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9 02:02

 

 

엄마에게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우리 집은 방 한 칸, 부엌 하나에 화장실도 딸리지 않은 작은 집이었다. 주인집을 중심으로 세 가구 정도가 함께 사는 공동주택이었는데 우리 것은 아니었지만 마당에 텃밭도 있는 그런 집이었다.
당시 엄마는 돈벌이가 썩 좋지 않았던 아빠를 대신에 근처의 작은 공장에서 일을 하셨다. 아침이면 가족들의 아침을 다 준비하고 출근을 하셨고, 퇴근 후에는 쉬지도 못하고 저녁을 준비하셨다. 그렇게도 엄마를 부지런히 살게 했던 것은 작은 전셋집이라도 얻기 위해서였고, 그것은 엄마의 작은 바람이기도 했다.
나는 어려 전세와 월세의 차이는 몰랐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우리 집’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살면서 ‘누구누구네 집에 세 들어산다.’라는 말을 종종 듣고는 했는데 이 말이 어렸지만 우리 집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엄마의 바람은 10년이 지나고서야 이뤄졌다. 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자 근처의 작은 빌라 3층으로 이사를 하게 됐는데 엄마의 바람대로 매달 집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전셋집이었다. 작지만 내방도 생겼고, 앉아 공부할 수 있는 책상도 생겼다. 우리 가족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있었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부엌도 있었다. 주인집 아들놈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더 이상 ‘세 들어 산다.’라는 말을 듣지도 않았다. 왜 그리도 엄마가 “전셋집 전셋집”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하지만 엄마의 첫 전셋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우리 집 주변으로 재개발이 결정되면서 다시 이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시 집을 얻는 건 쉽지 않았다. 재개발 소식이 동네에 퍼지자 집값은 물론 전셋값도 올랐기 때문이었는데 지금 집과 비슷한 크기의 집을 구하기에는 보증금이 터무니없이 모자랐다. 어쩔 수 없이 엄마가 택한 곳은 조금 떨어진 한 빌라의 반지하였다.


반지하였지만 기존의 집과 크기는 비슷했고 건물도 그나마 깨끗한 편이었다. 그러나 반지하는 불편한 점이 참 많았다. 밖에서 집안이 보일까 쉽사리 창문을 열지 못했고, 창문을 연다 해도 창문이 땅에 가깝게 있다 보니 흙먼지가 그대로 창문을 넘어 들어오곤 했다. 그러니 아무리 더워도 창문을 한 뼘 이상 여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베란다도 없어 빨래는 항상 거실에서 말려야했는데 이것도 햇빛이 들어오는 때를 놓치면 잘 마르지 않아 한참을 널어놓아야했다. 비가 오는 날엔 방바닥이 눅눅해져 한여름에도 보일러를 틀어야 할 때도 있었는데 날도 더운데 보일러까지 트니 찜질방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도 불편한 점이 많았지만 엄마가 이집을 선택했던 이유는 예전처럼 전셋집이었기 때문이었다. 반지하였지만 그래도 전세는 전세였다. 그 점이 조금은 엄마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는지 이 집에서 엄마는 오랫동안 살았고 덕분에 나도 전학 없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마쳐 대학까지 졸업하게 되었다.
엄마는 원했던 전셋집에 살게 되었지만 내가 대학을 졸업해 첫 번째 직장을 가질 때 까지도 단 한번 쉼 없이 계속 일을 하셨다. 조금은 쉬엄쉬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엄마는 부단히도 열심히 일을 하셨다. 엄마가 일을 멈출 수 없던 것은 전세도 결국은 ‘내 집’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 집도 언제 가는 이사를 가야 한다.”며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내 집’을 갖기 위해 예전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그것은 엄마의 또 다른 바람이었다.


내가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둘 때쯤 엄마는 오랫동안 살았던 반지하에서 조금은 오래된 빌라의 1층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지만 무엇이 부족했는지 엄마는 결국 ‘내 집’을 갖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는 반지하를 벗어난 것만으로도 만족해 하셨다.
더 이상 비가와도 보일러를 틀지 않아도 됐고, 창문을 활짝 열어도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말릴 수도 있었고, 세탁기를 베란다에 놓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세 번째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고, 어느새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셨다.

 

엄마에게는 작은 바람이 있었다. 월세를 내지 않아도 되는 전셋집을 얻는 것, 그리고 아직 이루지 못한 ‘내 집’을 갖는 것. 어쩌면 처음부터 엄마의 바람은 전셋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사는 솜씨 없었던 엄마에게 ‘내 집’이란 것은 너무도 큰 바람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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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가을, 길에서 서울역을 만났다. 거대한 현재의 驛舍가 아닌 舊역사 말이다. 입구가 활짝 개방되어 있었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닫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歷史에 한자리를 마련하고서 말이다.


호기심을 가지고 기웃거리니 안쪽에서 북소리가 흘러나온다. 북소리에 이끌려 역사 안으로 걸어들어간다. 마지막으로 이 문을 지난 것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부모님과 함께 시골에 다녀올 때가 아닌가 싶다. 여행에 지친 몸을 이끌고 문을 나섰을까.


중앙홀로 들어서니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사람들의 행선지에 대해 궁금해 하다가 얼른 정신을 차린다. 홀의 중앙에서 공연자가 큰북을 치고 있다. 천장이 높은 홀에 북소리가 울린다. 홀로 연주하는 북공연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앙홀을 지나 예전에는 대합실이었을 공간으로 들어간다. 설치미술들이 전시되어 있다. 예술 문외한에게도 흥미로운 전시들이 펼쳐진다. 처음에는 '이게 뭐야'라는 생각을 한다. 찬찬히 구성요소들을 뜯어보고, 구성요소가 결합한 방식을 찾아내고, 결합하여 이룬 전체형태를 파악한다. 적어도 나의 경험 안에서 나만의 의미로 즐길 수 있다.


이 와중에도 북소리는 귀를 울린다. 지금 공간을 통해 전해지는 것인지, 아니면 10분전의 북소리가 남아있는 건지.


익숙하지 않은 미술을 감상하는 것에 지쳤는지. 서울역의 예전 모습을 찾고 있다. 흔적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철로 위에 KTX가 정차해 있는 것이 보인다. 흑백사진 속에서 증기기관차가 있던 철로에 지금은 고속열차가 있다.


섹소폰을 부는 사람이 좁은 복도를 오가고 있다. 여전히 귓가를 맴도는 두둥둥소리에 맑은 멜로디가 섞인다.


잠든 아이가 아빠 품에 안겨있다. 엄마의 손을 잡고 표를 끊는 아빠를 기다리는 꼬마가 있다. 한 가족이 뛰어와 간신히 열차에 오른다. 기차 출발 전에 가락국수 사오면서 아빠가 웃는다. 요이땡을 감싼 비닐 벗겨 소년에게 주는 엄마도 보인다. 시간이 여기에 동시에 설치된다.


기억을 지나 어느 방안에서 비올라-혹은 첼로-의 선굵은 소리가 추가된다. 그리고 문을 지나 어느 순간에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을 만난다. 시간 혹은 공간의 차이를 두고 펼쳐지는 4중주.


기묘한 4중주는 다시 중앙홀에 들어서자 끝이 났다. 움직이지 않고선 연주되지 않을, 걷기도 완성되는 음악은 거기서 끝이 난다. 나는 관람자인 동시에 연주를 완성시키는 가장 중요한 플레이어다.


다른 플레이어의 음악을 상상해본다. 누군에게는 타악음악이고, 다른 이에게는 바이올린과 큰북의 2중주이다. 또 다른 조합의 3중주도 있을 것이다. 브레이크 타임의 연주자는 침묵의 음악을 완성시키지 않았을까. 동선에 따라 음악은 무한히 늘어난다.


1925년 완성된 이후로 서울역사는 이미 하나의 공연장이자 전시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는 것이 연주고, 기억이 미술이다. 우리는 누구나 거대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아주 긴 음악을 연주하는 예술가가 아닐까?


구 서울역사가 문화역서울284로 다시 태어난 것이 반갑다. 과거 한 시점으로의 복원도 좋지만, 한 아이가 누군가의 음악에 감격하고, 새로운 연주를 이어나갈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왼쪽 건축초기 1, 2등 대합실, 오른쪽 복원 후 전시실1로 활용



  o 구 서울역사가 문화공간 문화역서울284로 개장한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2011년 서울역 복원을 마치고, 2012년 4월부터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했다. 개장이후 19개의 전시, 공연, 강연, 축제 등이 열리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아직 예정된 연주가 없는 상태이다.

최근까지 6주동안 55인의 작가와 함께하는 150여회의 퍼포먼스 전시 '플레이타임'이 연주되었다. 본문은 6주중 하루에 연주된 음악의 기록이다.

홈페이지(seoul284.org)에서 프로그램 소개와 함께 과거와 현재의 공간 비교, 서울역과 서울에 대한 자료 등을 볼 수 있다.


Written by 여행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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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 왜왔니] 2. 임송희 선생님 댁의 보물구경


“아! 선생님!”

“아이구, 오래간만이네. 여기서 또 만나구.”


올 늦가을 즈음이다. 성북동 최순우 옛집에서 우연치 않게 선생님을 만났다. 동네 산책 나오셨다가 마침 이 곳에 들르신 모양이시다. 내가 석사과정 시절, ‘기본이 튼튼해야 쓸데없는 기교에 빠지지 않는 것’이라며 좋은 말씀을 주셨던 그 분이시다. 툇마루에 앉아 수국차 한잔 기울이시는 모습이 흡사 한 마리 고고한 학이 속세에 잠시 내려와 쉬어가는 한 폭의 그림이다. 오늘도 역시 환한 미소로 맞아주신다. 그 동안에 있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한창 나누던 중 번뜩 생각이 나셨는지 다짜고짜 물으신다. 


“자네, 우리 집 구경 한번 안 갈 텐가?”


거절할 리가 만무하다. 집 구경이라면 환장하는 나인데 하물며 동양화의 대가의 집은 더더욱 구미가 당기는 법. 


“예, 가겠습니다. 언젠가 한 번 꼭 구경하고 싶었어요 선생님.”


옛집을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성북동 깊숙한 골목으로 올라간다. 보이는 집들이 죄다 으리으리하다. 담장이 무지무지 높다. 옛 봉건영주의 성들이 모여 또 다른 세상을 이룬 것 같다. 그렇게 15분쯤을 들어갔을까. 대리석 계단이 펼쳐진 집 앞에 다다랐다. 


“자네, 우리 집 처음이지?”

“예, 선생님.”

“그럼 우리 집 보물 구경 좀 시켜줄게.”





선생님 댁에는 갖가지 진귀한 돌들이 이곳저곳에 놓여 있었다. 들어가는 정문에서부터 시작되는 하마석(옛날 말을 탈 때 딛는 돌)에서부터 수석, 동자석, 돌확, 괴석, 석등, 돌상과 돌의자 등 옛 돌이란 돌은 모두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게 나중엔 이게 아주 재미가 있더라구. 뭐가 재미있느냐하면 돌은 방치의 멋이거든. 그냥 내버려둬도 보기 좋고, 물을 뿌리면 또 뿌린 대로의 멋이 있고. 오래 두고 보기에는 질리지가 않고 아주 좋다구.”






돌 하나하나를 설명하시면서 곱게 쓰다듬는 그 손길에 선생님의 돌 사랑이 느껴진다. 곧이어 선생님이 당신의 작업실로 나를 인도한다. 문을 열자마자 물씬 풍기는 먹의 향. 어렸을 적 서예학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온 방에서 은은하게 퍼지던 정겨운 향이다. 언제든 작업에 임할 수 있도록 갖추어진 붓과 물감, 문진과 문진 사이에 말끔히 펼쳐진 화선지. 간박한 가구들과 이곳저곳에 붙어 있는 선생님의 작품들. 오랜 세월을 간직한 물건들이 엉키고 섞여 한 화가의 예술세계를 깊고 맑게 보여주고 있었다. 선생님이 커튼을 여니 하얀 빛이 우르르 쏟아진다. 






“자네 커피 마시지?”

“아, 제가 타겠습니다.”

“아냐 아냐, 손님이 커피를 타는 법이 어디 있나. 내가 또 보여줄게 있어서 그래. 이게 내 진짜보물이라구.”


선생님이 꺼내 보여주신 건 작은 일회용 플라스틱 커피 스푼. 이게 진짜보물이라구?





“이게 뭔가 특별한 게 있나요?”

“아, 특별하지 그럼. 내가 예전에 아마...30년 쯤 됐을 거야. 우리 안사람이랑 같이 구라파 여행을 갔었다구.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 일회용 커피스푼이란 게 없었을 때란 말이지. 호텔방을 들어갔더니 이게 있더란 말야. 우리 안사람이 이걸 보고 어찌나 신기해하고 좋아하던지 그게 그렇게 마음에 남더라구. 내가 그 때 가져온거야. 하하하, 요즘 사람들이야 이런 거 지천에 널려서 신경도 안 쓰지? 그치?”

“.........그래서 이걸 지금 30년 동안 쓰신 거에요?”





“하하하, 내가 별 얘기를 다 하는구만. 나는 커피 타 마실 때마다 이걸로만 마셔. 돌이나 커피스푼이나 다 마찬가지라구. 내가 아끼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간직하면 맛의 차원이 달라지는거야. 우리 안사람이 좋아하니까 나도 좋고 커피스푼도 좋아지는거구. 하하하, 별 얘기를 다 하는구만 내가.”


나는 한 동안 커피스푼만 바라보고 있었다. 할 말을 잃었다. 

 

Written by 선장

Photo by 선장

 


임송희 선생님은 호는 이석(以石), 심정(心井)으로, 충북 증평 출생이다. 서울대 미술대학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산수화로 이름을 떨쳤다. 심전 안중식, 심산 노수현, 심경 박세원에 이어 심정이라는 호를 박세원 선생에게 받았다. 제 1회 겸재미술상을 수상하였고,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회원 및 심사위원, 동아미술대전 심사위원. 한국미술협회 고문 지냈다. 덕성여자대학교 예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및 학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명예교수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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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이어짐 -  [비싸니깐 집이다] - 기묘한 동거 0. 막힌 변기로 발각돼

 

 

 

  기묘한 동거 1. 베개에서 타인의 향기를 느끼다 

 

 

 

  자신의 베개에서 타인의 향기를 느껴본 적이 있는가?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서는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늦은 오후, 집안일에 지친 어머니는 걸레질을 하다 아들녀석 침대에서 깜빡 잠이 든다. 잠시 후 집에 돌아온 아들은 뛰어든 침대에서 타인의 향기를 느낀다. 파마약 냄새가 뒤섞인 아련한 향기. 범인을 알아차린 매정한 탐정은 벌떡 일어서며 소리친다. ‘엄마, 왜 내 침대에서 잤어?’ 발뺌을 해도 소용이 없다. 향기가 명백한 증거다.

 

 

  베개에서 낯선 향기를 맡았다.

 

 

  에로틱한 표현이다. 강남의 한 모텔에서 청담동의 아파트까지 가는 동안 줄곧 자신의 여성편력을 과시하던 지난밤의 사장님이 이 말을 들었다면, ‘자네 부인이 남자를 아주 집까지 들였구만이라고 했을지 모를 일이다. 차라리 그런 일이라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칙칙하고 냄새나는 아파트에 나 아닌 누군가가 마지막으로 들어왔던 적이 언제였지? 올겨울 막힌 변기를 고치러 온 수리공이 마지막 손님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 수리공이 침대에 누웠고, (왜?) 냄새는 열 달동안 잠복해있다가 (어떻게?) 기온이 내려감과 동시에 분출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오늘 하루를 더듬어 봤다. 평소와 다름 없는 하루다. 어김없이 편의점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우고 집을 나섰다. 이른 저녁부터 술에 취한 사람을 무사히 귀가시키며 가정의 평화를 도왔다. 새벽 세시부터는 동네사람의 건강을 위해 신선한 우유를 각 가정에 배달했다. 대리운전과 우유배달을 마치고 상가 편의점에서 불고기도시락을 사는 것도 있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불고기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230초를 데워서 먹었다. 아침밥인지 저녁밥인지 모를 밥을 먹고 나서 편의점 알바생의 불친절을 불평하며 침대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특이한 점은 없었다. 아니, 지긋지긋할 정도로 똑같은 패턴이다. 다른 점이 있기는 했다. 어렸을 때부터 꿈을 상실하고 깊은 잠에 빠져드는 것이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오늘은 꿈을 꾸었다. 단지 꿈을 꾼 것이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현관문 도어락의 잠금을 해제하고 집에 들어서면 상가 편의점 알바생이 나를 맞는다. 그것도 허리를 숙이고 어서 오세요라며 다정하게 인사를 건넨다. 입이 , 다녀왔어라는 말을 읊조린다. ‘전자레인지는 안쪽에 있습니다 그녀를 스쳐지나갈 때 어딘가에서 희미한 향이 풍긴다.

 

 

  이때 잠에서 깨어났다. 처음에는 아직 꿈속인줄 알았다. 여전히 코끝으로 꿈속의 향이 스며들고 있었다. , , 겨드랑이 순으로 코를 들이밀었다. 몸에서 나는 것이 아니다. 꿈에서 깬 것인지, 냄새에 익숙해진 것인지 희미한 향기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꿈이 정말 리얼하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꿈이나 다시 꾸자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 순간이었다. 범인은 잡았다. 밀려오던 잠이 저멀리 달아났다.

 

 

  코를 베개에 들이대고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집안 가득해서 특별할 것이 없는 홀아비냄새와 담배냄새 사이로 달큰한 향이 풍겨온다. 비누, 샴푸, 스킨, 로션, 방향제, 세제......아니다. 지금까지 이 집에 살면서 맡아본 적이 없는 향기다. 내 냄새는 아니다. 나는 아니다.

 

 

  이곳에 나아닌 다른 누군가의 냄새가 존재한다.

 

 

 

to be continued~~

 

 

Written by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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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묘한 동거, 막힌 변기로 발각돼

 

 

  2012년 10월 27일

 

  서울 강북경찰서는 26일 수차례 빈집에 침입해 음식물을 무단 취식한 이모(30)씨를 가택침입, 절도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집안으로 침입한 이씨는 마치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행동했다. 이씨는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요리를 하고 소주나 막걸리를 마셨다. 이씨는 마치 주인처럼 집안을 돌아다니며, 라면을 끓여먹고 자장면을 시켜먹는 등 대담한 행각을 벌였다. 배를 채우고 난 후에는 침대에서 태연히 잠을 자다 집주인이 귀가하는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섰다. 

 

  이씨는 보통 혼자 사는 직장인의 아파트를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피해자의 생활패턴을 파악하여 피해자가 직장에 출근한 시간을 틈타 집안으로 침입했다. 마음에 든 집에는 반년이 넘게 침입했음에도 피해자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씨는 자신이 사용한 물건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고 이웃주민에게도 인사를 하는 등 상당히 주도면밀하게 행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이어진 이씨의 범행행각은 변기가 막힌 것을 이상하게 느낀 집주인이 경찰에 신고를 하면서 발각되었다. 경찰에 잡힌 이씨는 ‘전날에 많이 먹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굵게 나올 줄은 몰랐다’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같이 사는 사람으로서의 예의인데 그러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며 집주인에게 사과의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갈수록 1인 가족이 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기묘한 동거’를 방지하기 위한 혼자 사는 시민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해적일보 로빈슨 기자(robatsea.tistory.com)]

 

 

to be continued~~

 

 

Written by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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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9 03:41


나의 큰집, 큰아빠 큰엄마가 계신 큰집은 대전 석교동에 있다. 마당이 멋들어지게 자리 잡고 있으며 드라마에서나 올 법한 멋진 이층집이었다. 나무 바닥으로 되어있던 넓은 거실은 한 발, 한 발 내 걸을 때마다 삐걱삐걱하며 기분 좋은 소리를 내고는 했다. 내 방하나 없던 작은 집에 살았던 나에겐 큰집은 나에게 정말 큰집답게 커다란 집이었다. 이런 큰집은 갈 때마다 놀이터였다. 특히 온갖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던 큰집은 나에게 보물창고였다.


자상하셨던 큰엄마는 항상 정원을 아름답게 꾸미셨는데 흡사 일본식 가옥처럼 너무 과하진 않았지만 절제가 있었던 그런 품위 있는 정원이었다. 이런 정원의 식물들을 신기해하며 바라보기도, 마당의 강아지와도 함께 뛰놀았다.


거실에서 이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한발 한발 옮길 때마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날 설레게 했다. 물론 이층엔 세를 주어 다른 세대가 살아 끝까지 올라가보진 못했다. 그래서 더 궁금해 했던 거 같다.


넓은 거실에 장식되어 있던 수석들은 항상 빛이 났다. 그중 동물모양을 닮았었던 수석들은 나의 장난감이 되었고, 거실은 세렝게티가 됐다. 출판사에 근무하시던 큰아빠 덕에 집에는 많은 책들이 있었는데 이런 책을 몇 개 들고 나와 윤이 반질반질 나는 나무거실에 앉아 읽으면 거실은 오래된 도서관이 됐다. 조금은 낡았을 지도 모를 집이었지만 워낙 꼼꼼하셨던 큰엄마는 이 집을 품위 있는 보물창고로 만들어 놓으셨다. 멋진 고성 같이.

 

콩알만 한 키에서 대한민국 남자 평균키를 넘겼을 때 큰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다. 남겨진 집은 사촌형과 큰아버지께서 계속 사셨다. 그 집에서 바뀐 건 큰어머니가 안 계신 것뿐이었다.


내가 호기어린 20대를 넘어 능글맞은 30대가 되었을 때 나의 고성 같고 보물창고였던 큰집은 고성은커녕 아무도 살지 않는 폐허가 되어갔다.


품위 있던 정원의 풀과 나무들은 모두 말라 죽어 얼마 전에 모두 잘라냈다. 하얀 흙만을 드러낸 채 정원은 사막이 되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온갖 집안의 안 쓰는 물건으로 채워져 한 계단 오르기도 힘들었고 기분 좋은 소리를 냈던 나무 거실은 윤기를 잃어 낡은 나무 판때기를 깔아 놓은 거 같았다.


거실의 수석들은 빛을 잃어 수석이라고 부르기도 아까울 정도로 돌덩이가 되어버렸고 처치 곤란으로 남았다. 집은 흡사 폐허 같았다.


큰집에서 바뀐 것이라곤 큰어머니가 안 계신 것뿐이었다. 그렇게 집을 아끼고 가꾸셨던 큰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도 죽었다. 집의 주인은 있지만 집의 실질적 주인은 큰어머니였던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어머니께 전세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어차피 돌려줄 돈인데 전세는 왜 주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씀하시길 집을 혼자 그냥두면 죽기 때문에 사람을 들이는 것이란다.”라고 하셨다. 물론 어린 나는 이해 못할 말이었다. 집이 죽는 다는 것이.


사람이 곧 집이고 집이 곧 사람이었다. 사람도 혼자 못살 듯이 집도 혼자 살 수 없었다. 큰어머니 애정과 사랑을 잃은 큰집은 지금도 조금씩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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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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