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하기 하나.


내가 일하는 곳은 주로 술을 파는 곳이긴 했지만 초저녁이면 종종 식사를 목적으로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있다. 워낙 분위기가 ‘술 먹자!’하는 분위기라 많지 않지만 찌개라는 메뉴 때문인지, 가게이름 때문인지 백반집으로 착각해 들어오는 손님들이 더러 있다. 물론 자리에 앉았다가도 식사거리가 없다는 것을 판단하고는 다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없는 식사 손님들 중에서도 혼자오시는 분들도 종종 있는데 주로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남자손님이었다. 그런 분들 역시 자리에 앉았다가도 다시 나가시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왠지 알 수 없는 짠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불쌍해서가 아니라 힘든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가벼운 술 한 잔으로 자신을 달래려하는 가장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 직원은 그런 모습을 보며 “혼자 오는 손님은 분위기 망치니깐 받지 말자”라는 제안을 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 분위기가 나빠지는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에게 있어서 혼자 밥 먹는 사람은 가게의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에 대해서 많이들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혼자 밥 먹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나도 어렸을 적엔 혼자서 밥을 먹거나 한 적은 없다. 누가 가르쳐서가 아니라 사회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다. 

 

이웃마저도 사촌이라 칭할 정도로 오지랖 넓은 나라이다 보니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지도. 더불어 결혼을 하지 않으면 불효요, 사회문제인 세상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한 인간의 성격문제이자 하자로까지 발전한 것 같다. 



혼자하기 둘.


친구로 보이는 여자 셋이서 온 손님이 있었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영화이야기가 오가는 중 한 친구가 영화를 혼자 보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자 반대편에 앉아 있던 친구가 “왜 영화를 혼자 봐?”라며 그 친구를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절대로 혼자선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한 친구가 이유를 묻자 주변은 다 여럿이서 오는데 자신만 혼자 보는 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화관은 왠지 혼자서 가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 그녀의 이야기였다. 



같이 일하고 있는 한 친구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요즘 영화를 통 못 봐서 영화가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쉬는 날 가서 보라고 답해주자 혼자서는 영화를 안 본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원래 생활하던 집보다 조금 먼 곳에서 생활하다보니 주변에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혼자는 영화관에 갈 수가 없어 영화를 볼 수가 없던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친구가 집에서는 혼자 영화를 잘 본다는 것이다. 출근해서 어제는 뭐했냐고 물으면 곧잘 집에서 영화 봤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집에선 혼자 보는데 왜 영화관에서는 혼자 못 봐?”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단순히 “그냥 혼자서는 영화관을 안 간다.”라고만 답했다. 


혼자 영화관을 갈 수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혼자 영화를 보진 않지만 집에서는 혼자 볼 수 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땐 혼자 뭔가를 하는 것이 상관없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혼자 뭔가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그냥 혼자 영화를 못 보는 게 아니라 사람 많은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못 보는 것이다. 주변이 신경 쓰여서.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무엇인가 혼자 한다는 것을 조금은 측은하게 여기는 것이 정서인건 사실이다. 내 주변의 이야기나 상황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정작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유는 ‘주변의 정서’가 아닌 ‘사람들이 나를 어찌 생각할까하는 쓸 때 없는 생각’ 때문은 아닐까. 정작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나라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데 말이다.



혼자하기 셋.


얼마 전 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녀석과 그의 여자 친구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그 자리에는 우리 세 사람 말고도 처음 보는 3명의 사람도 함께였다.

초면인지라 인사가 서로 오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집에서도 종종 술을 마신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내 말을 들은 한 친구가 ‘널 이해할 수 없어’라는 표정과 함께 “집에서 왜 혼자 술을 마셔?”라는 반문을 해왔다. 그래서 대답했다. “집에 있을 때 술이 생각날 때가 있잖아. 그래서 술을 마셔. 소주 한 병 정도 마시는데 꼭 누군가를 붙잡고 술을 먹어야하는 것은 아니잖아?”라고. 하지만 이 말은 들은 친구는 더 경악을 하며 “소주를 마신다고?!”라고 소리를 질렀다.


뭐가 문제였는지는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것도 이상한데 거기에 소주를 마신다니 이건 알코올중독자나 할 짓이었던 것이다. 집에서 혼자 맥주를 먹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도 소주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친구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아마 집에서 가끔 소주랑 맥주랑 섞어서 먹을 때도 있다고 하면 기절했을 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예전엔 ‘소주’라는 술과 ‘혼자’라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맥주를 집에서 혼자 먹는다고 하면 샤워를 마친 후 조금은 근사한 거실의 소파에 앉아 축구를 보며 마시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반면 소주라고 하면 폐인 같은 모습으로 찌질하게 방바닥에 앉아 안주도 없이 먹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다. 


이런 선입견 대부분은 미디어를 통해 각인된 이미지인데 매번 드라마에서는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잘나가는 젊은 이사님은 집에서 맥주나 양주를 먹는 모습만 보여주니 이런 선입견이 생기는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그 친구도 예전의 나와 비슷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소주는 혼자 마시면 안 되는 것이라는. 사실 그 친구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혼자 술을 먹기 때문이었는지, 혼자서 소주를 마시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난 내 자신의 욕구에 충실히 행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대학시절 나보다 어린 친구는 집에 가다 가끔 혼자 술을 한잔하고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한적 있다. 들었을 당시엔 ‘이상한 아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흘러 서른을 넘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던 나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성숙했던 아이였다. 


우리는 많은 것을 혼자하기 두려워한다. 혼자 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주변의 시선 때문이다. 내가 이것을 혼자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무의미한 생각으로 정작 하고 싶은 것은 못하고 산다. 바보같이.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주변의 시선에 대해 신경 안 쓰기로 유명했다. 시장 한복판에서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자위행위도 서슴없이 할 정도로 그는 주변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본인 욕구에 충실했던, 그리고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산 디오게네스는 행복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알렉산더 대왕이 다시 태어난다면 디오게네스로 살고 싶다고 했겠는가. 

뭐든 혼자 한번 해보자.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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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17 02:49 신고

    알찬 정보 좋네요~


성룡이라 하면 80년대에 태어난 이들에겐 영웅이자 최고의 스타였다. 물론 나도 어렸을 적 성룡의 액션 하나하나에 열광했고, 친구들과 비디오를 함께 시청한 뒤 성룡의 액션을 따라하며 뛰놀고는 했다. 우리의 윗세대에게는 이소룡이 있었다면 우리세대에는 성룡이었다. 


나는 특히 아시아판 ‘인디아나 존스’라고 불렸던 ‘용형호제’를 좋아했는데 특유의 성룡식 생활형밀착형 코믹액션이 잘 살아난 작품이었다. 이와 더불어 내 머리 속에 성룡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폴리스 스토리’였다.

영화의 제목처럼 폴리스 스토리는 성룡의 경찰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맨몸으로 나쁜 조직에 맞서 싸우는 성룡의 모습을 보고 어린 시절 경찰의 꿈을 가진 아이들이 종종 있었고, 나도 그 아이들 중 하나였다. 그랬기에 폴리스 스토리 2014는 기대가 컸다.



Take 1. 액션 없는 폴리스 스토리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사회적으로는 영웅이었으나 정작 자기 가정을 못 돌본 종 반장(성룡)은 사이가 좋지 않던 

딸과의 만남을 위해 ‘우’ 클럽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하게 되고 종 반장은 딸을 구하기 위해 인질이 된다. 인질이 된 종 반장은 클럽 내 납치된 사람 모두는 클럽 주인인 ‘우 사장’과 연관이 있었음을 알게 되며 자신도 그 일원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번 작품은 액션영화의 단골 소재인 납치와 이를 구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번 폴리스 스토리가 기존의 작품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액션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액션은 있으나 성룡식 액션은 없다. 

영화 초기 딸을 만난 종 반장은 딸을 납치한 동일범에게 공격을 당해 감금당하게 되고 의자에 몸이 묶인 체 감시를 당하게 된다. 여기서 탈줄 장면을 살펴보면 묶고 있던 철사를 풀고 몇 차례의 공격으로 가볍게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습은 성룡의 액션이 아니다. 


기존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에선 완벽한 액션은 사실 없었다. 어딘가 어수룩한 모습으로 주변 사물을 이용한 액션을 펼쳤고, 이것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예전 성룡이었다면 의자에 묶인 철사를 풀고 싸우는 것이 아닌 묶인 체 의자를 이용한 액션을 선보였을 것이다. 


이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폴리스 스토리 2014의 스토리 전개는 대부분 대화로 풀어간다. 기존의 폴리스 스토리에서 액션으로 스토리를 풀어가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영화중반부 긴 액션장면이 있으나 이는 크게 중요한 장면은 아니다. 후반부에 이르러서 액션 장면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대부분 대화를 통해 이야기 전개시킨다.


기존의 액션을 통한 빠른 스토리 전개에 비해 이번 작품은 대화를 통한 느린 스토리 전개를 선보인다. 이 영화가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이다.



Take 2. 1인 영웅물의 전형적 메타



영화 초반 성룡은 택시를 타고 번화가로 가게 되는데 뒷좌석에 앉아 있는 성룡은 매우 피곤한 모습으로 잠들어있다. 성룡이 피곤한 모습으로 번화가를 찾은 이유는 바로 딸의 연락을 받고 딸을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이 장면은 2007년에 개봉한 ‘다이하드 4.0’의 초반 부분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다. 


다이하드에서의 존 맥클레인은 사회적인 영웅이지만 정작 자기 가정은 잘 돌보지 못해 아내와는 이혼한 상태이며 딸과는 사이가 좋지 못하다. 폴리스 스토리 2014 역시 사회적으로는 영웅이지만 정작 본인의 아내는 지키지 못했고 딸과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 


사실 이런 유형은 과거 유행을 주도 했던 1인 영웅물 시리즈의 전형적 메타다. 주인공의 늙음과 함께 ‘사회적으로는 영웅이지만 정작 본인의 가족은 지키지 못했다’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라는 희생과 사랑으로 가족을 구하며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영웅이 되어 감동을 안겨준다. 


폴리스 스토리 2014 역시 딸과의 오해-불화-납치-구출-행복 식의 전형적인 흐름을 취하고 있고 이 점은 ‘이 영화에선 성룡식의 화려한 액션은 볼 수 없다’라고 선고하고 있다. 아무래도 딸이 납치된 상황에서 우스꽝스럽게 싸울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덕분에 이번 폴리스 스토리 2014는 굉장히 어중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시원한 액션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탄탄한 반전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 홀로 테러 집단과 싸우는 모습은 ‘다이하드’의 모습을 띄고 있고, 딸을 구하는 모습은 ‘테이큰’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계속해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은 성룡의 특유의 액션의 부재가 가져온 결과였다. 



Take 3. 아쉬운 그래서 더 아쉬운




기존 폴리스 스토리의 재미는 성룡의 액션의 다양화였다. 액션의 정석이 이연걸이라면 성룡의 액션은 주변사물을 이용한 액션이었다. 지금처럼 화려한 CG로 무장된 액션이 아닌 성룡이라는 배우 그 자체의 액션이었다. 그러나 폴리스 스토리 2014에서는 이러한 액션을 조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종종 있는 액션장면도 둔탁하고 무겁다. 그것을 커버하기에 스토리 라인은 허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성룡은 60세의 나이다. 당연히 예전 전성기의 액션을 선보이기는 이미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났다. 성룡의 액션을 따라하던 꼬마 역시 30대의 나이가 됐다. 어린 시절 영웅의 늙음은 나의 늙음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늙음을 부정하기위해 그의 화려한 액션을 더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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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17 17:12 신고

    전 굉장히 감동깊게 봣습니다, 평이 너무안좋아 늦게나마 봤니요~ 딸의 초반 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네요, 액션영화로는 별로나,,, 경찰영화로는. 손색없는것 같네요

    • 2014.05.18 17:00 신고

      아마 폴리스스토리라는 전작들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거기서 오는 실망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저 역시 시원시원한 성룡의 액션을 크게 기대했기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컷던 거 같고요.


오후 7시쯤 친구 녀석에게 한통의 전화가 왔다. “블랙데인데 짜장면 먹어야하지 않겠냐?” 블랙데이라고 해서 4월 14일 날 솔로인 사람들이 짜장면을 먹는 날이라고 한다. 언제부터 이런 것이 생겼는진 모르겠지만 솔로인지라 짜장면은 맛있게 먹었다. 


생각해보면 짜장면은 우리나라 음식도 아닌데 이런 기념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 이상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음식이기에 이런 기념일도 생겼을 거란 생각이다.

짜장면이라 함은 채소와 고기를 넣고 기름과 춘장을 넣어 볶아서 만든 양념을 면과 비벼먹는 한국식 중화요리다. 중국에서 처음에서 만들어졌지만(중국에서는 작장면이라 불린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진 후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원작보다 리메이크가 더 성공한 사례라고나 할까?


중국식 짜장면인 작장면은 우리식 짜장면과 다르게 단맛보다는 짭짤한 맛이 강해 춘장을 사용하기는 하나 많이 넣지 않는다고 한다. 최초의 한국식 짜장면은 1905년 인천에 거주하는 화교들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최초의 중화요리집인 ‘공화춘’에서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후 50년대 중반 춘장에 카라멜을 첨가하면서 지금의 우리 입맛에 맞는 짜장면이 탄생했는데 당시 정부에서 펼친 ‘분식장려운동’과 맞물린 짜장면은 급속도로 퍼지며 대표적 국민음식이 됐다.


짜장면의 가격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해갔다. 60년 초엔 15원, 70년도엔 200원, 80년도엔 500~700원, 90년도에 들어서 1,300원을 돌파했으며 90년도 말에는 2,000원을 기록, 현재에 들어서 4,500원 정도의 가격으로 인상됐다. 오랜 시간동안 가격도 많이 올랐지만 그래도 한 끼 식사로는 가장 싼 음식일 것이다. 만원을 줘도 치킨 한 마리 제대로 시킬 수 없는 요즘 같은 세상에 5천 원 정도의 돈으로 한 끼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짜장면이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는 동안 한편으로 매콤하고 속까지 확 풀리는 시원한 국물을 주무기로 한 짬뽕이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짜장이냐? 시원하고 얼큰한 짬뽕이냐를 놓고 누구나 한번쯤은 심각히(?) 고민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 다음으로 고민되는 것이 짜장, 짬뽕 선택이었을까. 그래서 차후 사람들은 이 고민을 해결하고자 ‘짬짜면’, ‘짜볶면’ 등 두 가지 음식을 동식에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만들어 냈고 큰 인기를 끌었다.


짜장면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이 저렴한 가격과 맛뿐이었을까? 짜장면하면 짬뽕과 더불어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바로 철가방이다. 즉, 배달이 가능했다는 건데 우리나라의 배달문화를 이끈 장본인이라고 봐도 무색할 정도로 음식 배달계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짜장면이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것도 이 철가방과 배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짜장면은 빨리 배달을 하지 않으면 면이 불어 맛이 떨어지는데 그 어떤 음식보다 빠른 배달을 요했고, 한국인의 급한 성질과도 잘 맞아 떨어져 대표적 국민음식이 된 것은 아닐까싶다. 



이제 수많은 먹거리의 풍요 속에서 짜장면은 전화만 하면 오는 가벼운 음식이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 짜장면은 졸업식이나 가족외식으로만 먹었던 분위기 있는 음식이었다. 지금은 다른 여러 음식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있어 짜장면은 귀하고 분위기 있는 음식임은 틀림없다. 더불어 치솟는 물가 속에서 여전히 저렴한 가격으로 남아준 짜장면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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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투름 하나.


살아오면서 알바를 많이 했지만 지금처럼 직접적으로 음식을 했던 적은 없었다.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삶고, 볶고, 정해진 레시피에 따라 만드는 음식은 사실 어렵지는 않았다. 단지 요리를 많이 해본 적 없는 난 요리를 하는 것이 서툴렀다.


찌개를 끓일 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짜게 만들었고, 볶음 요리를 할 땐 팬을 돌리는 게 서툴러 데이기 일쑤였다. 고기는 너무 오래 삶아 다 흐물흐물해질 때도, 너무 불을 일찍 꺼 덜 익히기도 했다. 상품으로 내놓는 요리가 처음인 나였기에 서툴러 벌어진 일들이었다. 특히 내가 가장 서툴렀던 것은 칼질이었다.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 꼬박꼬박 먹고 다녔던 난 칼질이라고는 피자나 스테이크 먹을 때 써봤던 것이 고작이었다. 그랬던 내가 요리를 하기 위해 양파를 썰고 파를 다지고 하니 내 손은 남아나질 않았다. 툭하면 베이고 긁혔고 손에 반창고가 떨어진 날이 없었다. 한번은 칼에 베인 상처를 그냥 두고 일을 했다가 세균이 침투, 감염되어 깁스를 하기도 했으니 이쯤하면 칼은 나에게 있어 흉기나 다름없었다. 서투른 칼질은 나를 힘들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해져가는 칼질을 보며 뿌듯함과 재미를 주기도 했다.


지금은 칼에 베이는 일도 없어졌고 칼질 속도도 엄청 빨라졌다. 찌개는 짜지 않게 끓이게 됐고, 고기는 적당히 잘 익어 맛이 좋았다. 처음엔 모든 것이 너무 서툴기만 해 힘들고 어려워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한 가득이었다. 베인 손가락에서 나오는 피를 보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도 들고 괜한 재능 탓도 하곤 했다. 


하지만 처음엔 모두들 그렇게 서툴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서툴렀기 때문에 재미있었고, 웃을 수 있는 일도 많았다. 모든 것이 능숙해져 심심해진 지금, 오히려 서툴렀기에 즐거웠던 그때를 생각하며 웃고는 한다.



서투름 둘.


세상살이가 난 항상 서툴렀다. 일도 사랑도 모든 것이 서툴렀던 것 같다. 처음이었기에 ‘그럴 수 있어.’라고 달래보아도 실수했던 것들을 생각날 때면 그저 기억을 지우고 싶다. ‘그땐 왜 그랬지?’, ‘그러지 말걸.’이라며 스스로 반성도 해보지만 뒤늦게 드는 후회일 뿐이었다.


스무 살이 되어 처음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다.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정식으로 이성과 교제한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때 내가 그 사람에게 했던 행동들을 돌이켜보면 정말 ‘쓰레기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투른 연애를 했다. 


술에 취해 늦게 전화하기도하고 했고 알바 때문에 힘든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된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준 적 없었다.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그걸 그 자리에서 고치려 했다. 배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서투른 연애는 당연히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이었기에 서툴렀어.’라고 말하기에는 잘해준 것이 너무 없어 지금 생각해도 미안함과 후회뿐이다. 지금 어디에서 우연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꼭 사과를 하고 싶을 정도다.

후회만 남긴 첫 연애가 약이 됐는지 다음 연애는 조금이나마 배려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또 다른 실수를 하고 같은 이별을 반복하며 다시 후회를 했다. 


나의 20대는 ‘잘했다!’라는 뿌듯함 보다는 ‘왜 그랬지?’하는 후회가 더 많다. 30대가 된 지금 생각해도 이불 뻥뻥 찰 정도의 부끄러운 실수도 많았다. 그래도 후회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서투른 실수 속에서 난 많은 것을 배웠고 성장했다.


서투름은 항상 실수를 부른다. 하지만 세상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해 간다. 어쩌면 서툴다는 것은 성장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서툴러 실수투성이였던 그 시절이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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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08 10:59

    비밀댓글입니다


난 어려서 게임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엔 학교 끝나고 잠시나마 꼭 오락실에 들리고는 했다. 중고등학생이 되어서는 블리자드사의 스타크래프트(이하 스타)를 하기 위해 PC방을 가기도 했다. 스타의 인기는 E-스포츠라는 또 하나의 문화를 만들었고 프로게이머라는 스타를 만들어 냈다. 나도 그렇게 E-스포츠를 문화로 생각했고 게임도 즐기며 어른이 됐다. 근데 언제부턴가 난 약쟁이가 되었다.


작년 4월 30일.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 외 13명은 게임을 술, 마약, 도박과 같은 중독물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규정해버리더니 이것을 관리하는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발의 했다. 순식간에 난 마약사법과 같은 등급의 범죄자가 됐다. 


게임업계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을 들쑤신 것이 처음 아니다. 셧다운제(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게임을 할 수 없도록 밤 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 게임의 접속을 강제로 막는 조치) 강화를 시작으로 게임업계 매출 1% 징수, 게임중독법까지 다양했다. 물론 제대로 발효된 것은 없지만 소식만으로도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그들이 말하는 게임의 문제점



공청회에서 그들이 말하는 게임의 문제는 술, 마약, 도박과 같은 중독물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법안을 발의한 신의지 의원은 게임을 ‘행위 중독’이라고 규정하며 보건복지부의 관리가 필요한 행위라 말했다. 더불어 게임에 중독될 경우 게임을 따라 범죄를 저지르는 모방범죄의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건복지부 최영현 실장은 “게임은 개인과 가정의 행복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 국민 개개인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4대 중독은 해결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들이 말하는 게임의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다. 중독성이 심한 게임을 하는 것은 가정의 행복을 빼앗아 간다는 점과 그 아이들이 커서 모방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게임의 선정성은 아이들의 정서를 불안정하게 만들며 인터넷 게임 과몰입은 사회, 경제적 폐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게임이 언제부터 사회, 경제적으로 폐해를 주고 아이들의 정서를 침해 했으며 어떤 모방범죄가 일어났는지 모르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게임은 사회악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특히 황우여 새누리당 의원의 경우 “술, 마약, 도박, 게임 중독으로부터 사회를 구하겠다.”라고 말하며 게임은 마약 술보다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 황우여 새누리당 의원



더불어 황 의원은 지난 7일 국제친선 조찬 기도회에서 “하나님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메여서는 안 된다. 중독은 하나님 이외에 메이는 것. 신앙으로 중독문제를 해결해가자.”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며 다시 게임중독법을 도마에 올렸다.



  말하고 있는 그들의 문제점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가장 먼저 묻고 싶은 것은 “게임을 해본 적 있는가?”이다. 게임을 사회악이라 말하는 그들은 과연 그것을 해본 적이 있냐는 것이다. 물론 마약사범을 검거하는데 있어서 마약을 해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마약은 ‘하면 안 되는 것’이라는 인식은 어린아이도 갖고 있다. 마약과 게임을 같은 선상에 올려놓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게임중독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는 이들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른, 즉 기성세대다. 사실상 그들이 커감에 있어서 게임을 접할 기회는 없었다고 생각된다. 인터넷이나 컴퓨터도 제대로 못하는 양반들이 무슨 게임을 해봤겠는가. 

게임을 한번이라도 해봤다면 알겠지만 게임을 했을 때 중독되는 경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히 게임을 즐긴다. 그 와중에 몇몇이 심하게 중독되어 사회생활도 접고 게임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라면 낚시의 중독도 굉장히 심각하며 당구중독도 생각해봐야한다. 중독은 개인의 차이고 절제의 문제다. 게임중독인 사람은 다른 어떤 무엇인가에 빠졌을 때에도 헤어 나오지 못 할 것이다. 비단 게임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17년 전 우리 사회에 타마고치(たまごっち: 애완동물을 기르는 휴대용 게임기로 가상의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아이들은 열광했다. 아이들은 이 게임기를 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고 2명에 1명꼴로 타마고치를 했다. 그리고 매스컴에선 연일 타마고치가 아이들을 망치고 있으며 교권을 침해한다고 보도했다. 더불어 아이들의 성장에 방해가 되며 정서가 불안정해진다고 떠들어 됐다. 



당시 아이들은 정말 타마고치에서 못 헤어 나올 정도로 게임을 했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타마고치는 추억속의 장난감이 됐고 타마고치가 죽으면 많은 아이들이 자살을 할 것이라는 소리는 개소리가 됐다.



 그들이 모르는 문제점



게임에도 큰 문제가 있다며 단연 언어폭력이다. 이미 인터넷을 포함한 온라인 언어폭력은 사회적 문제다. 게임 내에서의 언어폭력도 심각한 사태다. 먼저 해야 할 것은 게임을 규제가 아니라 온라인상에서의 언어폭력에 대한 처벌이다.


온라인 언어폭력 상황은 생각보다 굉장히 심하다. 많은 이들이 악성댓글과 언어폭력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심하게는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은 좌시한 체 왜 애먼 게임만 잡는지 이해할 수 없다. 솔직히 게임 때문에 자살한 사람은 없지 않은가?


게임 모방범죄가 무섭다면 게임 모방범죄에 관한 처벌을 강화해야지 게임을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 과도한 처사다. 바바리맨 잡겠다고 바바리코트 못 입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정녕 아이들의 게임하는 것을 막고 싶다면 아이들에게 게임보다 재미있게 놀 수 있게 세상을 만들어 주면 된다. 그럼 게임을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아이들에게 게임은 그저 스트레스 해소용이자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프랑소와즈 사강은 마약으로 인해 법정에 섰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를 파괴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도 그것이 옳은 선택이든 나쁜 선택이든 선택할 권리가 있다. 그 권리마저 그들이 박탈할 이유는 없다. 

마지막으로 공부만 하는 아이들을 보고 싶으시면 본인들 자제분들만 시켰으면 좋겠다. 나는 내 아이들과 게임하면서 키울 테니까.


written by 저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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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곳은 보쌈을 메인메뉴로 하는 퓨전 주점이다. 즉, 술을 파는 것을 주력으로 하는 곳이다. 그렇다보니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들의 취한 모습을 보고는 한다. 사람마다 성격이 각각 다르듯이 사람마다 취한 모습도 정말 다양한데 살펴보면 대충 이렇다.


가장 대중적 유형은 고성방가형이다. 취기가 오른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 유형으로 잔이 돌면 돌수록 목소리가 커진다. 술도 먹고 귀도 함께 먹은 건지 점차 대화의 데시벨은 높아져 아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한 테이블의 목소리가 커지니 조용히 대화하던 다른 테이블은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다. 그러니 자연스레 다른 손님들도 목소리가 커진다. 이는 연쇄반응처럼 조금씩 퍼져 나중엔 술 마시는 사람 모두가 소리를 지르는 상황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까지 오면 혹여 옆에 있는 손님과 싸움이라도 날까 조마조마하다. 



다음으로 호랑나비형. 사람이라면 술을 마시게 되면 자연스레 비틀거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심하게 비틀거리다 못해 제대로 의자에 앉아 있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잠시 졸았는지 뒤로 넘어가는 사람, 화장실 갔다 와 의자에 앉으려다 비틀거려 넘어지는 사람, 일어나다 넘어지는 사람 등 아주 다양하다. 그나마 넘어져도 본인의 테이블에 피해를 주면 상관없지만 넘어지는 사람 대부분이 주변 다른 테이블에 피해를 주곤 한다. 이 역시 손님 간 싸움이 날까 조마조마하다. 더불어 넘어진 손님을 보면 일으켜 줘야하는지 쪽팔릴지도 모르니 모른 척 해야 할지 참 애매하다. 이 두 가지 유형은 가장 보편적인 유형으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취한 모든 손님이 꼭 다른 손님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데 파괴지왕형의 경우 일하는 직원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다. 파괴지왕형은 말 그대로 테이블에 놓여있는 기물을 다 파괴한다. 아주 파괴왕이 따로 없다. 술잔, 술병, 메뉴판, 수저통 그들에겐 자비란 없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일부러 그러는 경우도 종종 있다) 파괴된 기물을 채우고 정리하는 직원만 죽어난다. 병이 깨지면 마녀처럼 빗자루를 들고 나타나 영혼 없이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를 읊어 주며 비질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종이나 노예다. 그나마 죄송하다며 사과하는 손님들의 경우 웃으며 치울 수 있지만 너무도 태연히 “잔하나 더 주세요!”, “여기 좀 치워주세요!”하는 사람을 보면 가져다주던 잔을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술에 취한 사람을 상대하는 건 보통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많은 힘이 든다. 그렇다고 위에서 말한 대로 술에 취한 사람들이 주변을 피곤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술자리는 술잔을 중심으로 자기들만의 세상이 열리고는 하는데 자기들만의 정치철학, 사회비판을 논하고는 한다. 이러한 경우를 100분토론형, 또는 끝장토론형으로 분류하는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청와대, 여야당 대변인이 따로 없다. 


주로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자기가 추구하는 정치색깔을 들어내는데 간혹 서로의 의견의 맞지 않을 경우 과열된 토론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자리인지라 서로 뜻이 맞아 함께 현 정부를 욕하고 사회를 비판하며 막을 내리고는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정치나 사회가 아닌 철학이나 문학을 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주로 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한번은 온갖 진상을 다부리는 손님들이 김수영에 대해 논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데, 대화는 고상할지 모르지만 하는 행동은 그냥 개차반이니 김수영이 웬 말인가 싶었다.


술은 사람의 감정을 끌어내는데 묘한 힘이 있다. 그리고 술은 사람을 용감하게 한다. 그래서 술기운에 용기를 얻어 평소 하지 못한 말들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취중진담형이 바로 그 경우다. 

취중진담형의 경우 남여 단둘이 온 손님들 사이에서 많이 보이는 유형인데 어떤 진솔한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꼭 한명이 운다. 대게 여자가 우는 경우가 많은데 분위기가 좋다가도 돌아보면 여자가 펑펑 울고 있다. 울음을 그치고 다시 분위기가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명이 자리를 뜨고 다른 한명이 쫓아가는 상황으로 마무리되고는 한다. 그리고 가게 밖에서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저 우리는 ‘싸웠나?’하고 유추할 뿐이다. 그렇게 울고 짜고 한 손님들이 다시 가게에 찾는 일은 거의 없다. 아마도 쪽팔려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누구나 술에 취한다. 술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술에 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단지, 술을 절제 할 수 있는 사람과 절제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절제에 실패한 사람은 잠시 자기 자신을 잃어 행동하고 주변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취했다고 말한다. 


주변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술을 마셔야할까 싶지만 한편으론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빡빡한 세상에서 술마저도 없다면 어찌 살까 싶으니 조금은 이해가 가는 심정이다. 


어쩌면 우리가 술에 취하는 것도 지독히도 빡빡한 생활 속에서 잠시 자신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답답한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아! 그래도 만취는 주변을 힘들게 하니 술은 적당히가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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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를 시작했다직장이 아닌 알바를 선택하게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우선 생계로 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아서였다아무래도 직장을 잡게 되면 본의 아니게 많은 시간을 직장에 쏟게 된다그 점이 싫었다그나마 알바는 시간조절도 자유로운 편이고 책임감면에서도 자유로울 테니 직장보단 나을 거 같았다또 한 가지는 친구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 녀석이 작년에 주점을 오픈했다급하게 일손이 필요했고 잠시 가게 좀 도와 달라 부탁을 해왔다모르는 곳에 알바를 하는 것보단 그래도 아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아 그 제안을 수락했고그 때부터 생계를 위한 알바가 시작됐다.


알바를 시작한지 수일이 지나자 나는 특이한 질문을 받고는 했다사장이 친구인 관계로 가게를 찾은 사장 지인들은 대부분 나와 동갑내기 친구들이었다그 지인들은 나를 한번 보고는 사장 녀석에게 누구냐는 질문을 던졌고친구는 내 친군데내가 급해서 도와달라고 했어라고 설명하곤 했다친구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설명을 들은 이들은 가끔 나에게 특이한 질문을 던지 곤 했다. “여기서만 일하세요?”라는.


친구 녀석이 옆에 있었다면 나를 대신해 직장잡고 일할 나이에 이곳에서 왜 알바를 하고 있는지 전후사정을 설명해주고는 했지만 혼자 이 질문을 받을 때면 내입으로 설명하기 민망할 때가 많았다.


한번은 비슷한 상황에서 이 일만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그래서 왜 이 일만하면 안돼요?”라고 되물어봤다대답하기 귀찮아서라기 보단 나도 정말 궁금했다왜 이런 이상한 뉘앙스의 질문을 자꾸 받는지 말이다돌아온 대답은 그게 아니고 이 일만 할 것 같지 않아서요라는 시원찮은 답이었다지금도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지만 사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대충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왜 그 나이 먹고도 아직 알바를 하세요?’, ‘어디부족하세요?’ 뭐 이런 거 아니었을까?


알바를 한 기간이 지날수록 나를 알아보는 이가 늘면서 이 요상한 질문들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종종 비슷한 질문을 받곤 한다그때면 그냥 웃으며 제가 잉여라서 친구가 일 시켜 주는 거예요라고 해버리고 만다그 편이 다음질문도 없고 편했다.


어쩌면 나이를 먹고 알바를 한다는 건남들에겐 조금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인식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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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에몽은 1969년 일본에서 처음 연재된 후 지금까지도 연재되고 있는 일본의 인기 만화다. 초기 만화책으로 연재됐는데 지금은 만화책보다 애니메이션으로 더 접하기 쉬운 만화다. 무려 44년을 연재해 온 만큼 그 인기도 꾸준했으며 국내에서도 많은 팬 층을 확보하고 있다.


대충 줄거리는 많은 것이 부족한 진구(노비타)를 도라에몽이 도와주며 진구의 성장을 돕는다. 도라에몽에게는 배에 달린 사차원 주머니가 있는데 이곳에 들어있는 각종도구들은 진구를 도와주기도 하고 소원을 들어주기도 한다. 크기는 작아보여도 그 속에 들어있는 물건은 무한대다. 도라에몽은 애니메이션은 물론이고 많은 게임으로도 탄생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고 다양한 패러디가 있을 정도로 꾸준한 인기의 만화다. 


하지만 이 전설적인 도라에몽을 찬찬히 보고 있자면 울화통이 터진다. 우선 도라에몽의 진구 교육방식이 잘못됐다. 도라에몽이 진구를 돌봐주는 보모 로봇이라고는 하나 너무 오냐오냐한다. 일단 진구 이자식이 뭔가 해달라고 하면 웬만하면 다해준다. 처음에는 안 해줄라고 해도 진구고 좀 찡찡거리면 어쩔 수 없이 해준다. 그러니 자연스레 진구는 매번 도라에몽에게 의지한다. 그로인해 벌어지는 사건도 많다.



한번은 눈이 보고 싶다는 진구에게 눈을 만들 수 있는 물건을 빌려주는데 진구 이 녀석은 이걸 가지고 잘못해서 집 전체를 눈으로 덮어버린다. 아침엔 아빠가 출근해야하는데 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물건을 함부로 하는 진구에게 물건의 소중함을 알려주기 위해 스티커를 한 장 꺼내준다.(사실 이것도 준 게 아니라 진구가 훔쳐간 거다) 이거 가지고 돌아다니다가 동네 온갖 물건들에 붙여 동네가 난장판이 된다.(이 녀석도 코난 못지않게 많이 해먹는다) 도라에몽의 사차원 주머니에서는 별의별 희한한 물건들이 다 나오는데 이걸 진구에게 빌려주면 무조건 사고를 친다. 

이런 사태의 뒷수습은 주로 도라에몽이 한다. 맨날 “어쩔 수 없지”하면서 도라에몽이 다 처리해주고는 하는데 이러니깐 진구가 버르장머리도 없고 개념도 없는 거다. 어리다고 그 죄가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계속 키우면 진구는 나중에 진짜 개념도 없고 근성도 없고 버르장머리도 없는 어른이 될 꺼다. 아니면 사회부적응자가 되던가. 


도라에몽이 진구를 아껴 오냐오냐하는 것은 알겠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진구에게 도움이 하나도 안 된다. 진구를 위해서 진구가 저지른 사고는 진구가 처리하게 해야 하는 거다.

도라에몽은 그렇다 치고 제일 문제는 ‘진구’ 이 녀석이다. 일단 진구는 한마디로 찌질하다. 학교는 맨날 지각하고 숙제는 안한다. 공부도 못하데 운동도 못한다. 그러면 착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렇지도 못하다. 그냥 잘하는 게 없다. 아, 있긴 있다. 퉁퉁이한테 맞고 와서 울길, 도라에몽에게 때 쓰기, 사고치기 정도? 아무튼 정말 인간구실 못한다. 


이런 상황에 은근 여자는 밝힌다. 같은 반 친구이자 나름 홍일점인 이슬이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슬이에게 잘 보일려고 별짓을 다한다. 이슬이가 “아 눈이 왔으면 좋겠다.”하면 진구는 바로 도라에몽에게 달려가 눈을 만들 수 있는 물건을 달라한다. 진짜 이슬이가 간 빼달라고 하면 쓸개까지 빼줄 기세다. 딱 여자에게 다 뜯어먹 힐 타입인 호구다. 그러고 보면 이슬이도 어장관리를 잘한다. 

평소 놀 때는 진구나 퉁퉁이, 비실이랑 잘 논다. 필요한 건 곧잘 진구에게 얻어낸다. 그런데 진구는 공부를 못하니 공부가 필요할 땐 반에 공부 잘하고 잘생긴 친구를 집으로 불러 같이 공부한다.(꼭 집으로 불러야했는가?) 이정도면 개인적으로 상당한 수준의 어장관리다.


진구의 친구들도 제대로 된 놈이 없다. 우선 퉁퉁이. 이 녀석은 요즘 문제시 되고 있는 학교폭력의 산실이다. 뭐든 자기가 갖고 싶은 건 힘으로 뺏으려 든다. 툭하면 진구를 패기도 하며 진구의 물건들(이것도 사실 도라에몽의 물건이다)을 강탈하기도 한다. 요즘 티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일진 같다. 

진구와 같이 야구를 할 때도 보면 진구는 야구를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엄청 갈군다. 사실 진구가 좀 못나긴 했어도 일부러 못하겠는가? 근데 꼭 그걸 가지고 뭐라 하고 때리고 한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진구는 퉁퉁이가 야구 하자고 하면 피하는 것이 아닌가. 아마 퉁퉁이는 언젠간 고소를 당하던가 경찰서에 가서 인생은 실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거 같다.


비실이 이 녀석은 퉁퉁이 와는 다르지만 하는 짓은 꼭 양아치다. 힘 있는 퉁퉁이에게는 설설 기면서 이슬이나 진구에게는 쌘 척한다. 거기에 집이 좀 잘산다고 온갖 잘난 척하는데 한마디로 재수가 없다. 아니 지가 번 돈도 아니고 부모 잘 만나서 좀 잘사는 거 가지고 유세를 떠는 모습은 정말 꼴 보기 싫다. 내가 진구였으면 퉁퉁이랑은 놀아도 비실이랑은 안 논다.


도라에몽은 44년을 연재했다. 44년 동안 진구는 어린이다. 작가는 이미 96년도에 죽었는데도 진구는 학생이다. 슬프게도 작가는 죽었어도 도라에몽과 진구의 친구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아직도 그들이 어린이로 남아있는 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어른들의 작은 바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해본다. 그래도 진구는 좀 정신차려야한다. 언제까지 도라에몽이 지켜주진 않을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항상 고생하는 진구네 어머니께 한마디 하겠다.

“진구 어머니. 어머니는 안경 벗는 게 더 예뻐요”


written by 저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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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전문점이라는 말이 번지기 시작하던 무렵에도 난 커피 마실 줄을 몰랐다. 동네 서점이 있던 자리에 커피전문점이 들어서고 플라스틱 컵을 든 사람들이 길거리를 장악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커피를 먹기 시작한 듯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커피전문점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반강제로 들어간 커피전문점의 방대한 메뉴들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도 결국엔 아이스초코나 핫초코를 주문하곤 했으니까. 나는 거의 최근까지도 커피와 카페와 친하지 않았다.

 

백수가 마음 편히 내 일(?)을 할 공간이란 많지 않다. 이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무렵 나는 카페를 빈번히 드나들고 있었다. 자주 가던 밥집이 카페로 변해버려 점심메뉴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무렵이기도 하다.

 

요새는 장난스레 '카페 메이트'라고 부르는 친구와 카페 구석에 쳐박혀 온종일 글을 쓴다. 그러다가 한참동안 영화, 드라마, 소설을 이야기 하곤 한다.

 

문득 카페가 문학과 예술, 철학을 품은 공간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고흐,보들레르, 랭보, 헤밍웨이가 활약한 파리의 카페까지 갈 것도 없이 이상, 이태준, 이효석, 박태원들의 아지트도 카페였다. 자유, 열정, 화려함 속의 사람들. 내가 누군가의 환생이라는 환상을 품어본다. 달콤한 꿈은 오래가지 않는다. 현실로 돌아온 나에게 밀려오는 건 권태다.

 

자유와 권태의 중간쯤, 이것이 커피와 카페를 사귀며 얻은 것이다.

 

여기 카페를 방황하는 한 청춘이 또 있다. (또하나의 카페 풍경이 궁금하다면, 스타벅스, 구직의 구천을 맴도는 자의 도피처)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같은 대상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아는 일이다. 흥미로움을 더하기 위해 출처를 밝히는 것은 잠시 미룰 것이다.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며 읽어보기를 권한다. 혼란을 주기 위해 약간의 트릭을 썼다는 것을 밝혀둔다.

 

 

 

자유인의 애수의 항구, 한 카페 자유인의 체험기, 그 첫번째

 

현대인의 카페 취미는 담배 하나 피우기 위한 휴게소로 또는 친구나 혹은 용건이 있는 사람을 잠시 기다리는 대합실 정도로 이용된다. 공리적 일면이 있는 이런 분들께는 좋은 홍차나 커피나 또는 좋은 음악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카페의 세속화라고나 할까? 이런 종류의 카페는 서울로 치면 '명과'나 '금강산'에서 종로의 '올림피아', '아세아'가 이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카페의 존재 또는 의의로 본다면 이렇게 순전히 세속적 공리성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른바 카페 취미, 카페 풍류란 일종 현대인의 향락적 사교 장소라는 대 공통의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령 한 친구(또는 2~3사람)와 더불어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문학, 예술, 세상의 기이한 사실, 더 나아가 인생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이러한 곳을 선택하는 고급된 카페 애용가도 있을 것이요. 사랑하는 한 이성과 고상한 이야기를 하며 애정의 분위기에 잠기려는 세상의 많은 로맨티스트들도 있을 것이요. 최근과 같이 음악과 영화에 대한 열기가 극도로 팽배한 세대에 있어서는 음악을 듣기 위하여 또는 영화의 세계를 찾아 이 카페를 일종의 공동 아지트로 해서 기분좋고 자유롭게 모여들기도 한다.

 

여기 서울 시내에 산재해 있는 카페 분포도를 그려보자. 그리고 이 분포도 위에 배치된 지리적 방위와 그 카페 카페가 가지는 독자적인 카페의 개성과 공통성을 염두에 상기하라. 지역적으로 보아 명동 일대가 서울 다방의 총 본영인 감이 있다. 이른바 서울의 카페 거리이다. 이중에서 카페 탐방객이 어느 집 입구를 들어서면 거기에는 공통된 카페 분위기-일종의 카페 체취-를 느끼리라.

 

남쪽 바다의 열대 식물이 있고, 베토벤의 데쓰마스크와 2~3인의 카페 알바녀 또는 알바남과 가급적 좁은 지면을 실용적으로 이용하여 벌여진 테이블과 의자, 소란한 레코드, 여기저기 널려 있는 그날 그날의 신문과 닳은 그달 그달의 취미 잡지, 영화 잡지, 커텐, 몇 개의 그림, 조각상, 탁상 전등 등 그리고 자욱한 담배 연기와 몇 개의 독립된 대사의 교착, 창백한 인텔리급의 청춘 남녀의 분산된 진영 등.

 

그러나 이 공통된 분위기 속에 반영된 세상의 모습이란? 또 그들의 이 순간적 향락 심리란? 계절을 따라 외부 경계의 변화에 따라 지극히 완만하게 때로는 발작적으로 변모되어 간다. 그리하여 자아의 미미한 형상만을 안고 다니는 카페객의 멸렬된 세계에도 하나의 공통된 심적 현상을 환기할 수 있으니, 가령 겨울에서 갑자기 밝은 봄 햇볕의 총애를 받은 그들이라면 그들은 일제히 경쾌한 보조와 명랑한 미소의 얼굴로 습관적인 그 걸음이 어느 카페 한 집을 찾아들어 가벼운 멜로디에 춤의 한 스텝을 사랑할 것도 같다.

 

이 신경적 외부 세계의 감촉이 이제 멀지 아니하여 우리에게도 이르른 듯 싶다. 명명하여 '춘삼월 카페 정조'란 제목이 나에게 제시된 것도 이러한 곳에 연유한 것이리라. 외투가 무거워지고 스프링코트가 생각나는 때, 오히려 처녀들은 단색의 외투나 코트 속에 간직했던 선명한 색채와 단아한 의상을 거리에 해방하는 기쁨을 맛볼 것이다. 수선화는 시들어 늙었고 커피는 너무나 둔탁한 듯, 향기로운 홍차의 부드러운 김이 웃음 띈 그들의 얼굴과 더불어 하나의 명랑한 노래를 짜낸다.

 

말소리가 가볍고 몸의 율동이 생생하고 탄력성이 있어 봄의 향욕과 꿈과 희망을 품은 흰 구름이 그들의 담배연기와 같이 한 공간 속에 가득 찬다. 어디서 카나리아의 봄하늘을 그리는 노래도 있을 듯, 창을 열면 아코디언의 애수 품은 자유인의 한 전율이 들릴 것도 같으나 불행히 여기는 파리의 뒷골목이 아님에 이런 살 속에 숨어드는 예술적 향취를 찾을 바가 없다.

 

 

 

 * 1938년 5월 1일, 삼천리 제10권 제5호에 실린 이헌구의 「보헤미앙」의 哀愁의 港口, 一茶房 보헤미앙의 手記라는 글입니다.

* 한자어와 옛투의 글을 최대한 읽기 쉽게 바꾸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원래 의미와 상이한 부분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이 궁금한 이는 http://db.history.go.kr/url.jsp?ID=ma_16_10_05_0460로 가보세요.

* 원래는 '카페'가 아닌 '다방'이라는 단어가 쓰였어요. 수월한 감정의 이입을 위한 것이니 양해바랍니다. 이 시절 글을 읽어보면 '카페'는 술집에 가까워보입니다.

* 어디에서 눈치채셨나요? 70년 전의 카페풍경이 흥미롭지 않았나요? 이 글의 뒷부분은 빠른 시일 내로 소개할게요. 기다리지 못하시는 분은 위의 링크로 가보시고요.

 

written by 모던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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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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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의 전설적인 게임을 논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게임이 바로 마리오 시리즈다. 전편에 이야기한 열혈 시리즈도 역사의 길이 남을 역작이지만 사실 마리오 시리즈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마리오는 처음 1985년 닌텐도에서 발매한 ‘슈퍼 마리오브라더스’에서 첫 등장했다. 지금 플레이를 해보면 지금의 화려한 그래픽의 온라인 게임에 비하면 하찮은 그래픽에 단순한 게임성을 지녔지만 85년 당시엔 정말 충격적이었다. 당시의 게임은 갤러그 같은 단순한 게임이 많았다. 갤러그가 재미없다는 소린 아니다. 단지 갤러그 같은 게임보다 마리오가 훌륭하다는 거다.


마리오는 단순함 속에 묘한 매력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고유의 아이템과 캐릭터성 그리고 아기자기함이다. 아마 마리오를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마리오하면 버섯이 떠오를 것이다. 마리오는 버섯을 먹으면 커진다. 버섯을 먹으면 커진다니? 뭔가 오묘하지 않은가? 아무튼 슈퍼마리오가 된 것이다. 


‘마리오=버섯’이라는 새로운 공식이 만들어 진 것인데 바로 이게 재미있는 거다. 기존의 게임들은 한번 적에게 부디 치면 죽는다.(물론 에너지가 있어 에너지가 줄어드는 형식도 있다) 하지만 슈퍼마리오가 되면 적에 부딪쳐도 한번은 죽지 않는다. 한번에 죽지 않을 정도로 마리오가 쌔 진 것이다. 거기에 꽃을 먹으면 손가락에서 불도 쏜다.  나뭇잎을 먹으면 날고 별을 먹으면 깜찍한 음악으로 바뀌면서 마리오가 무적이 된다.(어릴적 나도 날 수 있을 까해서 나뭇잎을 먹은 적도 있다)

마리오에서 나오는 아이템들은 모두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얼마나 친환경적인가? 게임이라고 허무맹랑한 아이템만 나오는 것이 아니고 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게 친숙함을 느끼게 해주고 마리오 시리즈만의 고유 게임성이고 아이템인 것이다.


마리오의 전설을 대미에는 배경음악도 한몫했다. ‘따단딴 따단딴 딴~’ 솔직히 살면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음악이다.(아니라면 할 말은 없다)

별을 먹었을 때, 유령성에 들어갔을 때의 배경음악은 모두 다르다. 그리고 각각 특유의 매력에 모두 중독됐다. 특히 마리오가 죽었을 때의 음악은 안타까움 그 자체다.(아마 이 지금도 배경음악이 귀에 맴도는 사람도 있을 거다) 


거기에 스토리도 착하다. 나쁜 놈 쿠파가 버섯 왕국의 공주인 피치를 납치해 간다. 그래서 배관공인 마리오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구하러 가는 내용이다. 왜 배관공이 납치당한 공주를 구하러 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상당히 권선징악적인 내용이다. 게임하는 이에게 ‘이 어려운 탄을 깨고 반드시 공주를 구해야해’라는 정의로운 목적의식을 심어준 거다.


이 모든 것이 마리오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마리오라는 게임이 등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 ‘마리오’라는 주인공 때문일 거다. 

대략 40대의 아저씨 모습에 파란색 멜빵바지, 여유 있어 보이는 콧수염까지. 친근한 동네 아저씨의 이미지지만 이 아저씨 못하는 게 없다. 하늘을 날고 잠수도 하며 거북이를 일망타진한다. 웬만한 적들은 다 밟아 죽인다. 역시 마리오다.



마리오 시리즈가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출시되면서 많은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마리오의 동생인 루이지, 매번 피치공주를 납치해 가는 쿠파, 공주를 지키는 역할이나 매번 납치는 남용하는 키노피오, 그리고 마리오의 최고의 파트너 공룡 요시 등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겠지만 하나 같이 풍부한 매력을 소지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특히 요시는 마리오가 게임 중에 탈 수 있는데 닥치는 대로 다 먹어대는 모습이 매우 귀엽다. 오죽하면 요시를 타이틀로 내세운 게임도 나왔겠는가. 마리오의 동료 답게 웬만한 게임의 주인공급의 스타성이다.


마리오는 최고의 점프게임이다. 별다른 어려운 조작 없이 점프하나로 먹고 사는 그런 게임이다. 그 점프 하나로 30년을 버텼다. 마리오의 점프 하나하나에 플레이어는 긴장하고 웃는다. 단순한 점프일지 모르지만 마리오의 점프 하나로 횡스크롤 액션게임의 교과서가 된 거다. 아마 마리오가 없었으면 지금처럼 다양한 횡스크롤 액션게임이 안 나왔을 거다. 슈퍼마리오는 게임이 아니라 하나의 새로운 세상을 탄생 시킨 것이다. 


피치공주는 30년이나 쿠파에게 납치당하고 있다. 이쯤하면 납치당하기 위해 짐싸들고 준비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도 마리오는 또 어김없이 피치공주를 구하러 간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또 기대한다. 슈퍼마리오니깐!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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