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독도서관 옆 소격동 길을 지나다가 이 그림을 마주쳤을 때, 생전 처음 '그림을 사고 싶다'는 감정을 느꼈다. 날씨가 제법 쌀쌀했던 12월의 겨울. 추위도 까맣게 잊은 채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그림이 그림같지 않았다. 새로운 차원의 신세계로 나를 인도하는 듯 했다. 내가 무의식 중에 꿈꾸던 진짜 이상향의 안식처에 다다른 듯한 완벽한 환상을 맛보았다. 


온 빛이 세상을 감싸고 있다. 온 빛이 산과 바다에 내려 앉았다. 이곳은 물결도 바람도 존재하지 않는 곳. 모든 것이 멈추었다. 빛과 그림자로 빚어낸 이 담박하고도 신비한 능선을 따라 차근차근 걸어가본다. 움직이는 것은 오직 나 뿐이다. 산 중턱에 잠시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바닷 속 세상이 훤히 보인다. 팔깍지를 끼고 그 자리에 누워버린다. 나도 이 그림의 풍경이 된다. 


갤러리 안에 있는 그림이 궁금해졌다. 빼꼼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무도 없다. 걸려있는 것은 온통 산 뿐이다. 이영길이라는 화가의 작품이다. 수묵화도 아닌, 그렇다고 채색화도 아닌 수묵채색화를 구사하는 사람이다. 그는 한국화에서는 금기로 여기는 빛을 작품에 끌어들였다. 한국화는 선과 여백에서 그림의 여유로움을 찾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 사람, 빛에서 그림의 안정감과 한적함을 끌어내고 있다. 재미있는 양반이다. 


한지 위에 일필휘지로 휘두른 먹의 굵직한 선과 농담을 과감히 포기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빛과 색채를 가득 채웠다. 수채화를 끌어들였지만 결코 거추장스럽다거나 인위적인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화에서 강조하는 어떤 유교적인 이념이나 정신같은 것은 애시당초 버린 것 같다. 그는 기존의 한국화가 요구하는 계보의 목적성을 내려놓았다. 꺾어내지르는 협곡과 그 사이를 흐르는 계곡물, 조그맣게 자연 속을 거니는 선비와 동자는 이 사람의 세계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그는 단지 그가 생각하는 내면의 마음을 내어놓고 싶었던 것이다. 


보이는 풍경이 아니다. 마음의 풍경이다. 그는 수묵화와 수채화의 중간계에서 많은 고민을 한 것 같다. 둘 중 그 어느 것도 제대로 이 화가의 세계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 같다. 결국 두 세계의 혼합 가운데 여러 실험을 거쳐 그는 답을 찾은 듯 싶다. 그리고 그 실험은 한 남자를 감동시키에 충분했다. 인간이 만들어낸 빛깔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한방에 잠재울 수 있다는 것을 이 그림 하나로 쾌히 증명했다. 


한참을 감상하고 있으니, 멀찌감치서 한 남자가 다가온다. 이영길 화가다. 열중해서 보고 있는 모습이 좋았는지 흔쾌히 도록 한권을 선물로 준다. 웃으며 한 마디 던진다. "자주 와요"


나는 전시가 끝날 때까지 매일 이 갤러리 앞에 찾아와 한참 동안 이 그림을 감상했다. 좋은 술에 좋은 안주가 빠질 수 없는 법. 백건우가 연주한 에릭 사티의 Ogive # 1, 2를 연달아 듣는다. 사람, 그림, 음악이 모두 멈췄다. 진짜 내가 보인다.

 


<작품: A world opened with the light...- mountain_130.3x162cmㆍ장지에 채색_이영길_2009>

    - 이영길 개인전 / 2009 12. 23 WED - 12. 30 WED / AKA Space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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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제목이 톰과 제리다. 70년대중반~80년대초반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고 듣고 자란 친숙한 만화 주인공들이다. 2011년, 그들을 다시 캔버스 위에 올려놨다. 이런 그림이 아주 잘 그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그림을 보는 감상자에게 무한한 해석의 세계를 열어주고 있다. 현대미술의 묘미에 아주 충실한 작품이다. 

 

제리가 테이블 가운데 놓인 그릇 위에 맘편히 걸터 앉아 치즈의 맛에 흠뻑 취해있다. 그 옆에 톰이 보인다. 눈을 부라리며 날카로운 발톱으로 당장이라도 제리를 낚아챌 기세다. 매번 골려주는데 재미붙인 제리와 늘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톰의 심리상태가 그림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 둘을 사이에 두고 검은 액자틀 하나가 놓여져 있다. 문제는 그 검은 액자틀이 진짜인지 아니면 가짜인지의 여부다. 어찌보면 뚫려 있는 액자틀 속에 톰이 고요히 잠복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보면 톰을 그린 그림에 불과한 것 같기도 하다.

 

감상자를 갸우뚱하게 하는 데는 뒤에 놓인 액자들도 한몫한다. 화가는 맨 앞에 놓여진 액자틀만 정면으로 제시한 채 나머지 액자는 측면으로 돌려 그것이 어떤 그림인지 정확히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이것이 탁월한 센스다. 

 

나는 아마 모든 액자에 톰이 그려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이 화실은 고양이를 좋아하는 화가의 화실일 것이며 그 화가는 자신의 반려자와 다름없는 고양이 톰을 이번 전시 작품의 모델로 삼아 화실 전체를 꾸며 놓았을 것이다.  


'톰의 화실'에 잠입한 제리는 처음부터 이렇게 양반처럼 앉아 느긋하게 승리의 자세를 취했을 것 같진 않다. '이게 진짜 톰이야 아니야?' 하며 슬금슬금 곁눈질로 톰의 액자들을 신중하게 하나하나 짚어 나가면서 결국 '이건 그림이야!' 결론 내린 후에야 마음을 놓았겠지. 

 

제리의 털이 흰색이란 점도 퍽 흥미롭다. 원래 제리의 털 색깔은 붉갈색이다. 일반적인 쥐에 대비되는 존재임을 부각시키려고 한 듯 보이는데, 실험용 쥐처럼 정말 우둔함을 나타내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뭔가 다른 특출난 존재임을 드러내려고 한 것인지, 그것을 감상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제리가 모든 치즈를 의기양양하게 먹어치울지, 톰이 액자틀에서 튀어나와 제리를 먹어치울지,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과연 무엇이 맞는지는 이 그림을 그린 짓궂은 톰의 화가만이 알겠지. 

 

<작품: Tom and Jerry_유민석_2011>

    - 한국미술, 내일을 보다 / 2011 2. 9 WED - 2. 18 FRI / AKA Space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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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견딜 수 없던 혹한이 계속됐다. 집에 들어 앉아 있어도 추운 날, 이상한 소리에 보일러실에 들어갔더니 태평양 저리가라 물바다 되어 있었다. 보일러가 터졌는지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에 물바다가 되어있었다. 뭐 별수 없이 세숫대야를 놓고 퍼 나르기 시작했다. 한여름 장마철도 아닌 한겨울에 때 아닌 물난리라니 정말 귀찮기 그지없었다.


한 시간쯤 퍼 나르자 대충정리가 됐다. 보일러실에 물 한번 고였을 뿐인데 아주 귀찮음의 극을 달리고 있었다. 맨날 물난리가 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도 귀찮나 싶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나 어릴 적 연탄불로 한겨울 나던 시절 엄마는 맨날 연탄불을 갈고 관리하고, 얼마나 귀찮았을까 싶다. 보일러라는 편리한 시설에 너무도 물들어 겨울에 그거 조금 움직였다고 이렇게나 짜증나고 귀찮은데 말이다.


엄마에게 달려가 물었다. “엄마~ 우리 예전에 겨울 준비할 때 연탄 얼마나 준비했어? 백장? 이백장?” 엄마는 잠시 생각하지더니 “계산해봐 하루에 두 장 정도 쓰니깐 얼마나 드는지” 겨울이 대략 3개월이라 쳐서 계산 두두려봤더니 백장은 택도 없었다. 


잘은 기억안나지만 겨울에 연탄을 얼마나 들여놓느냐에 따라 그 집안의 부가 상징됐던 거 같다. 돈이 없어 50장 놓는 집, 돈이 있어 한번에 100장, 200장 씩 들여 놓는 집. 연탄이 차곡차곡 쌓인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왠지 뿌듯하고 든든해지는 기분이다. 


예전엔 연탄을 빌려주기도 했다. 우리 집도 종종 옆집 아주머니에게 연탄을 빌려주고는 했는데 나중에 아저씨 월급날이 돌아와 연탄을 들여놓을 때 갚아주고는 했다. 지금으로 비교하면 기름보일러 기름 빌려주는 거랑 비슷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래서 겨울나기에 연탄은 중요하다는 것을 어린나이지만 조금이나마 깨달았던 거 같다.


사실 나에게 연탄은 노는데 사용한 기억이 대부분이다. 지금처럼 쓰레기 버리는 곳이 정해져 있지 않던 예전에는 대문 옆 담벼락에 주로 연탄재를 쌓아 놓고는 했다. 겨울철이면 골목 곳곳 쉽게 찾아 볼 수 있던 것이 연탄재였다. 

겨울에 놀 것도 없던 애들에게 연탄재는 참 차고 놀기 좋은 장난감이었다. 물론 연탄재 차고 놀다 동네 어르신들에게 많이도 혼났다. 가끔 짓궂은 아이들은 연탄재를 친구들에게 던지기도 해 옷이 먼지투성이가 되기도 했다.



사실 연탄재 재활용의 최고봉은 눈사람 만들 때다. 지금은 연탄재가 없어 그냥 눈을 뭉쳐서 눈사람을 만들지만 예전엔 연탄재를 굴려서 기본 틀을 잡아 눈사람을 만들었다. 연탄재를 몇 바퀴 굴리면 순식간에 커다란 눈덩이가 만들어지고는 했는데 아무래도 안에 연탄재가 들어있다보니 그 눈덩이는 단단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연탄재가 기본 틀을 단단히 잡아주니 만들기가 편했다. 가끔은 안에 연탄재가 들어있는 줄 모르고 눈사람을 부시다가 다리 아파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연탄재는 최고의 아이템이었던 셈이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연탄재는 겨울철 꼭 필요했는데 눈이 녹지 않고 얼어버린 골목길 제설(?)용이었다. 제설이라는 단어는 사실 어울리지 않지만 빙판길에 연탄재 몇 개 부셔 놓으면 어르신들도 언덕길 오르는데 문제없었다. 지금도 우리 집 앞에는 아직도 눈이 그대로 얼어붙어 빙판길인데 연탄재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가스보일러가 생기면서 집에서는 편리해졌지만 골목길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편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연탄이 없어지면서 연탄재는 사라졌다. 사라진 것은 연탄재만은 아니었는데 연탄에 꼭 필요한 번개탄과 연탄집게도 볼 수 없게 됐다. 번개탄은 연탄불을 피우는데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종종 엄마의 심부름으로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사오고는 했는데 그렇게도 불이 안 붙던 연탄이 번개탄 하나면 순식간에 불이 붙고는 했다. 어린나이에 번개탄의 능력은 거의 해리포터 수준이었다.


연탄집게에 대해서는 사실 좋은 기억이 없다. 맨날 잘못하면 엄마한테 연탄집게로 맞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좋은 기억이 있을 리가 없다. 그냥 사라진 편이 나는 좋다.(웃음) 그게 쇠로 만들어진 거라 생각보다 맞았을 때 많이 아프다. 그래서 연탄 갈 때 잘못한 걸 엄마에게 걸리지 않는 편이 좋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식이 잘못했을 경우 들고 있는 물건으로 때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연탄은 없어졌다. 그 덕에 연탄가스 중독 같은 사고도 없어졌다. 보일러는 꺼질 염려 없어 많은 어머니들, 며느리들의 걱정을 덜어 줬고 늦은 밤 연탄불이 꺼져 발을 동동 구를 필요도 없어졌다. 지금의 연탄은 구시대의 유물이 됐고 번화가 간판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가 됐다. 그래서 은은했던 연탄불에 구워 먹던 가래떡도, 달고나도 연탄과 함께 아련한 추억이 됐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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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1.08 09:17

    비밀댓글입니다

2013.01.03 19:18



MB정부가 저물어가는 요즘, 정부에서 통 듣지 못한 말이 있으니 바로 ‘인하’라는 단어 같다. 인하라는 단어를 언제 들었는지조차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그 정도로 지금은 기름값뿐만 아니라 생계에 유지하는 기본적인 식료품부터 해서 공공요금, 대중교통 요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치솟아 언제부터인가 만원으로 제대로 된 물건 하나 사기도 쉽지 않다.

만원이라는 돈의 단위는 작은 단위가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지갑에 달랑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있으면 이보다 가볍게 느껴질 수가 없다. 차라리 천 원짜리 10장이 오히려 더 두둑한 느낌이 든다. 이처럼 만원이라는 단위는 어느새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없는 작은 돈 단위가 돼버렸다. 만원으로 버스 10번도 못 탄다. 그것도 광역버스를 탈 시에는 왕복이면 끝이다.


요즘 연일 고공 행진을 자랑 중인 유류를 보면 1리터당 1,920원이라 했을 때 만원으로 고작 5리터 조금 넘게 주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12Km/L 연비의 차량으로 운행할 수 있는 거리는 50Km, 이는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오산역까지 갈 수 있는 거리다. 사실 이것도 통행료까지 포함한다면 어림도 없다. 고속버스를 타면 동서울터미널에서 대전역까지 갈 수 있다.

대형 마트에서도 만원은 그리 크지 않다. 계란은 60개를 살 수 있고 삼겹살은 반 근 정도 살 수 있다. 쌀은 2kg 정도 구매가 가능하며 소고기는 100g 정도다. 이 정도가 마트에서의 만원의 가치다. 이제는 아이들의 입장에서도 만원은 이제 크지 않은 돈이 됐다.


과자고 아이스크림이고 대부분은 천원이 넘으니 아이들에게 용돈이랍시고 천 원짜리 주던 시절은 지난 것이다. 이젠 길 위의 떡볶이를 먹어도 천 원짜리는 없다. 아이들에게 용돈으로 만 원을 줘도 친구들과 과자 몇 개, PC방 몇 시간, 간식 몇 번 먹으면 순식간이니 아이들도 만원이라는 돈의 단위도 그다지 크지 않게 됐다. 점심시간에도 만원으로는 많은 것을 할 수 없다. 서울권 평균 점심 식사비용은 7~8천 원 선. 식사 후 커피숍에서 판매하는 커피는 엄두도 낼 수 없어 자판기 커피가 고작이다.


요즘 직장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내 연봉 빼고는 다 올랐다.”라는 말을 종종 듣고는 한다. 분명히 농담인 줄은 알지만, 이것저것 할 것 없이 오르는 물가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소리라 괜스레 씁쓸하다. 


답답함을 달래주던 담뱃값도 선진국 수준으로 인상, 퇴근 후 한숨 쉬며 마시는 소줏값도 인상. 정말 오르지 않는 건 내 연봉과 내 새끼 성적뿐이다. 경제 대통령이라고 구호를 내걸었지만 내리지 못해 올리기만 하는 건지 참으로 답답할 따름이다. 이젠 정말 아무렇지 않게 터져 나오는 인상소식에 저절로 얼굴에 ‘인상’써질 뿐이다.


written by 저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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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에서] 지구 멸망과 동지 팥죽의 관계


1221? 세상이 망하는 날이잖아. 지구 종말, 마야사람들 똑똑해요. 진짜로 멸망할거야? 사과를 심을까? 여긴 배잖아. 그럼 배를 심어야지.”

 

요리사가 불안해하네요. 선장이라는 사람이 한소리 하니 요리사가 아까부터 저러고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은 요리사에게 밥 얻어먹기 힘들 수도 있겠어요. 나쁜 선장 같으니라고.

 

2012 1221일이 무슨 날인줄 알아?

 

선장이 이렇게 말했는데요. 그날에 요리사에게 무슨 큰일이 벌어지는 걸까요? 걱정입니다. 요리사가 없어지면 제가 굶어 죽을 수도 있거든요.

 

옆에서 숙취를 이기기 위해(?) 해장술을 마시고 있던 선의가 끙끙거리면서 물어보네요. 그리고 선장은 대답을 하고요.

 

선의 선장이 지구 멸망 같은 거 기다릴 사람 같지는 않고. 그럼 20121221, 그날이 무슨 날인데요?”

 

선장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 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는 날, 팥죽 먹는 날!!!!

 

선의 맞다. 그날이 동지(冬至)군요. 그래서 아까 요리사한테 팥을 씻으라고 했군요. 그런데 의미심장하네. 지구 종말과 해가 가장 짧은 날이라. 뭔가 연관이 있나 봐요?

 

 저는 치즈 먹는 것을 그만두고 싱크대에 있는 요리사를 봤어요. 아까부터 달콤한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더라니, 팥죽이라는 것이 뭔지 모르지만 굉장히 맛있을 것 같아요. 제가 그러거나 말거나 둘은 대화를 계속 합니다. 누구보고 들으라는 건지.

 

선장 동지를 한해의 끝으로 보기도 해. 해가 가장 짧은 날이니까.”

 

선의 , 그래서 마야사람들이 그 날을 지구 멸망의 날로 생각했던 거군요. 어둠이 제일 긴 날이니 그럴 법도 하네요.”

 

선장 부활에 더 의미를 두지 않았을까? 해가 가장 짧다는 것은 다시 길어진다는 말이니까. 크리스마스가 말야, 크리스마스랑 동지랑 며칠 차이 안 나잖아, 원래는 페르시아, 유럽 등지에서 태양신, 농경신 등을 기리는 축일이었다고 해. 말하자면 태양의 생일이라는 거지. 나중에 예수의 생일이라는 의미가 덧씌워진 거거든.”

 

선의 그러면 왜 사람들은 마야 사람들이 지구 멸망을 예언했다고 하는 거죠? 선장 말대로 라면 1221일은 멸망의 걱정하는 날이 아니라 시작을 축하하는 날이잖아요. 새해처럼

 

선장 지금 마야에서 지구멸망을 예언 했니 어쩌니 하는데 사실 그건 다 구라야. 마야사람들은 멸망을 예언한 게 아니야. 그냥 자기들이 쓸 달력을 20121221일까지만 만들었던 거지. 달력 만드는데 93일까지 만들겠어? 아니면 한해 넘어가서 112일까지 만들겠어? 12 31일까지 만들지. 마야에서는 20121221, 올해 동짓날이 자기들이 생각하는 한 시대의 마지막 날인거야. 그리고 새 시대의 시작이기도 하고.

 

선의 . 기술력이 대단하네요. 몇 백 년 뒤 태양 위치도 계산하고. 그래도 이상하네요. 왜 굳이 2012년인 거죠. 2013년도 아닌.”

 

선장 마야 사람들 기준으로 한 시대가 5125년 정도였다고 해. 세상이 창조된 날, 즉 한 시대의 시작부터 5125년이 흐른 날이 바로 서기로 20121221일인거지.

 

선의 , 1365일도 길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쪽은 말하자면 1년이 5125년이라는 말이군요. 그 사람들은 정말 엄청나게 긴 세월을 생각하는 사람들이군요.”

 

선장 우리가 새해부터 새 달력을 쓰는 것처럼 마야 사람들도 그때부터 새로운 달력을 쓰려고 했겠지. 500년 뒤의 달력을 뭐 하러 미리 만들겠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선의 . 말하자면 내년에 한글날이 휴일인지 아닌지 확정되지 않아서 달력제작업자가 2013년 달력을 늦게 인쇄하는 거나 마찬가지네요.”

 

 

선장 오 괜찮은 비유. 마야문명이 침략자들을 물리쳤다면 올해부터 새로운 달력을 만들어 사람들한테 나눠준다고 부산을 떨었겠지. 아니면 기존에 쓰던 달력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마야달력은 해, , 행성의 운행을 모두 고려해서 만들었다고 하자나. 그러니까 마야사람들은 5125년마다 정확히 반복되는 천체운행의 비밀을 알았던 거지. 믿거나 말거나.”

 

선의 쓸 자리가 모자랐을 수도 있겠네요. 아쉽네요. 마야문명이 남아있었으면 5125년 만에 오는 새 시대를 맞이하는 축제를 크게 했을 텐데. 우리도 가서 신년음식 먹으면서 축제를 즐겼을 거고, 술도 먹고......아침 먹고 술, 점심 먹고 술, 저녁 먹고 술, 창문을 열어보니 술이 오네요. 술고래 세 마리가 비틀거리는데 아이구 좋아라 술꾸러기.”


선장 그놈의 술타령 그만 해라. 안 그래도 우리끼리 동짓날 축제라도 벌이자고 하던 참이었어. 팥죽도 먹고, 선의가 좋아하는 술도 먹고. 그만 둘까보다.”

 

선의 반드시 해야해요. 술 때문이 아니라 마야인들을 추모하기 위해서, 술을 먹, 아니 축제를 해야 해요. 그들이 못다한 축제를......”

 

선장 어쩌다보니 마야 이야기만 길게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동지를 한해의 시작으로 생각하기도 했어. 동지를 작은설이라고 부르고, 동짓날에 다음해 달력을 나눠주기도 했대. 떡국같은 새해음식인 팥죽도 쑤어먹고. 팥죽은 겨우내 허해진 기운을 보충해준대. 또 팥죽이 악귀를 쫓아서 죽음이나 나쁜 일도 예방 한다고 하고.”

 

지루한 연극 같은 대화를 이제야 끝났어요. 누가 쓴 대본인지 진짜 연극이었으면 망했을 걸요. 적어도 저는 저런 이야기에 관심 없거든요. 팥죽이라는 음식에는 조금 관심이 가지만요. 이때 지금까지 말이 없던 요리사가 입을 열었어요. 


요리사 그럼. 팥죽 먹으면 지구 멸망 안 해? 안 죽는 거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선장이 대답합니다.

 

선장 그래그래. 팥죽 먹으면 안 죽어. 다 살아. 멸망 안 해.”

 

요리사 신난다. 팥죽 만들어야지. 1221일은 팥죽 먹는 날이다!!!

 

선장 그래그래. 1221일은 멸망하는 날도, 해가 가장 짧은 날도, 동지도 아니다. 그냥 팥죽 먹는 날이야. 팥죽 먹는 날.”

 

착한요리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오늘 저녁은 거하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선장과 선의가 계속 말을 합니다. 저는 관심 없지만요.

 

선의 그나저나 마야사람들 말대로 새시대가 왔으면 좋겠어요.”

 

선장 제발 좀 왔으면 좋겠어. 우리 해적질도 좀 잘되고.”

 

선의 1221일에 다 같이 해 뜨는 거 봐요. 다시 길어지는 태양 보면서 술이나 마시죠. 맛나게.”

 

선장 새시대의 태양이라. 좋지."


요리사가 커다란 솥에 무언가를 끓이고 있어요. 아마도 저게 팥죽이라는 건가 봅니다.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들리고, 달콤한 냄새가 나네요. 배가 고프네요. 조용히 있던 앵무새가 크게 울음소리를 냅니다. 앵무새도 배가 고픈 모양입니다. 빨리 요리사가 팥죽을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Fin-

 

Written by 주방의 새앙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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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녁. 머리 큰 사내 넷이 오랜만에 대포집에 눌러 앉았다. 모듬전 하나에 놓고 막걸리 몇 잔 돌자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했다. 사는 이야기, 결혼, 직장 이야기 등. 그 중 네 명의 남자를 집중 시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바로 불후의 명작인 드래곤볼이었다. 일게 만화책 이야기라 할지 모르지만 드래곤볼은 전설이었고 드래곤볼 없는 어린 시절은 생각하기도 싫다. 어린 시절 이야기였던 것 때문인지 네 남자의 이야기는 사뭇 진지했는데 이유인 즉, 드래곤볼의 등장인물인 크리링 때문이었다.


이 : 드래곤볼 보면 항상 손오공만 쌔서 나는 사실 베지터가 더 좋았어. 특히 마인부우랑 싸우다 자살하잖아. 그때 트랭크스를 안아줄 때 좀 멋졌지.


최 : 확실히 츤데레한 남자였지. 손오공이 쌔서 그러지. 그 뭐야 필살기 있자나. 지구 날리는 기술.


김 : 파이널 플래시!


최 : 맞아! 파이널 플래시. 그거 쓸 때 지구 날라 갈까봐 온 힘을 다하지 않잖아. 그게 멋있는 거야.


임 : 그러보면 드래곤볼은 지구인들은 다 약하고 외계인이 쌔. 보면 손오공도 베지터도 다 다른 별에서 온 외계인이야. 크리링은 지구인인데 약하잖아.


최 : 야! 너 크리링 무시하냐?!


이 : 맞아! 그래도 크리링이 지구인 중엔 최강이다.


임 : 아니야. 걔 있잖아. 누구야 눈 세 개 달린 애. 걔가 더 쌔지 않아?


김 : 천진반. 눈 세 개 달린 애.


임 : 왜 그 기술 있잖아. 손 모아서 쓰는 거.


이 : 기공포.


임 : 그래. 기공포. 그거 짱 쌔잖아.


최 : 크리링에겐 그 뭐냐(손바닥을 하늘로 보이며) 그 기술 있잖아. 그거.


이 : 기원참!


최 : 그래!! 기원참. 그걸로 옛날에 쿠우라 아들 걔 누구야. 프리져. 걔 꼬리 자르는 거 너 모르냐? 나메크 별에서 싸울 때 크리링이 기원참 두 개 만들어서 던져서 프리져 꼬리 자르잖아. 천진반은 뭐한 게 없잖아!


이 : 천진반은 셀한테 기공포 쏘다 죽지. 죽으면 아무 소용없어 살아야되. 그래야 의미가 있는 거니깐.


임 : 천진반은 태양권도 있어!


이 : 야! 그건 크리링도 써. 크리링은 내용상 항상 손오공과 함께하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한 녀석이야. 죽기도 오지게 죽고 말이야. 아마 살아난 횟수로 따지면 크리링이 젤 많을걸? 아마 지구인이 아니고 사이어인이었으면 최강이었을 거야. 부활만 여러 번 했으니깐.


최 : 손오공 초사이어인 만들어준 것도 크리링이다. 프리져가 크리링 죽여서 그거 보고 손오공이 빡쳐서 초사이어인 된 거 아냐. 아무튼 크리링 무시하면 안 된다.


김 : 크리링은 보면 진짜 만화 초반부터 나오긴 해. 무천도사랑 손오공이 수행할 때 같이 하잖아. 거의 나오는 등급은 주조연급이야.


이 : 맞아. 그리고 크리링은 코도 없다.


최 : 그거랑 코 없는 거랑 뭔 상관이야! 


이 : 아, 뭐 그렇다고. 아무튼 셀 잡고 나중에 천하제일 무도회에서 야무치가 그러자너. 크리링은 지구인에서는 최강이라고. 그래서 크리링이 최강이지.


최 : 야무치는 역시 낭아풍풍권이지!(나름 비슷하게 모양을 취하면서)


이 : 크리링은 나중에 18호랑 결혼도 하잖아. 내가볼 땐 드래곤볼에서 18호가 가장 예쁜데. 근데 크리링이 꼬셨어! 인생의 승리자는 역시 크리링이야! 난 아직 애인도 없는데 말이야. 


최 : 넌 크리링보다 못한 새끼라서 그래. 그리고 천진반은 결혼 못하고 계속 수행하더라. 인생으로나 무술로나 크리링이 한 수 위야. 아무튼 크리링은 프리져의 꼬리를 잘랐기 때문에 지구인중 최강이라고! 




처음 시켰던 막걸리가 동나고 다시 한 병을 더 시켰을 때 네 남자의 진지한 드래곤볼에 대한 토론은 끝이 났다.

아, 결론은 프리져의 꼬리를 자른 크리링이 ‘지구 최강의 사나이다’로 났다. 뭐, 사실일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네 남자들에게는 크리링이 지구 최강의 사나이였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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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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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8.15 05:46 신고

    음 그래 그렇구나~

  2. 2016.01.20 20:55 신고

    아쉽게도 지구최강은 우부에요.. 그래도 크리링이 더 상징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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