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입은 바지 주머니에서 발견한 동전 500원과 같은,

 

잠에서 깼는데 기상시간이 30분 더 남았을 때와 같은,

 

가끔씩 찾아오는 비온 뒤 상쾌한 날씨 같은,

 

심심한 버스 안에서 무심코 들리던 라디오 소리에 내 십팔번곡이 나올 때와 같은,
포기하고 탔는데 기계가 "환승되었습니다." 할 때와 같은,

 

정말 듣기 지루한 수업이 휴강될 때와 같은,
직장상사가 출장 갈 때와 같은,

 

단골집아줌마가 오랜만에 왔다며 음료수서비스를 줄 때와 같은,
가글이 있는 식당화장실 같은,

 

으스스한 겨울 날씨에 화장실 변기에 앉았는데 비데의 변좌 기능으로 따근따근함을 느낄 때와 같은,

 

소장하고 싶지만 돈 주고사기에는 아까운 책을 중고서점에서 만났을 때와 같은,
커피쿠폰 적립이 다 쌓여서 공짜로 먹을 때와 같은,
가끔 지인의 지인 덕에 무료로 보는 공연 같은,

 

그리고
평소에 챙겨보지 않던 TV 프로그램이 시험 때 유독 재밌게 느껴지듯이…
 
문득 이런 작은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질 때가 있나요?

 

그대에게 큰 관심을 주지는 못하지만 소소한 즐거움을 주는 사람,
가만가만 조곤조곤 소소한 행복을 드리는 동전오배건이 되겠습니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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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04 18:05 신고

    우왕 감수성 돋네요!!!

 

 

 

"네?! 여보세요?"
"잘 안 들려요. 왜 그렇게 빠르게 얘기하는 거예요?"
"천천히 좀 얘기해 주시겠어요?"
 
"야, 좀 천천히 가~!"
"왜 그렇게 빨리 걷니, 쫓아갈 수가 없잖아."
"다음 신호에 건너면 안 될까?"

 

위의 문장은 제가 자주 지인들에게 하는 말이에요. 반대로 지인들에게는 이런 말을 많이 듣곤 한답니다.

 

"넌 좀 답답한 면이 있단 말이야."
"넌 꼭 서둘러야 될 땐 여유부리고 필요 없을 땐 성급하더라."
"그렇게 살면 불편하지 않니?"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저는 대꾸 없이 그냥 씩 웃기만 한답니다. 그리고 속으로는 스스로를 가다듬죠.
'그런가? 천천히 하면 되지, 뭐~'

 

근데 그거 아나요? 우린 생각이 다를 뿐이라는 걸.
여러분, 전 느립니다. 참 느린 아이에요.
뭐가 그리 급하신가요?
꿈을 좇아 급하신가요, 혹시 급해서 꿈을 놓치시지는 않았나요.

 

한번 크게 심호흡하고, 숨 좀 쉬고 발을 다시 힘차게 내딛자고요!
끊임없이 말하는 것보다, 계속 걷고 행동하는 것 보다,
때로는 적당히 쉬는 게 더 멋진 일인 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이 남보다 더 길고 먼 여정이라고 하더라도,
우리 너무 조급해하지는 말아요.
그리고 스스로의 페이스를 조절하는 것도 잊지 말고요.
좀 천천히 도달해도 괜찮습니다.
걸어가는 동안 그 힘든 과정 이겨내 가는 스스로에게 박수!!  

 

+사진: http://www.mongri.co.kr
 

Written by 동전오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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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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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지기 친구들을 누추한 집으로 초대하였다. 집안 사정이 더 나빠진 것을 잘 알고 있는 친구들이기에 부끄러움 따위는 없었다. 유학시절에 소포까지 보내주며 응원을 해주었던 소중한 친구들이기에 보은의 의미에서 한해를 마무리하고자 특별한 송년회를 열었다.

 

대학시절에 친구들이 된 ‘우리’는 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계속 만남을 유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 취업을 한 친구들이 대부분이고 나처럼 공부를 계속하고 있는 학생도 있다. 예전에는 8명 모두가 모여도 서로의 관심사가 같았기 때문에 이야기보따리가 끝이 없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일을 시작하게 되고 관심사도 달라지다 보니 함께 모여도 이전만큼의 즐거움과 재미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다. 더욱이 결혼을 한 친구와 앞둔 친구, 아직은 결혼 생각이 없는 친구들(대체적으로 남자애들), 이들이 적당히 섞이고 버무려져 맛깔난 대화를 나누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그렇다, 한마디로 적절한 대화의 소재를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학창시절에는 8명이 항상 함께 했는데, 일자리도 각각 떨어지게 되고 만나도 예전만큼 흥이 없으니, 이제는 모일 때마다 두세 명 빠지는 것은 예삿일처럼 되어 버렸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났었는지 만날 때면 늘 ‘까르르르~’ 웃고 자지러지던 우리들의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진지 오래다. 어느 순간부터 회사에서 힘들고 지쳤던 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결혼에 대한 부담 등등등 저마다 어깨에 한 가득씩 짐을 짊어지고 모임에 오게 된다.

 

서로의 가벼운 안부를 물으며 자연스럽게 이야기꽃은 피어난다. 그러고 나면 누구나 할 것 없이 저마다의 짐 보따리를 푼다.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영향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마이너스적인 세균과 독소를 퍼뜨려 모두에게 ‘한숨’이라는 병 유발시킨다. 이렇게 쉴 새 없이 떠든다고 해도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스트레스란 그렇게 만만한 녀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균은 전염을 유발할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 항체를 만들만큼 성숙하지 못하다. 또한 서로 분야가 다르니 진정으로 이해를 구할 리 만무하다. 이해가 수반되지 않는 대응은 감정적이지 않아 서로에게 무미건조할 뿐이다. 이쯤 되면 내가 더 말해서 무엇 하랴, 란 생각이 든다. 혹은 친구들 이야기만 다 들어주느라 정작 자신이 하고 싶었던 얘기는 꺼내지 못한다. 꽝! 다음 기회에, 다들 힘들어 죽겠단다. 다들 힘든데 내 힘든 것 보태면 무엇하랴. 우리는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만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말하고 싶어서, 보여주고 싶어서, 어필하고 싶어서 만나는 것인가.

 

언제부터 우리가 이렇게 변했을까. 너무나도 닮아져 버렸다. 이제는 주변의 다른 모임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여러 모임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 모임은 특별했다. 그 이유는 이 친구들을 만나면 행복 에너지가 가득했고 꿈과 열정이 있었고 만날수록 건설적인 자극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흐른 것일까, 아니면 서로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일까. 만날 때마다 서로 긍정적인 에너지만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은 잘 안다. 그것은 서로에게 욕심일 뿐이다. 힘든 일이 생기면 이야기도 들어주고 슬픔을 나누는 것이 친구이다. 잘 안다. 하지만 항상 힘들다고 토로하는 만남은 아닌 것 같다. 누가누가 더 힘든가, 경연 식으로 자랑을 하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하긴 요즘은 뭐든지 경쟁하는 오디션이 트렌드이니 그럴 만도 하겠다.

 

슬픈 일이 생기면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된다. 주로 장례식과 같은 부고를 받았을 때, 예외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 반면에 정말 행복한 일이 생겼을 때 정작 그보다 많은 사람들은 모이지 않는다. 기쁨은 함께 하면 배가 되고, 슬픔은 함께 하면 반으로 덜 수 있다고 했던가. 그런데 현실에서는 기쁜 일이 생겼을 때는 꼭 본인이 아니더라도(왜? 나만 엄청 사는 게 바쁘니깐) 축하해줄 다른 이들이 그 사람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모임의 참석은 필수가 아닌 게 되어 버린다. 아니면 실제는 배가 아플 수도 있는 법일지 모른다. 우리는 칭찬에 인색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칭찬을 하는 방법은 잘 모르지만 형식적인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은 누구나 일가견이 있다(마치 진심인양 혹은 세상이 꺼져라 하고). 하지만 정말로 슬픔을 나누기 위해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까. 정말 친하다고 생각지 않았는데 뜬금없이 온 사람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아니면 심적 깊은 곳에서 다른 사람의 슬픔을 꼭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 모인 것은 아닐까. 나는 사는 게 이렇게 힘든데 저 친구도 나만큼 힘든 것일까, 이렇게 확인으로써 얻어지는 안도감에 모이는 것은 아닐까. 너무 잔인한 생각인가, 인간미라고 느껴지지 않는 생각이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자연스러운 법인데 그래도 나는 이 모임을 유지하고 싶었나보다. 사람들 역시 저마다 억지로라도 유지하고 싶은 모임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들이 소중해서 일까 아니면 그 관계 속에 담겨있는 나름의 추억을 잃고 싶지 않아서 때문일까.

 

항상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면 좋겠지만 한두 명 어긋난다고 해서 모임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항상 8명 모두가 모여야 한다는 것은 욕심이다. 그동안 잘 참여하지 않던 친구가 오랜만에 온다고 하더라도 웃으며 맞이할 수 있다면, 그게 친구고 그렇게 모임이 유지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처음으로 우리 모임에 테마를 만들어 보았다. ‘2022년, 10년 뒤 당신의 모습으로 참석하는 파티’가 이번 테마였다. 식사를 하며 모이는 것은 여느 파티 때와 같았지만, 이번 모임에는 꼭 10년 뒤 꿈을 이룬 자신의 모습으로 참석하여야 했다. 참석자들은 돌아가면서 꿈을 이룬 자신의 성취에 대해서 발표하고, 그 꿈을 이룬 비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어야 했다.

 

우리는 각자의 꿈을 이룬 멋진 모습으로 모이게 되었다. 모대학 겸임교수이자 고용노동부 자문위원, 한국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학자,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노벨상 수상자, 모 컨설턴트 회사 이사, 해외 민박 사업가, 사회적 기업가 등 정말 쟁쟁한 사람들이 우리 집에 초대된 것이다. 그 중에는 만들어온 명함을 나눠주는 친구도 있었고, 본인이 집필할 책 표지를 갖고 온 친구, PPT를 통해서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보여준 친구도 있었다. 우리는 때로는 교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몇 가지 질문을 하기도 했고, 작가의 팬이 되어서 질문을 하기도 했고, 노벨상 수상자의 어머니에게 어떻게 자식교육을 시켰는지 질문을 하기도 했다. 멘토 사업에 성공을 한 사회적 기업가는 연신 성공한 친구들을 본인의 사업에 끌어들이려 노력을 보였다.

 

십년 뒤 성공의 여부는 중요하지가 않았다. 이 중에서는 자신이 말하고 꿈꾸고 설계한 것처럼 성공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특별한 송년회는 꿈을 꾸라고, 아프니깐 청춘이니 희망을 가지라고, 한계를 벗어나 도전하라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여느 자기계발서처럼 지친 친구들을 위로하고자 만든 자리는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뜻 깊게 생각을 해 본적도 없다. 그들 나름의 성공 방식을 찾는 법, 그러기 위해서 본인을 정말 이해하는 것이 자기 계발서들의 지침을 따르는 것보다 선행해야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이라는 큰 뜻보다는 오히려 이 작은 모임을 지켜보고 싶었다. 사회에 찌들어 상처받고 날개가 꺾인 친구들에게, 그대들은 꿈을 갖고 있는 소중한 존재라고 칭찬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Written by 동전오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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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東風)

 

너는 바다 밖에서 새로이 불어와
새벽 창가 시 읊는 나를 뒤숭숭하게 하지.
고마워라. 시절 되면 돌아와 서재 휘장 스치며
내 고향 꽃피는 소식을 전하려는 듯하니.

 

知爾新從海外來, 曉窓吟坐思難裁. 堪憐時復撼書幌, 似報故園花欲開.

 

이 시는 통일신라의 천재 문인 최치원의 ‘東風’ 이다. 그가 당나라 유학 중에 지은 시로 알려져 있다. 이는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를 위로해 주었던 시들 중 하나이다.

 

당시 나는 봄을 타고 영국으로 들어왔기에, 추운 겨울을 외롭게 나며 다시 찾아온 따스한 봄기운은 내게는 마치 선물과도 같았다. 이 봄바람은 부푼 꿈을 안고 부지런히 유학준비를 했던 한국에서의 소중한 기억을 일깨워 주었다. 굳게 결심했던 포부가 어려움과 외로움에 슬며시 바래졌을 때,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게 만들어준 시이다.

 

당대 천재로 유학을 떠나 목숨을 걸고 나라의 미래를 걸고 공부에 임했을 최치원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으나, 배운 지식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품은 큰 뜻은 천 년도 더 지난 천재와의 시를 통해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이 시를 현재 집 떠나와 외로이 공부하고 있을 모든 유학생들에게 선물한다.

 

‘동(東)’은 사계절 중 봄을 의미한다. 또한 신라가 당나라의 동쪽에 위치하였기에, 동풍은 ‘고향에서 불어온 바람’이라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 사진은 유학생활 중 산책을 하면서 한국을 떠올렸던 Durham Wear강의 새벽 모습이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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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주인이 사라지면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는 장난감 병정들과 같이

 

교수님께서 퇴근하시면

어김없이 연구실의 책들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마음껏 그들과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좁은 연구실에서 드넓은 세상을 만나고, 

그렇게 꿈을 키워 간다.




어렸을 적에는 몰랐다, 교수님께서 본인의 연구실에 제자를 들여놓는 그 진정한 의미를. 돌이켜보면 나도 모르게 가장가까이에서 나의 미래를 바라보며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생들이 찾아와서 고민을 털어놓으면 따뜻한 차를 타주시며 정성스레 그네들의 고충을 들어주는 교수님의 모습, 논문과 수업 준비를 하느라 컴퓨터 자판을 치는 모습, 교수님이면 세상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았지만 끊임없이 책과 싸움하며 고뇌하는 모습, 한강이 바라보이는 창문에 서서 사색하는 모습, 학회에서 발표를 하는 모습, 대학원생 제자들과 세미나에서 토론하는 모습, 책 출판을 위해서 원고를 쓰는 모습, 동료 교수들과 식사하면서 근래 고민하는 주제에 대해서 대화하는 모습 


모든 것들을 생생하게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 그만큼 구체적으로 나의 미래를 꿈꿔볼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제자를 아끼는 마음이 담긴 교수님의 최고의 선물이었다. (감사합니다.)


당신이 현재 꿈을 갖고 있다면, 당신이 꿈꾸고 있는 그 일을 현재 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직접 찾아가 보기 바란다. 그 사람의 모습이 바로 미래의 당신이 될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그 사람이 당신의 멘토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더없는 선물이 될 것이다. 


Written by 동전오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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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이어짐 -  [비싸니깐 집이다] - 기묘한 동거 0. 막힌 변기로 발각돼

 

 

 

  기묘한 동거 1. 베개에서 타인의 향기를 느끼다 

 

 

 

  자신의 베개에서 타인의 향기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서는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늦은 오후, 집안일에 지친 어머니는 걸레질을 하다 아들녀석 침대에서 깜빡 잠이 든다. 잠시 후 집에 돌아온 아들은 뛰어든 침대에서 타인의 향기를 느낀다. 파마약 냄새가 뒤섞인 아련한 향기. 범인을 알아차린 매정한 탐정은 벌떡 일어서며 소리친다. ‘엄마, 왜 내 침대에서 잤어?’ 발뺌을 해도 소용이 없다. 향기가 명백한 증거다.

 

 

  베개에서 낯선 향기를 맡았다.

 

 

  에로틱한 표현이다. 강남의 한 모텔에서 청담동의 아파트까지 가는 동안 줄곧 자신의 여성편력을 과시하던 지난밤의 사장님이 이 말을 들었다면, ‘자네 부인이 남자를 아주 집까지 들였구만이라고 했을지 모를 일이다. 차라리 그런 일이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칙칙하고 냄새나는 아파트에 나 아닌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들어왔던 적이 언제였지? 올겨울 막힌 변기를 고치러 온 수리공이 마지막 손님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수리공이 침대에 누웠고, (왜?) 냄새는 열 달동안 잠복해있다가 (어떻게?) 기온이 내려감과 동시에 분출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오늘 하루를 더듬어 봤다. 평소와 다름 없는 하루다. 어김없이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우고 집을 나섰다. 이른 저녁부터 술에 취한 사람을 무사히 귀가시키며 가정의 평화를 도왔다. 새벽 세시부터는 동네사람의 건강을 위해 신선한 우유를 각 가정에 배달했다. 대리운전과 우유배달을 마치고 상가 편의점에서 불고기도시락을 사는 것도 있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불고기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230초를 데워서 먹었다. 아침밥인지 저녁밥인지 모를 밥을 먹고 나서 편의점 알바생의 불친절을 불평하며 침대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특이한 점은 없었다. 아니, 지긋지긋할 정도로 똑같은 패턴이다. 다른 점이 있기는 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을 상실하고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오늘은 꿈을 꾸었다. 단지 꿈을 꾼 것이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현관문 도어락의 잠금을 해제하고 집에 들어서면 상가 편의점 알바생이 나를 맞는다. 그것도 허리를 숙이고 어서 오세요라며 다정하게 인사를 건넨다. 입이 , 다녀왔어라는 말을 읊조린다. ‘전자레인지는 안쪽에 있습니다 그녀를 스쳐지나갈 때 어딘가에서 희미한 향이 풍긴다.

 

 

  이때 잠에서 깨어났다. 처음에는 아직 꿈속인줄 알았다. 여전히 코끝으로 꿈속의 향이 스며들고 있었다. , , 겨드랑이 순으로 코를 들이밀었다. 몸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꿈에서 깬 것인지, 냄새에 익숙해진 것인지 희미한 향기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꿈이 정말 리얼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꿈이나 다시 꾸자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 순간이었다. 범인은 잡았다. 밀려오던 잠이 저멀리 달아났다.

 

 

  코를 베개에 들이대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집안 가득해서 특별할 것이 없는 홀아비냄새와 담배냄새 사이로 달큰한 향이 풍겨온다. 비누, 샴푸, 스킨, 로션, 방향제, 세제......아니다. 지금까지 이 집에 살면서 맡아본 적이 없는 향기다. 내 냄새는 아니다. 나는 아니다.

 

 

  이곳에 나아닌 다른 누군가의 냄새가 존재한다.

 

 

 

to be continued~~

 

 

Written by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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