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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3 삼국지 쉽게 읽기- 나는 게임부터 했다.


 

삼국지는 중국 후한시대 말, 위ㆍ촉ㆍ오가 천하를 두고 치열하게 다툰 전쟁사다. 역사의 시간으로 재본다면 백년이 채 되지 않은 다소 짧은 스토리다. 중국사 전체의 비중에서 따져 봐도 삼국시대가 자치하는 역사적 의의는 사실 그다지 높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는 동양의 남자들을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로 빠뜨려버린 고전 중의 ‘TOP’으로 손꼽히고 있다. ‘삼국지를 열 번 읽은 사람과는 논쟁하지 마라’는 말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여하튼 삼국시대가 실제 어떻게 벌어졌는지 정확히 몰라도, 삼국지가 나에게 미친 파급력이란 매우 깊고 진하다.

 

내가 처음 삼국지를 접한 것은 책이 아니라 게임을 통해서였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동네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일본 KOEI사에서 출시한 ‘三國志 Ⅲ’ 게임을 알게 됐다. 11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권모술수와 용병술로 천하를 제압해 나아가는 시뮬레이션 전략에 그만 흠뻑 빠져 버렸다. 그 맛을 잊지 못한 나는 방학만 되면 외할머니 댁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길게는 한 달 동안 머물며 삼국지 게임을 마음껏 즐겼다. 그곳에는 삼국지에 열광하는 사촌형과 최신형 컴퓨터, 천혜의 골방이 있었다.

 

당시 삼국지 게임은 한글 번역본이 없었던 탓에 한자로 된 자막을 읽고 눈대중으로 숙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는 통밥으로 익히면 그만일 뿐 문제될 것이 전혀 없었다. 아니 문제는커녕 도움이 되었다. 그 때 나는 서예학원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학원에서 익힌 한자를 게임에 대입시킬 수 있었고,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군사에서 ‘징병’과 ‘모병’의 차이, 인사에서 ‘등용’과 ‘임명’의 의미, 계략에서 ‘이호경식’과 ‘의서의심’이 지닌 각각의 효과는 한자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몰입의 몰입을 거듭할수록 궁금한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유비를 선택군주로 했을 때, 내가 등용하고자 하는 이 인물이 실제 삼국지에서는 어떤 활약을 했던 사람인지, 신야성에 유비가 주둔하고 있는 시나리오를 선택하면 조조는 왜 형주로 내려오지 않고 원소와 그토록 격렬하게 싸우는지, 마지막 시나리오에서 왜 유선의 세력이 삼국 중 가장 미약한지 등등 하나 둘 역사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결국 국민학교 5학년 여름방학이 되자 나는 아버지에게 삼국지를 읽고 싶다고 말했다. 그 때 아버지가 나에게 준 책은 정비석 작가의『三國志』(1982년 발행, 지혜문화사)였다.

 

총 1510페이지, 모두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이었다. 당시 아버지가 소장하고 있던 책들은 가로형식이 아닌 세로형식이 많았는데 이 책 역시 그랬다. 읽기에 다소 생소한 감이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는 3일 만에 모든 내용을 읽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격렬한 스토리에 넋을 잃었다. 그렇게 한 번 삼국지 전체의 이야기를 훑고 나니 삼국지 게임에 제시된 시나리오 1~5의 타이틀에 대한 경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왕실의 부흥을 기치로 내걸었던 ‘유비의 역사’를 위주로 다시 한번 책을 읽었다.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도원결의로 일어난 후 수십 년을 방랑객처럼 떠돌면서 겪게 되는 시련과 고난의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읽었다. ‘선한 자’의 편에서 사건 위주의 읽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입각해서 다시 게임에 임했다. 그렇게 몇 번을 자꾸 반복하자 뒤에서 지켜보던 사촌형이 한 마디 던졌다. “넌 맨날 재미없게 유비만 하냐? 조조가 훨씬 재밌어!”

 

나는 조조의 뭐가 재미있느냐고 되물었다. 형은 조조가 사람도 훨씬 많고 전쟁도 스케일이 다르다고 했다. 형의 대답은 그 때까지 내 머릿속에 온통 악인으로 찍혀 있던 조조라는 인물을 재조명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나는 중요 군주들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삼국지를 읽었다. 그리고 그 군주들이 아끼는 측근들과 핵심인물들을 손수 리스트로 작성해보았다. 비로소 삼국지의 균형적 읽기가 성립되었다. 그렇게 게임의 방식도 변해갔다. 

 

이 쯤 읽고 나면 슬슬 삼국지 게임이 지겨워 질 즈음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도 알고, 사람을 얻는 방법도 안다. 정확하게 말해서 게임을 독파한 시점이다. 이렇게 되면 강자보다는 약자를 골라서 게임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장수, 장로, 공융, 유요, 엄백호, 왕랑 등 죄다 한 뙈기 땅만 가지고 있다가 강대국에게 점령당하는 약소국의 군주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 주목해서 읽지 않다보니 누군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또 한번 삼국지를 읽게 된다. 삼국지의 미시적 읽기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몇 번을 거듭하여 삼국지를 읽고 나면 인상 깊었던 사건과 인물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각인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재추적하고 재구성한다. 나만의 삼국지 읽기가 시작된다. 사건을 조각조각 내보기도 하고, 떼었다 붙여보기도 하고, 가정과 가설을 세워보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의 인물에 빠져 버린다. 점점 그 사람의 삶을 동경하고, 대변해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사람의 상당 부분을 내 인생에 대입시켜 보는 습관이 생긴다.

 

게임 삼국지 Ⅲ를 완파하고, 소설 삼국지를 열 번 이상 읽어본 소감이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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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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