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전문점이라는 말이 번지기 시작하던 무렵에도 난 커피 마실 줄을 몰랐다. 동네 서점이 있던 자리에 커피전문점이 들어서고 플라스틱 컵을 든 사람들이 길거리를 장악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커피를 먹기 시작한 듯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커피전문점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반강제로 들어간 커피전문점의 방대한 메뉴들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도 결국엔 아이스초코나 핫초코를 주문하곤 했으니까. 나는 거의 최근까지도 커피와 카페와 친하지 않았다.

 

백수가 마음 편히 내 일(?)을 할 공간이란 많지 않다. 이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무렵 나는 카페를 빈번히 드나들고 있었다. 자주 가던 밥집이 카페로 변해버려 점심메뉴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무렵이기도 하다.

 

요새는 장난스레 '카페 메이트'라고 부르는 친구와 카페 구석에 쳐박혀 온종일 글을 쓴다. 그러다가 한참동안 영화, 드라마, 소설을 이야기 하곤 한다.

 

문득 카페가 문학과 예술, 철학을 품은 공간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고흐,보들레르, 랭보, 헤밍웨이가 활약한 파리의 카페까지 갈 것도 없이 이상, 이태준, 이효석, 박태원들의 아지트도 카페였다. 자유, 열정, 화려함 속의 사람들. 내가 누군가의 환생이라는 환상을 품어본다. 달콤한 꿈은 오래가지 않는다. 현실로 돌아온 나에게 밀려오는 건 권태다.

 

자유와 권태의 중간쯤, 이것이 커피와 카페를 사귀며 얻은 것이다.

 

여기 카페를 방황하는 한 청춘이 또 있다. (또하나의 카페 풍경이 궁금하다면, 스타벅스, 구직의 구천을 맴도는 자의 도피처)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같은 대상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아는 일이다. 흥미로움을 더하기 위해 출처를 밝히는 것은 잠시 미룰 것이다.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며 읽어보기를 권한다. 혼란을 주기 위해 약간의 트릭을 썼다는 것을 밝혀둔다.

 

 

 

자유인의 애수의 항구, 한 카페 자유인의 체험기, 그 첫번째

 

현대인의 카페 취미는 담배 하나 피우기 위한 휴게소로 또는 친구나 혹은 용건이 있는 사람을 잠시 기다리는 대합실 정도로 이용된다. 공리적 일면이 있는 이런 분들께는 좋은 홍차나 커피나 또는 좋은 음악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카페의 세속화라고나 할까? 이런 종류의 카페는 서울로 치면 '명과'나 '금강산'에서 종로의 '올림피아', '아세아'가 이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카페의 존재 또는 의의로 본다면 이렇게 순전히 세속적 공리성에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른바 카페 취미, 카페 풍류란 일종 현대인의 향락적 사교 장소라는 대 공통의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령 한 친구(또는 2~3사람)와 더불어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문학, 예술, 세상의 기이한 사실, 더 나아가 인생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이러한 곳을 선택하는 고급된 카페 애용가도 있을 것이요. 사랑하는 한 이성과 고상한 이야기를 하며 애정의 분위기에 잠기려는 세상의 많은 로맨티스트들도 있을 것이요. 최근과 같이 음악과 영화에 대한 열기가 극도로 팽배한 세대에 있어서는 음악을 듣기 위하여 또는 영화의 세계를 찾아 이 카페를 일종의 공동 아지트로 해서 기분좋고 자유롭게 모여들기도 한다.

 

여기 서울 시내에 산재해 있는 카페 분포도를 그려보자. 그리고 이 분포도 위에 배치된 지리적 방위와 그 카페 카페가 가지는 독자적인 카페의 개성과 공통성을 염두에 상기하라. 지역적으로 보아 명동 일대가 서울 다방의 총 본영인 감이 있다. 이른바 서울의 카페 거리이다. 이중에서 카페 탐방객이 어느 집 입구를 들어서면 거기에는 공통된 카페 분위기-일종의 카페 체취-를 느끼리라.

 

남쪽 바다의 열대 식물이 있고, 베토벤의 데쓰마스크와 2~3인의 카페 알바녀 또는 알바남과 가급적 좁은 지면을 실용적으로 이용하여 벌여진 테이블과 의자, 소란한 레코드, 여기저기 널려 있는 그날 그날의 신문과 닳은 그달 그달의 취미 잡지, 영화 잡지, 커텐, 몇 개의 그림, 조각상, 탁상 전등 등 그리고 자욱한 담배 연기와 몇 개의 독립된 대사의 교착, 창백한 인텔리급의 청춘 남녀의 분산된 진영 등.

 

그러나 이 공통된 분위기 속에 반영된 세상의 모습이란? 또 그들의 이 순간적 향락 심리란? 계절을 따라 외부 경계의 변화에 따라 지극히 완만하게 때로는 발작적으로 변모되어 간다. 그리하여 자아의 미미한 형상만을 안고 다니는 카페객의 멸렬된 세계에도 하나의 공통된 심적 현상을 환기할 수 있으니, 가령 겨울에서 갑자기 밝은 봄 햇볕의 총애를 받은 그들이라면 그들은 일제히 경쾌한 보조와 명랑한 미소의 얼굴로 습관적인 그 걸음이 어느 카페 한 집을 찾아들어 가벼운 멜로디에 춤의 한 스텝을 사랑할 것도 같다.

 

이 신경적 외부 세계의 감촉이 이제 멀지 아니하여 우리에게도 이르른 듯 싶다. 명명하여 '춘삼월 카페 정조'란 제목이 나에게 제시된 것도 이러한 곳에 연유한 것이리라. 외투가 무거워지고 스프링코트가 생각나는 때, 오히려 처녀들은 단색의 외투나 코트 속에 간직했던 선명한 색채와 단아한 의상을 거리에 해방하는 기쁨을 맛볼 것이다. 수선화는 시들어 늙었고 커피는 너무나 둔탁한 듯, 향기로운 홍차의 부드러운 김이 웃음 띈 그들의 얼굴과 더불어 하나의 명랑한 노래를 짜낸다.

 

말소리가 가볍고 몸의 율동이 생생하고 탄력성이 있어 봄의 향욕과 꿈과 희망을 품은 흰 구름이 그들의 담배연기와 같이 한 공간 속에 가득 찬다. 어디서 카나리아의 봄하늘을 그리는 노래도 있을 듯, 창을 열면 아코디언의 애수 품은 자유인의 한 전율이 들릴 것도 같으나 불행히 여기는 파리의 뒷골목이 아님에 이런 살 속에 숨어드는 예술적 향취를 찾을 바가 없다.

 

 

 

 * 1938년 5월 1일, 삼천리 제10권 제5호에 실린 이헌구의 「보헤미앙」의 哀愁의 港口, 一茶房 보헤미앙의 手記라는 글입니다.

* 한자어와 옛투의 글을 최대한 읽기 쉽게 바꾸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원래 의미와 상이한 부분도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이 궁금한 이는 http://db.history.go.kr/url.jsp?ID=ma_16_10_05_0460로 가보세요.

* 원래는 '카페'가 아닌 '다방'이라는 단어가 쓰였어요. 수월한 감정의 이입을 위한 것이니 양해바랍니다. 이 시절 글을 읽어보면 '카페'는 술집에 가까워보입니다.

* 어디에서 눈치채셨나요? 70년 전의 카페풍경이 흥미롭지 않았나요? 이 글의 뒷부분은 빠른 시일 내로 소개할게요. 기다리지 못하시는 분은 위의 링크로 가보시고요.

 

written by 모던피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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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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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보면 우아한 옷을 입고, 높은 하이힐을 신고, 고급스런 가방을 멘 여성의 손에는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있다. 회사로 가는지, 친구를 만나러 가는지 바쁜 걸음이다. 멀뚱멀뚱 나는 짧은 1초 동안 여자의 스타일을 평가하고 바로 컵으로 눈이 향한다. 자동반사적이다. 스타벅스, 커피빈, 엔젤리너스 등 유명한 커피전문점의 커피인지 아니면 길 다방표 커피인지를 확인한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인공 ‘앤 해서웨이’가 잘 차려입고 커피를 양손으로 들고 뉴욕 한복판 거리를 걷는 장면은 여성 누구나 꿈꾸는 장면이다. 직업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는 현대여성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나도 직장에 다니면 꼭 반듯한 옷을 차려입고 커피한 잔을 손에 쥐며 출근해야지 생각했는데, 현실은 사무실에서 잠 쫓기 대용으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어쨌든 커피는 현대 여성을 돋보여주는 필수 아이템이자 궁핍함을 보여주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이러한 커피의 모순적 관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요즘 한층 연말분위기를 채우기 위해 커피전문점에서는 커피 한잔을 구입할 때마다 스티커를 준다. 스티커 20장을 채우면 다이어리를 제공한다. 실제로 다이어리의 가격은 스티커 20장을 채우는 것보다 저렴하지만 사람들은 커피 브랜드 다이어리를 받기 위해 20장을 빼곡히 채운다. 다이어리를 탐하는 자들은 스티커를 모으기 위해 약속장소를 필사적으로 카페로 추진한다. 


모으는 재미와 붙이는(?) 재미는 마약과도 같아 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심한 경우는 인터넷 카페에서 스티커가 장당 약 500원~1,000원의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왜 이런 현상까지 나오는 걸까? 그냥 다이어리를 구입하면 될 것을. 사실 나도 길거리에 떨어진 스타벅스 스티커를 주워 모으면서까지 다이어리를 받았다. 


“난 스타벅스 커피가 더 맛있어. 나는 커피빈. 나는 투섬.”, “나는 벤티 싸이즈의 아메리카노를 마셔줘야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라며 으스대며 서로 커피 브랜드에 따른 선호도를 자랑하는데, 이것은 브랜드 커피만 마시는 까다로운 여자임을 5분간 보여주는 면이다. 그러면서 비싼 커피를 손에 들고 지하철을 타는 모습을 보여준다. 커피의 화려함을 택한 대신 지갑의 궁핍함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자기 자동차를 타고 커피를 마시는 진정 커피러버들도 있지만 말이다.


written by 빙구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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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 시인의 생애 첫 커피。

 

“전쟁 때는 여기 선착장 바로 앞까지 미군 부대 헌병이 있었어. 그때는 헌병이 휘발유 몇 드럼을 파도에 떨어뜨려서 팔아먹었어. 내가 본부 운수과에 있을 때 조사하러 나온 적이 있었거든. 여기까지가 미군 부대였으니까. 그때 처음으로 커피를 마셔 봤어. 미군 헌병이 큰 깡통에 들어 있는 커피를 주는 거야. 그야말로 원두커피지. 먹어 보니까 고소하더라고. 그런데 배가 고프니까 그걸 꿀떡꿀떡 다 먹었어. 그게 몇 리터더라? 무척 큰 거였는데 그걸 다 먹고 정신이 이상하게 됐어. 그래서 야전 병원에 실려 갔잖아. 그때 커피 병에 걸려서 혼이 났어.”[각주:1]

 

 

위의 짤막한 글은 고은 시인의 인터뷰 내용이다. 선생님이 33년생이시니까 그의 20대는 1950년대, 그리고 한국전쟁 때를 말하겠다. 미군 군수물자에서 얻은 커피, 그 맛이 쓰기도 하고 한편으론 고소하기도 하고, 선생님은 당시에 알고 계셨을까? 훗날 우리 국민들이 그 커피 맛에 지독하게 중독될 것을…  

 

 

 

 

내 생애 첫 커피。

 

 

나는 80년대 생이다. 그리고 내 생에 첫 커피는 초등학교에 막 들어갔던 시절 막내이모가 타준 아이스커피였다. 무려 아이스커피! 커피 둘에 투게더 바닐라 아이스크림 크게 두 스푼을 넣어서 타준 커피였다. 그 맛을 잊을 수가 없어서 명절 때마다 이모를 만나면 그때의 커피 이야기를 한다. 요즘에도 가끔 그 맛이 생각나서 타 먹어 보지만 그때의 맛을 도저히 따라갈 방법이 없다. 맛있다고 소문 난 아메리카노에도 시도해봤지만 그 맛을 따라갈 수가 없다.

 

단순히 커피가 맛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잠깐의 일탈을 맛볼 수 있어서일까. 당시 어른들 사이에서는 커피가 아이들 건강에 좋지 않다고 회자되어 못 먹게 하곤 했다. 반면 아이들 사이에서는 그 맛있는 것을 어른들끼리 몰래 먹기 위해서 우리들한테는 주지 않는다는 설이 있었더랬다. 진위여부는 차치하고, 첫째인 엄마와 막내이모는 15년 터울이기에 나름 당시의 X세대였던 막내이모는 나에게 맛난 이모표 아이스커피를 타주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혁명이었다.   



사진 출처
http://cfile29.uf.tistory.com/T950x950/13390E424E2D265735DCCD
http://res.heraldm.com/content/image/2011/12/19/20111219000533_0.jpg

 

Written by 앵무새

 

  1. 『여행, 그들처럼 떠나라』, 동양북스, 2012, 488-489쪽에서 발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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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씨, 이리와서 좀 먹어요. 왜 이렇게 안먹어요?"

"아...저, 점심 먹은지가 얼마 안되서 간식은 그냥 그러네요."

"에이~남자가 되가지고 점심가지고 되겠어요? 이리 와서 이거 빵이랑 뻥튀기도 좀 먹어요."


지난 약 4년 동안 일을 하면서 주구장창 들었던 이야기다. 현재 시간 오후 2시 30분, 사무실의 여성 한 분이 조용히 나가더니 이내 빵봉지와 뻥튀기를 산더미 만큼 들고 들어온다. 간식이 도착하면 순식간에 우르르 달려가 와글와글 떠들면서 이걸 먹는건지 흡수하는건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먹어치운다. 참고로 점심은 12시 30분에 다 먹은거다. 


"아, 너무 배부르다~~~이제 못 먹겠다. 다이어트 해야되는데 아놔 미치겠네~~"

"맞아맞아, 우리 요거까지만 먹고 오늘은 끝하자!"


말만 그렇지 ㅠㅠ. 그렇게 말하면서도 계속 먹는다. 한편으로 재미난 것은 서로 그렇게 먹어대면서도 누가 더 많이 먹고, 누가 더 적게 먹는지를 끊임없이 견제하고 관찰한다. 그녀들 마음 속엔 '어우, 쟨 뭔데 저렇게 안먹어? 아 재수없어, 나도 그만 먹어야지' 하는 묘한 감정이 또 하나 있다. '먹지 말아야지 먹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반대로 상대 여성에 대해서는 '더 먹어요 그것가지구 되겠어~요것도 먹구 저것도 먹어요 호호호' 위해주는 척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계속 매긴다. 여기서 덜 먹은 사람은 '튕기네 어쩌네' 구설수에 오르기 마련이고, 가장 잘 먹는 사람은 '마음씨 좋은 푼수'로 통한다. 그렇게 30분 미친듯이 먹고 나면 잠시 동안 잠잠해진다. 남자인 나는 먹는 둥 마는 둥 애먼 커피만 들이키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여자가 많은 부서에서는 어떤 직장에서건 반드시 간식을 따로 먹을 수 있는 전용 코너가 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에 따르면 말이다. 각종 유명브랜드의 과자들과 음료, 가끔 외부인이 방문했을 때 선물로 주고가는 고급식품들로 한 구간이 완전히 꽉 차있다. 입이 심심하거나 스트레스가 올라갈 때, 어김없이 찾아가 먹을 수 있도록 해 둔 것이다. 그녀들은 그 구간이 비지 않도록 늘 신경쓴다. 그래서 서로 품앗이처럼 월요일은 누가, 화요일은 또 다른 누가, 수요일은 또또 다른 누가 간식을 가져와 서로에게 보여주면서 자랑한다. "우와, 맛있겠다. 역시...XX씨는 간식센스가 보통이 아니야!" 하면서 칭찬해주고 격려해준다. 기분 좋아진 XX씨는 그 다음주 더 좋은 간식으로 여자직원들에게 화답한다. 박수세례가 쏟아진다. 





그것도 잠시...현재 시간 4시 30분. 간식 먹은지 두 시간 지났다. 이쯤 되면 서서히 여자들의 간식 본능이 일어난다. "아...그새 출출해지네. 모 먹을까?" "아 배고파 나 미쳤나봐 과자 하나 먹어야지~~""제가 커피 내려서 올께요~!" 하며 슬슬 또 간식 먹을 준비를 한다. 


"우리 가운데에 놓고 한 개씩만 집어가서 먹어요" 


말만 그렇지 ㅠㅠ. 한 개씩이 뭐냐. 기다란 뻥튀기 봉지를 간식 먹는 책상에 놓는다. 처음에야 한 개지. 두 번째는 세 개, 세 번째는 다섯 개, 네 번째는 10개...뭐야 이거? 가서 보면 이미 다 먹고 없다;;; 서로 하나씩만 먹자고 약속해 놓고 다 먹었으니...서로 민망해서 다음 간식을 꺼내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실험을 해봤다. 초코과자봉지 하나 꺼내 한 두어 개만 먹고 책상에 둔 채 내 자리로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서로 바톤 터치를 해가면서 한 움큼씩 집어간다. 계속 먹는다. 또 먹는다. 또 먹는다. 또 먹는다. 또 먹는다. 5분만에 봉지 털렸다. 어느덧 퇴근 시간이다. 오늘은 회식이다.


회식...말이 회식이지. 술은 애시당초 관심도 없다. 이미 뭘 먹으러 갈진 그녀들이 다 정해놨다. 그저 소수로 밀린 남자 몇 명은 회식자리 귀퉁이에 쭈구려 앉아 밥 겸 술 겸해서 먹는다. 가운데에선 이미 로마의 대향연이 벌어졌다. 꽃게탕의 게는 이미 다 뜯겨져 있고, 뼈와 국물이 낭자하게 흩어져 있다. 그 다음주로 파전~~~. 그 다음으로 회무침~~~. 마무리로 냉면. 젓가락 휙휙 날아다닌다. 막막 뜯어먹는다. 서로간에 뭐라뭐라고 속사포 랩으로 '블라블라블라블라블라 깔깔깔깔깔 하하하하하' 도저히 연관성 없어보이는 주제들도 알아서 막 이어가며 수다 천국을 만든다. 안주는 벌써 5번이 돌았다. 난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돈은 N분의 1로 낸다. 


"소화도 시킬 켬 커피라도 한잔 하지"





커피만 먹냥? 케잌도 먹지 ㅠㅠ. 초코케잌, 치즈케잌, 고구마케잌, 초코머핀에 마카롱. 자자자잠깐만...몇 개를 시키는거야 도대체? 로마의 대향연 시즌 2가 벌어진다. 집 얘기, 애인 얘기, 돈 얘기, 뒷담 얘기, 조카 예쁘다는 얘기, 너무 먹어서 옷이 안맞는다는 얘기, 우리 엄마랑 어제 쇼핑을 갔다는 얘기, 동생이랑 대판 싸운 얘기, 바바바바바바바 두두두두두두두두두 계속 얘기한다. 그러면서 또 재촉한다. 


"허허, 모모씨 오늘따라 왜이렇게 안먹어요? 자 이것도 먹고 요것도 먹고 좀 먹어요. 먹어야 내일 기운내서 일도 하지"


얘들아...저녁 먹었잖니? 지들이 다 먹고 남은 거 남자 몇 명 앞으로 다 밀어넣는다. 슬슬 집에 가고 싶어진다. 배터져서 내일 출근 못할 것 같다. 9시 반 쯤 되니 그녀들의 폭풍간식흡입행사가 막을 내렸다. 


"아~~오늘은 자기 전에 꼭 스트레칭해야지~"

"난 러닝머신이나 좀 타야겠다!"

"샤워 오래해도 살 빠진대요!"

"난 운동 싫어. 그냥 살 찌고 말래 호호"


........앞자리의 남자 동료와 눈교환을 한다. 집에 가는 척 하면서 둘 만 다른 길로 빠진다. 호프집으로 들어간다. 안주는 그냥 오징어 땅콩. 맥주만 마신다. 그냥 허허 웃고 마시고 씁쓸하게 이런저런 얘기나 좀 두리뭉실하게 하다가 둘이서 3000cc딱 나눠 마신다. 적당히 술도 올라온게 기분 좋다. 이렇게 집에 가믄 되는 거다. 


흔히 여자들은 밥배, 간식배, 디저트배, 커피배, 술배가 따로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간식배와 디저트배는 엄연히 다르다고 한다. 디저트배는 점심 먹고 나서 먹는거고, 간식배는 출출할 때 쯤 먹는게 간식배란다. 그리고 밥먹으면서 술은 마시지 않으므로, 밥배와 술배는 구분된다고 한다. 음...남자의 입장에서는 크게 와닿지 않는 대목;;; 왜일까? 





여기서 잠깐. 인류가 수렵, 채집 활동으로 먹고 살던 그 시절로 돌아가보자. 


남자가 하는 일은 무어냐? 사냥이다. 사슴이건 노루건 남자는 그거 하나만 쫓아다닌다. 남자의 머릿 속엔 하나 뿐이다. "저 놈 하나만 잡자." 활로 쏘아 맞추어 어깨에 짊어지고 온다. 그걸로 가족에게 할 의무는 끝났다. '오로지 한 놈만 잡는다'다. 종일 돌아다닌지라 피곤하다. 거하게 저녁 한 판 때리고 잠에 든다. 남자에게 중요한 건 든든한 주식이다. 


그렇다면 여자는 노느냐? 그렇지 않다. 채집을 한다. 집 주변에 있는 먹을만한 풀데기를 찾아다닌다.  그 중에는 나물도 있겠고, 버섯도 있겠고, 열매도 있겠고, 꽃도 있겠고, 그냥 풀도 있겠다. 어쨌든 이것이 먹을 수 있는 건지 없는건지부터 선별한다. 그리고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것저것 다 뜯어온다. 그리고 집 한켠에 정성껏 분류해서 오늘 아침엔 이거, 점심엔 저거, 저녁엔 그거 다 정해놓는다. 평소에 하는 일이 '선별과 분류'다. 직접 입맛으로 간별하면서 조금 더 신선한 것, 조금 더 맛있는 것을 꼼꼼하고 면밀하게 따진다. 이미 여자의 뇌 속엔 수십가지 풀데기로 꽉 차 있다. 그리고 이웃집 누구네 것과 비교하면서 우위를 따지기도 하고, 나눠 먹기도 하고, 수시로 이 집 저 집 돌아 다니며 풀데기 정보를 공유하고, 교환한다. 여자에게 중요한 건 주식 외의 다른 것들이다. 그 다른 것들의 획득에 여자의 자존심이 걸려있다. 


김장철이다. 김장철만 되면 아랫집 윗집 옆집 엄마들 서로 바삐 초인종 눌러댄다. 통에 정성껏 담아와 먹어보라고 준다. 엄마는 또 받아서, 먹은 통에 자신이 담근 김치를 건네준다. "누구네 김치래더라. 맛이 좋다. 먹어봐라". 세상에...아침상에 똑같은 겉절이 김친데 우리집꺼 플러스에 안국동네, 옥인동네, 연희동네, 홍제동네, 옆집 할머니네 총출동이다. 김치상인지 밥상인지...먹어보고 비교해보란다. 안 먹으면 직접 손으로 찢어서 밥상에 올려준다. 어디네가 제일 맛있냐고


간식이고 김치고 나물이고 풀데기고 다 따로 노는 것 같지만 결국엔 다 여자의 '선별과 분류' 본능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간식'이 아니고 '간식거리'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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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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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커피를 마신 기억은 군대를 기점으로 나뉜다.


A(31세): 글쎄, 군대 전에 뭘 마셨는지 기억이 전혀 안나요. 그냥 믹스커피 정도는 마신것 같기도 하고. 그만큼 별 생각이 없던 거겠죠.


B(30세): 대학동기 두 사람과 어딜 놀러가던 중 동료 한 사람이 마트에서 음료수를 사겠다며 뭘 마실지를 물었어요. 그 때 두 사람은 캔커피를 택했고, 저는 베지밀을 선택했죠. 전 군대가기 전까지 한번도 안 마셔본 것 같아요.


두 남자의 커피와의 인연은 군대에서부터 시작된다.


A: 특수한 보직이었죠. 적기를 레이더로 감시하고 보고하는 뭐 그런 보직이라. 새벽12시부터 아침 7시반까지 근무하는 일이 잦았죠. 그 때 마침 에스프레소 정도를 마실만한 육군호랑이가 그려진 컵을 누군가가 줬죠. 아마도 간부였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 땐 에스프레소가 뭔지도 몰랐고. 일단 그 컵에 믹스커피를 진하게 타서 마시면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마셔봤어요. 실제로 대단하더라구요. 적어도 12시부터 3시반까지는 말똥말똥하게 버틸 수 있게 해줘요. 단 한잔으로 말이죠. 전 사실 카페인의 효과 때문에 마셨어요. 커피라기보다는 각성제의 기능에 더 끌렸다고 해야 하나요?


B: 그 때 처음 커피를 마셨죠. 근데 정확히 말하면 커피를 마신 건 사실 아니에요. 우유에 달달한 무언가를 타서 마신다는 그 자체가 저한텐 더 중요했죠. 그렇게 커피우유는 마셨어도 믹스커피만 즐겨 마셨던 것 같진 않아요.


믹스커피에서 벗어나 프렌차이즈의 커피를 마시게된 배경도 들어보자.


A: 매일 같이 한잔한잔 새벽마다 마셔대니 부사수가 커피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요새 밖에서는 에스프레소 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 이런 커피들이 유행하기 시작했으니까 휴가 나가시면 꼭 드시고 오십시요." 이렇게 말이죠. 하 그런데 왠걸요.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이 두 개만 기억하고 있던 저는 그만 일병 휴가를 나가서 에스프레소를 시켜버렸어요ㅠㅠ 사이즈도 작은 것이 왠지 모르게 군대에서 먹던 것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마셨는데 엄청나게 쓰더군요. 물릴수도 없고, 쪽팔리기도 하고 그냥 앉아서 먼 창밖을 보면서 최대한 우아하게 마셔보려고 노력했어요. 아메리카노 마셔볼 생각은 하지도 않고 그냥 부대를 복귀해버렸어요. 그 때가 2004년 4월 정도가 되겠네요.


B: 딱히 이유는 기억도 안나고 모르겠어요. 그냥 제대하고 복학하니 후배들이 우르르 커피 전문점 가길래 따라가서 마셨고. 아, 그 기억이 나요. 후배 한명과 커피숍을 가서 무얼 먹겠냐고 물어서 달달한 것 없냐 물었더니 캬라멜 마키아또를 시켜주더군요. 그게 아마 처음으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A: 전 달달한 맛보다는 카페인이 얼마나 쎈가를 더 따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진한 아메리카노 이런 것들을 제대 후부터 즐겨마셨던 것 같아요. 근데 자꾸자꾸 마셔보고 여기저기 가보니 똑같은 아메리카노라도 맛이 다른 것도 알겠더라구요. 그때부터 진짜 커피맛을 따지기 시작하고 호불호가 세졌어요. 요새 그 M사가 최근에 자기네들 커피랑 스/커/할과 같은 회사의 커피를 비교해서 맛의 차이 없다라고 말하는데 그건 쌩뻥이에요. 적어도 제 입장에선 말이죠. 분명히 커피 자체를 즐겨마시지 않는 샘플을 데려다가 시음을 시킨거에요. 사람들이 왜 스 회사에서 할인행사한다하면 길게 줄을 서서 끝까지 기다려 마시고 가는 이유가 뭔지. 그건 커피 좋아하는 사람들만 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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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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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가을에 접어들고 있는 10월의 첫째 주 일요일. 아침공기가 제법 쓸쓸해진데다가 창으로 내리쬐는 햇살도 한결 차분해졌다. 이글이글 아스팔트 기운에 맥을 추지 못하던 담쟁이들도 때를 만났다는 듯 슬그머니 잎새 끝에 물을 들이기 시작했다. 늦여름 태풍이 쓸고 간 하늘 판에는 푸른 물감만 잔뜩 뿌려져 있고, 실낱같은 흰 구름들은 있는 듯 없는 듯 무심히 지구 반대편으로 흘러가고 있다. 창밖 프레임 속 풍경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어느덧 1회용 플라스틱 잔에 얼음 꽉꽉 채운 아메리카노 보다는 하얀 머그잔에 따끈한 달콤 라떼 한잔을 내려 마시면서 몸 안의 생기를 북돋아 주고 싶어진다.


  공기가 얼어붙고 태양빛이 멀어져 간다는 것은 그만큼 일상생활의 뜨거움도 한층 식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 공연의 열기로 붉게 달구어졌던 시청광장에는, 푸른 셔츠를 커플룩으로 맞추어 입은 연인과 아빠 엄마 손을 잡고 초록잔디밭을 노니는 꼬마들이 자리를 채웠다. 분수대의 물대포를 맞아가며 뛰놀기에 분주했던 여학생들은 어느 새 도톰한 춘추복 차림으로 변신하여 잔디밭에 모여앉아 겨울용 코트나 피부건조 방지용 화장품 이야기로 대화의 수를 놓는다. 멀찌감치 나무의자를 두고 앉아 슬금슬금 곁눈질로 그녀들의 스케치를 완성해가고 있는 사과모자 아저씨를 보고 있자면 이내 가을이 오긴 왔나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들의 옷차림도, 생각도, 사랑도 가을의 나침반에 따라 키의 방향을 차츰차츰 바꿔가고 있다.


  온도계가 내려갔다고 해서 우리들의 마음까지 덩달아 식어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들은 그 동안 더운 열기로 인해 제각각 미루어두었던 시시콜콜한 소망거리들을 하나둘씩 끄집어내고, 표현하고, 공유하고, 소비하고 있다. 그런 것들은 아침 산책길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공원 평상에 단체로 모여 앉아 기를 수련하는 사람들이라든지 또는 배낭을 메고 서울성곽 정상을 향해 오르는 노인 부부의 걸음걸이는 한여름 쨍 내리쬐는 불볕 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공원 숲에 숨어 들어가 달콤한 혀를 섞고 있는 남녀 지간의 모습은 앞으로 외부에서의 애정 행각이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것을 예고하고 있다. 떨어진 숲의 온도를 연인들이 알아서 맞춰 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삼삼오오 줄을 지어 자전거의 페달을 돌리고 있는 레이서들의 숨 가쁜 질주가 점점이 스쳐간다. 이 모두가 계절의 색깔을 바꾸어 나아가는 풍경들이다.


  작년 이맘때쯤엔 그림 그리기에 미쳤는데, 올해는 펜과 키보드가 손맛을 자극하고 있다. 손가락 지문에 가을의 형상이 도돌도돌 새겨져 묘한 생각의 자기장에 이끌려 펜을 끄적 대고 키보드를 연신 두드리고 있다. 모니터 앞에는 따듯한 테이터스 초이스 아메리카노 한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 그리고 막 연인과 문자를 끝낸 달달한 아이폰이 놓여 있다. 커피를 마시며 사랑을 즐기고, 책을 끼고 앉아 나만의 잡동사니 글을 풀어내고 있는 꼴이란 흡사 된장남을 연상케 한다.


  독서란 무릇 글을 쓴 자와 글을 받는 자의 진지하고 차분한 대화이다. 작가와 독자의 커피 한잔의 대화에 남이 함부로 끼어드는 것을 나는 제일 싫어한다. 여기서 ‘남’은 나를 알고 있는 타인 모두를 지칭한다. 그래서 집안에서 진지하게 책을 읽는 경우는 거의 없다. 화장실 청소하는 소리, 쓰레기통 비우라는 엄마의 잔소리, TV 속 걸그룹의 숨 넘어갈 듯한 라이브 소리의 하모니는 마치 나에게 ‘니가 좋아하는 그 쓰레기 책 따위 개나 줘버려’하고 비웃는 것만 같다. 가족들이 잠옷 차림으로 퍼질러 앉아 깔깔대며 쇼 프로를 보고 있는데 나는 한 쪽에서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뜨겁게 섹스하는 대목을 읽는다고 해보자. 이건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적막함이 느껴지는 넉넉한 공간에 숨어들어가 책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너무 시끄럽지도 그렇다고 너무 쓸쓸하지도 않은 카페의 한 구석자리라든지 운동장의 먼 함성소리가 창가를 가볍게 두드리는 학교 연구실의 책상 이런 곳이 딱 제격이다. 나는 책에게 무엇을 가르쳐 줄 수 있냐고 묻고 책은 나에게 무엇을 찾고 있느냐고 되묻는다.


  끊임없는 대화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커피와 초콜릿 간식은 필수 아이템이다. 특히 대화의 내용이 점점 깊어지고 높은 고열량의 지식을 짜내야 할 때 초콜릿의 농도는 점점 더 달아오르고 카페인은 고독하게 깊어진다. 달콤한 설탕과 카페인의 마취성분으로 뇌를 달래주면서 나는 옷장 속을 뒤지듯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를 끄집어낸다.


  독서를 넘어 글쓰기로 이어질 때 카페인과 초콜릿 소비는 최고점을 찍는다. 특히 데드라인을 턱밑에 두고 논문이나 보고서 따위의 딱딱한 내용을 쓸 때 나는 보통 1일 기준 오리지널 콜라 5캔, 아메리카노 3잔, 자판기 믹스커피 2잔, 트윅스 3개, 기타 초콜릿 과자류 3봉지 이상을 먹어치운다. 무한한 카페인을 소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씩씩대는 증기기관 열차 속에 시커먼 석탄 덩이를 탈탈 부어가며 불구덩이의 기세를 올리는 것과 같다.


  카페인 과다 중독으로 이상 증세가 나타나지 않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아직까지 이런 인스턴트 생활로 인해 곤욕을 치러본 경험은 없다. 다만 카페인 수준이 일정량 수준을 넘으면 조금씩 피로감이 몰려오고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은 있다. 하지만 먹지 않고 마시지 않은 채 초조한 긴장감을 이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생활이 좋다. 데스노트에서 L이 설탕류 과자를 탑처럼 쌓아두고 밤낮으로 먹어가며 범인 키라를 추적하는 그런 짓거리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해가 지니 바람이 서늘하다. 창문을 닫고 스탠드 불을 켠다. 또 다시 입안에 초콜릿을 살짝 머금고, 딸그락 딸그락 머그잔을 구슬리며 커피를 솔솔 마셔댄다. 그리고 한량 놀음하듯 이글 저글을 이리썼다 저리썼다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그러다 간혹 내 앞에 놓인 아이폰으로 연인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다음 만날 데이트 날짜를 정해본다.

 

  커피, 초콜릿, 독서, 사랑은 이렇게 묘한 동거를 이루고 있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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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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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 좋은 10월의 가을, 높으신 두 양반이 삼청동 무슨무슨 카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시민들에게 다정하게 손을 흔드는 장면이 포착됐다. 대중을 의식하듯 창가 쪽에 앉아 선글라스에 '브이'자까지 펼쳐 보여주는 여유와 다정함도 보여주신다. 오랜만에 답답한 파란집을 벗어나 두 내외 분께서 오붓하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토요의 오후를 만끽함이란 충분히 경쾌하고 맑게 다가온다.

 

같은 시간 때, 구미시 산동면 봉산리의 주민들의 분노는 마치 시커먼 커피물이 부글부글 넘쳐 흘러 온 바닥을 적시듯 했다. 정체불명의 괴이한 가스에 2천500백명의 주민이 치료를 받고 있으며, 주변기업의 피해만 94억이 넘어갔다. 멀쩡하게 살던 우리집을 팽개치고 급작스레 이주를 해야 하는 상황에 온 주민들이 불안과 노여움에 가득 찼다. 이에 구미의 '왕'은 '피해 액수가 나와야 보상을 해 줄 것 아니냐'하는 엉뚱한 볼멘 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절대 피해시민에게 손해입히지 않을 겁니다"라는 말은 마치 보험회사 영업사원이 막 사고를 입은 피해자에게 다가와 '돈으로 보상할 테니 엄살 부리지 마라'고 꾸중하는 느낌이다. 하나 덧붙이면, 불산 한 방울이면 뼈가 녹고, 공기 중에 노출되면 노약자의 호흡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준다고 한다. 돈으로 그들의 건강과 생활과 집을 고스란히 돌려줄 수 있다면 한 번 그렇게 해 보라.

 

당신이 사는 동네에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맛보는 동안, 당신이 책임져야 할 밑 동네 주민들은 끔찍한 멸망영화의 주인공인 된 듯한 서늘한 공포감을 맛보고 있다. 그 커피를 마시는 '간만'의 때가 매우 좋지 않다. 아니, 상당히 불쾌하고 어둡게 다가온다. 지금 두 분은 커피 마실 때가 아니다. 내려가서 불산의 현장을 마실 때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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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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