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하기 하나.


내가 일하는 곳은 주로 술을 파는 곳이긴 했지만 초저녁이면 종종 식사를 목적으로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있다. 워낙 분위기가 ‘술 먹자!’하는 분위기라 많지 않지만 찌개라는 메뉴 때문인지, 가게이름 때문인지 백반집으로 착각해 들어오는 손님들이 더러 있다. 물론 자리에 앉았다가도 식사거리가 없다는 것을 판단하고는 다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없는 식사 손님들 중에서도 혼자오시는 분들도 종종 있는데 주로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 남자손님이었다. 그런 분들 역시 자리에 앉았다가도 다시 나가시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 왠지 알 수 없는 짠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불쌍해서가 아니라 힘든 하루를 정신없이 보내고 가벼운 술 한 잔으로 자신을 달래려하는 가장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 직원은 그런 모습을 보며 “혼자 오는 손님은 분위기 망치니깐 받지 말자”라는 제안을 했다.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 분위기가 나빠지는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에게 있어서 혼자 밥 먹는 사람은 가게의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에 대해서 많이들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혼자 밥 먹는 것이 나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나도 어렸을 적엔 혼자서 밥을 먹거나 한 적은 없다. 누가 가르쳐서가 아니라 사회분위기가 그랬던 것 같다. 

 

이웃마저도 사촌이라 칭할 정도로 오지랖 넓은 나라이다 보니 혼자 식사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지도. 더불어 결혼을 하지 않으면 불효요, 사회문제인 세상에서 혼자 밥을 먹는 것은 한 인간의 성격문제이자 하자로까지 발전한 것 같다. 



혼자하기 둘.


친구로 보이는 여자 셋이서 온 손님이 있었다. 즐거운 분위기에서 영화이야기가 오가는 중 한 친구가 영화를 혼자 보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자 반대편에 앉아 있던 친구가 “왜 영화를 혼자 봐?”라며 그 친구를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절대로 혼자선 영화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한 친구가 이유를 묻자 주변은 다 여럿이서 오는데 자신만 혼자 보는 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화관은 왠지 혼자서 가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이 그녀의 이야기였다. 



같이 일하고 있는 한 친구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요즘 영화를 통 못 봐서 영화가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쉬는 날 가서 보라고 답해주자 혼자서는 영화를 안 본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원래 생활하던 집보다 조금 먼 곳에서 생활하다보니 주변에 친구가 없었다. 그래서 혼자는 영화관에 갈 수가 없어 영화를 볼 수가 없던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이 친구가 집에서는 혼자 영화를 잘 본다는 것이다. 출근해서 어제는 뭐했냐고 물으면 곧잘 집에서 영화 봤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집에선 혼자 보는데 왜 영화관에서는 혼자 못 봐?”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는 단순히 “그냥 혼자서는 영화관을 안 간다.”라고만 답했다. 


혼자 영화관을 갈 수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혼자 영화를 보진 않지만 집에서는 혼자 볼 수 있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땐 혼자 뭔가를 하는 것이 상관없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혼자 뭔가를 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그냥 혼자 영화를 못 보는 게 아니라 사람 많은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를 못 보는 것이다. 주변이 신경 쓰여서.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무엇인가 혼자 한다는 것을 조금은 측은하게 여기는 것이 정서인건 사실이다. 내 주변의 이야기나 상황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정작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유는 ‘주변의 정서’가 아닌 ‘사람들이 나를 어찌 생각할까하는 쓸 때 없는 생각’ 때문은 아닐까. 정작 세상 사람들은 아무도 나라는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데 말이다.



혼자하기 셋.


얼마 전 일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녀석과 그의 여자 친구와 함께 술자리를 가졌다. 그 자리에는 우리 세 사람 말고도 처음 보는 3명의 사람도 함께였다.

초면인지라 인사가 서로 오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별 생각 없이 “집에서도 종종 술을 마신다.”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내 말을 들은 한 친구가 ‘널 이해할 수 없어’라는 표정과 함께 “집에서 왜 혼자 술을 마셔?”라는 반문을 해왔다. 그래서 대답했다. “집에 있을 때 술이 생각날 때가 있잖아. 그래서 술을 마셔. 소주 한 병 정도 마시는데 꼭 누군가를 붙잡고 술을 먹어야하는 것은 아니잖아?”라고. 하지만 이 말은 들은 친구는 더 경악을 하며 “소주를 마신다고?!”라고 소리를 질렀다.


뭐가 문제였는지는 몰랐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것도 이상한데 거기에 소주를 마신다니 이건 알코올중독자나 할 짓이었던 것이다. 집에서 혼자 맥주를 먹는 것은 이해할 수 있어도 소주는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친구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아마 집에서 가끔 소주랑 맥주랑 섞어서 먹을 때도 있다고 하면 기절했을 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예전엔 ‘소주’라는 술과 ‘혼자’라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맥주를 집에서 혼자 먹는다고 하면 샤워를 마친 후 조금은 근사한 거실의 소파에 앉아 축구를 보며 마시는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반면 소주라고 하면 폐인 같은 모습으로 찌질하게 방바닥에 앉아 안주도 없이 먹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다. 


이런 선입견 대부분은 미디어를 통해 각인된 이미지인데 매번 드라마에서는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는 혼자 소주를 마시고, 잘나가는 젊은 이사님은 집에서 맥주나 양주를 먹는 모습만 보여주니 이런 선입견이 생기는 것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그 친구도 예전의 나와 비슷한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소주는 혼자 마시면 안 되는 것이라는. 사실 그 친구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한 것이 혼자 술을 먹기 때문이었는지, 혼자서 소주를 마시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난 내 자신의 욕구에 충실히 행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대학시절 나보다 어린 친구는 집에 가다 가끔 혼자 술을 한잔하고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한적 있다. 들었을 당시엔 ‘이상한 아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흘러 서른을 넘긴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아무것도 혼자 할 수 없던 나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성숙했던 아이였다. 


우리는 많은 것을 혼자하기 두려워한다. 혼자 할 수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주변의 시선 때문이다. 내가 이것을 혼자 하면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무의미한 생각으로 정작 하고 싶은 것은 못하고 산다. 바보같이.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주변의 시선에 대해 신경 안 쓰기로 유명했다. 시장 한복판에서 성욕을 해결하기 위한 자위행위도 서슴없이 할 정도로 그는 주변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본인 욕구에 충실했던, 그리고 주변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산 디오게네스는 행복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알렉산더 대왕이 다시 태어난다면 디오게네스로 살고 싶다고 했겠는가. 

뭐든 혼자 한번 해보자.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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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17 02:49 신고

    알찬 정보 좋네요~


성룡이라 하면 80년대에 태어난 이들에겐 영웅이자 최고의 스타였다. 물론 나도 어렸을 적 성룡의 액션 하나하나에 열광했고, 친구들과 비디오를 함께 시청한 뒤 성룡의 액션을 따라하며 뛰놀고는 했다. 우리의 윗세대에게는 이소룡이 있었다면 우리세대에는 성룡이었다. 


나는 특히 아시아판 ‘인디아나 존스’라고 불렸던 ‘용형호제’를 좋아했는데 특유의 성룡식 생활형밀착형 코믹액션이 잘 살아난 작품이었다. 이와 더불어 내 머리 속에 성룡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폴리스 스토리’였다.

영화의 제목처럼 폴리스 스토리는 성룡의 경찰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맨몸으로 나쁜 조직에 맞서 싸우는 성룡의 모습을 보고 어린 시절 경찰의 꿈을 가진 아이들이 종종 있었고, 나도 그 아이들 중 하나였다. 그랬기에 폴리스 스토리 2014는 기대가 컸다.



Take 1. 액션 없는 폴리스 스토리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사회적으로는 영웅이었으나 정작 자기 가정을 못 돌본 종 반장(성룡)은 사이가 좋지 않던 

딸과의 만남을 위해 ‘우’ 클럽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하게 되고 종 반장은 딸을 구하기 위해 인질이 된다. 인질이 된 종 반장은 클럽 내 납치된 사람 모두는 클럽 주인인 ‘우 사장’과 연관이 있었음을 알게 되며 자신도 그 일원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번 작품은 액션영화의 단골 소재인 납치와 이를 구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번 폴리스 스토리가 기존의 작품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액션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액션은 있으나 성룡식 액션은 없다. 

영화 초기 딸을 만난 종 반장은 딸을 납치한 동일범에게 공격을 당해 감금당하게 되고 의자에 몸이 묶인 체 감시를 당하게 된다. 여기서 탈줄 장면을 살펴보면 묶고 있던 철사를 풀고 몇 차례의 공격으로 가볍게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습은 성룡의 액션이 아니다. 


기존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에선 완벽한 액션은 사실 없었다. 어딘가 어수룩한 모습으로 주변 사물을 이용한 액션을 펼쳤고, 이것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예전 성룡이었다면 의자에 묶인 철사를 풀고 싸우는 것이 아닌 묶인 체 의자를 이용한 액션을 선보였을 것이다. 


이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폴리스 스토리 2014의 스토리 전개는 대부분 대화로 풀어간다. 기존의 폴리스 스토리에서 액션으로 스토리를 풀어가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영화중반부 긴 액션장면이 있으나 이는 크게 중요한 장면은 아니다. 후반부에 이르러서 액션 장면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대부분 대화를 통해 이야기 전개시킨다.


기존의 액션을 통한 빠른 스토리 전개에 비해 이번 작품은 대화를 통한 느린 스토리 전개를 선보인다. 이 영화가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이다.



Take 2. 1인 영웅물의 전형적 메타



영화 초반 성룡은 택시를 타고 번화가로 가게 되는데 뒷좌석에 앉아 있는 성룡은 매우 피곤한 모습으로 잠들어있다. 성룡이 피곤한 모습으로 번화가를 찾은 이유는 바로 딸의 연락을 받고 딸을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이 장면은 2007년에 개봉한 ‘다이하드 4.0’의 초반 부분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다. 


다이하드에서의 존 맥클레인은 사회적인 영웅이지만 정작 자기 가정은 잘 돌보지 못해 아내와는 이혼한 상태이며 딸과는 사이가 좋지 못하다. 폴리스 스토리 2014 역시 사회적으로는 영웅이지만 정작 본인의 아내는 지키지 못했고 딸과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 


사실 이런 유형은 과거 유행을 주도 했던 1인 영웅물 시리즈의 전형적 메타다. 주인공의 늙음과 함께 ‘사회적으로는 영웅이지만 정작 본인의 가족은 지키지 못했다’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라는 희생과 사랑으로 가족을 구하며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영웅이 되어 감동을 안겨준다. 


폴리스 스토리 2014 역시 딸과의 오해-불화-납치-구출-행복 식의 전형적인 흐름을 취하고 있고 이 점은 ‘이 영화에선 성룡식의 화려한 액션은 볼 수 없다’라고 선고하고 있다. 아무래도 딸이 납치된 상황에서 우스꽝스럽게 싸울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덕분에 이번 폴리스 스토리 2014는 굉장히 어중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시원한 액션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탄탄한 반전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 홀로 테러 집단과 싸우는 모습은 ‘다이하드’의 모습을 띄고 있고, 딸을 구하는 모습은 ‘테이큰’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계속해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은 성룡의 특유의 액션의 부재가 가져온 결과였다. 



Take 3. 아쉬운 그래서 더 아쉬운




기존 폴리스 스토리의 재미는 성룡의 액션의 다양화였다. 액션의 정석이 이연걸이라면 성룡의 액션은 주변사물을 이용한 액션이었다. 지금처럼 화려한 CG로 무장된 액션이 아닌 성룡이라는 배우 그 자체의 액션이었다. 그러나 폴리스 스토리 2014에서는 이러한 액션을 조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종종 있는 액션장면도 둔탁하고 무겁다. 그것을 커버하기에 스토리 라인은 허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성룡은 60세의 나이다. 당연히 예전 전성기의 액션을 선보이기는 이미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났다. 성룡의 액션을 따라하던 꼬마 역시 30대의 나이가 됐다. 어린 시절 영웅의 늙음은 나의 늙음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늙음을 부정하기위해 그의 화려한 액션을 더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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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17 17:12 신고

    전 굉장히 감동깊게 봣습니다, 평이 너무안좋아 늦게나마 봤니요~ 딸의 초반 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네요, 액션영화로는 별로나,,, 경찰영화로는. 손색없는것 같네요

    • 2014.05.18 17:00 신고

      아마 폴리스스토리라는 전작들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거기서 오는 실망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저 역시 시원시원한 성룡의 액션을 크게 기대했기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컷던 거 같고요.


오후 7시쯤 친구 녀석에게 한통의 전화가 왔다. “블랙데인데 짜장면 먹어야하지 않겠냐?” 블랙데이라고 해서 4월 14일 날 솔로인 사람들이 짜장면을 먹는 날이라고 한다. 언제부터 이런 것이 생겼는진 모르겠지만 솔로인지라 짜장면은 맛있게 먹었다. 


생각해보면 짜장면은 우리나라 음식도 아닌데 이런 기념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조금 이상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음식이기에 이런 기념일도 생겼을 거란 생각이다.

짜장면이라 함은 채소와 고기를 넣고 기름과 춘장을 넣어 볶아서 만든 양념을 면과 비벼먹는 한국식 중화요리다. 중국에서 처음에서 만들어졌지만(중국에서는 작장면이라 불린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진 후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원작보다 리메이크가 더 성공한 사례라고나 할까?


중국식 짜장면인 작장면은 우리식 짜장면과 다르게 단맛보다는 짭짤한 맛이 강해 춘장을 사용하기는 하나 많이 넣지 않는다고 한다. 최초의 한국식 짜장면은 1905년 인천에 거주하는 화교들에 의해서 처음 만들어졌는데 최초의 중화요리집인 ‘공화춘’에서 개발되었다고 한다. 이후 50년대 중반 춘장에 카라멜을 첨가하면서 지금의 우리 입맛에 맞는 짜장면이 탄생했는데 당시 정부에서 펼친 ‘분식장려운동’과 맞물린 짜장면은 급속도로 퍼지며 대표적 국민음식이 됐다.


짜장면의 가격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해갔다. 60년 초엔 15원, 70년도엔 200원, 80년도엔 500~700원, 90년도에 들어서 1,300원을 돌파했으며 90년도 말에는 2,000원을 기록, 현재에 들어서 4,500원 정도의 가격으로 인상됐다. 오랜 시간동안 가격도 많이 올랐지만 그래도 한 끼 식사로는 가장 싼 음식일 것이다. 만원을 줘도 치킨 한 마리 제대로 시킬 수 없는 요즘 같은 세상에 5천 원 정도의 돈으로 한 끼를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짜장면이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는 동안 한편으로 매콤하고 속까지 확 풀리는 시원한 국물을 주무기로 한 짬뽕이 대중에게 사랑을 받았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짜장이냐? 시원하고 얼큰한 짬뽕이냐를 놓고 누구나 한번쯤은 심각히(?) 고민했을 것이다. 오죽하면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는 질문 다음으로 고민되는 것이 짜장, 짬뽕 선택이었을까. 그래서 차후 사람들은 이 고민을 해결하고자 ‘짬짜면’, ‘짜볶면’ 등 두 가지 음식을 동식에 먹을 수 있는 메뉴를 만들어 냈고 큰 인기를 끌었다.


짜장면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것이 저렴한 가격과 맛뿐이었을까? 짜장면하면 짬뽕과 더불어 떠오르는 것이 있으니 바로 철가방이다. 즉, 배달이 가능했다는 건데 우리나라의 배달문화를 이끈 장본인이라고 봐도 무색할 정도로 음식 배달계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짜장면이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았던 것도 이 철가방과 배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짜장면은 빨리 배달을 하지 않으면 면이 불어 맛이 떨어지는데 그 어떤 음식보다 빠른 배달을 요했고, 한국인의 급한 성질과도 잘 맞아 떨어져 대표적 국민음식이 된 것은 아닐까싶다. 



이제 수많은 먹거리의 풍요 속에서 짜장면은 전화만 하면 오는 가벼운 음식이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 짜장면은 졸업식이나 가족외식으로만 먹었던 분위기 있는 음식이었다. 지금은 다른 여러 음식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있어 짜장면은 귀하고 분위기 있는 음식임은 틀림없다. 더불어 치솟는 물가 속에서 여전히 저렴한 가격으로 남아준 짜장면에게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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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투름 하나.


살아오면서 알바를 많이 했지만 지금처럼 직접적으로 음식을 했던 적은 없었다. 찌개를 끓이고, 고기를 삶고, 볶고, 정해진 레시피에 따라 만드는 음식은 사실 어렵지는 않았다. 단지 요리를 많이 해본 적 없는 난 요리를 하는 것이 서툴렀다.


찌개를 끓일 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어 짜게 만들었고, 볶음 요리를 할 땐 팬을 돌리는 게 서툴러 데이기 일쑤였다. 고기는 너무 오래 삶아 다 흐물흐물해질 때도, 너무 불을 일찍 꺼 덜 익히기도 했다. 상품으로 내놓는 요리가 처음인 나였기에 서툴러 벌어진 일들이었다. 특히 내가 가장 서툴렀던 것은 칼질이었다.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는 밥 꼬박꼬박 먹고 다녔던 난 칼질이라고는 피자나 스테이크 먹을 때 써봤던 것이 고작이었다. 그랬던 내가 요리를 하기 위해 양파를 썰고 파를 다지고 하니 내 손은 남아나질 않았다. 툭하면 베이고 긁혔고 손에 반창고가 떨어진 날이 없었다. 한번은 칼에 베인 상처를 그냥 두고 일을 했다가 세균이 침투, 감염되어 깁스를 하기도 했으니 이쯤하면 칼은 나에게 있어 흉기나 다름없었다. 서투른 칼질은 나를 힘들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익숙해져가는 칼질을 보며 뿌듯함과 재미를 주기도 했다.


지금은 칼에 베이는 일도 없어졌고 칼질 속도도 엄청 빨라졌다. 찌개는 짜지 않게 끓이게 됐고, 고기는 적당히 잘 익어 맛이 좋았다. 처음엔 모든 것이 너무 서툴기만 해 힘들고 어려워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한 가득이었다. 베인 손가락에서 나오는 피를 보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도 들고 괜한 재능 탓도 하곤 했다. 


하지만 처음엔 모두들 그렇게 서툴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서툴렀기 때문에 재미있었고, 웃을 수 있는 일도 많았다. 모든 것이 능숙해져 심심해진 지금, 오히려 서툴렀기에 즐거웠던 그때를 생각하며 웃고는 한다.



서투름 둘.


세상살이가 난 항상 서툴렀다. 일도 사랑도 모든 것이 서툴렀던 것 같다. 처음이었기에 ‘그럴 수 있어.’라고 달래보아도 실수했던 것들을 생각날 때면 그저 기억을 지우고 싶다. ‘그땐 왜 그랬지?’, ‘그러지 말걸.’이라며 스스로 반성도 해보지만 뒤늦게 드는 후회일 뿐이었다.


스무 살이 되어 처음 사귄 여자 친구가 있었다.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정식으로 이성과 교제한 것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때 내가 그 사람에게 했던 행동들을 돌이켜보면 정말 ‘쓰레기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투른 연애를 했다. 


술에 취해 늦게 전화하기도하고 했고 알바 때문에 힘든 것을 알면서도 제대로 된 따뜻한 말 한마디 해준 적 없었다.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면 그걸 그 자리에서 고치려 했다. 배려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서투른 연애는 당연히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이었기에 서툴렀어.’라고 말하기에는 잘해준 것이 너무 없어 지금 생각해도 미안함과 후회뿐이다. 지금 어디에서 우연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꼭 사과를 하고 싶을 정도다.

후회만 남긴 첫 연애가 약이 됐는지 다음 연애는 조금이나마 배려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안에서도 또 다른 실수를 하고 같은 이별을 반복하며 다시 후회를 했다. 


나의 20대는 ‘잘했다!’라는 뿌듯함 보다는 ‘왜 그랬지?’하는 후회가 더 많다. 30대가 된 지금 생각해도 이불 뻥뻥 찰 정도의 부끄러운 실수도 많았다. 그래도 후회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치열한 삶을 살았다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서투른 실수 속에서 난 많은 것을 배웠고 성장했다.


서투름은 항상 실수를 부른다. 하지만 세상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실수를 통해 배우고 성장해 간다. 어쩌면 서툴다는 것은 성장할 기회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서툴러 실수투성이였던 그 시절이 더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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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0.08 10:59

    비밀댓글입니다

2014.03.14 22:43




겨울은 잔인한 계절이다. 여유롭고 있는 자야 설경이 아름다고 낭만적인 계절일지 모르지만 겨울은 없으면 없을수록 잔인해진다. 특히 백수에게 겨울은 더욱 혹독하고 잔인한 계절이다. 겨울이 백수들에게 지옥인 건 일단 춥기 때문이다. 


추워서 어딜 나갈 수가 없다. 날이나 따뜻하면 산책도하고 공원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지만 한겨울에 공원가면 얼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집에 뒹구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럼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방구들 무너져 이놈아!!”하시며 등짝 스매시를 날리신다. 


여기서 어머니의 잔소리 강도는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 길수록 강도가 높아진다. 초기에는 넋두리 식으로 “이제 나이도 있는데 빨리 좋은 자리 잡아야할 텐데.”, “너만 취직을 하면 내가 걱정이 없겠다.” 정도의 잔소리다.

 

백수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식 존재 자체의 부정을 시작하시며 생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예를 들어 “어휴~ 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놈 안 잡아가고” 식으로 사신에게 죽음을 요청하기도 하며 “내가 저걸 낳고 미역국을 먹었으니 내가 미쳤지”, “으휴~ 저런 게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나 몰라!” 식의 자식존재를 부정하신다. 물론 이런 잔소리를 들을 때쯤이면 이미 백수생활에 익숙해졌기에 큰 멘탈의 손상은 없다.


백수생활이 장기화되었을 땐 오히려 어머니의 잔소리가 줄어든다. 다만 얼굴만 보면 그저 한숨만 쉬신다. 이쯤 되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죄인이 따로 없다.

본론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해 잠시 외출이라도 하려면 옷이 문제다. 밖에 나갈 일이 많이 없다보니 옷을 살 일도 없다. 여름이면 그냥 천 쪼가리 몇 개 걸고 나가겠지만 겨울엔 답이 없다. 언제산지도 기억 없는 옷들로 꽁꽁 싸매고 나가도 갈 곳이 없으니 춥다. 돈 없고 갈 곳 없는 백수에게 겨울은 뭘 어떻게 해도 추울 뿐이다.


그래도 백수가 겨울 내내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름보다 겨울에 공식적인 외출이 많을 수 있는데 바로 연말연시 모임들 때문이다. 그러나 백수에게 연말모임은 그리 즐거운 자리는 아니다. 


동네서 가볍게 친구들과 만난다면 얼굴에 철판 깔고 친구들에게 빌붙기 쿠폰을 사용하겠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회비는 차마 피할 수가 없다. 물론 모든 상황을 아는 친구들이야 회비보다 얼굴 한번 비춰주는 선에서 모든 걸 용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참 자리하기가 어렵다. 이와 비슷하게 지인의 ‘결혼’이라는 비보를 들을 때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백수에게 겨울이 잔혹한 건 명절이 있는 탓도 있다. 신정이야 그냥 넘어간다지만 온 친인척이 다 모이는 구정연휴엔 심한 고행의 길을 걷게 된다. 만나는 친척어른들은 하나 빠짐없이 “취업은 했니?”라며 물어오게 되는데 여기서부턴 마음을 비우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그래도 백수인 본인의 선에서 끝내는 잔소리는 그저 “알겠습니다.”하면 넘어갈 일이지만 간혹 부모님을 언급하시며 “이제 부모님 나이도 있는데 니가 이러고 있으면 되니? 집에만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라!”라고 하실 때면 잘 잡고 있던 멘탈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거기에 함께 온 사촌이 꽤나 근사한 직장에 들어 갔다면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이 되어 있다.



예전 뉴스에서는 청년 실업에 대한 기사를 자주 다뤘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기사를 본지 꽤 지난 거 같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이슈가 될 정도의 문제인가 싶다. 사실 백수짓도 젊었을 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는가? 근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백수를 사회적 문제로 다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백수는 죄인이 아니다. 빈둥거릴 수 있을 때 빈둥거려야한다. 하루 종일 잠만 자도 좋고 게임을 해도 좋다. 갈 곳 없어도 그냥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도 좋다. 백수 때 아니면 이런 일들은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언젠간 이 시간들이 삶의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다시 말하지만 백수는 죄인이 아니다. 그래도 어머니의 잔소리는 피할 수 없으니 감내하고 상황이 조금 힘들더라도 당당지자! 백수에게도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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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 하나.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인간 모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그 상황에 적응하게 된다. 우리는 이것을 보고 ‘익숙해졌다.’라고 말한다. 나 역시 평범한 사람인지라 알바를 하는 동안 너무도 힘들었던 것들에 대해 익숙해져 갔고, 그중 가장 ‘익숙해졌다.’ 혹은 ‘요령이 생겼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바로 설거지였다.


누군가 “설거지가 힘들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설거지야 말로 지구상 남아있는 그 어떤 일보다 귀찮고 짜증남과 함께 엄청 힘든 일이라 자부할 수 있다. 아무튼 설거지는 내가 알바 하는 동안 나를 가장 괴롭힌 일중 하나였다.
내가 일하는 곳은 조리실이 작아 식기세척기가 없다. 그래서 음식과 함께 나갔던 그릇들은 고스라니 사람 손을 거쳐 설거지를 해야 한다. 그러니 바쁜 날이면 일하는 내내 싱크대 앞에 보낼 때도 있다.


 

설거지가 힘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만 이야기 하자면 싱크대의 높이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 주방 기구를 설계할 때는 대부분 대한민국 여성 평균 키에 맞춰 제작한다. 내가 일했던 주방도 다르지 않은데 177cm인 내가 싱크대 앞에 설 경우 싱크대는 내 골반 정도의 높이밖엔 안 된다. 그래서 설거지를 할 때면 자연스럽게 허리가 구부정하게 되고 이 자세를 장시간 유지하고 있을 경우 집에서는 기어 다니게 되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손으로 들고 설거지를 하면 옷이 다 젖기 태반이었고, 무거운 철판들을 몇 십 개를 들고 닦다보면 한쪽 팔이 꼭 떨어져나갈 것 만치 아팠다.


설거지 더미만 보면 이가 갈리고 치가 떨리던 나였지만 3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자 나름의 요령이 생겼고, 한참을 구부정하게 있어도 견딜 만 했다. 내 허리는 구부정한 자세에 익숙해져 많은 양의 설거지를 해도 집에서 기어 다니는 일은 없었고, 오히려 나중엔 설거지 자체가 익숙해진 나머지 아무생각 없이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가 편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이가 갈리도록 힘든 일이었지만 그것도 익숙해지자 한편으로는 마음편안 일이 되었다.


인간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 속에서도 적응하게 마련이고 익숙해진다. 단지 익숙해지고 적응하기 전에 ‘포기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게 될 뿐이고, 사회는 그것으로 한 사람의 근성이나 책임감을 말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익숙함 둘.
설거지의 고됨이 익숙해질 무렵 나의 알바생활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친구가 사장인 곳에서 일한다는 것이 이래저래 불편했는데 이제는 익숙해져 마음 한편이 편했다. 한마디로 모든 게 익숙해졌다.

 

익숙함은 지금 처한 상황이나 환경 그리고 내 앞의 일들에 대한 것도 있지만 사람에 대한 익숙함도 존재한다. 나와 같이 일을 했던 아이는 나보다 3살 어린 남자였는데 이곳에서 알바를 하면서 알게 됐다. 처음에야 서로 잘 알지 못하기에 조심스러움이 많았다.

 

어리다고 함부로 부리지도 않았고, 시킬 일이 있다면 정중히 부탁을 했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 나는 그 아이에게 점점 익숙해 졌고, 그 아이도 내가 익숙해졌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소홀해졌다.

 

충분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그 아이를 시키게 됐고, 말투는 어느새 명령조로 바뀌었다. 그 아이도 가끔 내게 짜증을 내기도 했고, 정색을 하기도 했다. 서로 익숙해졌기에 소홀해진 것이다.

 

사장인 친구와 나도 서로가 익숙해졌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친구로서의 관계였고, 지금은 같이 일하는 동료였다. 동료로서 우리는 익숙해졌고, 역시나 소홀해졌다.
정중히 해오던 부탁은 어느새 반강제가 됐고, 친구가 못나오는 날에는 당연히 내가 대신 일하는 게 됐다. 어느새 내가 친구를 도와서 알바를 하는 것은 원래 그랬다는 듯이 당연해졌다.  나 역시 친구의 가게라 해서 조금씩 늦는 것이 태반이었고, 말투는 까칠함이 가득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익숙해 졌고, 서로는 서로에게 익숙해진 만큼 소홀해져 갔다.


어쩌면 ‘익숙해진다’ 것의 또 다른 말은 ‘소홀해진다’일지도 모르겠다. 익숙함은 소홀함을 부른다. 그리고 그 익숙함에서 온 소홀함은 가까운 이마저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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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7 13:07 신고

    도망가~~~~


내가 일하는 곳은 보쌈을 메인메뉴로 하는 퓨전 주점이다. 즉, 술을 파는 것을 주력으로 하는 곳이다. 그렇다보니 본의 아니게 많은 사람들의 취한 모습을 보고는 한다. 사람마다 성격이 각각 다르듯이 사람마다 취한 모습도 정말 다양한데 살펴보면 대충 이렇다.


가장 대중적 유형은 고성방가형이다. 취기가 오른 사람들의 가장 보편적 유형으로 잔이 돌면 돌수록 목소리가 커진다. 술도 먹고 귀도 함께 먹은 건지 점차 대화의 데시벨은 높아져 아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한 테이블의 목소리가 커지니 조용히 대화하던 다른 테이블은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다. 그러니 자연스레 다른 손님들도 목소리가 커진다. 이는 연쇄반응처럼 조금씩 퍼져 나중엔 술 마시는 사람 모두가 소리를 지르는 상황까지 이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까지 오면 혹여 옆에 있는 손님과 싸움이라도 날까 조마조마하다. 



다음으로 호랑나비형. 사람이라면 술을 마시게 되면 자연스레 비틀거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심하게 비틀거리다 못해 제대로 의자에 앉아 있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잠시 졸았는지 뒤로 넘어가는 사람, 화장실 갔다 와 의자에 앉으려다 비틀거려 넘어지는 사람, 일어나다 넘어지는 사람 등 아주 다양하다. 그나마 넘어져도 본인의 테이블에 피해를 주면 상관없지만 넘어지는 사람 대부분이 주변 다른 테이블에 피해를 주곤 한다. 이 역시 손님 간 싸움이 날까 조마조마하다. 더불어 넘어진 손님을 보면 일으켜 줘야하는지 쪽팔릴지도 모르니 모른 척 해야 할지 참 애매하다. 이 두 가지 유형은 가장 보편적인 유형으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취한 모든 손님이 꼭 다른 손님에게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데 파괴지왕형의 경우 일하는 직원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다. 파괴지왕형은 말 그대로 테이블에 놓여있는 기물을 다 파괴한다. 아주 파괴왕이 따로 없다. 술잔, 술병, 메뉴판, 수저통 그들에겐 자비란 없다.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만(일부러 그러는 경우도 종종 있다) 파괴된 기물을 채우고 정리하는 직원만 죽어난다. 병이 깨지면 마녀처럼 빗자루를 들고 나타나 영혼 없이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를 읊어 주며 비질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종이나 노예다. 그나마 죄송하다며 사과하는 손님들의 경우 웃으며 치울 수 있지만 너무도 태연히 “잔하나 더 주세요!”, “여기 좀 치워주세요!”하는 사람을 보면 가져다주던 잔을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술에 취한 사람을 상대하는 건 보통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다 많은 힘이 든다. 그렇다고 위에서 말한 대로 술에 취한 사람들이 주변을 피곤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술자리는 술잔을 중심으로 자기들만의 세상이 열리고는 하는데 자기들만의 정치철학, 사회비판을 논하고는 한다. 이러한 경우를 100분토론형, 또는 끝장토론형으로 분류하는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청와대, 여야당 대변인이 따로 없다. 


주로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나 자기가 추구하는 정치색깔을 들어내는데 간혹 서로의 의견의 맞지 않을 경우 과열된 토론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자리인지라 서로 뜻이 맞아 함께 현 정부를 욕하고 사회를 비판하며 막을 내리고는 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정치나 사회가 아닌 철학이나 문학을 논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주로 책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한번은 온갖 진상을 다부리는 손님들이 김수영에 대해 논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데, 대화는 고상할지 모르지만 하는 행동은 그냥 개차반이니 김수영이 웬 말인가 싶었다.


술은 사람의 감정을 끌어내는데 묘한 힘이 있다. 그리고 술은 사람을 용감하게 한다. 그래서 술기운에 용기를 얻어 평소 하지 못한 말들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취중진담형이 바로 그 경우다. 

취중진담형의 경우 남여 단둘이 온 손님들 사이에서 많이 보이는 유형인데 어떤 진솔한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꼭 한명이 운다. 대게 여자가 우는 경우가 많은데 분위기가 좋다가도 돌아보면 여자가 펑펑 울고 있다. 울음을 그치고 다시 분위기가 좋아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명이 자리를 뜨고 다른 한명이 쫓아가는 상황으로 마무리되고는 한다. 그리고 가게 밖에서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저 우리는 ‘싸웠나?’하고 유추할 뿐이다. 그렇게 울고 짜고 한 손님들이 다시 가게에 찾는 일은 거의 없다. 아마도 쪽팔려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누구나 술에 취한다. 술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술에 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단지, 술을 절제 할 수 있는 사람과 절제 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절제에 실패한 사람은 잠시 자기 자신을 잃어 행동하고 주변에 본의 아니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취했다고 말한다. 


주변에 피해를 주면서까지 술을 마셔야할까 싶지만 한편으론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빡빡한 세상에서 술마저도 없다면 어찌 살까 싶으니 조금은 이해가 가는 심정이다. 


어쩌면 우리가 술에 취하는 것도 지독히도 빡빡한 생활 속에서 잠시 자신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답답한 세상이 됐으니 말이다. 아! 그래도 만취는 주변을 힘들게 하니 술은 적당히가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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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19 02:02

 

 

엄마에게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우리 집은 방 한 칸, 부엌 하나에 화장실도 딸리지 않은 작은 집이었다. 주인집을 중심으로 세 가구 정도가 함께 사는 공동주택이었는데 우리 것은 아니었지만 마당에 텃밭도 있는 그런 집이었다.
당시 엄마는 돈벌이가 썩 좋지 않았던 아빠를 대신에 근처의 작은 공장에서 일을 하셨다. 아침이면 가족들의 아침을 다 준비하고 출근을 하셨고, 퇴근 후에는 쉬지도 못하고 저녁을 준비하셨다. 그렇게도 엄마를 부지런히 살게 했던 것은 작은 전셋집이라도 얻기 위해서였고, 그것은 엄마의 작은 바람이기도 했다.
나는 어려 전세와 월세의 차이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우리 집’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살면서 ‘누구누구네 집에 세 들어산다.’라는 말을 종종 듣고는 했는데 이 말이 어렸지만 우리 집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엄마의 바람은 10년이 지나고서야 이뤄졌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자 근처의 작은 빌라 3층으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엄마의 바람대로 매달 집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전셋집이었다. 작지만 내방도 생겼고, 앉아 공부할 수 있는 책상도 생겼다. 우리 가족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있었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부엌도 있었다. 주인집 아들놈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더 이상 ‘세 들어 산다.’라는 말을 듣지도 않았다. 왜 그리도 엄마가 “전셋집 전셋집”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엄마의 첫 전셋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 집 주변으로 재개발이 결정되면서 다시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 집을 얻는 건 쉽지 않았다. 재개발 소식이 동네에 퍼지자 집값은 물론 전셋값도 올랐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집과 비슷한 크기의 집을 구하기에는 보증금이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어쩔 수 없이 엄마가 택한 곳은 조금 떨어진 한 빌라의 반지하였다.


반지하였지만 기존의 집과 크기는 비슷했고 건물도 그나마 깨끗한 편이었다. 그러나 반지하는 불편한 점이 참 많았다. 밖에서 집안이 보일까 쉽사리 창문을 열지 못했고, 창문을 연다 해도 창문이 땅에 가깝게 있다 보니 흙먼지가 그대로 창문을 넘어 들어오곤 했다. 그러니 아무리 더워도 창문을 한 뼘 이상 여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베란다도 없어 빨래는 항상 거실에서 말려야했는데 이것도 햇빛이 들어오는 때를 놓치면 잘 마르지 않아 한참을 널어놓아야했다. 비가 오는 날엔 방바닥이 눅눅해져 한여름에도 보일러를 틀어야 할 때도 있었는데 날도 더운데 보일러까지 트니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도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엄마가 이집을 선택했던 이유는 예전처럼 전셋집이었기 때문이었다. 반지하였지만 그래도 전세는 전세였다. 그 점이 조금은 엄마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는지 이 집에서 엄마는 오랫동안 살았고 덕분에 나도 전학 없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쳐 대학까지 졸업하게 되었다.
엄마는 원했던 전셋집에 살게 되었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해 첫 번째 직장을 가질 때 까지도 단 한번 쉼 없이 계속 일을 하셨다. 조금은 쉬엄쉬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는 부단히도 열심히 일을 하셨다. 엄마가 일을 멈출 수 없던 것은 전세도 결국은 ‘내 집’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 집도 언제 가는 이사를 가야 한다.”며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내 집’을 갖기 위해 예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그것은 엄마의 또 다른 바람이었다.


내가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둘 때쯤 엄마는 오랫동안 살았던 반지하에서 조금은 오래된 빌라의 1층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만 무엇이 부족했는지 엄마는 결국 ‘내 집’을 갖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는 반지하를 벗어난 것만으로도 만족해 하셨다.
더 이상 비가와도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됐고, 창문을 활짝 열어도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말릴 수도 있었고, 세탁기를 베란다에 놓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세 번째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고, 어느새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다.

 

엄마에게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전셋집을 얻는 것, 그리고 아직 이루지 못한 ‘내 집’을 갖는 것. 어쩌면 처음부터 엄마의 바람은 전셋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사는 솜씨 없었던 엄마에게 ‘내 집’이란 것은 너무도 큰 바람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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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를 시작했다직장이 아닌 알바를 선택하게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우선 생계로 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쏟고 싶지 않아서였다아무래도 직장을 잡게 되면 본의 아니게 많은 시간을 직장에 쏟게 된다그 점이 싫었다그나마 알바는 시간조절도 자유로운 편이고 책임감면에서도 자유로울 테니 직장보단 나을 거 같았다또 한 가지는 친구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 녀석이 작년에 주점을 오픈했다급하게 일손이 필요했고 잠시 가게 좀 도와 달라 부탁을 해왔다모르는 곳에 알바를 하는 것보단 그래도 아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 편할 것 같아 그 제안을 수락했고그 때부터 생계를 위한 알바가 시작됐다.


알바를 시작한지 수일이 지나자 나는 특이한 질문을 받고는 했다사장이 친구인 관계로 가게를 찾은 사장 지인들은 대부분 나와 동갑내기 친구들이었다그 지인들은 나를 한번 보고는 사장 녀석에게 누구냐는 질문을 던졌고친구는 내 친군데내가 급해서 도와달라고 했어라고 설명하곤 했다친구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설명을 들은 이들은 가끔 나에게 특이한 질문을 던지 곤 했다. “여기서만 일하세요?”라는.


친구 녀석이 옆에 있었다면 나를 대신해 직장잡고 일할 나이에 이곳에서 왜 알바를 하고 있는지 전후사정을 설명해주고는 했지만 혼자 이 질문을 받을 때면 내입으로 설명하기 민망할 때가 많았다.


한번은 비슷한 상황에서 이 일만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그래서 왜 이 일만하면 안돼요?”라고 되물어봤다대답하기 귀찮아서라기 보단 나도 정말 궁금했다왜 이런 이상한 뉘앙스의 질문을 자꾸 받는지 말이다돌아온 대답은 그게 아니고 이 일만 할 것 같지 않아서요라는 시원찮은 답이었다지금도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지만 사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대충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왜 그 나이 먹고도 아직 알바를 하세요?’, ‘어디부족하세요?’ 뭐 이런 거 아니었을까?


알바를 한 기간이 지날수록 나를 알아보는 이가 늘면서 이 요상한 질문들은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종종 비슷한 질문을 받곤 한다그때면 그냥 웃으며 제가 잉여라서 친구가 일 시켜 주는 거예요라고 해버리고 만다그 편이 다음질문도 없고 편했다.


어쩌면 나이를 먹고 알바를 한다는 건남들에겐 조금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인식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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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집 건너 볼 수 있는 것이 커피숍이자 카페다. 작은 동네인 우리 동네도 벌써 들어선 카페만 해도 4개나 된다. 언제부턴가 확실히 우리 생활 한자리 잡고 있는 것이 커피가 됐다는 소리다. 그렇다고 커피라는 음료가 갑자기 우리나라에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집 찬장 같은 곳을 보면 병에 담겨있는 인스턴트커피가 있었고, 그 옆에는 항상 ‘프리마’가 함께 있었다. 티스푼으로 커피를 몇 숟갈 담고 프림을 넣고, 설탕도 넣어 물을 부어 마셨다. 프림은 우유 대신이라고 볼 수 있는데 가끔 프림만 물에 타 먹어도 고소하니 맛이 좋았다.



인스턴트커피는 오래전부터 가정집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예전 드라마를 보면 조금 있는 집에서 식사 후 커피를 마시는 영상을 보면 갈색의 인스턴트커피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커피잔’에 마셨지 원두커피처럼 ‘머그잔’에 먹는 모습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 세상의 편리함도 인스턴트커피에 적용이 됐는데 그게 바로 ‘믹스커피’의 등장이었다. 믹스커피는 말 그대로 커피, 프림, 설탕이 믹스되어 있는 제품인데 윗부분을 살짝 뜯어 컵에 넣고 물을 넣으면 한번 저어주면 커피가 완성됐다. 인스턴트커피가 또 한 번의 가공을 통해 ‘믹스커피’라는 커피의 종류가 탄생한 것이다. 


믹스커피가 등장하면서 조금씩 많은 것이 변했다. 우선 다방의 쇠퇴다. 예전에 복덕방이라고 불리던 부동산을 보면 동네의 어르신들이 모여 장기나 바둑, 혹은 고스톱을 치시면 꼭 다방에서 커피를 배달시켰다. 그럼 다방에서는 끓인 물과 커피, 프림, 설탕을 보자기에 잘 싸서 배달을 왔다. “오빠! 오빠는 프림 몇 개?”라는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커피취향에 맞춰 그 자리에서 커피를 탔다. 소위 말하는 ‘다방커피’였다. 사실 복덕방에서 직접 인스턴트를 타도 맛은 똑같겠지만 사실 남자들에게 그것도 귀찮은 짓일 뿐이라 대게 시켜 마셨다. 아님 다른 목적(?)이 있었을 지도.



‘다방커피’라는 말은 나중에도 많이 쓰였다. “커피 어떻게 드릴까요?” “난 다방커피로 부탁해” 다방에서 커피를 시켜달라는 의미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 뜻은 아니다. 다방커피의 의미는 커피와 프림, 설탕의 비율에 있는데 커피2, 프림3, 설탕3(숫자는 스푼의 개수)의 비율로 타는 것을 의미한다. 취향에 따라 조금씩은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다방커피라는 메뉴(?)는 확실히 존재했다. 


믹스커피가 등장하고 더 이상 커피를 배달시킬 필요가 없어졌다. 이유는 단순했다. 편리해졌기 때문이다. 스푼으로 커피를 넣다 알갱이를 떨어트릴 이유도 없어지고 프림을 쏟을 염려도 없어졌다. 그저 물만 끓이면 커피를 먹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귀찮은 것을 지지리도 싫어하는 남자들도 커피를 탈 수 있게 됐다. 거기에 물 조절만 잘하면 모든 커피의 맛이 동일했다. 다른 목적이 있지 않고서야 비싸게 다방커피를 시킬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믹스커피의 등장으로 집에서는 더 이상 커피가 들어있던 유리병은 발견하기 힘들어졌다. 커피를 자주 먹는 집도 편리한 믹스커피를 두고 먹었지 번거로운 인스턴트커피와 프리마를 두진 않았다. 

믹스커피는 집안에서도 커피를 쉽게 먹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지만 믹스커피의 등장으로 큰 혜택 본 곳도 다름 아닌 현장직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이 아닐까 한다. 예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는데 쉬는 시간이면 꼭 믹스커피를 마셨다. 




쉬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믹스커피 한잔 마실 시간은 충분했다. 만약 믹스커피가 없었다면 현장에서의 커피는 귀찮아서라도 먹지 않았을 거 같다. 물론 커피가 좋아 번거로운 걸 감수하고 먹는 사람도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믹스커피는 장소, 시간의 제안을 줄였다. 언제 어디든 컵과 물만 있으면 먹을 수 있게 됐고, 더불어 티스푼도 필요 없었다. 그냥 커피 넣고 남은 봉지로 휘휘 저으면 그만이다. 


비위생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씻지 않고 내버려둔 티스푼보단 위생적이다. 나는 집에서도 설거지 귀찮아 봉지로 저을 때도 있는데 이것도 나름 믹스커피가 생기면서 생긴 재미있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믹스커피는 나이, 성별, 국적을 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믹스커피를 한번 맛본 외국인은 극찬을 날렸고, 머리가 백발이신 할머니 할아버지도 즐겨 마신다. 한편으로 믹스커피는 우리나라의 커피 대중화를 이룩한 일등공신이 아니었을까? 믹스커피 없이 원두커피와 커피숍이 우리에게 왔다면 이를 받아들이고 대중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을 테니 말이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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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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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4.01 15:12 신고

    4월에도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시간이 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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