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보지 않는다. 날씨 정도만 확인한다. 그 시간에 무한도전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무한도전은 무념무상으로 웃게 해주고, 음악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1. 하루에 세 번 이상은 클라라 하스킬의 모차르트 피협 19번을 듣는다. 신은 인간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아름답다는 말 밖에는.

 

2. 방해받지 않는 시간, 빌헬름 박하우스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2번 실황 연주를 듣는다. 인간의 마음비움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경건하다는 말 밖에는.

 

3. 며칠 사이 퇴근길, 모차르트 피협 22번을 넘보고 있다. 게자 안다의 지휘 겸 연주 음반을 듣는다. 인간의 참되고 신성한 노력의 힘을 맛볼 수 있다. 꾸준하다는 말 밖에는.

 

 

자료를 찾던 중, 세 사람의 인연을 알게 되었다.

 

1. 게자 안다는 1953년부터 1958년까지 클라라 하스킬과 듀오 피아노 연주를 했고, 이때 그녀로부터 모차르트에 대한 깊은 감명을 받고 평생을 모차르트 연구에 매진한다. 결국 그는 모차르트 피협 전곡 녹음이라는 대업을 최초로 달성한 자가 된다.

 

2. 안다가 11살 되던 해, 그는 빌헬름 박하우스를 만나 연주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연주를 들은 박하우스는 주저없이 그가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에서 특별 장학금을 받고 연주활동을 할 수 있도록 알선해준다.

 

3. 그곳에서 안다는 피아노를 넘어서 음악의 구도, 나아가 인생철학의 초석을 닦게 된다.

 

 

 

 

세 사람은 모두 음악 앞에서 초연했고, 삶 앞에서 겸연쩍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1. 게자 안다는 농부들을 존경했다. 농부들의 추수를 돕거나 나무 베는 일에 즐겁게 동참했다. 그들에게 밭을 가는 법을 배우고, 어떻게 들보를 만드는지 물었다.

 

2. 빌헬름 박하우스의 집에는 매우 슬퍼 보이는 광부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사람들이 그림에 대한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일이 그보다는 힘들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3. 사람들이 그녀의 연주를 칭송하면, 클라라 하스킬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다. "나는 청소부가 잘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피아노 연주 밖에 없어요"

 

 

 

 

세 사람은 죽음 마저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숭고했다.

 

1. 1960년 겨울,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하스킬은 바이올리니스트 그뤼미오와의 협연을 대성황리에 마쳤다. 같은 달 6일, 하스킬은 다음 협연을 위해 벨기에 브뤼셀 역에 도착했다. 지독한 불운이 찾아왔다. 기차에서 내리던 중 계단에서 크게 넘어졌고, 곧 혼수상태에 빠졌다. 의식불명에서 잠시 깨어난 그녀는 여동생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내일 연주는 어렵겠다. 그뤼미오씨에게 미안하다고 꼭 전해줘." 그리고 숨을 거두기 직전 한 마디를 남겼다. "그래도 손가락은 멀쩡하잖니"

 

2. 1969년 6월 28일, 박하우스는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작은 마을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베토벤 18번을 연주하는 도중, 관객들에게 “잠시 쉬고 싶습니다”라는 짧은 사과의 인사를 하고 잠시 연주를 멈춘다. 심장발작 증세가 온 것이다. 모든 악장을 완주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의사는 연주를 중단하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는 다시 관객 앞으로 나아가 베토벤 대신 슈베르트 즉흥곡 D.935-2로 연주회를 마쳤다. 곧장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때는 늦었다. 1주일 후 그는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다.

 

3. 1974년, 안다는 식도암 판정을 받았다. 런던에서 엄청난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는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나서는 연주를 계속했다. 놀랍게도 다음 해에 병이 크게 완화되었고, 그의 실력은 더욱 성장했다. 안다는 연주 여행을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오중주 “송어”를 연주한지 일주일 후, 런던에서 병세에 대한 낙관적인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이튿날 취리히의 집에서 출혈로 사망했다. 1976년 6월 13일의 일이다.

 

그들의 무한도전은 나를 무념무상으로 웃게 해주고, 그들의 음악은 나를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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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무엇을 들었습니까?

<선생님의 세 곡을 들었어요. 아디오스 노니노, 무무키, 리베르탱고. 너무나 인상깊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들을 곡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삼십대의 제가 듣기에는 너무나 먼 그런 느낌 말이죠. 어쩌면 선생님의 곡들은 제가 육십칠십이 되어도 들을 수 없는 곡일지도 모르겠네요.

> 왜 그런 생각을 했죠?

< 글쎄요.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어요. 다만, 다만 말이죠. 선생님의 반도네온이 가슴을 훔쳐갑니다. 전혀 다른 세상으로 가서는 영영 돌아올 것 같지 않은 곳으로 마음 덩어리를 한 줌 뚝 떼어가는, 그런 구구절절한 느낌이 있어요. 제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선생님이 없습니다. 전혀 다른 별에 발을 딛은 순간이 찾아온 거에요. 반도네온을 아예 접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선생님의 반도네온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어떤 장면 같아요.

> 특별한 장면이라도 떠오릅니까?

< 암요. 이베리아 반도요. 저는 리스본의 어느 허름한 술집에 앉아있네요. 탱고를 추고 있는 한 여인이 있어요. 이미 저는 적포도주를 한참 마셔 정신이 몽롱하군요. 어디서 온지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아까 춤추던 그 여인이 곁에 다가와 잔을 들고 수작을 거네요. 별로 웃기지도 않은데 손과 발짓으로 서로 깔깔대며 이야기를 나누네요.

> 저로서는 영광이군요. 제 잔도 받으세요.

<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장면에 등장하는 사나이는 엄밀히 따지면 제가 아닙니다. 저는 베토벤, 모짜르트, 쇼팽의 집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집을 사랑해요. 선생님의 음악은 너무 뜨거워요. 그렇다고 베토벤이 뜨겁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선생님의 반도네온은 당장이라도 떠날 여인처럼 너무 두렵고 달구어진 빨강색의 치마에요. 30대의 저로선 가질 수 없는 음악입니다. 그래도 가끔 찾아와 선생님을 뵙고 갈께요. 대신 술은 마시지 않겠습니다.

> 언제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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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다는 건 '나 밖에 없다'는 주변으로부터의 쓸쓸함, 소외감이다. 그것은 지금 내가 어떤 공간, 어떤 시간에서 느껴지는 찰나의 감정이다. 외부와의 이질감을 의식한 나로 빠져든 '나'이다. 그것이 잠시 머물때는 우수의 감정으로 머물다 가겠지만, 심각해지면 우울증으로 빠지는 그런 성질의 것이다.


고독하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말 그대로 '외로운 나'이다. 고독하다는 것은 '외롭다'를 넘어서 '외로운 나' 그 자체를 홀로 깨닫고 있는 상태이다. 낙엽을 밟으며 '아, 외롭다' 하며 눈물짓는 것과는 달리, 그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나를 한발 물러서 지켜보고 있는 '나'인 것이다. 외로운 나로부터 빠져나와 그 '나'를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자아의 발현이다.

오늘 고독한 그림 하나를 우연히 만났다. 넉넉하게 펼쳐진 푸르스름한 밭의 끝자락으로 구릉같은 산들이 희멀겋게 번져있고, 하늘에는 듬성듬성 먹구름이 끼었다. 그리고 그 밭이 시작되는 한 켠에 작은 사람 하나가 서 있다. 그림 이름이 '귀농당년'이다. 고향을 등졌던 한 사람이 다시 돌아온 모양이다. 곱게 간 밭에는 빼곡하게 새싹이 자라고 있다.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은 밭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산을 보는 것인지, 어떤 상념에 젖어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작가가 사람을 자연의 대척점에 두지 않고 하나의 작은 연결점으로 두었다는 의도는 분명히 알 수 있다.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 그림이 뭔하는 바가 아닌 것 같다. '지금의 나를 지켜본 적 있는가?' 이 질문이 더 걸맞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자연은 대자연이 아니다. 작가의 사람은 자연 위에 우뚝하게 선 존재도 아니다. 그냥 자연과 그냥 사람이 어우러진 그 상태만 표현해 두었다. 앞으로 새싹은 자랄 것이고, 사람은 수확을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해야겠지만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 같진 않다. '밭과 산과 하늘을 지켜 보고 있는 나'에 집중해야 한다. '외로운 내가 있다'의 명제는 여기서 성립된다.

'외롭고 고달픈 내가 지금 이곳에 서 있다'고 한 발 물러서 보는 것이야말로 나를 크게, 혹은 작게 왜곡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 개지 않은 하늘이 있고, 단풍이 물들지 않은 산이 있고, 열매를 맺지 않은 새싹이 있는 것처럼 아직 거둘 것이 없는 내가 있는 것을 그대로 볼 줄 아는 마음가짐. 그것이 이 그림의 아름다움이다.

 

<작품: 귀농당년_74.5x104cm_Oil on canvas_임동식_2009-2011>

    임동식 - 사유의 경치Ⅱ / 2013. 11. 13 - 11. 30 / LEE HWAIK GALLERY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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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클래식은 도대체 왜 듣는거야?"


친구들이 종종 내게 묻는 질문이다. 묻는 투로 봐서는 질문이라기보다는 거의 질타에 가깝다. '그 졸음오는 재미없는 음악을 들으면 니가 잘난 것처럼 보여서 그런거야?'라는 비아냥도 꽤 담겨있는 것 같다. 아예 없다고 한다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거다. 실제로 클래식을 들어서 주변으로부터 덕 아닌 덕을 본 적도 몇 번 있으니 그것도 아주 조금 첨가되었다고 하면 맞겠다. 재즈 클래식도 아닌 주로 18-19세기의 낭만주의 음악을 선호하는 까닭에 늙은이라는 소리도 적지 않게 들었다. 노친네라고 놀려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남들 홍대 클럽가서 최신 음악에 흔들대며 젊음을 만끽할 시기에, 지산 롹 페스티벌 가서 두 손 치켜 올려들고 반 정신나간 놈처럼 헤드빙 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그 시덥지 않은 클래식이라니! 그럼에도 나는 클래식을 듣는다. 그것도 아주 깊고 진지하게. 


이유를 뭉뚱그려 말하자면 이렇다.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삼십대 사이에서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거나 작곡을 공부하는 극소수의 인간들을 제외하면 우리 세대 전체를 통틀어 클래식을 듣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내 주변만 돌아봐도 클래식을 듣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여기서 '그냥 그게 그건가 보다'하고 듣는 사람은 감상자로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엄밀히 말하면 능동적 감상자가 아니라 '그냥 틀어서 나오면 좋은 건가보다' 하고 한 귀로 흘려 보내는 수동적인 부류이기 때문이다. 마치 맛좋은 레스토랑에 와서 정말 최고급의 마르게리타 피자를 먹고도 '이 피자나 저 피자나 그게 그거네' 생각하면서 막상 나갈 때는 동료에게 '야~여기 피자맛 기가 막히네' 하는 사람들과 같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는 건 절대 아니다. 단지 클래식 애호가는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한 애호의 이유가 된다. 한번 상상을 해보자. 당신은 온통 인스턴트식 정원으로 뒤덮인 인공 숲 사이를 매일같이 거닐다 어느날 우연히 나무와 나무 사이에 빼꼼 열려 있는 낡아빠진 문을 발견한 거다. 조심스레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이 곳은 인기척이라고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 신비의 숲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사람들을 단숨에 휘어잡을 만한 화려한 나무나 꽃은 없다. 대신 수백년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고고한 고목나무들이 장대비처럼 내려앉아 마법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경이로운 장면을 만날 수 있다.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하다. 신선한 공기가 몸의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사색에 빠지기 좋은 나만의 아지트인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남들과 즐기는 시간보다 나 혼자 보내는 시간에 더 애정을 두었다. 요즘 것에 관한 그 무언가에 대해 주변의 누군가와 공유하고 함께 즐기기보다는 이미 저 세상 사람들이 된 먼 누군가와 단독으로 만나는 것이 훨씬 더 신났고 가치있게 느껴졌다. 저 세상 사람들과 교류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책과 음악. 오래된 것일수록 더 끌렸다. 시류를 따라가는 것들은 최대한 배제했다. 최대한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서 그 속에서 스스로 사색에 잠겨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 그 가운데 클래식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천재의 분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하찮은 평민이었기에 10대의 클래식 감상에서 그다지 특별한 무언가를 얻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저 들어서 마음이 편안하고 좋은 것들을 택해서 집중적으로 든는 것, 그것 뿐이었다.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요한 슈트라우스, 드보르작과 같은 누구라도 들어서 그 정도는 알 수 있을 법한 유명한 작곡가들 위주로 감상했다. 여기서 집중적으로 듣는다는 의미는 학습이 전제된 의도적인 측면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저 좋은 것을 습관적으로 곁에 두는 게 전부였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내가 택한 클래식을 제외한 그 어떤 음악도 듣지 않았다. 그저 매일같이 똑같은 테이프를 돌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하루를 마감하는 것. 그것으로 족했다. 이러한 나만의 습성은 오늘날 클래식에 더욱더 몰입하게 되는데에 중요한 몫을 했다. 


이런 나만의 습성은 초등학교 생활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는 것. 연주는 감상만큼 즐겁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바이올린은 재미있었지만, 피아노는 최악이었다. 가르치는 피아노 선생도 너무 기계적인데다가 억지로 동그라미 표시를 해 가면서 연습한다는 건 정말 구속 중의 구속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런 경험과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나의 밑바탕, 머릿 속 심연의 바다에 굵직한 음악적 지층을 형성한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바이올린 합주부 생활은 클래식이 안겨주는 엄청난 스케일을 잘 빨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어 주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바이올린 교사가 쉬는 시간이면 기가 막히게 연주했던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 


내 인생에서 클래식만 들은 건 결코 아니었다. 클래식으로 돌아오기까지 나는 수많은 음악의 산맥을 넘나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거추장스럽고, 그냥 여기저기 장르에 기웃기웃대었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클래식 다음으로 접한 것은 팝, 그 중에서도 비틀즈였다. 똘기충만한 비틀즈의 음악은 다른 장르로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가교 역할이 되어 주었다. 그들이 실험한 갖가지 형식들이 어떤 음악도 거부감 없이 흡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렇게 나는 이미 은퇴한지 한참 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재주목했고 그들이 남기고 떠난 모든 앨범을 수집했다. 교실이데아에 젖어있던 나는 곧 롹의 세계에 급격히 빠져들었고, 대학교에 입학하기 무섭게 롹커가 되었다. 군입대 전까지 나는 오직 롹만 들었다. 가요를 듣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완전 사기라고 봐야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풍류에 그쳤다. 놀고 마시고 즐길 때 불러대는 니나노의 느낌 정도로 가요감상의 레벨을 맞춰 두었다. 


힙합, 트립합, 일렉트로닉 등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적지 않은 분야를 건드렸다. 그런데 그것들 역시 대중의 귀에 익숙한 범위를 훨씬 넘어선 그 이면의 세계에 놓여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투팍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누가 손수 투팍의 앨범을 차곡차곡 모아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와 비트를 즐길 생각을 하겠나. 어떤 면에서 보면 클래식을 듣는 이유나 롹을 듣는 이유나 힙합을 듣는 이유나 다 비슷비슷한 맥락이다. 남들이 최대한 기웃대지 않는 영역에서 나는 최대한 나 자신에게 신성성을 안겨줄 수 있는 대상을 찾고 그것을 신봉하고 경외를 표했다. 


클래식에서 나의 줄기는 피아노다. 피아노 소나타, 변주곡, 야상곡에서부터 이중주, 삼중주까지 가릴 것 없이 다 듣는다. 그 중에서도 단연 피아노협주곡을 가장 좋아한다. 오케스트라의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홀로 당당하게 버티고 앉아 호탕하게 건반을 쓸어내리는 비르투오소의 모습이 가장 나를 사로잡는 포인트다. 똑같은 악보를 놓고 쳐도 각자가 지닌 성향에 따라 곡을 천차만별로 해석된다. 똑같은 바둑판에서 흰돌, 검은돌이 격돌하는 데에서도 수십만개의 경우의 수가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무궁무진한 세계에 빠져들어 버렸다. 이곳은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나만의 안식처다. 


당돌한 꿈도 꿔본다. 이렇게 10년 정도 듣다보면 정말 클래식 애호가라는 명함도 부끄럽지 않게 내밀 수 있을 날이 오겠지. 이렇게 30년 정도 피아노를 치다보면 나 역시 언젠가 동네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 수 있을 정도의 깜냥은 되겠지. 요즘 작품에 자꾸 동기화가 되어 나도 모르게 자꾸 볼륨을 높이다 보니 청각에 무리가 온 것 같다. 당분간 이어폰을 자제하고 오디오로 감상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도박보다 무서운 중독이다.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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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 떠오릅니다. 한 친구가 급하게 교실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아이들에게 소리치더군요. "야! 이○○ 죽었대!!!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었대!!!" 학급 전체가 술렁였습니다. 단순히 죽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살일 가능성이 높다는 부검결과 판정이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이야기 한 이○○란 아이(줄여서 L)는 중학교 3년 동안 단 한번도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초특급 울트라 에이스 영재'였습니다.  

 

L은 중학교 졸업 직후에 우리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고 인도로 유학을 갔습니다. 아버지가 인도에서 사업을 크게 확장하시면서 고등학교도 그 쪽으로 선택했다는 이야기까지는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레 L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번뜩 떠오르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었습니다.

 

농구시험.

 

총 열 번의 슛 가운데 얼마나 많은 공을 넣는가에 따라 체력장의 점수가 갈리는 체육시험이었습니다. 뭐 사실 당시의 청소년들에게 그 농구시험이라는 것은 미래를 결정하는 어떤 중대한 사건이라든지 남자의 자존심을 건 마지막 승부 같은 그런 비장한 성질의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어설프게 본 것들은 많아서 만화 주인공의 슛폼을 따라한다던지, 아니면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슛을 해서 반 아이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든지, 별 생각없이 던지다가 단 한 점도 성공을 못한다든지 하는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었죠. 운동신경이 둔한 저로서는 말할 것도 없구요.

 

그러나 L은 달랐습니다. 농구시험마저도 너무나 진지했죠. 작은 체구지만 단단한 몸집, 검은 뿔테 안경 사이에 잔뜩 구겨진 신경질적인 미간, 꽉 다문 이빨에서 '반드시 다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목숨을 건 사투의지가 활활활 느껴졌습니다. 처음 던진 공은 실패. 공이 링을 맞고 튕겨 나가자 L은 머릿칼을 움켜 쥐고 몸부림을 치더군요.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던졌습니다. 이번엔 다행히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다음 슛은 실패.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몇 번 반복하니 10개의 슛 중 6개의 공이 성공했습니다. 그 친구는 얼굴부터 목까지 새빨개져서는 물을 마신다는 핑계로 황급히 시험장을 빠져나가더군요. 성공이 아니라고 생각했던거죠. 일등만을 줄곧 외쳐오던 L에게 있어서는.

 

늘 그 친구의 삶은 그랬던거죠. 남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매점으로 달려가 빵과 우유를 허겁지겁 먹었지만, 이 녀석은 전 수업의 과목을 복습하거나 아니면 뒤에 이어질 수업의 과목을 예습하는데 열중했습니다. 늘 맨 앞자리를 떠날 줄 몰랐죠. 그의 책상 주변을 지나갈 때면 뭐라고 딱히 집어 말할 수는 없는 무언가 불편한 아우라가 느껴졌어요. 손가락이 부러질듯이 움켜쥐고 있는 그의 연필을 보고 있자면 그 연필마저도 '뭘 꼴아봐. 니 눈에 부정이 끼어있다. 꺼져버려!'하고 나를 째려보는 것 같았어요. 양 손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교과서와 문제집은 무슨 마법의 책이라도 되는냥 눈에서 쉬 떼질 않더군요. 혹여라도 실수로 어깨라도 치면 그 신경질적인 미간에서 레이져 빔이라도 발사될 것 같았어요. 아무리 힘깨나 쓴다는 친구들도 그 친구만은 건드리지 않았어요. 그는 명실공히 학교를 빛낼, 그리고 장래의 대한민국 인재가 될 보물이기에 선생님들의 두터운 비호를 받고 있었거든요.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급 칠판 옆에 걸려있던 급훈이었습니다. 각진 얼굴에 딱 벌어진 어깨로 로보트 변신을 할 것 같았던 우리 담임 선생님이 손수 붓글씨를 쓰셔서 걸어두신 '위대한 교훈'이었습니다. 초일류 S대를 졸업한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기를 즐겨하셨죠. 수업 시간에 졸고 있는 학생이 보이면 뚜벅뚜벅 말굽소리를 내면서 다가가 귀를 꼬집어 잡아올립니다. 토끼처럼 귀가 늘어나도록 동서남북으로 흔들어대면서 심하게 꾸짖곤 하셨죠. "졸음이 오냐? 죽도록 공부해도 대학에 갈까 말까 하는데 지금 눈이 감겨? 너희들 잘 들어. 죽도록 공부해도 안죽는다. 엄살부리지 말고 제대로 정신차리고 공부해 알았어?"

 

그리고는 또 하나 물으십니다. "너희들 아인슈타인이 몇 시간 잤어?" 그럼 우린 기계처럼 대답하죠. "3시간이요", 또 묻습니다. "에디슨은?". 이젠 기계가 대답합니다. "2시간이요." 단호한 명령이 떨어집니다. "너흰 4시간 이상 자지 말고 공부해 알았어? 알았냐고!" "네~~~" 큰 소리로 대답하고 정자세를 취합니다. 냉냉한 공기에 입김마저 나올 것 같았어요. 선생님은 늘 위인들의 위대한 삶을 이야기해주셨어요.

 

아마 L도 그런 위대한 인물이 되길 원하고 또 원했나 봅니다. 어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인도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슬픈 이야기도 들려오더군요. L의 잣대에서 따지고 본다면 적응은 기본이고 그곳에서도 최고가 되어야 자기 직성에 풀렸겠죠. 하물며 농구시합에서까지도요. 사업가로 국제적 명성을 날리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바삐 '전교 1등'이라는 고지에 다다라야만 한다는 강박관념도 그의 죽음에 한 몫 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제 나이도 이제 서른이 훌쩍 넘었습니다. 가끔 우연찮게 헌책방을 지날 때면 어렸을 적 읽었던 그 위인전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는 광경을 보곤 하죠. 그런데 저는 그 수많은 위인전기 중에서 인상에 남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냥 이름과 내용 정도만 기억날 뿐이죠. '이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를 롤 모델로 삼아 나는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막연한 목적 하나 없이 그냥 위대해져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겁니다. 그냥 무엇을 하든 남들이 위대하다고 평가해주기만을 원한 건 아닐까 하는 매우 1차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선생님이 위인전을 이야기해주실 때 한 가지 빠뜨린 점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위인은 평범하지 못하다'. 인류의 역사에는 길이 남을 수 있어도 내 가족과 주변 친구와 함께 '평범한 삶'을 공유하기에는 그가 맡은 세기의 임무가 너무나도 막중했다는 사실. 대다수의 위인들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죽도록 공부만 했거든요. 그리고 평범한 사람과 어울리지 못해 외로움과 병으로 단명하는 사례도 결코 적지 않았구요. 쓸쓸한 인생이었단 말입니다. 평범하지도 않았고 행복하지 않았고 게다가 단명까지 했다니. 차라리 바보로 사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나는 바보다' 하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습니다. 진작에 저에게 그걸 알려주셨다면 이렇게 '죽도록' 공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미련아닌 미련도 남습니다.

 

우린 대체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뛰어온 것일까요?

꼭 그렇게 몇 권 안에 손꼽히는 위인이 되었어야만 했나요?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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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7.10 19:03 신고

    잘보고 갑니다.행복한 한주가 되세요.

  2. 2016.03.31 16:39 신고

    아인슈타인은 잠꾸러기였답니다. 11시간 이상을 잤고, 또 나폴레옹도 잘 나갈 때는 4시간 이하로 자던 인물이였는 데, 6시간 이상 자는 사람을 바보라고 했다는 데, 월터루 전투 패배 이후에는 작전회의도 불참하며 잠을 잤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에 시달렸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맞지만, 12시 이전에는 자야하고 새벽 3시를 넘기면 몸이 결국 무너집니다. 몸이 한번 무너지면 되돌리기가 어렵습니다. 잠, 몸이 원하는 만큼 자세요. 깨어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나폴레옹 잠을 정복했냐 ? 결국 잠에 정복 당했지 !!! 어부보다 못한 최후
    http://softwant.com/cgi-bin/kimsq/softwant/itgi.php?mid=240&r=view&uid=2542

 


기교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쇼팽 연습곡

 

쇼팽 이전에도 연습곡은 존재했다. 오늘날까지도 피아노 학원의 바이블로 우뚝 서 있는 체르니가 대표적인 선구자다. 쇼팽과 피아노에서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피아노의 귀신' 리스트도 어렸을 적 체르니에게 탄탄한 기본기를 사사했다. 피아니스트에게 연습곡은 다소 지루한 과정이지만 반드시 넘어가야 하는 필수 코스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연습곡의 수준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단단히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연습곡의 끝판을 완성한 것이다. 그의 연습곡은 결국 공연장 연주곡의 반열에 올라섰다.

 

쇼팽이 활약하던 시기는 낭만주의 시대로, 피아노가 독립된 악기로 인정받아 이제 막 기악으로서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쇼팽과 리스트의 초절정 기교의 곡들을 들어보면 딱 그 생각 밖엔 들지 않는다. '어디 쳐볼 수 있으면 쳐봐라'. 락으로 따지면 잉위 맘스틴과 임페리테리의 끝을 모르는 속주를 듣는 느낌이다. 가공할만한 속도감, 그 가운데에서도 씨알머리하나 엇나가지 않는 정교함. 이 정점에서 쇼팽은 생각한 것 같다. '어? 그러고 보니 피아노 기본기 교재는 있어도, 피아노 기교 교재는 없네?' 

 

총 24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 곡들이 작곡된 시기는 정확치 않지만 작품 10은 1829년~1936년 사이에, 작품 25는 1832년에서 1936년 사이에 작곡된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1810년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다 20대에 쓰여진 곡이다. 이미 그는 청년 시기에 피아노의 꼭대기에 올라서서 후학을 염두한 연습곡을 지은 것이다. 리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쇼팽 역시 파가니니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이 연습곡을 완성했다. 화려한 연주기교에 더해 '피아노의 시인' 특유의 시적 표현을 톡톡히 담아냈다. 당대 보수파들에게 '예술의 파괴'라고 욕 꽤나 먹었지만, 슈만과 리스트에게는 오히려 극찬받았다. 낭만주의가 무엇인지 교육적으로 몸소 보여준 쇼팽의 결정체라 하겠다.

 

냉철한 해석, 연습곡은 연습곡으로 끝나야 한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클래식 초보자'도 들어보면 어디서 들어본 듯한 곡들이 여러 개 걸릴 것이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고 보면 되겠다. 작품의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음반이 출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전문가들이 단연 탑클래스로 손꼽는 명반이 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다.  

 

1942년 출생, 올해 나이 일흔 하나, 백발이 성한 할아버지다. 이 분도 천재다.(세상엔 참 천재도 많다;;;) 불과 15살에 제네바 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렇다면 그 때 1위는 누가 했을까? 혜성처럼 등장한 '피아노의 여신' 마르타 아르헤리치다. 이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우리는 라이벌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러나 대중의 시선은 이미 그와 그녀를 세기의 라이벌로 정의내렸다.

 

아르헤리치가 열정의 심볼이라면, 폴리니는 냉철의 아이콘이다. 똑같은 쇼팽을 연주해도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온다. 아르헤리치가 연주한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3장을 들어보라. 듣는 사람이 제압당한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시작부터 좌석에 앉아있는 청중을 꽁꽁 묶어버린다. 폴리니는 다르다. 열정으로 대중을 휘어잡기보다는 표준적인 감성으로 작품의 실체를 밝고 명확하게 이끌어낸다. 그가 서른살에 녹음한 쇼팽의 연습곡도 다르지 않다.

 

한 치의 오차 없이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 굴러간다. 손이 기계같이 느껴질 정도다. 음량 배분에서도 절대적인 안정감을 추구하고 있고, 핑거링 역시 냉정함을 고수하고 있다. 앨범 쟈켓의 표정을 봐도 알 수 있다. 주어진 곡을 주어진 대로 칠 뿐이라는 담담한 얼굴을 짓고 있다. 혹자는 의구심을 품어 볼 수도 있다. '감성과 서정을 중시했던 쇼팽도 과연 이렇게 연주했을까요?' 폴리니의 연주를 듣고 난 나의 대답은 이렇다. '연습곡은 연습곡일 뿐이다'. 

 

폴리니는 '쇼팽'의 연습곡보다는 쇼팽의 '연습곡'에 초점을 둔 것이다. 아무리 쇼팽이라고 해도 기교와 시적 감정의 표현을 담아내는 교재에서는 표현의 중립을 지켰을 것이라는 확신이 폴리니의 곡에 그대로 담겨있다. 이렇게 얘기해도 이건 너무 차갑고 이성적이지 않냐고 불평하는 혹자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할수없다. 아무리 따져봐도 이 이상 쇼팽 연습곡을 바이블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마음이 갈피를 못잡고 싱숭생숭할 때 중립과 냉정을 찾고 싶다면 이 곡 한번 들어봐라.

 

[쇼팽 에튀드 Op. 10/25/DG 413794-2]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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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늘 아이들을 위한  체험코너가 있습니다. 그곳은 늘 엄마와 아이들로 북적북적대죠. 뭔가를 만들기도 하고, 그리기도 하고, 스탬프를 찍기도 하고 기타 등등 요새는 체험놀이도 부쩍 발전해서 별의 별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들. 여기서 하나 팁을 드리도록 하죠. 아이들이 체험놀이할 때 뒷전에서 쉬지 말고 아이들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거기에 아이들의 지금의 성향과 앞으로의 미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실제 예를 하나 드리도록 하죠 후후.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쌍천 이영춘 박사를 기리는 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 농촌위생운동에 크게 이바지한 군산의 대표적인 위인이죠. 내용을 아는 친구들도 있겠고, 모르는 친구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건 크게 중요하진 않아요. 중요한 건 아이들이 전시회를 보고 나서 하는 체험놀이의 결과물입니다. 마침 그곳에서는 이영춘 박사의 밑그림을 주고 색칠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 두었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그림도 아이들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이 점을 잘 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이 그림들을 모두 아이들이 그렸다는 전제 하에서 얘기합니다) 수백장의 그림 중에서 특징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들만 보여드리도록 하죠 후후. 




아주 스탠다드한 학생입니다. 원래 사진을 그냥 따라 그린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반듯하고 말 잘듣는 아이의 전형적인 케이스입니다. 정해진 메뉴얼에 맞추어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기 개성이나 그런 것들은 그림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냥 주어진 여건에서 개척없이 순응할 스타일이라는 얘기죠. 어머니가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시고, 아니라고 하신다면 무언가 일상에서 할 수 없는 다른 교육이 필요한 그런 아이입니다. 다음 그림 보시죠. 





네. 이 친구 불만이 있습니다. 리본은 그렇다 치고 입을 보십시오. 시뻘건 색으로 입을 아예 뭉개버렸군요. 왼쪽 눈썹이 아예 코 밑으로 내려 앉았습니다. 굉장히 화가 나 보여요. 배트맨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생각나네요. "Why so serious???" 이런 친구들의 경우 어머니는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아이가 어떤 점이 불만이 있는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다음 보시죠. 




이 친구 보십시오! 돈을 돌같이 보고 살아오신 이영춘 박사님께 "돈 좀 있냐!"는 멘트를 과감하게 갖다 붙였습니다! 네. 전형적인 무법자 스타일이네요. 그런데 돈 좀 있냐고 묻는 사람이 안경도 깨지고 쌍코피까지 터졌습니다. 학교 내에서 개구쟁이인데다가 싸움이 잦은 아이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위 학생들과는 달리 이름도 쓰지 않았습니다. 활발 그 자체겠죠. 이런 모습이 좋으시면 그냥 두셔도 관계는 없습니다만...자 다음 갑니다. 





꽤 재미있는 친구입니다. 영화 혹성탈출을 봤던 걸까요? 아니면 멋진 턱수염을 그려넣은 걸까요? 아무튼 뭐하나 일반적인 것이 하나 없는 판을 깨버린 친구입니다. 그리고 학위모 위에 자신의 이름을 커다랗게 써 넣었습니다. 자아도 굉장히 강한 것 같구요. 자기 세계가 굉장히 독특하고 강한 아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예술적 기질은 없습니다. 예능으로 가면 가능성이 별로 없으니 이 아이는 잘 잡아주어야겠죠. 다음요. 





화려한 인생을 꿈꾸고 있군요. 머리부터 상의까지 알록달록에 체크무늬까지 스펙터클합니다. 색안경도 빨강과 파랑의 대비색을 썼습니다. 아래 위로 자신의 이름을 분명하게 적어 넣었구요. 반과 번호도 넣었습니다. 커서...밤문화...자세히 말하면 클럽과 나이트를 좋아할 수 있겠습니다. 아이가 춤이나 노래에 관심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겠군요. 넥스트!





..........네...박사님을 여자로 만들었군요. 실명을 밝혀드릴 순 없지만 남자이름은 확실합니다. 긴 노랑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어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왜 남자를 여자로...했을까요? 좋아하는 여자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남자의 심리상 정말 좋아하는 여자를 이런 식으로 폄하하지는 않습니다. 굉장히 독창적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네. 그만두도록 하죠. 다음요!





네..드래곤볼에 나오는 사이어인 베지터를 그렸습니다. 한쪽 눈가에는 상대의 전투력을 측정하는 스카우터를 장착했군요. 측정결과 상대의 전투력이 6,000,000인 것으로 나왔습니다. "대단하군" 한마디 날리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눈이나 입이 굉장히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대보다 전투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람한 팔뚝까지 그려넣은 것을 보십시오. 이 아이는 만화에 일단 미쳤습니다. 드래곤볼은 적어도 90년대 만화이거든요. 어떤 매체를 통해서 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로 대단합니다. 그저 평범하게 자랄 스타일은 아니네요. 오늘의 레전드로 임명합니다.


자, 어떻습니까? 똑같은 밑그림을 주어도 아이들은 제각기 자신이 그리는 세상에 비추어 그림을 재해석했습니다. 획일적인 삶을 살고 있는 어른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이죠. 당신의 아이는 어떻습니까? 내일부터 유심히 체험놀이하는 당신의 자녀를 지켜보십시오. 그리고 체험놀이의 결과물과 아이의 행동을 비교해서 관찰해보십시오. 아이의 현재와 미래가 보입니다. 미술치료는 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무궁한 발전을 소망하겠습니다!


P.S. 그런데 이분...최근 나는 가수다에 나왔던 가수 김○○ 닮지 않았나요???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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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선생님 댁에도 눈이 내렸습니다.

 

성북동 길에는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습니다. 밤사이 내린 함박눈으로 번잡했던 서울의 거리가 잠시 고요한 휴식을 누리듯합니다. 사람의 발길이 잠시 끊긴 사이 골목이며 지붕이며 집 앞에 늘어선 자전거와 화분까지 하얀 눈의 손길이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습니다. 검푸른 밤하늘을 수놓던 수천수만의 하얀 알갱이들이 대지에 내려앉아 온 사물을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오늘따라 선생님 댁 뒤뜰의 달 항아리가 떠오르는 것은 텅 빈 밤하늘에 무심히 걸려있는 둥근 달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화려하게 몸치장을 하던 대로변의 네온사인과 간판들이었건만 이렇게 자연의 강림 앞에서는 한 낱 어린아이 색칠거리에 불과한 것인가 봅니다. 하늘이 자아낸 천연한 흰 물감을 풀어버리면 순간 그것들은 다시 무(無)로 돌아간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하얀 빛깔의 이 희한하고도 신비로운 도심의 수채화는 선생님이 늘 말씀하셨던 순리의 아름다움, 백색의 아름다움이 아닌지요. 선생님이 살아 계시다면 사랑방 창가에 앉아 지금의 풍경을 대견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시지는 않았을까 흐뭇한 상상도 지어봅니다. 선생님 댁을 올라가는 이 길이 그저 즐겁기만 한 것도 이와 같은 마음입니다.

 

정적이 감도는 선생님 댁 마당에는 밤나무와 감나무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있고, 그 위에는 차분하게 함박눈이 내려앉았습니다. 선생님이 심어둔 나무 잔가지 마디마디에는 구슬보다 더 영롱한 눈 이슬이 맺혀서 이 스산스럽고도 호젓한 뒤뜰의 풍경을 한층 아름답게 빛내주고 있습니다. 용자살 창문에 비친 조용한 달빛과 그 빛깔에 더욱 확연한 맵시를 드러내는 장독대 옹기들은 생전 선생님의 넉넉한 마음씨를 비춰주는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 댁에는 아직도 푸르른 소나무와 향나무가 특유의 청렴함을 간직하고 있고, 산수유와 자목련, 생강나무는 있는 듯 없는 듯 집과 한 덩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박석 사이사이마다 겨울 숨을 고르고 있는 맥문동과 벌개미취의 잎사귀들은 따스한 봄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예술에 의중을 두었지만 그 미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자연의 뜻에 맡겨두는 당신의 안목이 잔잔히 밀려오는 까닭입니다.

 

생전에 두고 즐기셨다는 뒤뜰의 둥그런 달 항아리가 묵묵히 달빛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넉넉한 자태로 질박함과 순후함을 충만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수묵화를 그려내듯 온 집을 병풍처럼 둘러친 청죽은 집과 정원의 아름다움이 둘이 아닌 하나로 느껴지게 하는 본바탕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뽐내지도 않고, 번쩍이지도 않는, 그리고 수다스럽지 않는 우리네 아름다움이 아닌지요.

 

함박눈 내린 겨울밤, 선생님의 옛집에 기대서서 맛보는 이 즐거움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의 풍경을 마음의 소중한 갈피로 간직할 수 있다면 이 순간은 영원할 수 있겠지요. 칠흑같이 어두운 밤, 달빛과 선생님과 이 집을 그리는 이유입니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최순우 옛집(등록문화재 제268호)


  최순우 옛집은 한국 문화재에 대한 깊은 애정과 뛰어난 안목으로 그 아름다움을 찾고 보존하는데 일생을 바쳤던 최순우 선생(1916~1984)을 기리고, 한국 미(美)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설립되었다. 최순우 선생은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미술사학자로, 저서에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전집(1~5권)]등이 있다. 

  이 집은 1930년대 지어진 튼 'ㅁ'자 형태 한옥으로 선생이 1976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살던 곳으로 선생의 미학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공간이다. 2002년 겨울, 문화유산 보전의 뜻을 가진 시민들이 성금으로 이 곳을 매입하여 내셔널트러스터 시민문화유산 1호로 지정하였다. 

  현재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보전, 운영하고 있으며, 2004년에 개관하여 4월부터 11월까지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한다. 봄과 가을에 시민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과 특별 전시회를 열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www.nt-heritage.org  

공식 블로그: http://cafe.naver.com/ntch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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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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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12 09:53 신고

    저도 동감 입니다.누추하지만 내집이 제일 편하지요.



정독도서관 옆 소격동 길을 지나다가 이 그림을 마주쳤을 때, 생전 처음 '그림을 사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던 12월의 겨울. 추위도 까맣게 잊은 채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그림이 그림같지 않았다. 새로운 차원의 신세계로 나를 인도하는 듯 했다. 내가 무의식 중에 꿈꾸던 진짜 이상향의 안식처에 다다른 듯한 완벽한 환상을 맛보았다. 


온 빛이 세상을 감싸고 있다. 온 빛이 산과 바다에 내려 앉았다. 이곳은 물결도 바람도 존재하지 않는 곳. 모든 것이 멈추었다. 빛과 그림자로 빚어낸 이 담박하고도 신비한 능선을 따라 차근차근 걸어가본다. 움직이는 것은 오직 나 뿐이다. 산 중턱에 잠시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바닷 속 세상이 훤히 보인다. 팔깍지를 끼고 그 자리에 누워버린다. 나도 이 그림의 풍경이 된다. 


갤러리 안에 있는 그림이 궁금해졌다. 빼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걸려있는 것은 온통 산 뿐이다. 이영길이라는 화가의 작품이다. 수묵화도 아닌, 그렇다고 채색화도 아닌 수묵채색화를 구사하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화에서는 금기로 여기는 빛을 작품에 끌어들였다. 한국화는 선과 여백에서 그림의 여유로움을 찾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사람, 빛에서 그림의 안정감과 한적함을 끌어내고 있다. 재미있는 양반이다. 


한지 위에 일필휘지로 휘두른 먹의 굵직한 선과 농담을 과감히 포기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빛과 색채를 가득 채웠다. 수채화를 끌어들였지만 결코 거추장스럽다거나 인위적인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화에서 강조하는 어떤 유교적인 이념이나 정신같은 것은 애시당초 버린 것 같다. 그는 기존의 한국화가 요구하는 계보의 목적성을 내려놓았다. 꺾어내지르는 협곡과 그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 조그맣게 자연 속을 거니는 선비와 동자는 이 사람의 세계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그는 단지 그가 생각하는 내면의 마음을 내어놓고 싶었던 것이다. 


보이는 풍경이 아니다. 마음의 풍경이다. 그는 수묵화와 수채화의 중간계에서 많은 고민을 한 것 같다. 둘 중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이 화가의 세계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 같다. 결국 두 세계의 혼합 가운데 여러 실험을 거쳐 그는 답을 찾은 듯 싶다. 그리고 그 실험은 한 남자를 감동시키에 충분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빛깔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한방에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을 이 그림 하나로 쾌히 증명했다. 


한참을 감상하고 있으니, 멀찌감치서 한 남자가 다가온다. 이영길 화가다. 열중해서 보고 있는 모습이 좋았는지 흔쾌히 도록 한권을 선물로 준다. 웃으며 한 마디 던진다. "자주 와요"


나는 전시가 끝날 때까지 매일 이 갤러리 앞에 찾아와 한참 동안 이 그림을 감상했다. 좋은 술에 좋은 안주가 빠질 수 없는 법. 백건우가 연주한 에릭 사티의 Ogive # 1, 2를 연달아 듣는다. 사람, 그림, 음악이 모두 멈췄다. 진짜 내가 보인다.

 


<작품: A world opened with the light...- mountain_130.3x162cmㆍ장지에 채색_이영길_2009>

    - 이영길 개인전 / 2009 12. 23 WED - 12. 30 WED / AKA Space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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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NDELSSOHN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두 개의 소나타: 2 Sonata for Cello and Fortepiano]


  누군가의 음악을 들을 때 나는 ‘그 사람의 기운을 받는다’는 말을 즐겨 쓴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음악에는 그 사람의 인생관과 열정, 기쁨, 슬픔, 고뇌, 좌절, 초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것은 음악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두 해당되는 얘기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매일같이 아침에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컴퓨터를 두드리고, 서류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쓰는 동안 그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피아노를 치고, 바이올린을 켜고, 온 몸에 잉크를 묻혀가며 악보를 썼다. 평생을 그렇게 말이다. 그들이 마신 수천 잔의 커피, 숨소리, 움켜쥔 머리칼, 환희에 찬 손짓, 페달을 밟는 유쾌한 발동작, 연인과의 달콤한 키스까지 그의 모든 것이 그 한 곡에 담겨 있다. 


  한 사람의 좋은 기운을 얻을 수 있는 명반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클래식의 영원한 귀공자 멘델스존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두 개의 소나타: 2 Sonata for Cello and Fortepiano]. 첼로를 화두에 놓고 피아노의 선율을 밑바탕에 둔 멘델스존의 걸작 중 하나다. 그는 작곡가이기 전에 앞서 당대의 피아니스트와 어깨를 견주는 대단한 실력자였다. 그리고 그의 동생 파울이 아마추어 첼리스트였기 때문에 그는 첼로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첼로의 우아함과 피아노의 경쾌함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실내악곡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의 정식이름은 야코프 루트비히 펠릭스 멘델스존이다. 펠릭스(행운아)라는 말 뜻대로 그는 클래식계의 타고난 '럭키가이’였다. 경제적, 정서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안식과 평화의 온실 속에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마음껏 펼쳤다. 할아버지는 계몽주의 철학가, 아버지는 은행가, 어머니는 인텔리 음악애호가였다. 집안에는 자신을 위한 전속 오케스트라가 있어 언제든지 이들을 이용하여 여러 음악적 실험을 할 수 있었다. 음악을 사랑했던 그의 가족들은 멘델스존가(家) 음악회를 만들어 당대의 음악가들과 교류할 정도였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가곡의 왕’ 슈베르트가 피아노 한 대 살 수 없어 기타로 대신 작곡을 해야만 했던 암담한 현실과 비교하면 더욱 ‘행운아’라는 단어가 와 닿는다.  





  곡의 느낌은 한마디로 '즐거움' 그 자체다. 무리하지 않는 첼로 특유의 저음과 담백한 포르테피아노의 핑거링이 어우러져 보드라운 한편의 시를 써 내려 나아간다. 웅장한 저택의 아침, 멘델스존의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실내악을 연주하며 즐거운 미소를 짓는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음폭의 큰 기복이 없고, 곡 전체가 완만한 음률의 곡선을 이루고 있어 귀의 거슬림이 없이 부드럽게 넘어간다. 이 곡이 아침에 듣기에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침은 하루 중 가장 예민한 시간이다. 몸의 구석구석이 휴식에서 깨어나는 때이므로 함부로 깨우면 하루가 삐걱댄다. 그래서 혹자는 아침 10시까지 웃으면 그날 하루 종일 웃을 수 있다고 얘기한다. 그만큼 아침을 어떻게 시작하느냐는 하루에 있어 정말 중요한 일이다. 자!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 10분만 일찍 일어나보자. 그리고 멘델스존이 당신에게 선물한 이 곡을 살며시 틀어보자. 볼륨을 가운데에 맞추고 귀부터 슬며시 깨워보자. 그리고 풍족하고 즐거웠던 멘델스존의 럭셔리한 삶 그 자체를 흐르게 하자. 그가 웃음 지으며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나의 인생도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하며 포근한 이불 속에서 같이 웃음 지어주자. 나의 아침에 좋은 음악을 선물해주는 것, 그리고 나에게 살며시 웃음 지어주는 것, 그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자, 마음이 즐거워지기 시작했다면 이제 당신의 방에 커튼을 활짝 열어라. 오늘 하루도 활짝 열린다는 그 마음으로 활기차게 시작해보자. 당신의 오늘 하루, 당신의 한번뿐인 인생, 이 멘델스존의 명반으로 응원하겠다.    


Written by 사샤


[각주:1]

  1. 이 앨범은 마지막 LP세대이기도 한 네덜란드의 노장 첼리스트 안너 빌스마의 연주와 노련한 포르테피아니스트 스텐리 호흘란드가 호흡을 맞추었다. 현대의 그랜드 피아노를 사용하지 않고 포르테피아노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현대 피아노로 연주할 경우, 피아니스트의 색깔에 더 비중을 두어 개발된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음향이 지나치게 강하고 풍만하여 첼로의 색깔을 오히려 덮어버릴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당대에 만들어진 포르테피아노로 연주하면 음의 지속 시간이 짧고 음색이 훨씬 밝고 투명해서 베이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따라서 첼리스트는 자신의 개성을 뽐내기 위해 애써 무리할 필요 없이 멘델스존이 기획한 감미로움 그대로를 온전히 살려낼 수 있다. 연주자의 균형뿐만 아니라 악기의 균형까지 섬세하게 고려한 명반 중의 명반이니 꼭 들어보기 바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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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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