼 틈도 없다. 시계를 볼 틈도 없다. 머뭇거릴 틈이 없다. 잘못하면 해가 고개를 내미는 것을 눈으로 보는 대가로 녀석이 고개를 내미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터였다.

 

  이 순간에도 등뒤의 해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여유따윈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뒤는 앞에서 이야기 한대로다. 화장실을 찾아 들어갔고, 기분 좋게 녀석을 떠나보냈다.(녀석은 과연 그럴만한 녀석이었다.)

 

  7시 56분에 해와 마주한다. 해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해는, 맨 뒤에서 기회를 기다리다 절묘한 코너링으로 무섭게 치고 나가는 3000미터 쇼트트랙 선수처럼, 고개를 내밀자마자 순식간에 하늘로 치고 올라갔다. 가슴 졸이며 지켜보다 잠시 화장실 간 틈에 중요한 순간을 놓친 시청자가 바로 나다. 1위과 2위의 차이는 벌써 2바퀴 반, 무난히 우승할 것이다.

 

  섭섭한 마음으로 해를 쳐다본다. 해는 부드러운 햇빛을 내비친다. '허허, 또 뜨잖아. 내일 보면 되지. 아니면 모레도 있고.' 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니까.

 

  그래 내일은 기필코 보리라. 꼭 화장실은 들릴 것이다.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자못 기대된다.

 

written by 요리사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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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東風)

 

너는 바다 밖에서 새로이 불어와
새벽 창가 시 읊는 나를 뒤숭숭하게 하지.
고마워라. 시절 되면 돌아와 서재 휘장 스치며
내 고향 꽃피는 소식을 전하려는 듯하니.

 

知爾新從海外來, 曉窓吟坐思難裁. 堪憐時復撼書幌, 似報故園花欲開.

 

이 시는 통일신라의 천재 문인 최치원의 ‘東風’ 이다. 그가 당나라 유학 중에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를 위로해 주었던 시들 중 하나이다.

 

당시 나는 봄을 타고 영국으로 들어왔기에, 추운 겨울을 외롭게 나며 다시 찾아온 따스한 봄기운은 내게는 마치 선물과도 같았다. 이 봄바람은 부푼 꿈을 안고 부지런히 유학준비를 했던 한국에서의 소중한 기억을 일깨워 주었다. 굳게 결심했던 포부가 어려움과 외로움에 슬며시 바래졌을 때,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게 만들어준 시이다.

 

당대 천재로 유학을 떠나 목숨을 걸고 나라의 미래를 걸고 공부에 임했을 최치원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으나, 배운 지식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품은 큰 뜻은 천 년도 더 지난 천재와의 시를 통해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이 시를 현재 집 떠나와 외로이 공부하고 있을 모든 유학생들에게 선물한다.

 

‘동(東)’은 사계절 중 봄을 의미한다. 또한 신라가 당나라의 동쪽에 위치하였기에, 동풍은 ‘고향에서 불어온 바람’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 사진은 유학생활 중 산책을 하면서 한국을 떠올렸던 Durham Wear강의 새벽 모습이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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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시대의 해적이다] 늑대소년, 그 시절을 향한 무한긍정, 그리고...

 

 

 

 

용산에서 늑대소년을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고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어르신들이 눈에 띄었다. 동창회 부부동반 모임인 듯 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모습이 정겨웠다.

 

신호가 얼른 바뀌지 않아 어르신들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어르신 한 분이 또다른 어르신에게 핀잔를 준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안그래도 그 어르신이 뭘 그렇게 찾으실까 궁금해하던 중이었다. 자연히 귀를 쫑긋 세웠다.

 

"입대할 때 용산에 모였잖아. 육이오 때. 육십년만에 처음 오는 것 같네."

 

대답을 하면서도 어르신은 계속 무언가를 찾았다. 핀잔을 줬던 어르신도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스물도 안된 소년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의 심정이란...그가 마지막으로 본 용산의 풍경은 참으로 남달랐겠지. 구름 한 점, 들꽃 하나, 돌맹이 한 개 조차 평소와 다른 느낌이었을 것이다. 증기기관차에서 용산역을 바라보며 '돌아올테니 기다리고 있어.'라고 다짐하지 않았을까. (306보충대에 입소할 때의 느낌조차 세상 다 끝난 것 같은 기분이라는데...)

 

1953년 용산역 플랫폼의 증기기관차

 

용감했지만 미숙했던, 순수했지만 불안했던, 앳된 청년은 열차를 타고 떠났다가 60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다시 용산역 앞에 섰다. 몸을 실었던 증기기관차는 고물이 되어버린지 오래고, 지금은 KTX가 다니는 세상이다.

 

연륜있지만 쇠잔했고, 현명하지만 겁많은, 주름진 노인은 역전에서 무얼 찾고 있는 걸까?

 

60년 전 길가에 피어있던 이름 모를 들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먹었던 국밥집을 찾고 있다. 많이 먹고 힘내서 살아오라며 한그릇 더 말아주던 주인아주머니는 살아계실까. 혹시나 해서 찾아들어간 60년 전통 원조 할매 국밥집에서 눈물과 함께 했던 그 맛을 느낀다면...

 

순수했더라고, 좋았더라고, 두렵고 불안해서 미처 알지 못했다고, 이제는 알았노라고 그 시절을 한없이 긍정하지 않을까?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 삶에 힘들어서, 생활에 지쳐 잊고 있었는데, 나에게도 변하지 않은 무언인가 있다며, 지금의 자신을 긍정할 수 있지 않을까.

 

...미묘한 장면의 교차, 가끔 이럴 때 주변을 의심하곤 한다...

 

송중기는 잘 생겼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자가 아닌지라, 영화의 클라이막스로 치들을 때에도 무언가 부족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치열한 소중함의 경험이 부족한 탓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마지막 10분에서 부족한 감정은 채웠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영화의 주인공은 어린시절의 철수와 순이가 아니라 나이들어버린 순이일지도 모른다고...

 

때론 모르는게 용감한거야.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아는것이 많아져서 겁쟁이가 되버려.

나이 들어 어른이 되면 눈에 안 보이던게 많이 보여. 그렇게 아는게 많아져서 못하는게 많아져.

인생에 딱 한 번 뿐이야. 그 때가 지나면 다신 안 와.

- 늙은 순이가 젊은 손녀에게 -

 

[이미지 출처]

http://wolfboy.interest.me/

http://donsdepot.donrossgroup.net/dr141.htm

 

written by 요리사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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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도 해는 뜬다] 가장 어두운 밤의 위로


07:15


  남산을 오르는 버스에 있다. 아마 첫차인 듯하다.. 함께 하는 이들은 네다섯명 정도.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창밖만 바라본다.

  아직 주위가 어둡다. 저멀리 도시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여전히 남아있는 가로등 불빛과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는 아침의 불빛이 교차하고 있다. 어둠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불빛의 경쟁. 승리자는 없다. 반복만이 있을 뿐...

  그런 날이 있다. 랜덤으로 틀어놓은 노래가 지금 내 상황과 우연히 겹치는 날. 뮤직비디오의 주인공이 된 듯한,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슬픔은 날 가로질러 저 멀리 또 흘러가는데
  허무했던 숱한 밤을 지나서
  또 다시 돌아오는 공허한 공기들
  태양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지
  기회는 언제고 반드시 찾아온다 하지만

   

  스위트피의 가장 어두운 밤의 위로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온다. 위로...그래 나는 남산 위로 간다.



07:35


  주위는 조금 밝아져있다. 해가 뜨는 시간 7시 43분 41초.

  남산에 도착해서 동쪽이 가장 잘보이는 곳을 찾아다녔다. 지금 나는 시야가 트인 비탈길 중간에 서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따뜻한 캔커피를 만진다. 손끝에 전해지는 온기가 긴장을 풀어준다.

  일출을 보려 한다. 동지날을 기점으로 길어지기 해가 보고 싶었다. 지난 밤에 마신 술 때문일 수도 있고, 지금 하고 있는 생각때문일 수도 있다. 각오를 다지고 싶었나? 이유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지금 나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을 뿐...

  나는 가장 긴 밤의 끝자락이라는 시간 속에 있다. 산자락이든 도시의 빌딩 사이든 붉은 빛이 내비치면 나는 어떤 시간 속에 있게 될까?


  나는 가장 긴 밤의 한가운데 있다. 

  나는 가장 어두운 밤의 한가운데 있다. 
  그리고 길어지는 태양 앞에 있다.  



08:01


  그저 이쪽이거니 추측할 뿐이다. 거기에는 흘러가는 구름이 있다.

  해는 뜨지 않았다. 아니, 해가 뜨는 것을 보지 못했다. 집을 나설 때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올려다 본 하늘에는 전날 눈을 뿌린 구름이 물러나지 않고 있었다. 

  10초의 고민, 그리고 무엇에 이끌린 듯 남산을 향했다. 구름이 걷힐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였는지, 동쪽하늘에 구름이 없을 것이라는 자신이었는지 알 수 없다. 아무 것도 기대하거나 자신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흘러가는 구름을 본다. 구름 뒤 해를 상상한다. 보이는 듯도 하다.



08:49


  버스로 오른 길을 걷는다. 도시의 풍경이 거기에 있다. 아침의 불빛들만이 그곳에 남아있다.

  나는 무얼 한걸까? 평소와 달리 일찍 일어났고, 추운 날씨에 산을 올랐다. 10분 남짓 적당한 장소를 찾았고, 동쪽을 30분 남짓 바라봤다. 길어지는 해는 보지 못하고, 해를 상상했다. 그리고 걷는다. 내가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산을 다 내려오고 큰길로 나섰다. 그 순간 구름 위로 해가 뜨는 것을 본다. 아주 좁은 구름의 틈이다. 그 사이로 해가 보인다. 해를 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보고 있지 않아도 태양은 뜬다.'

  해는 다시 구름 아래로 사라졌다.


  

17:12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일몰 시간은 오후 5시 17분 40초다. 오후 내내 나와있던 해는 방금 빌딩숲 아래로 넘어갔다. 5분 뒤면 해의 자취는 아예 사라지고, 가로등 불빛이 위세를 떨칠 것이다. 다시 밤이 된다. 어제보다 1분 정도 짧아진 밤이다.

  

  밤이 되면,

  글은 집어치우고 나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  



스위트피 - 가장 어두운 밤의 위로

youtu.be/ud71GYV1RhM


 

written by 요리사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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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연말. 주말 저녁거리는 이미 커플들로 가득 차 솔로들은 설 자리가 없다. 연말은 솔로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왜? 바로 성탄!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이닷!! 내 생일도 아닌 날에 왜 이렇게 우리는 우울해야하나? 하지만 걱정마라. 크리스마스에 비가 내리길 기원하는 이 순간 세상의 모든 솔로를 위한 본격 솔로지침 제1장 ‘성탄허비 지침서’를 공개하겠다.



제1절 잠들라. 꿈이 너를 평안케 하리라


잘 생각해보라. 크리스마스는 별것인가? 내 생일도, 내 친구 생일도 아니다. 여자 친구처럼 있다고 믿으나 보이지는 않는 예수의 탄생일이다. 우리에겐 아무런 기념이 되지 않는 날이란 말이다. 그저 검정 숫자 가득한 12월 달 한줄기 희망 같은 빨간 날일뿐이다. 정말 꿀 같은 휴일이란 말이다!


연말이라고 친구 망년회, 회사 송년회, 동호회 송별회 등에 지친 내 간의 휴식을 마련해줄 절호의 찬스다. 고민하지 말라. 그냥 잠들면 모든 것이 평안타. 그래도 못 잠들겠다면 지금부터 준비하면 된다. 


오늘부터 잠자리에 들지 마라. 온라인게임이든 B급 좀비영화를 보든 잠들지 마라. 심신을 지치게 하라. 물론 잠을 참는 것은 무척 힘들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미친 듯이 지친 심신을 이끌고 따뜻한 이불속에 내 몸을 맡기고 한잠 푹 자고 났을 때의 개운함을. 단, 사전준비가 실패해 중간에 잠들 경우 잠 못 드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한다.

날도 추운 날 밖을 싸돌아다녀야 하는 커플들의 가혹한 운명에 비하면 집에 있을 수 있는 우리는 정말 행운 것이다. 잊지 말라. 꿈은 우리를 평안케 한다.





제2절 보고 감상하라. 문화생활이 네게 여유를 제공하리라


월화수목금금금 같은 직장생활에 문화생활한지가 언제인가? 숨 막히는 지옥철에서 책 한 장 넘길 여유가 있었느냔 말이다! 

올해는 특히나 볼만한 영화가 많은 해였다. 다크나이트 라이즈, 도둑들, 광해, 범죄와의 전쟁, 건축학개론, 호빗 등 볼만한 영화들이 차고 넘쳤다. 지금 거론한 영화들만 봐도 이틀도 부족할 것이다. 밖을 나갈 시간이나 있겠는가? 최고의 작품을 감상하고 연말의 따뜻한 감성과 함께 느끼면 이 얼마나 여유롭고 상류사회 같은 모습이란 말인가? 여기서 “전 이 영화들을 다 봤는데요? 어떻게 하죠?”라고 질문할 수 있다. 이것은 어리석은 질문이다. 

어찌 한 사람으로 태어나 오늘만 보고 산단 말인가? 내년에 어떤 영화가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액션의 전설! 최고의 히어로! 최고의 경찰, 존 맥클레인의 부활인 다이하드 5탄이 개봉한다!!


5탄이 개봉되는 이 시점에서 과거 윌리스 형님의 활약을 어찌 안볼 수 있겠는가? 1편부터 4편까지 복습하라. 어차피 다이하드는 한번 보기 시작하면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영화다. 이걸로도 부족하다 싶으면 시걸 형님의 언더시즈도 함께 한다면 이번 크리스마스는 풍성할 것이다. 이젠 캐빈 같은 건 개나줘라.

추운 날 구하기 힘든 영화표를 구하기 위해 발품 팔아야할 커플들에 비하면 따뜻한 이불과 귤이 함께하는 우리는 천국이다. 더불어 시걸 형님과 윌리스 형님이 함께 한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기억하라. 문화생활은 우리에게 여유를 가져다준다.





제3절 일하라. 오늘의 노력이 너를 발전케 하리라


남들이 놀 때 놀고, 남들일 할 때 일하면 발전이 있겠는가? 어찌 휴일이라고 놀 생각만 하는가! 오늘 그대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내일일 수 있다. 

생각해보라 얼마나 일하기 좋은 조건인가? 만나자고 징징거리는 여자 친구가 있나, 밥 먹자고 조르는 여자 친구가 있나, 아니면 영화보자고 연락하는 여자 친구가 있나. 없다. 우리는.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방할 여자 친구가 없다! 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최고의 환경이다.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란 말이다. 근데 여기서 “휴일이라 거래처가 쉬어서 일을 할 수가 없어요”라고 질문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어리석은 질문이다.


어찌 발전 없이 지금에 안주하려 하는가? 일을 할 수 없다면 공부를 해라. 자기개발 모르는가? 손은 여자 친구 손잡는데 쓸 것인가? 있지도 않는 사람을 위해 손을 놀고만 있게 할 텐가? 커플들은 여자 친구 손을 잡고 쓸 때 없는 시간을 보낼 동안 우리의 손엔 책이 들려있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능률적이고 유익한가? 

이것이 쌓이면 좋은 학업 성적으로 좋은 인사고가로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우리에겐 지금이 기회다. 기억하라. 오늘의 노력은 우리에게 부를 가져다 줄 것이다.




제4절 즐겨라. 게임이 모든 걸 잊게 하리라


게임 좋아하는가? 게임을 좋아한다면 지금 이시기를 놓칠 수 없다. 온라인게임들은 크리스마스 이벤트를 해 선물을 잔뜩 뿌리는 시기다. 우리가 이시기를 놓친다면 얼마나 아쉽겠는가? 생각해보라. 크리스마스 한정 옷을 착용하고 있는 내 캐릭터를 말이다! 


커플들을 보라. 게임을 좋아해도 여자 친구의 눈치 때문에 게임도 맘 놓고 할 수가 없다. 클랜의 명예가 달린 경기에 여자 친구의 전화가 왔다면 자넨 이미 진 것이다. 왜? 적은 벨소리를 듣고 ‘이걸 받아야하나 말아야하나’하고 고민하고 있는 자네를 놓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눈 한번 깜빡인 걸로 승부가 갈리는 판에 그런 고민은 사치다. 이미 정신 상태부터 진 것이다. 

여기서 “저는 온라인게임 안하는데요. 어쩌죠?”라고 질문할 수 있다. 걱정 말라. 세상엔 온라인 게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 대작은 따로 있다. 




우선 시드마이어의 문명을 접해보라. 한 국가를 만들고 원시시대부터 미래시대까지 발전하고 전쟁을 막고 과학과 문화를 높이고 시민의 평화를 지키다보면 이미 새벽이 밝아 오고 있다. 

삼국지의 엔딩을 본적이 있는가? 천하를 얻기 위해 재야에 숨은 인재 찾아 등용하고 촉나라를 치기 위해 위나라와 외교를 하고 유비관우장비의 형제애에 가슴 뭉클해 하라. 시대의 영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삼국지는 최고의 작품이다. 천하가 이미 자네 손에 있다면 26일이 밝아 오고 있을 것이다. 


모험이 필요한가? 오대양을 누비며 동료와 함께하는 모험이 가득한 대항해시대가 있다. 대서양을 건너 인도양으로, 인도양을 건너 태평양으로, 새로운 마을을 발견해 주둔을 하고 무역을 통해 수익을 올리면 나의 함대는 점점 강해진다. 모험이 가득한 이것을 어찌 포기하겠는가? 전 세계의 숨겨진 보물을 다 찾았다면 크리스마스는 이미 과거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대작들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 모두는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계속 이 게임을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조심해야한다.

커플들의 손엔 연인의 손이 있다고 부러워 말라.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자네의 캐릭터엔 +12검이 들려있을 테니깐. 기억하라. 게임은 모든 것을 잊게 할 것이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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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라면 열혈이다


패밀리가 비록 8비트 게임기이기는 하나 사실 전설적인 게임이 많았다. ‘스퀘어’의 파이널 판타지 시리즈도 그렇고 ‘에닉스’의 드래곤 퀘스트가 좋은 예다. 이 둘은 나중에 게임계의 큰 획을 긋는 대작인데 이후로 계속적으로 시리즈가 출시되어 전설을 계속 이어나갔다. 이처럼 잘 찾아보면 대작의 시초이거나 괜찮은 작품이 패밀리에 많았는데 특히 ‘게임은 협동이다’를 보여준 작품이 있으니 바로 ‘열혈 시리즈’였다.


패밀리를 가졌던 유저라면 한번쯤은 해봤을 정도로 유명하고 패밀리의 대중적인 게임이었다. 일단 친구와 함께 2인 협동 플레이가 가능했다는 점은 우리들이 열광하기에는 충분했다. 물론 기존에 2인 플레이가 되는 게임이 없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2인 플레이기는 하나 먼저 게임을 하는 사람이 죽으면 다음 사람이 이어 받는 식의 게임이 많았다. 2인용이기는 하나 협동적인 모습은 없던 것이다. 물론 전설의 슈팅게임인 ‘트윈비’나 ‘배틀시티’ 같이 게임이 있긴 했으나 협동이라 긴 보단 같이 한다(?) 정도의 느낌이었다. 같이하는 친구가 적의 총알을 피할 수 있게 도와 줄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열혈 시리즈는 찐한 우정을 체험할 수 있기 충분한 작품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열혈 격투전설’의 경우 열혈 시리즈의 여러 캐릭터들이 나와 무술을 겨루는 게임(사실 무술이라기 보단 그냥 패싸움 같았다)이었다. 2인 플레이시 나와 친구가 한 팀이 되어 함께 상대방을 물리쳐야했다. 친구가 맞고 있으면 달려가 롤링어택을 날려주고, 내가 맞고 있을 땐 친구가 달려와 니킥을 날려주고는 했다. 생각만 해도 눈물 나는 우정이었다.


캐릭터 고르는 방식도 특이 했다. 이름과 생일, 혈액형에 따라 캐릭터가 달라졌고, 무술의 종류가 달라졌다. 그래서 주로 좋은 무술과 능력치가 나오는 생년월일과 혈액형은 외워두고는 했다. 나는 특히 마샬아츠를 사용하는 캐릭터를 좋아해 외워두고 사용했는데 검정 도복바지를 입고 발차기를 샤샤샥 날리면 이소룡이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최고였다.


열혈 시리즈엔 ‘쿠니오’와 ‘리키’라는 주인공이 있었는데 모든 시리즈엔 꼭 나왔다. 흡사 김성모 만화에서 ‘강건마’가 계속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김성모의 만화에서는 강건마는 어떤 작품에 나오던 킹왕짱 쌔지만 열혈 시리즈는 아니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쿠니오와 리키가 제일 후졌다. 웬만하면 주인공이 제일 쌜 법도 한데 별로 특징도 없고 그렇다고 멋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게임을 하면서도 거의 골라본 적 없는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스토리 모드를 하다보면 이 녀석들을 플레이하게 되는데 하는 동안 내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쿠니오와 리키의 우정만큼은 최고였다.


위에서 말한 대로 열혈은 시리즈물인데 열혈격투전설 빼고도 ‘열혈’이라는 이름을 붙친 온갖 스포츠가 존재했다. 열혈하키, 열혈축구, 열혈농구, 그리고 올림픽을 연상케 하는 열혈신기록.(우리는 주로 열혈 운동회라 불렀다) 이밖에도 많지만 내가 주로 한 것은 이것들이었는데 모두다 깨알 같은 재미와 협동이 존재했다.


열혈시리즈가 협동이 존재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모든 시리즈엔 폭력(?)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일단 ‘열혈’이란 단어가 붙은 이상 일반적인 스포츠 게임을 상상하면 큰 오산이다. 열혈하키의 경우 하키채로 패는 것도 모자라 그냥 주먹도 휘두를 수 있었다. 


특히 마구를 쏘기 위해선 대략 3초가량 슈팅 버튼을 눌러 기를 모아서 쏴야 했는데 기를 모으는 3초가량은 거의 무방비 상태다. 초반 한두 판의 경우 컴퓨터가 좀 모자라 기를 모으는 동안에도 잘 건드리지 않았지만 뒤로 갈수록 인공지능도 좋아져 기를 모은 다 싶으면 하키채 찜질을 받기 일쑤였다. 

이때 다시 한 번 뜨거운 우정이 빛을 바라는데 기를 모으는 동안 내 친구는 슈팅을 방해하러 오는 상대방을 있는 족족 쳐 패고는 했다. 물론 내 친구가 마구를 위해서 기를 모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가? 생각만 해도 뜨거운 우정이 아닌가? 친구의 마구를 위해서 내 한 몸 던져 친구를 지킨다! 그 정신은 정말 휘트니 휘스턴 지키던 캐빈 코스터너 저리가라였다. 하여튼 ‘열혈’이란 단어가 붙은 이상 정상적인 스포츠는 아니었다. 

열혈시리즈의 최고의 장점은 협동이라 말했지만 사실 최악의 단점(?)도 사실 협동이라는 점이었다. 협동이 되는 만큼 우정파괴의 위험도 도사렸다. 



다른 시리즈도 비슷하지만 열혈 격투전설의 경우 상대 팀만 때릴 수 있던 게 아니라 같은 편도 타격이 가능했다. 쉽게 말해 내가 내 친구의 캐릭터도 팰 수 있다는 것이다. 친구를 위기에 구하기 위해 날렸던 롤링어택이 상대팀과 함께 내 친구도 함께 날렸을 땐 욕설이 튀어나오기 딱 좋았다. 


이게 심해지면 한명이 삐지고 “너랑 안 놀아”가 나올 수도 있는데 오락기 주인이 삐져 그만한다고 해버리면 대략 난감한 상황이 오고는 했다. 게임을 계속 같이 하기 위해선 주인장 녀석의 비위를 조금씩은 맞춰주고는 해야 했다. 어린 나이지만 사회의 섭리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던 거 같다.


우정파괴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열혈 시리즈는 이후 여러 게임기에 이식되고 했다. 그러나 패밀리만큼의 큰 빛을 보지 못했다.(물론 우정파괴 때문은 아니었다) 그래도 열혈남아(熱血男兒)가 아닌가? 키 작던 나도, 내 친구도 쿠니오와 리키 못지않게 열혈남아였고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남자라면 역시 열혈인 것이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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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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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0 02:54

 

 

오늘따라 바람이 잘 분다. 15노트. 그야말로 쾌속선이다. 하늘은 별무리로 가득하고, 파도는 잔잔하다. 바다와 하늘이 검푸른색으로 뒤엉켜 분간하기 힘들다. 하늘에 배가 두둥실 떠가는 것 같다. 심심한 마음에 갑판에 나오니 오늘은 사샤가 없고 요리사가 앉아 있다. 무얼 쥐고 있는지 가만히 손바닥을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하늘을 한번 쳐다본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뭐해 안자고?"

"그냥요."

"그냥 뭐하는데?"

"그냥 있어요."

 

가까이 가서 보니 손에 온통 허연 가루다. 아아, 그제 아침에 마데이라 섬에 들러 샀던 그 설탕이구나. 설탕은 달콤해서 얼른 팔아넘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샤가 차를 마신다, 빵에 발라먹는다 별 핑계로 야금야금 다 갉아먹을 것이다. 그것에 대비해서 요리사에게 잘 지키고 있으라고 했더니 아직까진 큰 문제가 없나보다.

 

"왜 그렇게 그걸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어?"

"하얀 게 신기하네요."

"뭐가 신기한데?"

"별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런가?"

"그럼요. 반짝반짝한게 그렇지 않아요?"

"음...썩 그래보이지는 않는데;;;"

"제가 육지에 있을 때였어요. 어떤 할아버지한테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어요."

"재미난 이야기? 뭔데?"

"시장에서 생선을 파는 할아버지였어요. 옷차림은 남루했는데, 눈이 굉장히 맑은 분이었죠. 범상치 않다는 건 당장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매일 그 시장에 놀러가곤 했는데, 어느 순간 그 할아버지와 친구가 됐죠. 그 할아버지가 얘기해주기를 별은 사람의 영혼이랬어요. 사람이 죽으면 몸은 썩지만 영혼은 씨앗이 되서 하늘로 올라간대요."

 

"오호, 별이 씨앗이라...그럼 꽃도 피나?"

"그럼요. 그 사람이 살아생전에 얼만큼 훌륭한 일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푸느냐에 따라서 별의 밝기도 달라진대요. 마음에 드는 별을 몇 개 골라서 매일 같이 살펴보면 별빛이 달라지는 걸 금방 알 수 있어요. 점점 빛의 기운이 세지는 건 별이 꽃을 활짝 피우는 거라고 했어요"

"별꽃이 핀다...꽃이 피면 지기도 하나?"

"물론이죠. 그게 바로 혜성이죠. 저기 봐요. 하나가 떨어지잖아요."

"떨어지면 영혼도 사라지나?"

"아뇨. 거꾸로죠. 별이 떨어진 그 자리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대요. 별꽃을 활짝 피웠던 사람은 그만큼 좋은 가정과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다고 하네요. 타고난 복이라고 해야하나. 결국엔 모두가 돌고 도는 거죠."

"죽어서 별이 되고, 꽃을 피운다...그리고 꽃잎이 지면 혜성으로 떨어져 다시 살아난다...저기 활짝 핀 꽃들 중엔 내 조상님들도 있겠군. 그치?"

 

"있을 거에요. 언젠가 선장도 저기 어딘가의 별이 되겠죠. 얼마나 빛이 날진 모르겠지만 ㅎㅎㅎ"

"그렇겠군. 그럼 저기 어딘가엔 내 할아버지 할머니 별도 있겠구만."

"그럼요.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저 별들이 자신의 조상들의 영혼이라고 믿었대요. 왜 밤 12시에 제사를 지내는지 아시겠죠?"

"별이, 아니지. 조상님들이 가장 잘 보이는 때라서?"

"그렇죠. 죽은 영혼들의 기운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때라고 하네요. 영혼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

"나름 일리가 있군."

 

그렇게 생각을 해보니 웬지 신비로운 느낌이 든다. 나의 조상들을 별꽃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는 밤이라...요리사 옆에 우두커니 앉아 몇 시간이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요리사 손에는 작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별>

 

                                        박영신

 

지상에서 심은 씨앗 중에

가장 멀리에 심은 것이 별이다.

 

떡잎 자라는 가슴이 푸릇푸릇해지는 밤.

 

오늘도 어느 별에서는 꽃이 피고 있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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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는 빵집이 하나 있는데 그 가게에는 아리따운 아가씨가 한 명 있다. 매일 저녁 퇴근길, 동네 어귀에 이르면 빵집 쇼윈도 너머로 항상 그녀를 볼 수 있다. 이 순간만큼은 단순히 내가 퇴근하는 길에 그녀를 본 것인지, 그녀를 보기 위해 일하러 갔다 온 것인지 헛갈릴 때도 있다. 달코롬한 빵 냄새에도 홀려 자연스럽게 눈길이 향할 만도 하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언젠가는 턱을 궤고 TV를 보고 있고, 언젠가는 폐장 준비로 막대걸레질을 하고 있고, 언젠가는 그냥 서 있기도 한다.
 
그녀는 몇 살일까? 얼핏 보면 나보다 나이가 있어 보이기도 하다. 주인일까, 주인네 딸일까? 내가 스쳐가는 지금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날 감지하기는 할까?
 
궁금함도 잠시 내가 그녀를 유리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순간은 단지 1~2초 정도에 불과하다. 다가가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빵을 사면서 대화도 걸어볼 수 있고 가까이서 얼굴도 볼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단지 지금이 좋아서이다. 쇼윈도 너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그냥 좋다. 쇼윈도 얼룩 때문에 선명하진 않지만 어떤 목소리인지 들리진 않지만 그래서 더 좋다. 가게에 들어가서 얼굴을 마주 보거나 이야기를 하게 되면, 왠지 나의 환상은 깨질 것 같기 때문이다. 마치 가게 문을 열 때의 알림종 소리에 환상이 깨어지듯이.

 

짝사랑이라는 게 이런 거 아닐까. 쇼윈도 사이에서 그 사람의 실재가 아닌 단지 ‘상상적 이미지’에서 만들어진 이상(理想)과의 사랑. 하지만 그러한 인식이 더 위력을 가하는지도 모르겠다.

 

유리창 문을 열고 들어가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하지만 그 선택이 옳았는지 아닌지의 판단은 내 손에서 벗어나 있다. 아직 나에게 빵집 아가씨는 빵집 아가씨일 때가 좋다. 빵집 아가씨를 완벽한 여인으로(정작 본인은 엄청 부담스러워 할) 만든 것은 내가 만든 것이지 그녀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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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었을까? 친구한 녀석이 새로 나온 아이폰을 처음 들고 내 앞에 나타났다. 평소 애플사의 아이팟을 애용하던 나는 아이폰이라 하여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단지 아이팟 터치에 전화기 기능을 더한 새로운 제품 정도로 인지하는 정도? 그러나 친구 녀석이 나에게 보여준 다양한 어플들은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도 이랬을까? 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보는 듯 신기함 그 자체였다. 그중 여자 목소리로 대신 욕을 하던 어플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하고 재밌었다. 차후 내가 스마트폰을 구입하자마자 가장 먼저 설치한 어플도 그 욕 어플이 었을 정도다. 거기에 지금은 국민 어플이 된 ‘카카오 톡’은 더욱 신기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이 어플은 전화번호가 있고 상대방도 이 어플이 있으면 자동으로 친구등록이 되지”라고 설명했다. 정말 신기했다. 내가 친구를 찾아서 친구등록을 할 필요가 없고 전화번호만 있으면 친구추가가 된다니? 이건 영화에서나 될법한 일들이 현실에서 이용되는 듯했다. 거기에 문자를 보내는 것도 꽁짜라고 하니 스마트폰이 더욱 더 위대해 보였다. 그 외에도 버스의 도착시간이나 컴퓨터 못지않은 게임 퀄리티 등 스마트폰의 매력은 넘쳐흘렀다.


그 매력에 빠져 차후 스마트폰인 아이폰을 구입했으나 익히는데 꾀나 고생했다. 나는 지금껏 얼리어답터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신식 전자기기를 다루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스마트폰은 조금 달랐다. 

처음 아이폰을 접했을 땐 전화를 끊는 것도, 문자를 쓰는 것도 조차 힘들었다. 더군다나 어플을 받기위한 앱스토어의 가입절차가 뭐 이리 복잡한지 한동안 친구의 아이디를 도용하며 살아가기도 했다.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나이가 들어서 이제는 새로운 것 하나 알아가는 것도 힘든 건가?’였다.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읽고 이해하는 것이 귀찮았던 것일 뿐이지만 말이다.


스마트폰이 조금 익숙해진 후에는 거짓말 조금 보태서 일한 시간보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본 시간이 더 많은 것 같다. 별달리 할 것도 없는데 이것저것 보고 먹이를 찾는 승냥이 마냥 앱스토어를 뒤지고 다니고는 했다. 그렇다보니 배터리의 소모량이 엄청나서 항상 방전될까봐 걱정했었다. 그래서 보조 배터리까지 구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스마트폰도 그냥 핸드폰이었다.


할 일없으면 들어갔던 앱스토어 덕에 밀리지 않았던 업데이트는 이제는 업데이트 하라고 숫자 뜨는 것조차 귀찮고 무섭다. 심심하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말 걸었던 카카오 톡도, 혹시나 방전될까봐 샀던 보조 배터리도 가방 한 켠에서 먼지만 쌓여 가고 있다. 집에 오면 충전해달라고 빨갛게 들어오던 배터리도 80%이상 남아 있을 때도 있고, 가끔씩 바쁠 때면 90%이상 남아있어 다음날까지 사용해도 무방할 정도로 남아있고는 한다. 한때는 책을 집어던지고 매달렸던 스마트폰도 시간이 지나자 결국 예전에 사용하던 핸드폰이 됐다. 예전보다 조금 영리한(?) 핸드폰 정도랄까?

이런 스마트폰 마냥 나도 언젠간 나이를 더 먹고 서서히 사람들 관심 밖으로 사라질 것을 생각하니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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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주인이 사라지면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는 장난감 병정들과 같이

 

교수님께서 퇴근하시면

어김없이 연구실의 책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마음껏 그들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좁은 연구실에서 드넓은 세상을 만나고, 

그렇게 꿈을 키워 간다.




어렸을 적에는 몰랐다, 교수님께서 본인의 연구실에 제자를 들여놓는 그 진정한 의미를. 돌이켜보면 나도 모르게 가장가까이에서 나의 미래를 바라보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생들이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으면 따뜻한 차를 타주시며 정성스레 그네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교수님의 모습, 논문과 수업 준비를 하느라 컴퓨터 자판을 치는 모습, 교수님이면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았지만 끊임없이 책과 싸움하며 고뇌하는 모습, 한강이 바라보이는 창문에 서서 사색하는 모습, 학회에서 발표를 하는 모습, 대학원생 제자들과 세미나에서 토론하는 모습, 책 출판을 위해서 원고를 쓰는 모습, 동료 교수들과 식사하면서 근래 고민하는 주제에 대해서 대화하는 모습 


모든 것들을 생생하게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 그만큼 구체적으로 나의 미래를 꿈꿔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담긴 교수님의 최고의 선물이었다. (감사합니다.)


당신이 현재 꿈을 갖고 있다면, 당신이 꿈꾸고 있는 그 일을 현재 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 보기 바란다. 그 사람의 모습이 바로 미래의 당신이 될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그 사람이 당신의 멘토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더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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