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다는 건 '나 밖에 없다'는 주변으로부터의 쓸쓸함, 소외감이다. 그것은 지금 내가 어떤 공간, 어떤 시간에서 느껴지는 찰나의 감정이다. 외부와의 이질감을 의식한 나로 빠져든 '나'이다. 그것이 잠시 머물때는 우수의 감정으로 머물다 가겠지만, 심각해지면 우울증으로 빠지는 그런 성질의 것이다.


고독하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말 그대로 '외로운 나'이다. 고독하다는 것은 '외롭다'를 넘어서 '외로운 나' 그 자체를 홀로 깨닫고 있는 상태이다. 낙엽을 밟으며 '아, 외롭다' 하며 눈물짓는 것과는 달리, 그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나를 한발 물러서 지켜보고 있는 '나'인 것이다. 외로운 나로부터 빠져나와 그 '나'를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자아의 발현이다.

오늘 고독한 그림 하나를 우연히 만났다. 넉넉하게 펼쳐진 푸르스름한 밭의 끝자락으로 구릉같은 산들이 희멀겋게 번져있고, 하늘에는 듬성듬성 먹구름이 끼었다. 그리고 그 밭이 시작되는 한 켠에 작은 사람 하나가 서 있다. 그림 이름이 '귀농당년'이다. 고향을 등졌던 한 사람이 다시 돌아온 모양이다. 곱게 간 밭에는 빼곡하게 새싹이 자라고 있다.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은 밭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산을 보는 것인지, 어떤 상념에 젖어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작가가 사람을 자연의 대척점에 두지 않고 하나의 작은 연결점으로 두었다는 의도는 분명히 알 수 있다.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 그림이 뭔하는 바가 아닌 것 같다. '지금의 나를 지켜본 적 있는가?' 이 질문이 더 걸맞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자연은 대자연이 아니다. 작가의 사람은 자연 위에 우뚝하게 선 존재도 아니다. 그냥 자연과 그냥 사람이 어우러진 그 상태만 표현해 두었다. 앞으로 새싹은 자랄 것이고, 사람은 수확을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해야겠지만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 같진 않다. '밭과 산과 하늘을 지켜 보고 있는 나'에 집중해야 한다. '외로운 내가 있다'의 명제는 여기서 성립된다.

'외롭고 고달픈 내가 지금 이곳에 서 있다'고 한 발 물러서 보는 것이야말로 나를 크게, 혹은 작게 왜곡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 개지 않은 하늘이 있고, 단풍이 물들지 않은 산이 있고, 열매를 맺지 않은 새싹이 있는 것처럼 아직 거둘 것이 없는 내가 있는 것을 그대로 볼 줄 아는 마음가짐. 그것이 이 그림의 아름다움이다.

 

<작품: 귀농당년_74.5x104cm_Oil on canvas_임동식_2009-2011>

    임동식 - 사유의 경치Ⅱ / 2013. 11. 13 - 11. 30 / LEE HWAIK GALLERY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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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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