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는 보지 않는다. 날씨 정도만 확인한다. 그 시간에 무한도전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무한도전은 무념무상으로 웃게 해주고, 음악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1. 하루에 세 번 이상은 클라라 하스킬의 모차르트 피협 19번을 듣는다. 신은 인간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아름답다는 말 밖에는.

 

2. 방해받지 않는 시간, 빌헬름 박하우스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2번 실황 연주를 듣는다. 인간의 마음비움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경건하다는 말 밖에는.

 

3. 며칠 사이 퇴근길, 모차르트 피협 22번을 넘보고 있다. 게자 안다의 지휘 겸 연주 음반을 듣는다. 인간의 참되고 신성한 노력의 힘을 맛볼 수 있다. 꾸준하다는 말 밖에는.

 

 

자료를 찾던 중, 세 사람의 인연을 알게 되었다.

 

1. 게자 안다는 1953년부터 1958년까지 클라라 하스킬과 듀오 피아노 연주를 했고, 이때 그녀로부터 모차르트에 대한 깊은 감명을 받고 평생을 모차르트 연구에 매진한다. 결국 그는 모차르트 피협 전곡 녹음이라는 대업을 최초로 달성한 자가 된다.

 

2. 안다가 11살 되던 해, 그는 빌헬름 박하우스를 만나 연주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연주를 들은 박하우스는 주저없이 그가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에서 특별 장학금을 받고 연주활동을 할 수 있도록 알선해준다.

 

3. 그곳에서 안다는 피아노를 넘어서 음악의 구도, 나아가 인생철학의 초석을 닦게 된다.

 

 

 

 

세 사람은 모두 음악 앞에서 초연했고, 삶 앞에서 겸연쩍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1. 게자 안다는 농부들을 존경했다. 농부들의 추수를 돕거나 나무 베는 일에 즐겁게 동참했다. 그들에게 밭을 가는 법을 배우고, 어떻게 들보를 만드는지 물었다.

 

2. 빌헬름 박하우스의 집에는 매우 슬퍼 보이는 광부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사람들이 그림에 대한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일이 그보다는 힘들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3. 사람들이 그녀의 연주를 칭송하면, 클라라 하스킬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다. "나는 청소부가 잘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피아노 연주 밖에 없어요"

 

 

 

 

세 사람은 죽음 마저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숭고했다.

 

1. 1960년 겨울,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하스킬은 바이올리니스트 그뤼미오와의 협연을 대성황리에 마쳤다. 같은 달 6일, 하스킬은 다음 협연을 위해 벨기에 브뤼셀 역에 도착했다. 지독한 불운이 찾아왔다. 기차에서 내리던 중 계단에서 크게 넘어졌고, 곧 혼수상태에 빠졌다. 의식불명에서 잠시 깨어난 그녀는 여동생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내일 연주는 어렵겠다. 그뤼미오씨에게 미안하다고 꼭 전해줘." 그리고 숨을 거두기 직전 한 마디를 남겼다. "그래도 손가락은 멀쩡하잖니"

 

2. 1969년 6월 28일, 박하우스는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작은 마을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베토벤 18번을 연주하는 도중, 관객들에게 “잠시 쉬고 싶습니다”라는 짧은 사과의 인사를 하고 잠시 연주를 멈춘다. 심장발작 증세가 온 것이다. 모든 악장을 완주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의사는 연주를 중단하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는 다시 관객 앞으로 나아가 베토벤 대신 슈베르트 즉흥곡 D.935-2로 연주회를 마쳤다. 곧장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때는 늦었다. 1주일 후 그는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다.

 

3. 1974년, 안다는 식도암 판정을 받았다. 런던에서 엄청난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는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나서는 연주를 계속했다. 놀랍게도 다음 해에 병이 크게 완화되었고, 그의 실력은 더욱 성장했다. 안다는 연주 여행을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오중주 “송어”를 연주한지 일주일 후, 런던에서 병세에 대한 낙관적인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이튿날 취리히의 집에서 출혈로 사망했다. 1976년 6월 13일의 일이다.

 

그들의 무한도전은 나를 무념무상으로 웃게 해주고, 그들의 음악은 나를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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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다는 건 '나 밖에 없다'는 주변으로부터의 쓸쓸함, 소외감이다. 그것은 지금 내가 어떤 공간, 어떤 시간에서 느껴지는 찰나의 감정이다. 외부와의 이질감을 의식한 나로 빠져든 '나'이다. 그것이 잠시 머물때는 우수의 감정으로 머물다 가겠지만, 심각해지면 우울증으로 빠지는 그런 성질의 것이다.


고독하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말 그대로 '외로운 나'이다. 고독하다는 것은 '외롭다'를 넘어서 '외로운 나' 그 자체를 홀로 깨닫고 있는 상태이다. 낙엽을 밟으며 '아, 외롭다' 하며 눈물짓는 것과는 달리, 그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나를 한발 물러서 지켜보고 있는 '나'인 것이다. 외로운 나로부터 빠져나와 그 '나'를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자아의 발현이다.

오늘 고독한 그림 하나를 우연히 만났다. 넉넉하게 펼쳐진 푸르스름한 밭의 끝자락으로 구릉같은 산들이 희멀겋게 번져있고, 하늘에는 듬성듬성 먹구름이 끼었다. 그리고 그 밭이 시작되는 한 켠에 작은 사람 하나가 서 있다. 그림 이름이 '귀농당년'이다. 고향을 등졌던 한 사람이 다시 돌아온 모양이다. 곱게 간 밭에는 빼곡하게 새싹이 자라고 있다.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은 밭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산을 보는 것인지, 어떤 상념에 젖어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작가가 사람을 자연의 대척점에 두지 않고 하나의 작은 연결점으로 두었다는 의도는 분명히 알 수 있다.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 그림이 뭔하는 바가 아닌 것 같다. '지금의 나를 지켜본 적 있는가?' 이 질문이 더 걸맞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자연은 대자연이 아니다. 작가의 사람은 자연 위에 우뚝하게 선 존재도 아니다. 그냥 자연과 그냥 사람이 어우러진 그 상태만 표현해 두었다. 앞으로 새싹은 자랄 것이고, 사람은 수확을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해야겠지만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 같진 않다. '밭과 산과 하늘을 지켜 보고 있는 나'에 집중해야 한다. '외로운 내가 있다'의 명제는 여기서 성립된다.

'외롭고 고달픈 내가 지금 이곳에 서 있다'고 한 발 물러서 보는 것이야말로 나를 크게, 혹은 작게 왜곡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 개지 않은 하늘이 있고, 단풍이 물들지 않은 산이 있고, 열매를 맺지 않은 새싹이 있는 것처럼 아직 거둘 것이 없는 내가 있는 것을 그대로 볼 줄 아는 마음가짐. 그것이 이 그림의 아름다움이다.

 

<작품: 귀농당년_74.5x104cm_Oil on canvas_임동식_2009-2011>

    임동식 - 사유의 경치Ⅱ / 2013. 11. 13 - 11. 30 / LEE HWAIK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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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클래식은 도대체 왜 듣는거야?"


친구들이 종종 내게 묻는 질문이다. 묻는 투로 봐서는 질문이라기보다는 거의 질타에 가깝다. '그 졸음오는 재미없는 음악을 들으면 니가 잘난 것처럼 보여서 그런거야?'라는 비아냥도 꽤 담겨있는 것 같다. 아예 없다고 한다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거다. 실제로 클래식을 들어서 주변으로부터 덕 아닌 덕을 본 적도 몇 번 있으니 그것도 아주 조금 첨가되었다고 하면 맞겠다. 재즈 클래식도 아닌 주로 18-19세기의 낭만주의 음악을 선호하는 까닭에 늙은이라는 소리도 적지 않게 들었다. 노친네라고 놀려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남들 홍대 클럽가서 최신 음악에 흔들대며 젊음을 만끽할 시기에, 지산 롹 페스티벌 가서 두 손 치켜 올려들고 반 정신나간 놈처럼 헤드빙 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그 시덥지 않은 클래식이라니! 그럼에도 나는 클래식을 듣는다. 그것도 아주 깊고 진지하게. 


이유를 뭉뚱그려 말하자면 이렇다.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삼십대 사이에서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거나 작곡을 공부하는 극소수의 인간들을 제외하면 우리 세대 전체를 통틀어 클래식을 듣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내 주변만 돌아봐도 클래식을 듣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여기서 '그냥 그게 그건가 보다'하고 듣는 사람은 감상자로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엄밀히 말하면 능동적 감상자가 아니라 '그냥 틀어서 나오면 좋은 건가보다' 하고 한 귀로 흘려 보내는 수동적인 부류이기 때문이다. 마치 맛좋은 레스토랑에 와서 정말 최고급의 마르게리타 피자를 먹고도 '이 피자나 저 피자나 그게 그거네' 생각하면서 막상 나갈 때는 동료에게 '야~여기 피자맛 기가 막히네' 하는 사람들과 같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는 건 절대 아니다. 단지 클래식 애호가는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한 애호의 이유가 된다. 한번 상상을 해보자. 당신은 온통 인스턴트식 정원으로 뒤덮인 인공 숲 사이를 매일같이 거닐다 어느날 우연히 나무와 나무 사이에 빼꼼 열려 있는 낡아빠진 문을 발견한 거다. 조심스레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이 곳은 인기척이라고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 신비의 숲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사람들을 단숨에 휘어잡을 만한 화려한 나무나 꽃은 없다. 대신 수백년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고고한 고목나무들이 장대비처럼 내려앉아 마법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경이로운 장면을 만날 수 있다.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하다. 신선한 공기가 몸의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사색에 빠지기 좋은 나만의 아지트인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남들과 즐기는 시간보다 나 혼자 보내는 시간에 더 애정을 두었다. 요즘 것에 관한 그 무언가에 대해 주변의 누군가와 공유하고 함께 즐기기보다는 이미 저 세상 사람들이 된 먼 누군가와 단독으로 만나는 것이 훨씬 더 신났고 가치있게 느껴졌다. 저 세상 사람들과 교류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책과 음악. 오래된 것일수록 더 끌렸다. 시류를 따라가는 것들은 최대한 배제했다. 최대한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서 그 속에서 스스로 사색에 잠겨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 그 가운데 클래식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천재의 분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하찮은 평민이었기에 10대의 클래식 감상에서 그다지 특별한 무언가를 얻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저 들어서 마음이 편안하고 좋은 것들을 택해서 집중적으로 든는 것, 그것 뿐이었다.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요한 슈트라우스, 드보르작과 같은 누구라도 들어서 그 정도는 알 수 있을 법한 유명한 작곡가들 위주로 감상했다. 여기서 집중적으로 듣는다는 의미는 학습이 전제된 의도적인 측면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저 좋은 것을 습관적으로 곁에 두는 게 전부였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내가 택한 클래식을 제외한 그 어떤 음악도 듣지 않았다. 그저 매일같이 똑같은 테이프를 돌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하루를 마감하는 것. 그것으로 족했다. 이러한 나만의 습성은 오늘날 클래식에 더욱더 몰입하게 되는데에 중요한 몫을 했다. 


이런 나만의 습성은 초등학교 생활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는 것. 연주는 감상만큼 즐겁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바이올린은 재미있었지만, 피아노는 최악이었다. 가르치는 피아노 선생도 너무 기계적인데다가 억지로 동그라미 표시를 해 가면서 연습한다는 건 정말 구속 중의 구속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런 경험과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나의 밑바탕, 머릿 속 심연의 바다에 굵직한 음악적 지층을 형성한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바이올린 합주부 생활은 클래식이 안겨주는 엄청난 스케일을 잘 빨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어 주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바이올린 교사가 쉬는 시간이면 기가 막히게 연주했던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 


내 인생에서 클래식만 들은 건 결코 아니었다. 클래식으로 돌아오기까지 나는 수많은 음악의 산맥을 넘나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거추장스럽고, 그냥 여기저기 장르에 기웃기웃대었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클래식 다음으로 접한 것은 팝, 그 중에서도 비틀즈였다. 똘기충만한 비틀즈의 음악은 다른 장르로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가교 역할이 되어 주었다. 그들이 실험한 갖가지 형식들이 어떤 음악도 거부감 없이 흡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렇게 나는 이미 은퇴한지 한참 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재주목했고 그들이 남기고 떠난 모든 앨범을 수집했다. 교실이데아에 젖어있던 나는 곧 롹의 세계에 급격히 빠져들었고, 대학교에 입학하기 무섭게 롹커가 되었다. 군입대 전까지 나는 오직 롹만 들었다. 가요를 듣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완전 사기라고 봐야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풍류에 그쳤다. 놀고 마시고 즐길 때 불러대는 니나노의 느낌 정도로 가요감상의 레벨을 맞춰 두었다. 


힙합, 트립합, 일렉트로닉 등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적지 않은 분야를 건드렸다. 그런데 그것들 역시 대중의 귀에 익숙한 범위를 훨씬 넘어선 그 이면의 세계에 놓여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투팍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누가 손수 투팍의 앨범을 차곡차곡 모아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와 비트를 즐길 생각을 하겠나. 어떤 면에서 보면 클래식을 듣는 이유나 롹을 듣는 이유나 힙합을 듣는 이유나 다 비슷비슷한 맥락이다. 남들이 최대한 기웃대지 않는 영역에서 나는 최대한 나 자신에게 신성성을 안겨줄 수 있는 대상을 찾고 그것을 신봉하고 경외를 표했다. 


클래식에서 나의 줄기는 피아노다. 피아노 소나타, 변주곡, 야상곡에서부터 이중주, 삼중주까지 가릴 것 없이 다 듣는다. 그 중에서도 단연 피아노협주곡을 가장 좋아한다. 오케스트라의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홀로 당당하게 버티고 앉아 호탕하게 건반을 쓸어내리는 비르투오소의 모습이 가장 나를 사로잡는 포인트다. 똑같은 악보를 놓고 쳐도 각자가 지닌 성향에 따라 곡을 천차만별로 해석된다. 똑같은 바둑판에서 흰돌, 검은돌이 격돌하는 데에서도 수십만개의 경우의 수가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무궁무진한 세계에 빠져들어 버렸다. 이곳은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나만의 안식처다. 


당돌한 꿈도 꿔본다. 이렇게 10년 정도 듣다보면 정말 클래식 애호가라는 명함도 부끄럽지 않게 내밀 수 있을 날이 오겠지. 이렇게 30년 정도 피아노를 치다보면 나 역시 언젠가 동네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 수 있을 정도의 깜냥은 되겠지. 요즘 작품에 자꾸 동기화가 되어 나도 모르게 자꾸 볼륨을 높이다 보니 청각에 무리가 온 것 같다. 당분간 이어폰을 자제하고 오디오로 감상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도박보다 무서운 중독이다.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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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시절이 떠오릅니다. 한 친구가 급하게 교실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아이들에게 소리치더군요. "야! 이○○ 죽었대!!! 절벽에서 떨어져서 죽었대!!!" 학급 전체가 술렁였습니다. 단순히 죽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자살일 가능성이 높다는 부검결과 판정이 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이야기 한 이○○란 아이(줄여서 L)는 중학교 3년 동안 단 한번도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초특급 울트라 에이스 영재'였습니다.  

 

L은 중학교 졸업 직후에 우리 고등학교로 진학하지 않고 인도로 유학을 갔습니다. 아버지가 인도에서 사업을 크게 확장하시면서 고등학교도 그 쪽으로 선택했다는 이야기까지는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작스레 L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번뜩 떠오르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었습니다.

 

농구시험.

 

총 열 번의 슛 가운데 얼마나 많은 공을 넣는가에 따라 체력장의 점수가 갈리는 체육시험이었습니다. 뭐 사실 당시의 청소년들에게 그 농구시험이라는 것은 미래를 결정하는 어떤 중대한 사건이라든지 남자의 자존심을 건 마지막 승부 같은 그런 비장한 성질의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어설프게 본 것들은 많아서 만화 주인공의 슛폼을 따라한다던지, 아니면 우스꽝스러운 포즈로 슛을 해서 반 아이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다든지, 별 생각없이 던지다가 단 한 점도 성공을 못한다든지 하는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었죠. 운동신경이 둔한 저로서는 말할 것도 없구요.

 

그러나 L은 달랐습니다. 농구시험마저도 너무나 진지했죠. 작은 체구지만 단단한 몸집, 검은 뿔테 안경 사이에 잔뜩 구겨진 신경질적인 미간, 꽉 다문 이빨에서 '반드시 다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목숨을 건 사투의지가 활활활 느껴졌습니다. 처음 던진 공은 실패. 공이 링을 맞고 튕겨 나가자 L은 머릿칼을 움켜 쥐고 몸부림을 치더군요.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다시 한번 던졌습니다. 이번엔 다행히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다음 슛은 실패. 그렇게 성공과 실패를 몇 번 반복하니 10개의 슛 중 6개의 공이 성공했습니다. 그 친구는 얼굴부터 목까지 새빨개져서는 물을 마신다는 핑계로 황급히 시험장을 빠져나가더군요. 성공이 아니라고 생각했던거죠. 일등만을 줄곧 외쳐오던 L에게 있어서는.

 

늘 그 친구의 삶은 그랬던거죠. 남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매점으로 달려가 빵과 우유를 허겁지겁 먹었지만, 이 녀석은 전 수업의 과목을 복습하거나 아니면 뒤에 이어질 수업의 과목을 예습하는데 열중했습니다. 늘 맨 앞자리를 떠날 줄 몰랐죠. 그의 책상 주변을 지나갈 때면 뭐라고 딱히 집어 말할 수는 없는 무언가 불편한 아우라가 느껴졌어요. 손가락이 부러질듯이 움켜쥐고 있는 그의 연필을 보고 있자면 그 연필마저도 '뭘 꼴아봐. 니 눈에 부정이 끼어있다. 꺼져버려!'하고 나를 째려보는 것 같았어요. 양 손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교과서와 문제집은 무슨 마법의 책이라도 되는냥 눈에서 쉬 떼질 않더군요. 혹여라도 실수로 어깨라도 치면 그 신경질적인 미간에서 레이져 빔이라도 발사될 것 같았어요. 아무리 힘깨나 쓴다는 친구들도 그 친구만은 건드리지 않았어요. 그는 명실공히 학교를 빛낼, 그리고 장래의 대한민국 인재가 될 보물이기에 선생님들의 두터운 비호를 받고 있었거든요.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급 칠판 옆에 걸려있던 급훈이었습니다. 각진 얼굴에 딱 벌어진 어깨로 로보트 변신을 할 것 같았던 우리 담임 선생님이 손수 붓글씨를 쓰셔서 걸어두신 '위대한 교훈'이었습니다. 초일류 S대를 졸업한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기를 즐겨하셨죠. 수업 시간에 졸고 있는 학생이 보이면 뚜벅뚜벅 말굽소리를 내면서 다가가 귀를 꼬집어 잡아올립니다. 토끼처럼 귀가 늘어나도록 동서남북으로 흔들어대면서 심하게 꾸짖곤 하셨죠. "졸음이 오냐? 죽도록 공부해도 대학에 갈까 말까 하는데 지금 눈이 감겨? 너희들 잘 들어. 죽도록 공부해도 안죽는다. 엄살부리지 말고 제대로 정신차리고 공부해 알았어?"

 

그리고는 또 하나 물으십니다. "너희들 아인슈타인이 몇 시간 잤어?" 그럼 우린 기계처럼 대답하죠. "3시간이요", 또 묻습니다. "에디슨은?". 이젠 기계가 대답합니다. "2시간이요." 단호한 명령이 떨어집니다. "너흰 4시간 이상 자지 말고 공부해 알았어? 알았냐고!" "네~~~" 큰 소리로 대답하고 정자세를 취합니다. 냉냉한 공기에 입김마저 나올 것 같았어요. 선생님은 늘 위인들의 위대한 삶을 이야기해주셨어요.

 

아마 L도 그런 위대한 인물이 되길 원하고 또 원했나 봅니다. 어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인도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슬픈 이야기도 들려오더군요. L의 잣대에서 따지고 본다면 적응은 기본이고 그곳에서도 최고가 되어야 자기 직성에 풀렸겠죠. 하물며 농구시합에서까지도요. 사업가로 국제적 명성을 날리는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하루바삐 '전교 1등'이라는 고지에 다다라야만 한다는 강박관념도 그의 죽음에 한 몫 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제 나이도 이제 서른이 훌쩍 넘었습니다. 가끔 우연찮게 헌책방을 지날 때면 어렸을 적 읽었던 그 위인전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는 광경을 보곤 하죠. 그런데 저는 그 수많은 위인전기 중에서 인상에 남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그냥 이름과 내용 정도만 기억날 뿐이죠. '이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를 롤 모델로 삼아 나는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막연한 목적 하나 없이 그냥 위대해져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겁니다. 그냥 무엇을 하든 남들이 위대하다고 평가해주기만을 원한 건 아닐까 하는 매우 1차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선생님이 위인전을 이야기해주실 때 한 가지 빠뜨린 점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위인은 평범하지 못하다'. 인류의 역사에는 길이 남을 수 있어도 내 가족과 주변 친구와 함께 '평범한 삶'을 공유하기에는 그가 맡은 세기의 임무가 너무나도 막중했다는 사실. 대다수의 위인들은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죽도록 공부만 했거든요. 그리고 평범한 사람과 어울리지 못해 외로움과 병으로 단명하는 사례도 결코 적지 않았구요. 쓸쓸한 인생이었단 말입니다. 평범하지도 않았고 행복하지 않았고 게다가 단명까지 했다니. 차라리 바보로 사는 게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냥 '나는 바보다' 하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볍습니다. 진작에 저에게 그걸 알려주셨다면 이렇게 '죽도록' 공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미련아닌 미련도 남습니다.

 

우린 대체 무엇을 위해 여기까지 뛰어온 것일까요?

꼭 그렇게 몇 권 안에 손꼽히는 위인이 되었어야만 했나요?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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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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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7.10 19:03 신고

    잘보고 갑니다.행복한 한주가 되세요.

  2. 2016.03.31 16:39 신고

    아인슈타인은 잠꾸러기였답니다. 11시간 이상을 잤고, 또 나폴레옹도 잘 나갈 때는 4시간 이하로 자던 인물이였는 데, 6시간 이상 자는 사람을 바보라고 했다는 데, 월터루 전투 패배 이후에는 작전회의도 불참하며 잠을 잤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에 시달렸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맞지만, 12시 이전에는 자야하고 새벽 3시를 넘기면 몸이 결국 무너집니다. 몸이 한번 무너지면 되돌리기가 어렵습니다. 잠, 몸이 원하는 만큼 자세요. 깨어있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죠.

    나폴레옹 잠을 정복했냐 ? 결국 잠에 정복 당했지 !!! 어부보다 못한 최후
    http://softwant.com/cgi-bin/kimsq/softwant/itgi.php?mid=240&r=view&uid=2542

 


기교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쇼팽 연습곡

 

쇼팽 이전에도 연습곡은 존재했다. 오늘날까지도 피아노 학원의 바이블로 우뚝 서 있는 체르니가 대표적인 선구자다. 쇼팽과 피아노에서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피아노의 귀신' 리스트도 어렸을 적 체르니에게 탄탄한 기본기를 사사했다. 피아니스트에게 연습곡은 다소 지루한 과정이지만 반드시 넘어가야 하는 필수 코스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연습곡의 수준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단단히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연습곡의 끝판을 완성한 것이다. 그의 연습곡은 결국 공연장 연주곡의 반열에 올라섰다.

 

쇼팽이 활약하던 시기는 낭만주의 시대로, 피아노가 독립된 악기로 인정받아 이제 막 기악으로서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쇼팽과 리스트의 초절정 기교의 곡들을 들어보면 딱 그 생각 밖엔 들지 않는다. '어디 쳐볼 수 있으면 쳐봐라'. 락으로 따지면 잉위 맘스틴과 임페리테리의 끝을 모르는 속주를 듣는 느낌이다. 가공할만한 속도감, 그 가운데에서도 씨알머리하나 엇나가지 않는 정교함. 이 정점에서 쇼팽은 생각한 것 같다. '어? 그러고 보니 피아노 기본기 교재는 있어도, 피아노 기교 교재는 없네?' 

 

총 24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 곡들이 작곡된 시기는 정확치 않지만 작품 10은 1829년~1936년 사이에, 작품 25는 1832년에서 1936년 사이에 작곡된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1810년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다 20대에 쓰여진 곡이다. 이미 그는 청년 시기에 피아노의 꼭대기에 올라서서 후학을 염두한 연습곡을 지은 것이다. 리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쇼팽 역시 파가니니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이 연습곡을 완성했다. 화려한 연주기교에 더해 '피아노의 시인' 특유의 시적 표현을 톡톡히 담아냈다. 당대 보수파들에게 '예술의 파괴'라고 욕 꽤나 먹었지만, 슈만과 리스트에게는 오히려 극찬받았다. 낭만주의가 무엇인지 교육적으로 몸소 보여준 쇼팽의 결정체라 하겠다.

 

냉철한 해석, 연습곡은 연습곡으로 끝나야 한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클래식 초보자'도 들어보면 어디서 들어본 듯한 곡들이 여러 개 걸릴 것이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고 보면 되겠다. 작품의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음반이 출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전문가들이 단연 탑클래스로 손꼽는 명반이 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다.  

 

1942년 출생, 올해 나이 일흔 하나, 백발이 성한 할아버지다. 이 분도 천재다.(세상엔 참 천재도 많다;;;) 불과 15살에 제네바 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렇다면 그 때 1위는 누가 했을까? 혜성처럼 등장한 '피아노의 여신' 마르타 아르헤리치다. 이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우리는 라이벌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러나 대중의 시선은 이미 그와 그녀를 세기의 라이벌로 정의내렸다.

 

아르헤리치가 열정의 심볼이라면, 폴리니는 냉철의 아이콘이다. 똑같은 쇼팽을 연주해도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온다. 아르헤리치가 연주한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3장을 들어보라. 듣는 사람이 제압당한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시작부터 좌석에 앉아있는 청중을 꽁꽁 묶어버린다. 폴리니는 다르다. 열정으로 대중을 휘어잡기보다는 표준적인 감성으로 작품의 실체를 밝고 명확하게 이끌어낸다. 그가 서른살에 녹음한 쇼팽의 연습곡도 다르지 않다.

 

한 치의 오차 없이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 굴러간다. 손이 기계같이 느껴질 정도다. 음량 배분에서도 절대적인 안정감을 추구하고 있고, 핑거링 역시 냉정함을 고수하고 있다. 앨범 쟈켓의 표정을 봐도 알 수 있다. 주어진 곡을 주어진 대로 칠 뿐이라는 담담한 얼굴을 짓고 있다. 혹자는 의구심을 품어 볼 수도 있다. '감성과 서정을 중시했던 쇼팽도 과연 이렇게 연주했을까요?' 폴리니의 연주를 듣고 난 나의 대답은 이렇다. '연습곡은 연습곡일 뿐이다'. 

 

폴리니는 '쇼팽'의 연습곡보다는 쇼팽의 '연습곡'에 초점을 둔 것이다. 아무리 쇼팽이라고 해도 기교와 시적 감정의 표현을 담아내는 교재에서는 표현의 중립을 지켰을 것이라는 확신이 폴리니의 곡에 그대로 담겨있다. 이렇게 얘기해도 이건 너무 차갑고 이성적이지 않냐고 불평하는 혹자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할수없다. 아무리 따져봐도 이 이상 쇼팽 연습곡을 바이블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마음이 갈피를 못잡고 싱숭생숭할 때 중립과 냉정을 찾고 싶다면 이 곡 한번 들어봐라.

 

[쇼팽 에튀드 Op. 10/25/DG 413794-2]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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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카페에 가서 책 보고 있는데 옆에서 문득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악관절 때문에 밥도 못먹는다구요. 아,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티비에서도 룰라 김지현이 악관절 때문에 귀가 안들리는 증상까지 생겨서 양악수술 받았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생각외로 많은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저는 악관절이라는 증상을 겪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방치해둔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이러다 말겠지, 저러다 말겠지 하다가 이빨 끝 다 나갔구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턱에서부터 머리까지 깨질것 같은 고통 때문에 하루 종일 두통약 달고 지낸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느날 몸살이 나니까 악관절부터 나빠지더라구요. 너무 아파서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스스로 증상을 지켜봤습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지를요.

 

1. 상체에 힘빼라

가만히 지켜보니 쓸데없이 상체에 힘을 주고 있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가령, 조금만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빨을 악 다물고 있습니다.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가 있구요. 당연히 어깨가 올라갑니다. 상체 전체에 힘이 들어가게 되죠. 하루에도 몇 십번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때마다 힘을 빼는 연습을 했어요. 계속 반복될 때마다 온 몸에 기운이 빠졌다는 생각으로 어깨를 내리고 큰 숨을 들이쉬었죠. 이 동작만 2주 정도를 했는데도 악관절이 몰라보게 줄어들었습니다.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상체에 힘 빼는 연습부터 하세요.

 

2. 다리 꼬지 마라.

회사에 앉아 있다보면 다리를 꼬거나 비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결과적으로 이 행동이 상체에 힘을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더라구요. 의자에서 허리 꼿꼿히 피고 똑바로 앉아 있는 연습하세요. 다리는 90도 각도로 편하게 내려놓는다는 생각으로 힘빼고 앉으시구요. 책상과 의자 높이 조절도 필수에요.

 

3. 운동 부족도 원인이다.

악관절의 근본적인 원인은 스트레스입니다. 누구나 스트레스는 있어요. 그런데 이걸 풀지 못하니까 결국 몸 안에서 돌도 돌다가 턱으로 갑니다. 운동 안하지, 자세 나쁘지, 스트레스가 체내에 그대로 쌓여 뇌를 자극합니다. 뇌는 잠재된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서 자는 도중에 무의식적으로 평소의 이겨내는 행동을 일으키죠. 이 악물고 버티는 그 습관 말이죠. 격한 운동을 하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격한 운동은 악관절을 더 악화시킵니다. 가볍게 땀 흘릴 수 있는 정도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세요. 스트레스를 뽑아낸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운동하면 효과가 배가 됩니다.

 

4. '빼쨰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라.

악관절은 보통 예민한 사람 또는 예민한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잘 나타납니다. 꼼꼼한 작업을 요하거나 항상 데드라인에 쫓기는 그런 류의 직업군 말이죠. '오늘 안되면 내일 해도 세상 안망한다'는 생각을 오늘부터 품어 보세요. 그리고 메모장이나 다이어리에 반복해서 씁니다. 성질 뻗치거나 누군가와 마찰이 생겼을 때 반복해서 생각해보세요. '에라이 배째라' 그냥 이런 마음으로 그냥 편하게 말이죠. 예민한 사람이 그렇게 생각해야 보통 사람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5. 잘 때 조심해라.

잘 때 머리맡에 내일 할 일이나 그런 거 다 치우고 자세요. 그리고 자기 직전에 격하게 두뇌 쓰는 일은 절대 하지 마시구요. 잠재의식이라는 건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자기 전을 항상 조심하세요. 가급적 재미있는 예능이나 짤막한 코미디극, 아니면 조용한 자기만의 취미를 즐기다가 편한 자세로 잠드세요. 그리고 반드시 자기 전에 '나는 잘 때 악관절을 일으키지 않고 좋은 마음으로 잠들 거다'라고 생각하세요. 우습게 보일지 모르지만 돈 드는 거 아니니까 한번 해보세요. 이것도 2주에서 길게 한 달 정도 연습하면 분명히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 다섯가지를 한 달 정도 지킨 결과, 현재 2주 동안 한번도 턱을 깨물고 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대한민국에 악관절 환자들, 수술 생각하기 전에 스스로 고쳐보겠다는 마음가짐 한번 가져봅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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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직장인들, 많이 변했어요. 황금같은 점심시간 쪼개서 헬스클럽 다녀오는 사람들, 회식 자리 줄이고 주말 등산 가는 사람들, 틈틈히 배운 요가로 아침 저녁 스트레칭으로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사람들. 일에 찌들고 지쳐버린 자기 몸을 적극적으로 돌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운동해도 스트레스 지수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운동을 하면 할수록 더 체력이 떨어지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몸은 돌보지만 정작 마음은 돌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도 몸과 똑같아요. 일의 몰입에도 한계가 있고, 마음의 방어벽에도 일정한 두께가 있습니다. 정적수준을 넘어가면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방어벽은 허물어져 의기소침과 우울증에 쉽게 노출되는 것이죠. 몸살은 신경쇠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마음도 몸과 같이 세심한 관심과 관리가 필요해요.

 

하루 중 마음 정리가 가장 필요한 시간은 언제일까요? 바로 잠들기 전입니다. 잠자는 시간은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넘어가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의식의 세계에서 차곡차곡 쌓여버린 마음의 수많은 오물과 찌꺼기들, 정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대로 뇌 속 어딘가에 버려집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썩어 곪아버리죠. 상태가 심각해지면 그 오염물들이 무의식의 세계로까지 뿌리를 뻗습니다. 순식간에 줄기와 가지가 솟아오르고 잎이 무성해집니다. 깨끗했던 마음 속 공간이 온통 독소의 숲으로 변해버리는 거죠.

 

'내일 출근하면 해결해야 할일이 산더미같은데...잘 될까?', '아, 오늘 그 사람은 정말 이기적이었어.', '아침 출근길 생각하니 정말 끔찍하다.', '과장님한테 욕먹은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이런저런 잡생각이 부풀어오르다보면 잠이 올리가 없죠. 스탠드를 다시 켜고 이불에서 나옵니다. 핸드폰을 열어 스케쥴을 살펴봅니다. 가방에 넣어둔 서류철도 들춰내죠. 걱정은 태산같이 높아져만 갑니다. 온통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채 잠이 들어버립니다. 숙면이 이루어질리가 없죠. 당연히 아침이 피곤합니다. 무의식의 세계엔 온통 마음의 쓰레기들 뿐이거든요.

 

마음에도 따듯한 이불을 덮어주세요. 잠들기 전 잠시 생각했던 것들이 꿈에 나오는 경우,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마음의 이불덮기'는 나만의 중요한 힐링이에요. 자신이 좋아하는 조용한 음악 하나 틀어보세요. 그리고 눈이 맑아지는 아름다운 그림책이나 풍경 사진첩을 찬찬히 훑어 보세요. 자세히 보지 말고 그저 즐기듯이 책장을 넘기세요. 눈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자구요.

 

차분한 음악으로 귀를 씻어주고, 푸근한 그림과 사진으로 눈요기도 했습니다. 누웠나요? 잡생각을 펼치는 대신 스스로에게 위안어린 한 마디 남겨주세요. 오늘도 정말 수고했노라고. 실수한 것들, 놓쳐버린 것들, 이제 그만 용서하고 좋은 마음으로 잠들자고. 힐책거리, 나쁜 생각은 하루에 하나씩 종이비행기에 날려 보내요. 칭찬거리를 그 자리에 채워넣자구요.

 

'마음의 이불덮기'가 하루이틀 지나고 한달두달이 계속되면 마음 속 깊은 어딘가에서 서서히 용기가 샘솟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상대방을 대하는 나의 마음도 훨씬 부드러워지구요.

 

세상에 쫓기듯 잠들지 말고, 세상과 나 모두를 보듬어주고 잠들자구요. 오늘도 좋은 하루, 좋은 밤입니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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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8 02:24 신고

    그래요 제생각이그래요
    마음을 돌봐야하죠 완전 공감



정독도서관 옆 소격동 길을 지나다가 이 그림을 마주쳤을 때, 생전 처음 '그림을 사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던 12월의 겨울. 추위도 까맣게 잊은 채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그림이 그림같지 않았다. 새로운 차원의 신세계로 나를 인도하는 듯 했다. 내가 무의식 중에 꿈꾸던 진짜 이상향의 안식처에 다다른 듯한 완벽한 환상을 맛보았다. 


온 빛이 세상을 감싸고 있다. 온 빛이 산과 바다에 내려 앉았다. 이곳은 물결도 바람도 존재하지 않는 곳. 모든 것이 멈추었다. 빛과 그림자로 빚어낸 이 담박하고도 신비한 능선을 따라 차근차근 걸어가본다. 움직이는 것은 오직 나 뿐이다. 산 중턱에 잠시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바닷 속 세상이 훤히 보인다. 팔깍지를 끼고 그 자리에 누워버린다. 나도 이 그림의 풍경이 된다. 


갤러리 안에 있는 그림이 궁금해졌다. 빼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걸려있는 것은 온통 산 뿐이다. 이영길이라는 화가의 작품이다. 수묵화도 아닌, 그렇다고 채색화도 아닌 수묵채색화를 구사하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화에서는 금기로 여기는 빛을 작품에 끌어들였다. 한국화는 선과 여백에서 그림의 여유로움을 찾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사람, 빛에서 그림의 안정감과 한적함을 끌어내고 있다. 재미있는 양반이다. 


한지 위에 일필휘지로 휘두른 먹의 굵직한 선과 농담을 과감히 포기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빛과 색채를 가득 채웠다. 수채화를 끌어들였지만 결코 거추장스럽다거나 인위적인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화에서 강조하는 어떤 유교적인 이념이나 정신같은 것은 애시당초 버린 것 같다. 그는 기존의 한국화가 요구하는 계보의 목적성을 내려놓았다. 꺾어내지르는 협곡과 그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 조그맣게 자연 속을 거니는 선비와 동자는 이 사람의 세계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그는 단지 그가 생각하는 내면의 마음을 내어놓고 싶었던 것이다. 


보이는 풍경이 아니다. 마음의 풍경이다. 그는 수묵화와 수채화의 중간계에서 많은 고민을 한 것 같다. 둘 중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이 화가의 세계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 같다. 결국 두 세계의 혼합 가운데 여러 실험을 거쳐 그는 답을 찾은 듯 싶다. 그리고 그 실험은 한 남자를 감동시키에 충분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빛깔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한방에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을 이 그림 하나로 쾌히 증명했다. 


한참을 감상하고 있으니, 멀찌감치서 한 남자가 다가온다. 이영길 화가다. 열중해서 보고 있는 모습이 좋았는지 흔쾌히 도록 한권을 선물로 준다. 웃으며 한 마디 던진다. "자주 와요"


나는 전시가 끝날 때까지 매일 이 갤러리 앞에 찾아와 한참 동안 이 그림을 감상했다. 좋은 술에 좋은 안주가 빠질 수 없는 법. 백건우가 연주한 에릭 사티의 Ogive # 1, 2를 연달아 듣는다. 사람, 그림, 음악이 모두 멈췄다. 진짜 내가 보인다.

 


<작품: A world opened with the light...- mountain_130.3x162cmㆍ장지에 채색_이영길_2009>

    - 이영길 개인전 / 2009 12. 23 WED - 12. 30 WED / AKA Space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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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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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감사의 글 남깁니다. 별 볼 일 없는 제 글에 열화와 같은 댓글 무려 한 개를 달아주셨습니다. 남겨주신 CCTV에 관련된 의문은 곧 풀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해적단분들!! 우리가 돈 주웠다는 얘기도 없이 바로 호프집갔다고 맹비난을 했는데, 정확히 말해서 치킨집입니다. 그리고 니들이 안 온 거잖아!!?!?!? 그리고 바로 가지 않았습니다. 전편에서는 짧게 다뤄졌지만 저격수를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디테일한 상황을 설명하면서 혹시나 아줌마가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 그 추운데 밖에서 5분이나 기다리다 치킨집으로 간 것입니다. 뿡!! 치킨집 향하는 발걸음에서도 혹시나 아줌마가 오지 않을까 고개를 돌리고 또 돌리고 연신 돈을 찾아주고 싶다는 그 연민에… 
자, 그럼 이어서 다음 이야기로 들어가 보죠.
 

 

(전 편에 이어 계속..)

 

“야, 무슨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냐?”
“그러게나 말이다. 우리 엄마도 그러지 않을지 걱정이다. 야, 얼른 시켜!”
“키킥, 네가 쏘는 거지 그럼? 이모, 여기 반반이랑 500 둘 주세요!”
아주 우렁차게 주문을 외치는 꼬락서니를 보니 이 녀석은 돈은 지가 주었는지 나보다 더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한 놈은 근래에 다니던 직장에 계약이 끝나서, 한 놈은 아직도 취업이 되지 않아서 우리는 백수 나부랭이들이다. 백수한테 5만원은 정말 큰돈이었다.

 

“야, 근데 나 좀 걱정된다. 그 CCTV가 다 설치되어 있지 않을까? 기계들마다 말이야.”
“아, 또 이 앵무새새끼. 새 아니랄까봐 새가슴이네, 이거. 야! 네가 빛의 속도로 빼 왔다며?! 그리고 너 아까 그렇게 목도리로 얼굴을 꽁꽁 쳐 싸맸는데 CCTV가 씨발 투시카메라냐? 너 이 새끼 쏘기 싫음 그냥 싫다고 해.”
“아, 나 이 새끼. 오늘 제대로 사람 잡네. 그냥 쳐드세요.”
저격수의 말을 듣고 보니 또 그랬다. 맘만 먹으면 아무도 내가 그 돈을 갖고 갔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야, 그리고 너 이거 다 먹고 남은 걸로 뭐 할 거야? 원래 주운 돈은 바로 다 써버리는 거야!”
“이, 악마 같은 새끼. 뭐 얼마 된다고…”
“이 백수새끼가! 5만원이 얼마나 큰돈인데?! 무시 하냐? 야, 남은 걸로 재테크 하자.”
정말 이때 나는 악마의 눈을 보았다. 사람에게서 이런 눈이 다 나오는가 싶었다.
“뭔 놈의 재테크?”
“흐흐흐, 로또하자 싹 다. 뭐 난 안 사 줘도 되는데… 야, 그래도 의리상 3천원 치는 나 줄 거지, 형?”
“어휴, 넌 좀 짱이야.”

 

주운 돈은 정말 바로 써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괜히 갖고 있으면 진짜 찝찝한 마음만 들 것 같았다. 하지만 돈을 찾아 줄 방법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내가 잘 못 행동하는 게 아닐까, 혹은 범죄행위는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저격수가 쩝쩝대며 말을 걸었다. 이 놈 눈치하나는 최고다.

 

“야, 아깐 장난이고…왜 그러냐? 왜 돈 훔친 놈 마냥 쫄아서 치킨도 못 처먹고 그래?”
“이거 범죄 행위인가?”
“미친놈! 네가 잘 못했냐? 찾아줄라고 뛰쳐나갔고 거기서 기다리기까지 했는데? 딴 놈 같았으면 벌써 그냥 갖고 날랐어. 야, 그리고 진짜 잘못한 건 그 아줌마지! 돈 떨어뜨려 놓고 갔는데 그거 주운 사람이 범죄자냐? 어느 나라 법이 그렇디?”
“아냐, 잘 찾아보면 우리나라는 졸라 좆같기 때문에 그런 법도 있을지 몰라. 흐흐”
“하하, 하긴 그건 네 말이 맞다. 그치, 말 다했지 이 나라는…”
아니, 나는 이때 정말 말 잘 한 것은 저격수라고 느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별 걱정 없이 자기 돈이라고 생각하고 본인 지갑에 턱하니 넣었을 것이다. 
“딴 놈 같았으면 말이지…렸다.”
 
녀석한테는 이런 말해도 씨알머리 하나 먹혀들어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물어 보았다.
“야, 정말 돈 찾아줄 방법은 없을까?”
“아이고, 네. 은행에 갔다가주면 되지요, 앵무새 어린이님. 은행에 갔다 주면은요, 그 아저씨들이랑 누나들이요 아구구 잘 했네, 예쁜 어린이네, 하면서 칭찬해주고요. 돌려보낸 다음에 자기네들끼리 그 돈 쳐 먹지요. 순진한 녀석, 하면서 말이에요. 참 아름다운 세상이지요?”
“흐흐흐, 정말 그럴까?”
“야, 그 아줌마 돈 지들도 어떻게 찾아 주냐? 그 아줌마가 은행에 안 찾아오면 그냥 지들이 먹는 거여, 그냥. 그럼 너만 바보 되는 거지.”
정말 상상만 해도 역겨웠다. 있는 놈들이 더 한다는 세상 아닌가.

 

“야, 네가 그 말 하니깐 갑자기 예전에 들었던 라디오 사연이 하나 생각난다. 겁나 어린애가 있었는데 돈이 갑자기 필요했데. 그래서 하나님한테 엽서를 써서 보냈지. 하나님, 너무 힘겨워서 오십 만원이 당장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하고 말이야. 글씨체를 보아서 초딩 글이었데. 이 엽서를 보고 우체국에서는 어찌할지를 몰라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지. 그래서 회의까지 열렸데. 정말 이 아이한테 큰 일이 벌어진 줄 알고 말이야. 그래서 우체부들끼리 돈을 모아서 답장을 해주기로 했는데 아무리 모아도 25만원밖에 모이지 않는 거야. 그래도 이 정도면 도와줬다는 생각에 그만 답장을 힘내라고 간단하게 보내고 25만원을 보내줬데. 그러고 났는데 며칠 후에 그 아이한테서 또 하나님께 엽서가 왔데. 착한 일을 했던 우체부 아저씨들은 기대를 갖고 글을 읽어봤는데, 이렇게 써져 있었데. 하나님,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사랑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중간에 우체부 그 씨발놈들이 반이나 갖고 날른 것 같아요. 벌을 내려주세요, 하고 말이야.”

 

(이어서 계속..)

 

Written by 앵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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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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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실화를 바탕으로 꾸며진 글입니다.

 

등장인물 소개
1. 앵무새(해적단 메인작가)
승패의 키를 쥐고 있는 자. 언제나 클라이맥스의 샷 부분은 그가 차지한다.
영리하다, 선장 어깨 위에 발만 얹어서 선장을 조종한다. 
 - 특징: 배고프면 시끄러워 진다
 - 필살기: 깐죽거림

 

2. 저격수(해적단 객원작가)
BBK 저격수로 잘 알려진 정봉주 18대 국회의원의 출소에 기념해 해적단의 저격수로 활동하고자 출현한 자.

정봉주의 매서운 눈매를 따라가진 못한다. 입담도.
 - 특징: 저격수인데 민첩하지 못하다
 - 필살기: 삐딱하게 보기(진짜로 재수 없게 고개를 기울이고)   

 


“아, 춥다. 진짜 개춥네. 이 새낀 왜 안 쳐 오는 거야?”
오늘 간만에 저격수를 만나 치맥을 하기로 했다. 동네에 가까이 살고 있는 앵무새와 저격수, 우리가 항상 뭉치면 실없는 얘기와 세상에 대한 증오를 독설이 낭자하게 토해내기에 해적단 놈들마저도 가능하면 우리를 피하곤 한다.
‘그래, 그렇게 오늘도 우리 둘이다.’
저격수가 8시까지 집 앞으로 오기로 했다. 나는 ○○역 2번 출구 앞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스물스물하게 올라올 저격수를 기다렸다. 마치 여친 나오기를 목 빼놓고 기다리고 있는 행인마냥.
‘아 추워, 씨밤. 은행 안에라도 들어가야지! 개새끼 또 늦네.’

 

○○역 2번 출구 바로 옆에는 ■■은행이 있다. 내가 왜 이딴 역 이름과 은행을 계속 얘기 하냐면 이게 이 글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 동네라서가 아니라 바로 여기에서 나는… 돈을 주웠다, 5만원을!!! 지하철역들을 다 돌아다니다 2번 출구에 바로 떡하니 코앞에 은행이 있다면 그게 여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계속 거기서 서성대지는 말기를…

 

아무튼 그렇게 나는 추워서 은행 안으로 들어가 ATM이 있는 쪽에 서서 저격수를 기다렸다. 바깥 유리창을 바라보고 있으면서 저격수의 머리통이 빼꼼하고 나오는지 응시하고 있었다.
‘죽여 버리겠어…’
집 바로 앞이라 나는 추리닝 차림에 점퍼를 입고 목도리를 뱅뱅 얼굴에 감고서 있었다. 은행 안은 이미 문 닫고 어두운 상황, 그리고 눈부시게 밝은 현금인출기들 쪽에는 어느 아줌마 한 분께서 돈을 뽑고 계셨다. 막 장을 보고 오셨는지 짐들이 많았다. 손을 자유롭게 하느라 짐들을 아래로 내려놓고 힘겹게 돈을 뽑고 계시다가 나를 쳐다보고는 흠칫 하셨다.
‘아니, 이 아줌마가 어딜 보고 놀라시나? 내가 도둑놈같이 생겼나! 난 이제 아줌마 따위한테는 눈길도 안 줄라요.’
뭐, 나만의 생각인지. 다른 총각이 하나 들어오고는 돈을 뽑고 나간다. 역시 젊은이들은 빠르다. 다른 총각이 또 들어온다. 그러나 저격수 이 새끼는 보이질 않는다. 마침내 돈을 다 뽑으셨는지 짐들을 갖고 낑낑대시며 문 밖으로 나가려는 아줌마. 근데 문을 못 여셨다. 미시오가 아니라 당기시오, 라네요. 양손이 자유롭지 않으셨기에 할 수 없이 도적놈같이 생긴 내가 손수 문을 열어드린다. 아주 젠틀하게. 아까의 눈빛이 본인도 마음에 걸리셨는지 눈인사를 하시며 나가셨다.

‘아줌마, 나니깐 문 열어주지. 저격수였음 얄짤없어요. 난 도적이 아니라오, 해적이지.’

 

“음~ 음~ ♪~♬~♩~”
저격수 기다리는 동안 노래를 흥얼거렸다.
‘이 새끼가 이젠 나를 노래하게 만드네. 근데 아까부터 계속 귀에 거슬리게 저 소리는 뭐야?’
그러고 보니 얼마쯤 됐을까. 아까부터 계속 띠디디딩!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렸다. 옆에서 돈 뽑고 있는 애한테 문제가 있나? 다가가는 찰나 아뿔싸! 아까 나갔던 그 아줌마 글쎄 돈을 덩그러니 뽑아가지도 않고 가버린 것이었다. 이럴 때 평소 굼뜨던 것은 온데간데없이 앵무새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재빨리 낚아채서 밖으로 나갔다. 나이스 캐치!! 그렇다, 아까 그 아줌마를 찾으러 간 것이다. (설마 이 사람들! 내가 그 돈 갖고 튀려고 후다닥 나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나 원, 사람들하곤 참…)

 

아무리 두리번두리번 동서남북을 쳐다봐도 그 아줌마는 보이지 않았다.
‘아~ 이 아줌마, 걸음걸이는 또 왜 이리 빨라?’
때마침 저격수가 등장했다. 스물스물하게 나타난 것이었다. 역시 그답다.
“야! 앵물앵물~ 미안하다, 좀 늦었다!”
“…”
“야! 미안하다고 이 새끼는. 대꾸도 안 하네, 이젠! 이 물주님께서 오셨는뎀?”
“씹탱아! 잠깐 있어봐. 나 말이야…”
“미친놈, 뭔 일 있냐? 안하던 짓 하고 그래, 불안하게시리. 너, 그 날이냐?”

늘 죽자고 달려들어 늦은 걸 문책하며 쌍욕을 해왔던 내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자 이 저격수 놈이 적잖이 당황한 모양이었다.   

“야, 나… 나… 돈 주었다!! 아싸~ 땡 잡았네, 그것도 오만원!! 오만원!! 푸하하!”

“뭐?! 진짜냐??”

저격수는 먼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이내 머리가 재빠르게 회전된 모양이었다. 오늘은 자기가 쏘기로 한 날이었는데 돈 굳었다고 좋아하는 듯 음흉한 미소로 서서히 쪼개며 덩달아 좋아하기 시작했다.
“일단 치킨집으로, 고고”
“고고!!”

 

(이어서 계속..)

 

Written by 앵무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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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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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26 23:20 신고

    헐ㅋ부럽네요
    근데 cctv에 찍히지않았을까요?

    • 2013.01.27 02:38 신고

      ㅎㅎ 다음편에 관련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감사해요, 다음편 보실 분 한명 생겼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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