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니콜로 마키아벨리
    
  저자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가난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1498년부터 피렌체의 제2서기관장직으로 내정과 군사를 담당하였으며, 대사로도 활약하였다. 1512년 메디치가(家)가 피렌체로 복귀하게 되자, 한때 음모의 죄명으로 체포된 후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실의 속에서 독서와 저술활동에 전념하였다.
  주요저서로 《군주론》(1532) 《로마사론》(1531) 《전술론》(1521) 《피렌체사》(1532)가 있으며, 또한 이탈리아 연극사상 획기적인 작품이라는 《만드라골라》(1524) 등이 있다.
  특히 《군주론》은 그의 대표작으로 마키아벨리즘이란 용어가 생기게 되었으며, 이 책은 군주의 자세를 논하는 형태로서 정치는 도덕으로부터 구별된 고유의 영역임을 주장하였고, 더 나아가 프랑스 및 에스파냐 등 강대국과 대항하여 강력한 군주 밑에서 이탈리아가 통일되어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이 저서는 근대 정치사상의 기원이 되었다.

 

2. 군주론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메디치 가에 자신의 정치적인 식견과 능력을 입증하는 책을 헌정함으로써 그들의 환심을 사 공직에 복귀하는 것이었다. 그의 정치적 바람은, 만약 그들이 자신의 조언을 따른다면 그들의 가문에는 명예를, 이탈리아인 모두에게는 이득을 가져오는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의 헌정사(니콜로 마키아벨 리가 위대한 로렌초 대 메디치 전하께 올리는 글)로 시작하여, 총 26장으로 이루어진 글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26장을 크게 4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첫째, 군주국을 다스리는 방법. 둘째, 군사에 관한 처신. 셋째, 바람직한 군주상. 넷째, 이탈리아에 대한 조언이다.

 

 

3. 군주론의 마키아벨리즘

 

  1. 이익지향적 사상

 

  마키아벨리는 군주의 신민들 및 동맹들에 대한 처술 고찰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다른 사람들이 제안한 원칙들과 특히 이 문제에 관해서 크게 다르기 때문에, 내가 건방지다고 생각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운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나는 이 문제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유용한 것을 쓰고자 하기 때문에, 이론이나 사변보다는 사물의 실제적인 진실에 관심을 경주하는 것이 낫다”고 얘기한다.

  마키아벨리는 국가통치술을 설명하는 데에 있어 이전 시대부터 존재해 왔던 도덕적 이론과 규범에 근거한 정치사상에서 독립하고자 하였으며, 이익과 부합되지 않는 것들은 일체 정치 행동원리에서 배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기존 정치행위의 원리인 도덕적인 원리를 추방한 것은 정치행위의 비도덕성을 전제로 깔겠다는 의도로서,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이익의 개념을 정치에 적용시켜 불안한 정국 속에서 일정한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이익지향적 행동은 심지어 그의 폭력관에서도 보인다. 마키아벨리에게서 놀라운 점은 격동의 정국속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잔인한 폭력마저도 마치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필요약을 처방해주듯이 적당한 양을 적절한 시기에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는 것이다. 「군주론」곳곳에서도 보여지듯, 소수에 대한 폭력을 통해 다수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면 그러한 과정에서 사용된 폭력이라는 것은 악덕이 아닌 덕으로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고정된 진리보다 상황에 맞는 덕을 추구하는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익에 근거한 정치는 자신의 정치영역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에는 효과적이겠이지만 궁극적으로 공동체적인 성격을 띤 정치구조를 만드는 데에는 한계점이 있지 않겠냐라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마키아벨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메디치가에게 마지막으로 ‘공동체적 성격’을 띤 이탈리아 민족을 위한 국가통일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2. 현실주의적 사상  

 

 마키아벨리 사상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정치사상의 독자성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야 정치사상의 자유가 보장되고, 정치영역의 독자성이 익숙한 관념이었겠지만, 중세에 들어서는 모든 정치사상은 교회로 수렴된다. 정치사상에서 개인의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어디까지나 기독교라는 하나의 통일된 종교적 사상아래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기독 사상외에는 어떤 것도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탈리아의 정치적 성격이 기독교의 영향력을 조금씩 벗어나면서 그 나름대로의 독자성을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이런 흐름 가운데 나온 것이 바로 마키아벨리의 정치 사상인데 그는 자연법 사상과 같은 중세적 사고방식을 거의 배제시켜 버린 채, 철저하게 현실을 중심으로 권력의 문제만을 두고 현상들을 분석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시말해 종교적 가치나 윤리적 고려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권력의 획득, 유지, 확대의 차원에서만 정치를 살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그러한 그의 생각은 정치현실의 복잡하고 다양한 부분들을 모두 살피지 않고 따라서 어떤 편협된 시각으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사상대로라면 종교적, 윤리적, 문화적 얘기를 다 제쳐두고 정치와 권력이 함께하고 있는 곳이라면 모두 다 적용될 수 있다는 매력적인 점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의 사상은 ‘덕’의 개념에서 가장 크게 드러난다. 기독교 사상가들은 신에 대한 경건함, 정직함, 겸손함 즉 기독교적인 의미의 덕만을 군주들에게 요구했다. 그러나 그런 기독교적인 덕은 마키아벨리 저자 말대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만을 답해줄 뿐,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실제적인 설명은 해 줄 수가 없다. 따라서 그는 군주에게 필요한 덕으로써 ‘남성다움’, ‘용맹스러움’,‘단호함’등을 요구했다. 이러한 마키아벨리만의 덕 사상은 윤리에서 말하는 덕과 확실히 구분된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키아벨리는 진정한 덕이 반드시 윤리적 덕과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도덕적 덕에 입각한 기술’보다 ‘권력의 기술’문제에 치중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공적인 덕에서 윤리적인 덕이 적용되는 부분이 적은 것일 뿐이지, 사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윤리적인 덕이 효력을 발휘한다고 했다. 그러한 그의 생각들은 15장 <사람들이, 특히 군주가 그 때문에 칭찬받거나 비난받는 일들>에서 잘 보여진다 하겠다.

  그는 ‘악덕’이라고 불리는 덕을 실천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키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전제로 “군주가…좋다고 생각되는 성품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 그야말로 가장 찬양받을 만하며, 모든 사람들이 이를 기꺼이인정할 것이라는 점을 나는 알고 있다”라고 분명히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윤리적인 덕은 분명히 존재하고 일부 사회 내에서 효력을 발휘하지만 그것이 정치구조 안에서는 사용되기 힘들다는 점을 꼬집어 주장하는 것이다.

 

  3. 외양추구적 사상


  그는 급변하는 정치 상황 속에서 내부적 역량에 기초한 군주의 덕목들은 상대방을 설득시키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고 또 효력을 발휘하기가 힘들다고 보았다. 따라서, 군주는 겸손함, 신실함, 경건함과 같은 덕목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지만 가지고 있는 것처럼은 보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러한 외적 측면의 강조는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정치라는 것이 윤리적 사상과 맞닿는 본질의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공간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봤다. 중세의 철학가들은 종교적 진리를 정치라는 틀 안에서 구현시키고자 노력했지만, 마키아벨리는 정치구조 속에서 그러한 행동들이 결코 효력을 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권력판 속에서 군주가 추구해야 할 것은 여유있을 법한 진리의 완성이 아니라 ‘영광’과 ‘명예’라고 생각했다. 
  그의 외적추구 사상은 눈물도 피도 없는 정치구조판 속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역할과 기능을 한다. 대부분 정치상황이 적자생존의 법칙으로 돌아가고 있는 판국에서, 순수한 도덕률에 입각한 행동들을 보여주게 되면 그 자신은 적들에게 쉽게 그 약점이 노출되어 심각한 정치적 데미지를 입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따라서 자신의 적으로부터 일단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외양적 덕목만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본 것이다. 
  외적 사상과 결부되는 ‘가장’과 ‘위선’은 위험한 정치구조 속에서 인민과 귀족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는 정치자가 일반적인 윤리의 치침에 잘 따라 하는 것처럼 교묘히 위장하라고 조언함으로써, 대중에게 보여주는 퍼포먼스에서는 정치적 윤리보다 일반적 윤리가 더 우월하고 효력이 크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4. 결과주의적 사상


  이탈리아 정치에서 마키아벨리에게 중요했던 것은 “결국 그러한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낳을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그는 “외양상 덕으로 보이는 것이 악덕이 되고, 외양상 악덕으로 보이는 것이 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16장에서는 정치상황에서 통치자가 일반적인 관후함을 보인다는 것은 불만을 품은 세력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준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국고탕진, 다시 말해 인민의 세금부담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와 관후함은 곧 악덕으로 전환이 된다. 반면 통치자의 인색함은 불만을 품은 소수 세력만을 배제할 뿐 그것은 신민의 재산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 됨으로 결국 공적으로는 덕으로 이어진다.

  17장의 ‘진정한 자비’에서는 통치자가 자비로워서 쉽게 죄인을 용서하면 기강이 문란해져 질서를 유지키 힘들고, 그것은 거꾸로 엄격한 통치로 이어지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악덕이 된다고 말한다. 반면 일정한 잔인함을 보여주어 국가의 기강을 바로세운다면 그것은 소수의 희생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온전히 생활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진정한 덕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이득을 더 많이 가져오는 결과만이 진정한 덕으로 귀결될 수 있다는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5. 운명개척 사상


  25장에서 말하는 운명론에서도 기독교와는 반대되는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모든 일은 신이 주관하고 신의 뜻에 따라 일어나며 신의 뜻으로 종결된다”고 보는 기독교적 사상과는 달리 그는 “운명이란 우리 활동의 반만 주재할 뿐이며 대략 나머지 반은 우리의 통제에 맡겨져 있다는 생각에 이끌린다”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시대에 잘 적응시키는 사람들”은 “운명의 범람”을 통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운명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그 상황에 순응하는 것보다 대담함과 용기를 가지고 과단성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적극적인 운명개척 정신을 가질 것을 독자에게 호소한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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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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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4.14 22:52 신고

    논문 : vir

 

  

직장인이라면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월요병. 지옥같은 일주일의 시작. 당장 월요일 아침만 생각해도 머리가 지근거려 온다. 대한민국 수천만 직장인들이 매주 일요일 밤만 되면 고단한 마음에 잠을 설친다. 일요일 아침부터 증상이 찾아와 휴일 전체를 망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런 악순환의 반복은 곧 직장생활에 대한 염증과 회의, 이직 고민으로 번지기 마련이다. 내 삶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월요병. 무엇이 문제일까?

 

월요일이 문제인가, 회사가 문제인가, 아니면 내가 문제인가?

 

일단 월요일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만약 당신이 프리랜서라고 해보자. 월요일이 두려울 이유가 없다.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그걸 누가 몰라서 이래요?' 고함치는 분들 계실지도 모르겠다. 맞다. 프리랜서로 멀쩡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나도 안다. 하지만 프리랜서로 살 수는 없어도 프리랜서의 마음가짐으로는 살 수 있다는 점 수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다.

 

당신은 회사를 위해 사는가, 아니면 나를 위해 사는가. 거의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해 산다고 하지만 정작 따져보면 회사를 위해 사는 사람이 99%이다. 머리는 내 위주로 돌아가지만, 내 모든 생활은 회사를 위주로 돌아간다. 여기에서 근본적인 충돌이 일어난다. 겉으로 대충 보기에는 '아 출근하기 싫어'이지만 그 말을 자세히 파헤쳐보면 '나를 위해 살고 싶은데 회사가 시키는대로만 살고 있는게 싫어'라는 짜증이 깊게 박혀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하고 회사라는 감옥 갇혀 사는가? 바로 여러분 스스로가 선택한 철창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여러분에게 회사에 충성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단지 여러분이 회사에 충성하면 무엇인가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젖어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해서 내 삶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되어 버렸다. 수동적 회사일과 수동적 휴식.

 

내가 회사를 다니는 것이지, 회사가 나를 다니는 것이 아니다. 회사가 여러분을 착취하는 만큼 여러분은 그에 응당한 모든 댓가를 뻔뻔하게 누려야 한다. 월요병은 예방도, 극복도 필요없다. 여러분은 불금에서부터 일요일 밤까지 노동에 대한 정당한 휴일의 즐거움을 능동적으로 즐겨야 한다. 회사 눈치를 보면서 쉰다고 해서 회사가 내 연봉을 올려준다거나 상사가 칭찬해준다는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예능을 보고 싶으면 퍼질러서 신나게 보고, 놀고 싶으면 신나게 놀아라. 공부하고 싶으면 알차게 해라.

 

월요일이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다. 내 스케쥴에 맞추어 월요일을 편성해라. 내 몸상태에 맞추어 회사일을 분배해라. 모든 것은 내 위주로 돌아간다. 가장 멍청한 짓은 월요일부터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는 일이다. 내 인생은 내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자, 월요병 퇴치 일곱가지 계명을 알려주겠다.

 

1. 월요일 아침은 1시간 일찍 일어나라.

- 내 인생 찾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다. 1시간 일찍 일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라. 회사 가기 싫어서 이불 속에서 뭉개지 말고, 1시간이라도 내 시간으로 시작해 보자. 그게 훨씬 더 이득이다. 무엇을 하든 좋다. 나에게 가장 득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나에게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그 한 시간을 보내보자.

 

2. 쳐낼 수 있는 모든 일을 뒤로 미루어라.

- 월요일부터 기운 뺄 필요 없다. 회사가 명령한 일 중 뒤로 미룰 수 있는 것들은 가급적이면 다 미루어라. 금요일까지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회사가 나를 함부로 착취할 수 없게끔 수많은 방어막을 설치해두어라. 수단방법 가릴 것 없다. 남에게 부탁을 하든, 남에게 떠넘기든 월요일은 일을 많이 하지 마라.

 

3. 회사에서 단 30분이라도 공부해라.

- 일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수가 틀어지면 때려칠 수 있는 가변적인 성질의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진짜 노후대비는 공부다. 내 위주로 라이프스타일을 진정 꾸미고 싶다면 약아 빠진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하루에 단 30분이라도 회사에서 공부를 해라. 10분을 세 번으로 쪼개든, 5분을 여섯번으로 쪼개든 당신 마음이다. 회사가 나를 착취하는 만큼 나 또한 회사를 이용해 먹어야 한다.

 

4. 회사에서 단 30분이라도 혼자 쉬어라.

- 이것은 건강관리에서 필수의 문제이다. 나 혼자 있는 시간을 필사적으로 만들고, 그 시간만큼은 일에서 해방감을 맛보아라. 음악감상도 좋고, 가벼운 스트레칭도 좋다. 중요한 건 나 혼자서 쉰다는 사실. 누군가와 회사 뒷담을 한다던지, 동료들과 모여 야구 중계를 짬짬히 본다든지 하는 것은 쉬는 것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 또한 회사 눈치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5. 최대한 맛있는 걸 먹어라.

- 짜증이 폭발하지 않도록 최대한 맛있는 음식들을 섭취해라. 아침에 나올 때 초코렛을 먹든, 점심 식사 후에 정말 맛있는 캬라멜 마키아또를 마시든 여러분들만의 최고 맛난 음식들을 선정해서 월요일에 집중 포격해라. 점심도 가급적이면 비싸고 맛있는 메뉴로 고르자. 다이어트 생각은 일단 개에게 넘겨줘라. 나를 달래준다는 마음으로 먹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단, 술은 금물이다.

 

6. 약속 잡지 말아라.

- 월요일 퇴근 후 약속은 독이다. 몸은 휴일에서 근무일로 급격하게 넘어와 이미 피로도가 몹시 올라와 있다. 월요일 약속은 한 주의 체력을 갉아먹는 독 중의 독이다. 집에서 쉬든지, 카페에 혼자 가서 책을 보든지, 영화관에서 혼자 즐거운 명화를 보든지 가급적 혼자 누릴 수 있는 것을 찾아라. 그리고 핸드폰을 멀리해라.

 

7. 퇴근 후, 따듯한 물에 오랫동안 샤워해라.

- 샤워만큼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도 없다. 따듯한 물로 오랫동안 몸의 구석구석을 적혀주도록 하자. 평소보다 오랜 시간 동안 샤워해라. 그리고 욕조에 누워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마음 속으로 위안해주자. 오늘 하루도 나를 위해서 열심히 살았다고. 나를 위로해 줄 가장 위대한 친구는 나다. 그리고 깊은 잠을 청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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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카페에 가서 책 보고 있는데 옆에서 문득 얘기하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악관절 때문에 밥도 못먹는다구요. 아,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티비에서도 룰라 김지현이 악관절 때문에 귀가 안들리는 증상까지 생겨서 양악수술 받았다는 소식도 들었어요. 생각외로 많은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저는 악관절이라는 증상을 겪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방치해둔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이러다 말겠지, 저러다 말겠지 하다가 이빨 끝 다 나갔구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턱에서부터 머리까지 깨질것 같은 고통 때문에 하루 종일 두통약 달고 지낸 적도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어느날 몸살이 나니까 악관절부터 나빠지더라구요. 너무 아파서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스스로 증상을 지켜봤습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발생하는지를요.

 

1. 상체에 힘빼라

가만히 지켜보니 쓸데없이 상체에 힘을 주고 있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가령, 조금만 긴장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빨을 악 다물고 있습니다. 어깨에 힘 잔뜩 들어가 있구요. 당연히 어깨가 올라갑니다. 상체 전체에 힘이 들어가게 되죠. 하루에도 몇 십번을 반복하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때마다 힘을 빼는 연습을 했어요. 계속 반복될 때마다 온 몸에 기운이 빠졌다는 생각으로 어깨를 내리고 큰 숨을 들이쉬었죠. 이 동작만 2주 정도를 했는데도 악관절이 몰라보게 줄어들었습니다.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상체에 힘 빼는 연습부터 하세요.

 

2. 다리 꼬지 마라.

회사에 앉아 있다보면 다리를 꼬거나 비틀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결과적으로 이 행동이 상체에 힘을 가중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더라구요. 의자에서 허리 꼿꼿히 피고 똑바로 앉아 있는 연습하세요. 다리는 90도 각도로 편하게 내려놓는다는 생각으로 힘빼고 앉으시구요. 책상과 의자 높이 조절도 필수에요.

 

3. 운동 부족도 원인이다.

악관절의 근본적인 원인은 스트레스입니다. 누구나 스트레스는 있어요. 그런데 이걸 풀지 못하니까 결국 몸 안에서 돌도 돌다가 턱으로 갑니다. 운동 안하지, 자세 나쁘지, 스트레스가 체내에 그대로 쌓여 뇌를 자극합니다. 뇌는 잠재된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서 자는 도중에 무의식적으로 평소의 이겨내는 행동을 일으키죠. 이 악물고 버티는 그 습관 말이죠. 격한 운동을 하라는 소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격한 운동은 악관절을 더 악화시킵니다. 가볍게 땀 흘릴 수 있는 정도의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세요. 스트레스를 뽑아낸다는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운동하면 효과가 배가 됩니다.

 

4. '빼쨰라'는 마음가짐으로 살아라.

악관절은 보통 예민한 사람 또는 예민한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잘 나타납니다. 꼼꼼한 작업을 요하거나 항상 데드라인에 쫓기는 그런 류의 직업군 말이죠. '오늘 안되면 내일 해도 세상 안망한다'는 생각을 오늘부터 품어 보세요. 그리고 메모장이나 다이어리에 반복해서 씁니다. 성질 뻗치거나 누군가와 마찰이 생겼을 때 반복해서 생각해보세요. '에라이 배째라' 그냥 이런 마음으로 그냥 편하게 말이죠. 예민한 사람이 그렇게 생각해야 보통 사람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5. 잘 때 조심해라.

잘 때 머리맡에 내일 할 일이나 그런 거 다 치우고 자세요. 그리고 자기 직전에 격하게 두뇌 쓰는 일은 절대 하지 마시구요. 잠재의식이라는 건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자기 전을 항상 조심하세요. 가급적 재미있는 예능이나 짤막한 코미디극, 아니면 조용한 자기만의 취미를 즐기다가 편한 자세로 잠드세요. 그리고 반드시 자기 전에 '나는 잘 때 악관절을 일으키지 않고 좋은 마음으로 잠들 거다'라고 생각하세요. 우습게 보일지 모르지만 돈 드는 거 아니니까 한번 해보세요. 이것도 2주에서 길게 한 달 정도 연습하면 분명히 효과가 나타납니다.

 

이 다섯가지를 한 달 정도 지킨 결과, 현재 2주 동안 한번도 턱을 깨물고 자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대한민국에 악관절 환자들, 수술 생각하기 전에 스스로 고쳐보겠다는 마음가짐 한번 가져봅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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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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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직장인들, 많이 변했어요. 황금같은 점심시간 쪼개서 헬스클럽 다녀오는 사람들, 회식 자리 줄이고 주말 등산 가는 사람들, 틈틈히 배운 요가로 아침 저녁 스트레칭으로 몸의 긴장을 풀어주는 사람들. 일에 찌들고 지쳐버린 자기 몸을 적극적으로 돌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운동해도 스트레스 지수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운동을 하면 할수록 더 체력이 떨어지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몸은 돌보지만 정작 마음은 돌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도 몸과 똑같아요. 일의 몰입에도 한계가 있고, 마음의 방어벽에도 일정한 두께가 있습니다. 정적수준을 넘어가면 집중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방어벽은 허물어져 의기소침과 우울증에 쉽게 노출되는 것이죠. 몸살은 신경쇠약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마음도 몸과 같이 세심한 관심과 관리가 필요해요.

 

하루 중 마음 정리가 가장 필요한 시간은 언제일까요? 바로 잠들기 전입니다. 잠자는 시간은 의식의 세계에서 무의식의 세계로 넘어가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의식의 세계에서 차곡차곡 쌓여버린 마음의 수많은 오물과 찌꺼기들, 정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대로 뇌 속 어딘가에 버려집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썩어 곪아버리죠. 상태가 심각해지면 그 오염물들이 무의식의 세계로까지 뿌리를 뻗습니다. 순식간에 줄기와 가지가 솟아오르고 잎이 무성해집니다. 깨끗했던 마음 속 공간이 온통 독소의 숲으로 변해버리는 거죠.

 

'내일 출근하면 해결해야 할일이 산더미같은데...잘 될까?', '아, 오늘 그 사람은 정말 이기적이었어.', '아침 출근길 생각하니 정말 끔찍하다.', '과장님한테 욕먹은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 이런저런 잡생각이 부풀어오르다보면 잠이 올리가 없죠. 스탠드를 다시 켜고 이불에서 나옵니다. 핸드폰을 열어 스케쥴을 살펴봅니다. 가방에 넣어둔 서류철도 들춰내죠. 걱정은 태산같이 높아져만 갑니다. 온통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채 잠이 들어버립니다. 숙면이 이루어질리가 없죠. 당연히 아침이 피곤합니다. 무의식의 세계엔 온통 마음의 쓰레기들 뿐이거든요.

 

마음에도 따듯한 이불을 덮어주세요. 잠들기 전 잠시 생각했던 것들이 꿈에 나오는 경우, 결코 적지 않습니다. 그만큼 '마음의 이불덮기'는 나만의 중요한 힐링이에요. 자신이 좋아하는 조용한 음악 하나 틀어보세요. 그리고 눈이 맑아지는 아름다운 그림책이나 풍경 사진첩을 찬찬히 훑어 보세요. 자세히 보지 말고 그저 즐기듯이 책장을 넘기세요. 눈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자구요.

 

차분한 음악으로 귀를 씻어주고, 푸근한 그림과 사진으로 눈요기도 했습니다. 누웠나요? 잡생각을 펼치는 대신 스스로에게 위안어린 한 마디 남겨주세요. 오늘도 정말 수고했노라고. 실수한 것들, 놓쳐버린 것들, 이제 그만 용서하고 좋은 마음으로 잠들자고. 힐책거리, 나쁜 생각은 하루에 하나씩 종이비행기에 날려 보내요. 칭찬거리를 그 자리에 채워넣자구요.

 

'마음의 이불덮기'가 하루이틀 지나고 한달두달이 계속되면 마음 속 깊은 어딘가에서 서서히 용기가 샘솟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에요. 상대방을 대하는 나의 마음도 훨씬 부드러워지구요.

 

세상에 쫓기듯 잠들지 말고, 세상과 나 모두를 보듬어주고 잠들자구요. 오늘도 좋은 하루, 좋은 밤입니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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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28 02:24 신고

    그래요 제생각이그래요
    마음을 돌봐야하죠 완전 공감


 

삼국지는 중국 후한시대 말, 위ㆍ촉ㆍ오가 천하를 두고 치열하게 다툰 전쟁사다. 역사의 시간으로 재본다면 백년이 채 되지 않은 다소 짧은 스토리다. 중국사 전체의 비중에서 따져 봐도 삼국시대가 자치하는 역사적 의의는 사실 그다지 높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지는 동양의 남자들을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로 빠뜨려버린 고전 중의 ‘TOP’으로 손꼽히고 있다. ‘삼국지를 열 번 읽은 사람과는 논쟁하지 마라’는 말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여하튼 삼국시대가 실제 어떻게 벌어졌는지 정확히 몰라도, 삼국지가 나에게 미친 파급력이란 매우 깊고 진하다.

 

내가 처음 삼국지를 접한 것은 책이 아니라 게임을 통해서였다. 국민학교 4학년 때 동네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일본 KOEI사에서 출시한 ‘三國志 Ⅲ’ 게임을 알게 됐다. 11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권모술수와 용병술로 천하를 제압해 나아가는 시뮬레이션 전략에 그만 흠뻑 빠져 버렸다. 그 맛을 잊지 못한 나는 방학만 되면 외할머니 댁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길게는 한 달 동안 머물며 삼국지 게임을 마음껏 즐겼다. 그곳에는 삼국지에 열광하는 사촌형과 최신형 컴퓨터, 천혜의 골방이 있었다.

 

당시 삼국지 게임은 한글 번역본이 없었던 탓에 한자로 된 자막을 읽고 눈대중으로 숙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것 따위는 통밥으로 익히면 그만일 뿐 문제될 것이 전혀 없었다. 아니 문제는커녕 도움이 되었다. 그 때 나는 서예학원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학원에서 익힌 한자를 게임에 대입시킬 수 있었고,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군사에서 ‘징병’과 ‘모병’의 차이, 인사에서 ‘등용’과 ‘임명’의 의미, 계략에서 ‘이호경식’과 ‘의서의심’이 지닌 각각의 효과는 한자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몰입의 몰입을 거듭할수록 궁금한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유비를 선택군주로 했을 때, 내가 등용하고자 하는 이 인물이 실제 삼국지에서는 어떤 활약을 했던 사람인지, 신야성에 유비가 주둔하고 있는 시나리오를 선택하면 조조는 왜 형주로 내려오지 않고 원소와 그토록 격렬하게 싸우는지, 마지막 시나리오에서 왜 유선의 세력이 삼국 중 가장 미약한지 등등 하나 둘 역사의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결국 국민학교 5학년 여름방학이 되자 나는 아버지에게 삼국지를 읽고 싶다고 말했다. 그 때 아버지가 나에게 준 책은 정비석 작가의『三國志』(1982년 발행, 지혜문화사)였다.

 

총 1510페이지, 모두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이었다. 당시 아버지가 소장하고 있던 책들은 가로형식이 아닌 세로형식이 많았는데 이 책 역시 그랬다. 읽기에 다소 생소한 감이 있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나는 3일 만에 모든 내용을 읽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격렬한 스토리에 넋을 잃었다. 그렇게 한 번 삼국지 전체의 이야기를 훑고 나니 삼국지 게임에 제시된 시나리오 1~5의 타이틀에 대한 경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왕실의 부흥을 기치로 내걸었던 ‘유비의 역사’를 위주로 다시 한번 책을 읽었다.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가 도원결의로 일어난 후 수십 년을 방랑객처럼 떠돌면서 겪게 되는 시련과 고난의 에피소드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읽었다. ‘선한 자’의 편에서 사건 위주의 읽기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입각해서 다시 게임에 임했다. 그렇게 몇 번을 자꾸 반복하자 뒤에서 지켜보던 사촌형이 한 마디 던졌다. “넌 맨날 재미없게 유비만 하냐? 조조가 훨씬 재밌어!”

 

나는 조조의 뭐가 재미있느냐고 되물었다. 형은 조조가 사람도 훨씬 많고 전쟁도 스케일이 다르다고 했다. 형의 대답은 그 때까지 내 머릿속에 온통 악인으로 찍혀 있던 조조라는 인물을 재조명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나는 중요 군주들을 중심으로 다시 한번 삼국지를 읽었다. 그리고 그 군주들이 아끼는 측근들과 핵심인물들을 손수 리스트로 작성해보았다. 비로소 삼국지의 균형적 읽기가 성립되었다. 그렇게 게임의 방식도 변해갔다. 

 

이 쯤 읽고 나면 슬슬 삼국지 게임이 지겨워 질 즈음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도 알고, 사람을 얻는 방법도 안다. 정확하게 말해서 게임을 독파한 시점이다. 이렇게 되면 강자보다는 약자를 골라서 게임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장수, 장로, 공융, 유요, 엄백호, 왕랑 등 죄다 한 뙈기 땅만 가지고 있다가 강대국에게 점령당하는 약소국의 군주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 주목해서 읽지 않다보니 누군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또 한번 삼국지를 읽게 된다. 삼국지의 미시적 읽기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몇 번을 거듭하여 삼국지를 읽고 나면 인상 깊었던 사건과 인물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각인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재추적하고 재구성한다. 나만의 삼국지 읽기가 시작된다. 사건을 조각조각 내보기도 하고, 떼었다 붙여보기도 하고, 가정과 가설을 세워보기도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사람의 인물에 빠져 버린다. 점점 그 사람의 삶을 동경하고, 대변해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 사람의 상당 부분을 내 인생에 대입시켜 보는 습관이 생긴다.

 

게임 삼국지 Ⅲ를 완파하고, 소설 삼국지를 열 번 이상 읽어본 소감이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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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선생님 댁에도 눈이 내렸습니다.

 

성북동 길에는 차도 사람도 다니지 않습니다. 밤사이 내린 함박눈으로 번잡했던 서울의 거리가 잠시 고요한 휴식을 누리듯합니다. 사람의 발길이 잠시 끊긴 사이 골목이며 지붕이며 집 앞에 늘어선 자전거와 화분까지 하얀 눈의 손길이 미치지 아니한 곳이 없습니다. 검푸른 밤하늘을 수놓던 수천수만의 하얀 알갱이들이 대지에 내려앉아 온 사물을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오늘따라 선생님 댁 뒤뜰의 달 항아리가 떠오르는 것은 텅 빈 밤하늘에 무심히 걸려있는 둥근 달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화려하게 몸치장을 하던 대로변의 네온사인과 간판들이었건만 이렇게 자연의 강림 앞에서는 한 낱 어린아이 색칠거리에 불과한 것인가 봅니다. 하늘이 자아낸 천연한 흰 물감을 풀어버리면 순간 그것들은 다시 무(無)로 돌아간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하얀 빛깔의 이 희한하고도 신비로운 도심의 수채화는 선생님이 늘 말씀하셨던 순리의 아름다움, 백색의 아름다움이 아닌지요. 선생님이 살아 계시다면 사랑방 창가에 앉아 지금의 풍경을 대견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시지는 않았을까 흐뭇한 상상도 지어봅니다. 선생님 댁을 올라가는 이 길이 그저 즐겁기만 한 것도 이와 같은 마음입니다.

 

정적이 감도는 선생님 댁 마당에는 밤나무와 감나무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있고, 그 위에는 차분하게 함박눈이 내려앉았습니다. 선생님이 심어둔 나무 잔가지 마디마디에는 구슬보다 더 영롱한 눈 이슬이 맺혀서 이 스산스럽고도 호젓한 뒤뜰의 풍경을 한층 아름답게 빛내주고 있습니다. 용자살 창문에 비친 조용한 달빛과 그 빛깔에 더욱 확연한 맵시를 드러내는 장독대 옹기들은 생전 선생님의 넉넉한 마음씨를 비춰주는 것만 같습니다.

 

선생님 댁에는 아직도 푸르른 소나무와 향나무가 특유의 청렴함을 간직하고 있고, 산수유와 자목련, 생강나무는 있는 듯 없는 듯 집과 한 덩이를 이루고 있습니다. 박석 사이사이마다 겨울 숨을 고르고 있는 맥문동과 벌개미취의 잎사귀들은 따스한 봄날을 꿈꾸고 있습니다. 예술에 의중을 두었지만 그 미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자연의 뜻에 맡겨두는 당신의 안목이 잔잔히 밀려오는 까닭입니다.

 

생전에 두고 즐기셨다는 뒤뜰의 둥그런 달 항아리가 묵묵히 달빛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넉넉한 자태로 질박함과 순후함을 충만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수묵화를 그려내듯 온 집을 병풍처럼 둘러친 청죽은 집과 정원의 아름다움이 둘이 아닌 하나로 느껴지게 하는 본바탕이 되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뽐내지도 않고, 번쩍이지도 않는, 그리고 수다스럽지 않는 우리네 아름다움이 아닌지요.

 

함박눈 내린 겨울밤, 선생님의 옛집에 기대서서 맛보는 이 즐거움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자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의 풍경을 마음의 소중한 갈피로 간직할 수 있다면 이 순간은 영원할 수 있겠지요. 칠흑같이 어두운 밤, 달빛과 선생님과 이 집을 그리는 이유입니다.

 

나는 지금 행복합니다.


Written by 선장

Painted by 사샤



최순우 옛집(등록문화재 제268호)


  최순우 옛집은 한국 문화재에 대한 깊은 애정과 뛰어난 안목으로 그 아름다움을 찾고 보존하는데 일생을 바쳤던 최순우 선생(1916~1984)을 기리고, 한국 미(美)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설립되었다. 최순우 선생은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이자 미술사학자로, 저서에는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전집(1~5권)]등이 있다. 

  이 집은 1930년대 지어진 튼 'ㅁ'자 형태 한옥으로 선생이 1976년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살던 곳으로 선생의 미학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공간이다. 2002년 겨울, 문화유산 보전의 뜻을 가진 시민들이 성금으로 이 곳을 매입하여 내셔널트러스터 시민문화유산 1호로 지정하였다. 

  현재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에서 보전, 운영하고 있으며, 2004년에 개관하여 4월부터 11월까지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한다. 봄과 가을에 시민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과 특별 전시회를 열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www.nt-heritage.org  

공식 블로그: http://cafe.naver.com/ntch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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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02.12 09:53 신고

    저도 동감 입니다.누추하지만 내집이 제일 편하지요.


 

최근 한 기사에서 “젊은층의 40% 정직보다 돈이 중요”라는 타이틀을 내걸었다. 그리고 특정 여론조사를 인용하면서 부제로 “청렴의식 기성세대보다 낮아”, “물질만능주의ㆍ경쟁위주 교육 탓”을 달았다. 이 이야기를 한데 묶어보면 ‘젊은층이 기성세대에 비해 청렴의식이 부족하고 물질만능의식이 팽배하여 정직보다 돈을 중요히 생각한다’로 정리된다. 젊은층의 현 실태를 싹 무시하고 늘 해쳐먹던 교과서적인 결론으로 몰아간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 여론조사에서는 두 가지를 물어봤다. 첫째, ‘부자가 되는 것 VS 정직하게 사는 것 중 더 중요한 것은?’ 둘째, ‘부패자 VS 청렴자 중 성공할 확률이 높은 사람은?’. 그리고 똑같은 질문을 그리고 15~30세, 31세 이상으로 각각 나누어 물어봤다(이렇게 나눈 자체도 황당하다).

 

 

그런데 이 두 질문 중 사실 더 비중 있게 보아야 할 것은 두 번째 질문이다. ‘부패자 VS 청렴자’ 질문에서 YB(15~30세)는 거의 5:5의 비율이, OB(31세 이상)는 4:6의 비율이 나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젊은 층’이나 ‘늙은 층’이나 생각하는 게 비슷비슷하다는 얘기다. 기사 끝에 인용한 대로 “젊은 층에도 책임이 있겠지만 기성세대의 잘못이 크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라는 소리다. 누가 누굴 탓할 수 있는지 참으로 막막하다.

 

또 하나 따져봐야 할 점. 과연 젊은이들이 ‘정직보다 돈이다’라고 답한 것이 정말 청렴성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서도 짚어봐야 한다. 주위 대학생들과 취업전선에 이제 막 발을 담근 사람들을 보라(물론 소수점의 고위급 자제분들은 논외로 두자). 집은커녕, 재테크의 ‘재’도 못 건드리고 있다. 통장에서 학자금 대출이자와 원금으로만 매달 수십만원이 우습게 빠져나간다. 이 뿐이랴. 각종 공과금에 직장 상사 챙기기, 꼴에 사회 나왔다고 축의금, 조의금 다 뿌리고 나면 통장에 남는 돈은 빠듯한 생활비 몇 푼과 다 타고 남은 마음의 ‘재’ 뿐이다.

 

대기업을 제외하면 사실상 대부분의 젊은층 취업자들이 하루 벌어먹고 사는 ‘하루살이 월급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의 고용주들은 대개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권력과 권위로 아랫사람을 호령하는 소위 말해 ‘옛날 어르신’들이다. 그들은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꿈이 없어”, “자기 개발을 해야 경쟁이 되지.”, “요새 애들은 열정도 없고 끈기도 없어.” 라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이들이 혹시라도 자신의 의사를 밝히거나 부당한 대우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면 “아니, 이제 갓 들어온 놈이 뭘 안다고 떠들어!”, “꼭 어설프게 아는 것들이 시끄럽다고, 이런 애들이 더 골치가 아파요!”, “이래서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나오는거야!”. 어떤 때는 젊은이들의 패기와 자율성을 요구하면서도 막상 그들이 치고 나올 기세라도 보이면 자신들이 그대로 보고 배웠던 ‘군대식 시스템의 중요성’으로 제압한다. 젊은이들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어느 장단에 어떻게 맞추라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정작 그들은 청렴과 정직으로 젊은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는가? 내가 설명할 필요 없다. 여론조사에서 나온 그대로다. 앞에서만 그럴듯하게 까불어대고, 뒤에서는 지연, 학연, 직연, 연이라는 연은 총동원해서 내 세력 만들기에만 골몰한다. 오직 내 세력 안에서만 ‘청렴과 정직’이 존재한다. 내 말 잘 들으면 ‘성실하고 청렴한 사람’ 그렇지 않으면 ‘고집불통에 자기만 아는 사람’으로 낙인찍힌다. 그들은 대개 베이비붐 세대로 윗사람의 주선을 통해 이른바 ‘특별공채’를 통해 들어온 사람들이거나, 지금과 같은 치열한 취업 경쟁률을 경험하지 않고 무난하게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철저한 자기세력를 만들기 위해 아랫사람들도 ‘연’을 이용한 방식으로 등용하는 것을 즐긴다. 말이 ‘공채’지 사실상 ‘공채’를 가장한 ‘특특특채’다. 

 

공채라고 해서 가보면 이미 악수하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결국 저 사람이 ‘될 사람’이다. 허탈한 마음 감추지 못하고 돌아서는 사람들이 족히 수백명이다. 서로 말은 아끼지만 ‘아, 결국 또 내정자가 있구나’,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넘을 수 없는 벽이 있구나’ 하는 탄식에 한 숨만 내쉰다. 젊은이들을 공격하는 당신. 이런 광경을 눈앞에서 지켜본 적이 있는가? 시험장 밖을 나가면서 정부수입인지 붙은 수험표를 박박 찢어 던지는 분노의 청년을 본 적 있는가? 그리고 그들과 한번이라도 진정성 있게 대화해 본 적 있는가?

 

“정직보다 돈이 중요”에 대한 진짜 답은 ‘정직에 대한 무지’가 아니라 ‘정직에 대한 냉소’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두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썩었는데 독야청청 그까짓 청렴 지켜봐야 나한테 뭐가 떨어지느냐’ 그거다. 이런 마당에서 어느 누구도 그들에게 꿈을 가지라느니 어쩌라느니 권유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슬기찡의 "니들끼리 다 해쳐먹어라" 멘트가 생각난다.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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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15 11:40 신고

    제 블로그도 놀러오세요~

 

 

<유형 1. 자신이 게임 속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부류>
-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는데 "어? 이게 뭐지?"란 식의 뜻뜨미지근한 반응만 보인다.

- 배고프면 일어나서 풀이나 뜯는다. 
- 게임이 진행되고 있는 사실조차 잊게 되고 곧이어 게임 속 부속물로 전락한다. 한가하게 제자리를 맴돌다가 머지않아 먹잇감이 되거나 다른 캐릭터의 도구로 전락한다. 게임의 일부로 흡수된 것이다.
- 게임부속물이므로 논할 가치조차 없다.  
 
<유형 2. 게임 부속물로 전락된 것은 알지만 업그레이드가 안되는 부류>
- '게임이란 사실을 잊으면 게임부속물로 변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 하지만 게임 한구석탱이 속에서 안주하고 있다. '게으름'이라는 저주의 마법이 걸려 있다. 
- 노력을 하지 못하고 오직 게임 시스템 탓만 하며 투덜댄다.
- 이 부류의 99/100은 평생 그렇게 처박혀 산다. '게으름'의 마법은 웬간해서는 풀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 이미 게임 부속물이다.
- 적 출현시 유형 1과 마찬가지로 추풍낙엽이다.
 
<유형 3. 게임 플레이는 하지 않고 허풍만 늘어놓는 부류>  
- 자신이 게임부속물인 점을 강력히 부정한다.
- 자신이 마치 엄청난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 영웅인듯 떠들어댄다.
- 당연히 게임 부속물이다.
- 빈약한 HP로 깐죽대다가 주위의 적에게 금방 들통나고 표적이 된다.  
- 유형 2보다 더 위험하다. 집중 포격받고 난도질 당한다.
 
<유형 4. 열심히 게임 플레이를 하는 부류>
- 전략과 실속은 없지만 한푼두푼 HP를 저축하고 열심히 아이템을 찾는다.
- 전략과 실속이 없는 덕분에 내실성이 거의 없다.
- 그래도 열심히 무언가를 찾아다닌다.
- 적에게 발견되면 즉시 죽임을 당한다.
- 결과적으로 유형 3과 다를 바가 없다. 게임부속물이다.  
 
<유형 5. 전략과 모험을 걸고 플레이를 하는 부류>
- 게임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다.
- 그렇기 때문에 풀 뜯어먹고 돈 줍고 하는 짓은 잘 안한다.
- HP와 아이템을 얻을 전략적 방법을 구사한다.
- 나름의 성과가 있다.
- 다만 모험과 승부를 즐기기 때문에 한 순간에 모든 재산을 잃을 위험이 있다.
- 유형 1,2,3,4의 부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게임 부속물이 아니다. 게임 주인공이다.
 
<유형 6. 신중함과 전략을 구사하는 부류>
- 게임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다.
- 단번에 많은 성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 다만 너무 신중해서 아이템 획득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 그래도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은 부류이다. 전략을 통해 HP와 아이템을 확보하고 보존하기 때문이다.
- 게임 주인공이다.

  

자, 당신은 어떤 유형인가???

 

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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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간 저녁 7시 10분. 강남역 2호선은 퇴근하는 직장인들로 초만원을 이룬다. 발 디딜 틈 하나 없다. 줄은 스크린 도어에서부터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단 끝까지 길게 늘어진다. 퇴근길에 늦게 합류한 사람들은 이 기괴한 ‘놀이기구 행렬’에 긴 한숨을 내쉰다. 어차피 러시아워, 버스를 타나 지하철을 타나 꼴은 마찬가지다. 할 수 없이 전쟁같은 사람통에 몸을 맡긴다.

 

취이잉...‘스크린 도어가 열립니다!’ 낭랑한 녹음멘트와 함께 이중으로 된 기계문이 일제히 열린다. 봇물 터지듯 사람들이 우르르 튕겨 나온다. ‘으어어~’, ‘꺅!’ 여기저기서 비명 아닌 비명을 내지르고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더니 곧이어 그 앞으로 ‘모세의 길’이 열린다. 선두는 해병대다. 자신의 몸으로 육탄방어 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사람들을 뚫고 전진한다. 후발대가 착실하게 그 뒤를 따라 붙는다. 행여나 줄이 끊길세라 나오는 사람들 모두 ‘앞으로 밀착’ 형태를 단단히 유지한다.

 

떠난 자들의 빈자리를 기다린 자들이 순식간에 메꿔버린다. 이번 열차에 어떻게든지 몸을 싣고픈 사람들은 까치발로 문끝에 간당간당 매달려 주변 사람들을 거의 포옹하다시피 한다. ‘어서! 제발...!’ 출입문이 닫히기만을 고대한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어림도 없다. 출입문과 스크린 도어가 ‘윙~치킹 윙~치킹’ 소리를 내며 닫힐 듯 말 듯 약만 올린다. 결국 몇 명의 사람들이 열차를 포기하고 뒤로 물러선다. 이 정도라면 나는 '세 번째 열차 정도에 몸을 실을 수 있겠구나' 하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세 번째 열차를 탔다. 아니, 밀려들어 왔다. 가만히 주변 사람들을 둘러본다. 빼빼로 통의 초코막대처럼 조금의 여유도 없이 따닥따닥 붙어있다. 신체 부위 중 움직일 수 있는 건 얼굴과 손 뿐. 특히 남자들은 성추행 의혹에 휘말리지 않게 위해 하나같이 ‘가슴 위에 손’을 하고 있다. 모두들 핸드폰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DMB 보는 사람, 카카오톡하는 사람, 쇼핑몰 구경하는 사람, 인터넷 신문 보는 사람, 눈을 감은 채 시끄럽게 헤비메탈 드는 사람, 정말 각양각색이다. 핸드폰이야 말로 이 지옥철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진통제인 것이다.  

 

5년 전 쯤, 어느 시골 마을의 양계장을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커다란 공간에 형광등 불빛달랑 몇 개 켜져 있는 어두컴컴한 방이었다. 가로세로 약 50cm 정도 되는 수백 개의 철장 속에 수천마리의 닭들이 갇혀있다. 그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양계장이 떠나가라 울부짖는다. 때가 되면 물과 모이가 나온다. 먹이를 먹기 위해 이리저리 엉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진다. 힘에서 밀린 자는 모이도 거의 먹을 수 없다. 슬슬 미쳐가는 닭들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닭의 주인장은 목숨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의 온도와 먹이, 빛 정도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다 탈진하여 죽어버릴 것 같아 보이지만 주인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다. 죽으면 그저 골라내어 폐기할 뿐이다. 슬며시 물어보면 국가에서 정한 최소치 기준만 벗어나지 않으면 그런 것들 따위 전혀 상관없다는 식으로 답한다. 소비자의 입으로 들어갈 이 훗날의 상품에 영양식품상 가시적인 문제만 발생하지 않으면 관계없다는 얘기다.

 

퇴근길 지옥철 안에서 연신 애니팡을 눌러댄다. 동시에 카톡으로 약속을 잡는다. 갓 튀겨낸 치킨에 맥주 거하게 걸친다. 만취해서 집에 돌아온다. 쓰러져 잔다. 천둥 같은 알람소리에 벌떡 잠에서 깬다. 어제 마신 술에 반쯤 취해서는 옷을 입는 둥 마는 둥 한다. 오늘도 십분 늦게 나왔다. 망할, 출근길 지옥철이 도착한다. 으쌰으쌰 응원행렬처럼 온 사람들이 철통 안에서 이리저리 밀려다닌다. 모두들 인상이 꾸겨진다. 열차가 조금 안정되자 다시 애니팡에 빠져든다. 정신이 이상해 보이는 ‘무개념 인간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잠복해 있던 경찰들이 수갑을 채워 다음 역에서 끌고 내린다. 지옥철은 ‘안전하고 편안하게’ 정상제품들이 온전히 제품 부속코너에 도착할 수 있도록 최선을 노력을 다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힘찬’ 하루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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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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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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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 해돋이- 동해 추암마을을 가다] 


정동진보다 더 빨리 해가 뜬다고 하는 동해의 작은 마을 추암.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이곳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4시가 막 지났을 무렵이었다. 육지에 발을 내딛으니 온통 캄캄한 가운데 세찬 파도소리만 사방에서 들려온다. 아무도 없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니 사람들이 많이 없을 거에요.” 


레나스(의사 겸 항해사)의 말이 맞았다. 해는 7시가 넘어야 뜬다고 했다. 그 때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해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요리사는 체력이 철철 흐르는지 벌써 배에서 내렸다.  


“선장! 이제 일어나요! 하늘이 열리는 시간이 다 됐어요!”





으음? 레나스가 어깨를 툭툭 친다. 졸린 눈을 비비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하늘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진눈깨비처럼 갑작스레 쏟아지는 빗방울에 동해바다의 일출구경에 불안한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그렇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삼십 여분을 넘기니 어느 새 비는 잠잠해지고 구름과 구름 사이에서 희미한 빛이 틈새를 벌려가며 한 뼘 한 뼘 번져 나아가고 있었다. 에메랄드 바다 위에 청아한 구름이 이리저리 뒤섞여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무색케 했다. 그 속에서 불타오를 그 강렬한 햇덩어리를 모두가 고대하고 있다. 좀 더 해를 멋지게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요리사가 말했다. 레나스가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나무계단을 오르고 올라 절벽에 이르니 고고한 소나무 숲이 장광하게 펼쳐친다. 나무 사이사이로 이리저리 휘청거리는 바닷물과 기괴한 바윗덩이들이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소나무 숲을 지나 다음 풍경의 계단으로 오르는 순간,


아. 하고 탄성을 지른다. 




수평선 저 너머에서부터 시퍼런 물결이 바다를 가르며 겹겹이 몰려온다. 쉴새없이 바위들을 몰아친다. 바위와 절벽마디마디에 세월이 흔적이 구구절절하게 묻어있다. ‘어디 와 볼테면 얼마든지 와보라’ 하는 듯. 모두들 초연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바다와 꼿꼿하게 싸우고 있다. 파도와 파도가 만나 부딪히는 곳, 파도와 바위가 만나 깨어지는 곳. 좌르르 쏟아진 물결의 파동이 새하얀 거품으로 일고 일어나 당장이라도 내 눈 앞에 떨어질 것만 같다. 기상찬 바람을 이겨내며 천지의 변화를 굽어보는 그야말로 단번에 눈맛이 후련해지는 호쾌한 기분에 젖고 만다. 동해의 겨울 파도란 이런 것이구나. 사나이의 거침없는 기상이고 힘찬 기백이구나. 





그리고 마침내 촛대바위에 오르는 순간, 하늘은 이내 붉게 잠기고 만다. 신비로운 바다새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촛대의 끝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세상의 점화를 알린다. 이렇게 2012년 마지막 아침의 경종이 울린다. 한참동안 넋을 잃고 절경 속에 피어난 해돋이의 광경을 바라본다. 밀려오는 흥에 못이겨 ‘와~~’ 하고 소리 한번 내질렀다. 그래, 2013년 이겨보자! 맞더라도, 주저앉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앞으로 나가자! 





절벽의 계단에서 내려왔을 무렵, 이미 온 세상이 빛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찬란한 해오름과 마주했다. 그리고 다음 해에는 조금 더 꽉 쥔 주먹손으로 오겠노라고 이곳과 마음의 약속을 했다.  





곧이어 요리사가 아침 준비로 바빠졌다. 아침은 일명 해돋이라면. 휴대용 가스렌지에 불 붙이고, 냄비에 물을 올린다. 물이 끓을 때쯤, 삼양라면에 햄과 참치를 함께 곁들여 넣는다.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해돋이면의 스멜이 시장기를 자극한다. 여기서 잠깐. 술이 빠질 수야 없지. 항해사인 레나스를 제외하고, 요리사와 나는 카스 캔을 촤악 까서는 ‘위하여!’를 힘껏 외치며 두둑한 라면식사에 신명을 더했다. 그 때의 맛은, 도저히 표현 불가능이다. 위대한 마무리였다. 


이천십삼년. 해적단 멤버 모두에게 행운이 깃들 것이다. 힘내자! 



Written & Photo by 선장, 선의,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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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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