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진짜 오래간만이다”

 

영풍문고 음반 코너에서 기웃대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로 어깨를 툭 친다. 돌아보니 노○○형이다. 안본 사이에 몰라보게 살이 빠진 모습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반갑게 악수를 나누었다.

 

형과 나는 한 학년에 1반, 반 인원수 30명, 전교생을 합쳐도 180명이 채 되지 않는 사립학교 출신의 동문이다. 당시 방송매체의 용어를 빌려 말하자면 ‘열린 교육 1세대’다. 형은 ○○국민학교 3회 졸업생, 나는 4회 졸업생이다. 조그마한 건물 한 채에 매일같이 오고가며 서로의 얼굴을 익히고 함께 생활해 온 까닭에 오늘처럼 서로 갈 길 가다 마추져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그런 정도라 보면 되겠다. 그리고 형과 나는 오랜 시간 같은 동네에 살면서 이곳저곳 골목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럭저럭 인사를 주고받은 전력이 있어 이런 우연찮은 만남도 결코 부담스럽지는 않다.

 

“오랜만에 봤는데 커피라도 한잔 할래?”

평소처럼 그럭저럭 인사를 주고받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오늘은 예외인가보다.

“좋죠. 마침 커피도 땡겼는데!”

곧장 서점 지하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았다.

“뭐 마실래?, 메뉴 불러. 내가 너한테 얻어먹을 수는 없잖냐”

잘 빠진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돈다. 허허, 그러고 보니 이 정도 얼굴값이면 여자 여럿 따라붙을 상이다. 달걀형 얼굴에 오똑한 콧날, 안정적인 눈매와 시커먼 숯 눈썹에 쌍꺼풀까지 졌다. 머리도 이래저래 잘 만지고, 옷걸이에 옷발도 제법 받네 그려. 살이 쏙 빠지니 새삼스레 그의 외모를 다시 보게 된다.

 

가방 놓고, 짐 놓고 하는 사이에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라떼 한잔이 나왔다. 머그잔으로 시킨 걸 보니 금방 헤어질 생각은 아닌 듯싶다. 후후 불어가며 한 모금 넘기기 무섭게 동시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찌찌뽕. 내가 먼저 썰을 풀었다. 전공은 인문학을 했고(어차피 세부전공 이야기해봐야 대부분 알아듣지 못한다), 재미없는 직업에 염증을 느껴 이탈을 시도했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미디엄 수준의 이야기로 그 동안의 라이프 스토리를 노릇노릇 구워줬다.

“그렇지, 우린 부속품이 될 수 없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던진 형의 단호한 한 마디다. (뭐 꼭 그런 의도로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는데...) 어쨌든 형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 역시도 그 동안의 애환, 방황, 고민의 웅덩이에서 한참을 허우적댔고, 나름대로 그곳에서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는 노력이 역력해 보였다. 그 역력함의 흔적이 눈가에 진 검은 그늘과 빼쪽 마른 형의 몰골에서 드러난다. 우리나라 3대 대학 안에 손꼽히는 그 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취직은 건축회사로 했단다. 그것도 모두가 회피하는 현장직으로 말이다. 이력서를 내다내다 안되다 보니 결국 그 진로를 선택한 모양이다. 뭔가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는 느낌에 반년도 채우지 않고 사표를 냈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8개월 동안 로스쿨을 준비했는데, 점점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진로와는 맞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고 그의 마지막 무기인 ‘일본어 능통자’로서의 능력을 살려 통번역 대학원 쪽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여자 친구는 있어?”

형의 두 번째 질문이었다.

“예, 있어요.”

물어보는 투가 왠지 모르게 ‘난 없는데 넌 있니?’로 들린다. 역시나 예상은 맞았다.

“야, 그래도 넌 여자 친구 있으니까 살만하겠다. 난 공부한답시고 친구들이랑 다 연락 끊고...그렇다고 집에 자꾸 있기도 미안하고, 그래서 이렇게 학원 끝나면 카페오고, 카페에서 공부하다 또 학원가고 그냥 그렇게 지낸다.”

“그건 맞아요. 저도 여자 친구 없었으면 병원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몰라요. 에이 그리고 형, 형 정도면 여자가 줄줄이 따라 붙을 것 같은데요. 얼른 여자 친구 만드세요. 제가 어떻게 소개팅 해드려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졌다.

“에이 내가 뭘 딱히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지내고 있는데 만들면 뭐하냐. 나중에 자리 잡으면 그 때 가서 만들던지 해야지.”

‘자리 잡으면’이란 if형의 그 말이 비수에 꽂힌다. ‘자리를 잡으면 무엇 무엇을 하겠다’. 어딜 가나 내 또래와 그 주변에서는 남녀누구 구분할 것 없이 사방팔방에서 남발하는 말이다. 무슨 얼마나 대단한 자리가 있길래 우리는 에브리데이 ‘자리를 잡겠다’고 외치는 것인지 이제 뭐가 뭔지 정말 모르겠다. 그리고 ‘자리’라는 용어가 아예 우리 88만원 세대의 고정멘트에 녹아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겹친다.

“자리를 잡는다...자리를 잡는 게 뭘까요 형?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자리 찾다가 좋은 거 다 놓치겠다 싶기도 해요. 그래서 전 요새 그냥 자리고 뭐고 다 제쳐두고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요.”

씁쓸하게 웃어대니 형도 따라 웃는다.

“그래, 하고 싶은 대로 뭘 하고 사냐?”

“음...일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글도 쓰고 하죠.”

“글? 글은 무슨 글을 쓰는데?”

“그냥 전공 따라 논문도 쓰고요, 지금까지는 논문 위주였죠. 우리 쪽 분야로다가 좀 쓰다가 보니까...근데 공급을 해도 수요가 없으니 휴지조각이랑 다를 바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방향을 좀 틀어서 문화콘텐츠 쪽으로다가...아, 형 로스쿨 준비하셨다면서요? 문화산업이랑 관련해서 법도 좀 아세요? 제가 요번에 그 쪽으로 논문 하나 썼는데.”

논문 얘기에 문화산업이 어쩌구저쩌구 떠들어대니 형의 눈빛이 빛난다.

“논문이면 너 지금 대학원 다니니?”

“졸업은 했구요. 그냥 이젠 실험삼아 반 취미삼아 반 그렇게 논문은 계속 내고 있어요.”

“혹시 그 글 볼 수 있냐?”

마침 가방에 논문 하나 갖고 있었던 게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

“야, 니가 이런 글도 쓰고...이런 일 했구나 너. 고학력자네!”

“석사가 무슨 고학력자인가요. 그냥 어중간한 나부랭이 정도죠. 어디가서 이거 가지고 명함 내밀면 웃어요.”

“야, 그래도 나보다 너가 훨씬 전문적이고 가능성 있어 보인다.”

“전, 형이 더 그래 보이는데요.”

“너 이 책 딱 한 권 갖고 있는 거야?”

“아뇨. 필요하시면 갖고 가세요.”

“야 고맙다. 내가 학원 끝나고 진지하게 한번 읽어볼게. 너 재밌는 일 하는구나.”

“하하, 글쎄요.”

형이 학원 수업이 있다 길래 우리는 곧 잔을 마저 비우고 일어섰다. 영풍문고를 빠져나와 연락처를 주고받는데 형이 무거운 말 한 마디 남긴다.

“야, 이 커피숍 생활도 얼른 때려 치고 싶다.”

“아 그럼요. 조금만 더 고생하시면 형 정도면 분명히 좋은 자리 잡으실 거에요.”

“집에서는 잠만 자고 나오는데도 눈치 보이고, 학원에 가면 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고, 카페 오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정말 못해먹겠다. 하하, 내가 나중에 자리 잘 잡고 한번 제대로 밥 살게. 아니, 야 술이나 한잔 하자”

“술도 좋죠 형. 조심해서 가세요. 연락드릴께요.”

 

얼마나 외로웠으면 지나가다 마주친 동네 동생을 데려다가 커피 시켜 놓고 이런 얘기를 했을까 싶다. 형이 하루 빨리 커피숍을 벗어나 우뚝 그 ‘자리’에 서기를 바랄 뿐이다. 나 역시 커피숍에 오는 횟수를 줄여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만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커피숍은 마음과 현실의 도피처가 된 것일까.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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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은 10월의 가을, 높으신 두 양반이 삼청동 무슨무슨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시민들에게 다정하게 손을 흔드는 장면이 포착됐다. 대중을 의식하듯 창가 쪽에 앉아 선글라스에 '브이'자까지 펼쳐 보여주는 여유와 다정함도 보여주신다. 오랜만에 답답한 파란집을 벗어나 두 내외 분께서 오붓하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토요의 오후를 만끽함이란 충분히 경쾌하고 맑게 다가온다.

 

같은 시간 때,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의 주민들의 분노는 마치 시커먼 커피물이 부글부글 넘쳐 흘러 온 바닥을 적시듯 했다. 정체불명의 괴이한 가스에 2천500백명의 주민이 치료를 받고 있으며, 주변기업의 피해만 94억이 넘어갔다. 멀쩡하게 살던 우리집을 팽개치고 급작스레 이주를 해야 하는 상황에 온 주민들이 불안과 노여움에 가득 찼다. 이에 구미의 '왕'은 '피해 액수가 나와야 보상을 해 줄 것 아니냐'하는 엉뚱한 볼멘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절대 피해시민에게 손해입히지 않을 겁니다"라는 말은 마치 보험회사 영업사원이 막 사고를 입은 피해자에게 다가와 '돈으로 보상할 테니 엄살 부리지 마라'고 꾸중하는 느낌이다. 하나 덧붙이면, 불산 한 방울이면 뼈가 녹고, 공기 중에 노출되면 노약자의 호흡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준다고 한다. 돈으로 그들의 건강과 생활과 집을 고스란히 돌려줄 수 있다면 한 번 그렇게 해 보라.

 

당신이 사는 동네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맛보는 동안, 당신이 책임져야 할 밑 동네 주민들은 끔찍한 멸망영화의 주인공인 된 듯한 서늘한 공포감을 맛보고 있다. 그 커피를 마시는 '간만'의 때가 매우 좋지 않다. 아니, 상당히 불쾌하고 어둡게 다가온다. 지금 두 분은 커피 마실 때가 아니다. 내려가서 불산의 현장을 마실 때다.

 


Written by 선장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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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경이적인 물건을 갖기 위해 가장 먼저 한일은 은행에 간 것이다. 국민학교 내내 모아왔던 돈은 뽑기 위함인데 플레이스테이션(이하 플스)의 가격은 대략 20만원 선. 싼 가격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정식 수입이 안 되서 돈이 있어도 물건이 없다면 못 살 수도 있었다. 꼭 불법적인 물건을 사는 것만 같았다. 뭐 그렇다고 합법적이지도 않았지만.


플스 구입과 함께 정식 절차처럼 행해졌던 것이 플스에 복사칩을 다는 것이었다. 몇 만원만 더 주면 달 수 있었던 복사칩은 불법으로 복사한 게임시디를 돌리기 위함이었는데 원활한 게임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해야하는 절차였다. 그리고 복사시디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 하나. 싸기 때문이었다.


플스를 갖고 있다 해도 10만원 가까이하는 정품시디를 구입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 화장실 5개쯤 달린 집에 살고 있으면 또 모를까 일주일 용돈 오천원을 받는 나로서는 불가능했다. 이런 나에게 복사칩은 불법이 아니라 오히려 합법이었고 구세주였다.

시디를 구입 할 때도 보면 진열대의 시디는 정품이었고 복사시디는 직접 볼 수 없었다. 클리어파일에 프린트된 시디커버를 정리한 리스트를 보여주고는 했다. 조직의 은밀한 뒷거래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은밀한 뒷거래가 성립되면 주인아저씨는 알 수 없는 보물창고에 다녀오시더니 시디를 가져다주고는 했다. 만원 선이었던 불법복사시디는 게임을 하고자하는 이에게는 합법이었고 정품이었다. 더불어 복사시디라 할지라도 나중에 5천원만 내면 다른 시디로 교환이 가능했다. 이 얼마나 나눔이 뿌리 깊게 박힌 사회란 말인가.

복사시디는 불법이었으나 그것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나라에서 플스가 얼마나 팔렸을까? 나름 숨은 공모자라 생각된다. 나 역시 그 혜택을 누리며 많은 게임을 할 수 있었다.


Written by 선의


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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