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보그 잡지에서 폴리니의 화보를 본 적이 있다.비에 젖은 겨울의 도심 거리, 롱 코트 사이로 담배불을 감추며 무심하게 카메라를 바라보는 한 남자.

1960년, 폴리니는 열아홉살에 쇼팽 콩쿨에서 우승했다. 우승 심사곡은 피협 1번. 쇼팽이 대중에게 이 곡을 선보였던 것도 열아홉살 때였다.

심사결과 만장일치로 폴리니는 1위를 차지했는데, 심사위원이었던 루빈스타인은 이렇게 탄식했다. "우리 중에서 저 사람보다 기교에서 앞설 수 있는 사람 있을까?"

그 때의 분위기는 어땠을까? 1960년이면 그래도 실황앨범이 남아있지는 않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간을 거슬러 파고 내려갔다. 작년 봄, 결국 해외 사이트에서 폴리니 첫 데뷔 쇼팽 실황앨범을 찾아냈다. 하지만 몇 달이 지나도 사이트로부터 주문한 앨범은 도착하지 않았고, 답신도 오지 않았다.

며칠 전, 그 때의 아쉬움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인터파크 앱에 들어갔다가 '해외수입'코너에서 짜잔 그 앨범을 찾아냈다. 늦은 퇴근 후, 샤워를 마치고 나와 씨디를 돌렸다. 쾌속질주의 1악장부터 단 침을 삼켰다. 3악장이 끝나고 오디오에서 쏟아지는 관중들의 갈채 박수에 내 박수도 보탰다. 1960년으로 돌아갔다.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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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이라 하면 80년대에 태어난 이들에겐 영웅이자 최고의 스타였다. 물론 나도 어렸을 적 성룡의 액션 하나하나에 열광했고, 친구들과 비디오를 함께 시청한 뒤 성룡의 액션을 따라하며 뛰놀고는 했다. 우리의 윗세대에게는 이소룡이 있었다면 우리세대에는 성룡이었다. 


나는 특히 아시아판 ‘인디아나 존스’라고 불렸던 ‘용형호제’를 좋아했는데 특유의 성룡식 생활형밀착형 코믹액션이 잘 살아난 작품이었다. 이와 더불어 내 머리 속에 성룡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있으니 바로 ‘폴리스 스토리’였다.

영화의 제목처럼 폴리스 스토리는 성룡의 경찰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맨몸으로 나쁜 조직에 맞서 싸우는 성룡의 모습을 보고 어린 시절 경찰의 꿈을 가진 아이들이 종종 있었고, 나도 그 아이들 중 하나였다. 그랬기에 폴리스 스토리 2014는 기대가 컸다.



Take 1. 액션 없는 폴리스 스토리



전반적인 내용을 보면 사회적으로는 영웅이었으나 정작 자기 가정을 못 돌본 종 반장(성룡)은 사이가 좋지 않던 

딸과의 만남을 위해 ‘우’ 클럽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괴한들에게 납치를 당하게 되고 종 반장은 딸을 구하기 위해 인질이 된다. 인질이 된 종 반장은 클럽 내 납치된 사람 모두는 클럽 주인인 ‘우 사장’과 연관이 있었음을 알게 되며 자신도 그 일원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번 작품은 액션영화의 단골 소재인 납치와 이를 구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번 폴리스 스토리가 기존의 작품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액션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액션은 있으나 성룡식 액션은 없다. 

영화 초기 딸을 만난 종 반장은 딸을 납치한 동일범에게 공격을 당해 감금당하게 되고 의자에 몸이 묶인 체 감시를 당하게 된다. 여기서 탈줄 장면을 살펴보면 묶고 있던 철사를 풀고 몇 차례의 공격으로 가볍게 탈출에 성공하게 된다. 그러나 이 모습은 성룡의 액션이 아니다. 


기존 성룡의 폴리스 스토리에선 완벽한 액션은 사실 없었다. 어딘가 어수룩한 모습으로 주변 사물을 이용한 액션을 펼쳤고, 이것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예전 성룡이었다면 의자에 묶인 철사를 풀고 싸우는 것이 아닌 묶인 체 의자를 이용한 액션을 선보였을 것이다. 


이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폴리스 스토리 2014의 스토리 전개는 대부분 대화로 풀어간다. 기존의 폴리스 스토리에서 액션으로 스토리를 풀어가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영화중반부 긴 액션장면이 있으나 이는 크게 중요한 장면은 아니다. 후반부에 이르러서 액션 장면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대부분 대화를 통해 이야기 전개시킨다.


기존의 액션을 통한 빠른 스토리 전개에 비해 이번 작품은 대화를 통한 느린 스토리 전개를 선보인다. 이 영화가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이다.



Take 2. 1인 영웅물의 전형적 메타



영화 초반 성룡은 택시를 타고 번화가로 가게 되는데 뒷좌석에 앉아 있는 성룡은 매우 피곤한 모습으로 잠들어있다. 성룡이 피곤한 모습으로 번화가를 찾은 이유는 바로 딸의 연락을 받고 딸을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이 장면은 2007년에 개봉한 ‘다이하드 4.0’의 초반 부분과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다. 


다이하드에서의 존 맥클레인은 사회적인 영웅이지만 정작 자기 가정은 잘 돌보지 못해 아내와는 이혼한 상태이며 딸과는 사이가 좋지 못하다. 폴리스 스토리 2014 역시 사회적으로는 영웅이지만 정작 본인의 아내는 지키지 못했고 딸과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 


사실 이런 유형은 과거 유행을 주도 했던 1인 영웅물 시리즈의 전형적 메타다. 주인공의 늙음과 함께 ‘사회적으로는 영웅이지만 정작 본인의 가족은 지키지 못했다’라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결국 아버지라는 희생과 사랑으로 가족을 구하며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영웅이 되어 감동을 안겨준다. 


폴리스 스토리 2014 역시 딸과의 오해-불화-납치-구출-행복 식의 전형적인 흐름을 취하고 있고 이 점은 ‘이 영화에선 성룡식의 화려한 액션은 볼 수 없다’라고 선고하고 있다. 아무래도 딸이 납치된 상황에서 우스꽝스럽게 싸울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덕분에 이번 폴리스 스토리 2014는 굉장히 어중간한 모습을 하고 있다. 시원한 액션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탄탄한 반전 시나리오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거기에 홀로 테러 집단과 싸우는 모습은 ‘다이하드’의 모습을 띄고 있고, 딸을 구하는 모습은 ‘테이큰’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계속해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은 성룡의 특유의 액션의 부재가 가져온 결과였다. 



Take 3. 아쉬운 그래서 더 아쉬운




기존 폴리스 스토리의 재미는 성룡의 액션의 다양화였다. 액션의 정석이 이연걸이라면 성룡의 액션은 주변사물을 이용한 액션이었다. 지금처럼 화려한 CG로 무장된 액션이 아닌 성룡이라는 배우 그 자체의 액션이었다. 그러나 폴리스 스토리 2014에서는 이러한 액션을 조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종종 있는 액션장면도 둔탁하고 무겁다. 그것을 커버하기에 스토리 라인은 허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성룡은 60세의 나이다. 당연히 예전 전성기의 액션을 선보이기는 이미 너무 많은 세월이 지났다. 성룡의 액션을 따라하던 꼬마 역시 30대의 나이가 됐다. 어린 시절 영웅의 늙음은 나의 늙음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늙음을 부정하기위해 그의 화려한 액션을 더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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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5.17 17:12 신고

    전 굉장히 감동깊게 봣습니다, 평이 너무안좋아 늦게나마 봤니요~ 딸의 초반 대사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네요, 액션영화로는 별로나,,, 경찰영화로는. 손색없는것 같네요

    • 2014.05.18 17:00 신고

      아마 폴리스스토리라는 전작들에 대한 기대가 큰 만큼 거기서 오는 실망도 있었던 거 같습니다. 저 역시 시원시원한 성룡의 액션을 크게 기대했기에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컷던 거 같고요.


지휘자 정명훈을 알게 된 것은, 그가 이끄는 서울시향과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베토벤 황제 실황 음반을 통해서였다.

'빰~~~'하고 시작하는 오케스트라의 첫 음에서부터 '아 협연이구나'를 알 수 있다. 관현악의 소리를 강하게 뿜어내지 않고 자연스럽게 끌어내고 있다. 이렇게 하면 피아니스트는 온전히 자기 색깔대로 연주를 이끌어갈 수 있다. 정명훈은 곡의 전체 구도에서 조화와 균형에 큰 비중을 두는 스타일의 지휘자였다.

세네번 정도 들었을 때 음반 하나가 머릿속을 스쳐갔다. 줄리니와 미켈란젤리의 황제 음반. 정명훈의 '첫 음'과 줄리니의 '첫 음'이 굉장히 흡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당장 인터넷에서 '줄리니 정명훈'을 검색해봤다. 하하 이런, 두 사람은 정말 인연이 있었다.

정명훈은 줄리니가 이끄는 로스엔젤레스 교향악단의 어시트턴트로 3년을 근무했다. 그는 3년 내내 줄리니를 보좌하면서도 말 한 마디 제대로 걸어보지 못했다고 하니, 젊은 날의 그는 꽤나 내성적인 학생이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너무나 난해한 곡을 접한 정명훈이 답답하다 못해 드디어 줄리니에게 찾아가 곡의 해석에 대한 답을 물었다. 그런데 줄리니는 해결책 대신 내일 다시 오라는 짧은 말만 남기고 정명훈을 돌려 보냈다.

다음 날 줄리니의 방을 찾아갔을 때, 줄리니는 역시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대신 이런 말을 남겼다.

"정명훈 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다"

이 말 한 마디가 정명훈 지휘인생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줄리니는 정명훈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길 원했다. 그는 정명훈이 가지고 있는 지휘자로서의 자질과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는 1978년, 로스엔젤레스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스물다섯살의 정명훈을 발탁했다.

정명훈은 평생 줄리니를 정신적 스승으로 삼고 지휘에 임했다고 한다. 베토벤 황제의 첫 음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깊은 사연이 담겨 있었다. 나는 이 계기를 통해 집에 묵혀 두고 있었던 줄리니의 브람스 협주곡 전집을 꺼내들게 되었고,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음악가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무언가 하나씩 들리는 것을 보니 이제 서당개 노릇을 해볼만도 하겠다. 무언가를 이루는 데에는 그만큼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초조한 것은 내 욕심일 뿐이다.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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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원을 알게 된 것은 라흐마니노프 베스트 앨범[EMI]을 통해서였다. 첼로 소나타. 활시위를 켜는 첫 음부터 온몸에 전율을 불러일으켰다. 단숨에 빠져들었다. 한달 정도 이 곡만 주구장창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양성원을 더 알고 싶어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적이던 찰나, 때마침 EMI에서 양성원 전집 한정반이 출시되었다는 꿀같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주저없이 서점으로 뛰어가 집어들고, 신주단지 다루듯 집으로 모셔와 오디오에 귀를 묻었다.


양성원만의 매력을 딱 집어 말한다면 남성미 넘치는 현의 군무가 아닌가 싶다. 특히 졸탄 코다이의 첼로 독주는 상당히 독보적이다. 타연주가와 비교해 들어봐도 수준에서나 색깔에서나 부족함이 없다. 활시위를 당길 때마다 뱉어내는 숨소리와 적막 속에 퍼지는 송진냄새가 음반 속에 자욱하다. 인간의 냄새가 진동한다.

양성원씨에게는 형이 있다. 형이 그냥 형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씨다. 소니에서 발매한 양성식씨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어본 사람은 안다. 음악의 신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는 타고난 천재.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예술세계가 아니다. 활날에 서슬이 시퍼렇다. 척추가 저리다.

실례를 무릎쓰고 평하건대, 동생은 그런 과는 아니다. 지독한 노력을 통해 재능을 만들어낸, 너무나 인간적인 첼리스트이다.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라는 말이 어울리는 연주가. 한 음 한 음에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그것이 느껴진다. 듣는 이가 숙연해질 정도의 노력의 기운이 서려있다. 이 사람은 준재이다.

유명잡지의 인터뷰에서 양성원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저는 연주를 망치면, 때로는 잠을 못 이룰만큼 예민해집니다. 한 밤 중에 집밖을 뱅글뱅글 돌기도 하고, 무대에서 틀린 곳을 부질없이 방에서 혼자 연주해보기도 합니다. 그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 두렵다면 연주자가 되기 힘들 겁니다. 하루라도 첼로를 잡지 않으면, 다시 감각을 되돌려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다 첼로를 잡게 되면, 조금 촌스러운 표현이지만, 좋습니다."

촌스럽지만 좋단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아파하면서도 그 아픔마저도 즐거움의 자양분으로 빨아먹는 한 인간의 절실함이 묻어난다. 아흔살의 파블로 카잘스가 죽는 그날까지 연습에 매진했던 것처럼, 이 사람 역시 손에 활을 쥘 수 있는 그 날까지 우리에게 인간적인 경이로움을 선사해 줄 것이다.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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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7.15 02:50 신고

    단정한 느낌의 양성원교수님의 연주모습에 반했다. 열정적으로 연주하시는 정경화님은 항상 존경하고 ..한밤에 tv예술무대를 보다가 양교수님을 알기 위해 .... '좋습니다' 양교수님다운 진솔한 표현이시다

뉴스는 보지 않는다. 날씨 정도만 확인한다. 그 시간에 무한도전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무한도전은 무념무상으로 웃게 해주고, 음악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1. 하루에 세 번 이상은 클라라 하스킬의 모차르트 피협 19번을 듣는다. 신은 인간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준다. 아름답다는 말 밖에는.

 

2. 방해받지 않는 시간, 빌헬름 박하우스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2번 실황 연주를 듣는다. 인간의 마음비움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경건하다는 말 밖에는.

 

3. 며칠 사이 퇴근길, 모차르트 피협 22번을 넘보고 있다. 게자 안다의 지휘 겸 연주 음반을 듣는다. 인간의 참되고 신성한 노력의 힘을 맛볼 수 있다. 꾸준하다는 말 밖에는.

 

 

자료를 찾던 중, 세 사람의 인연을 알게 되었다.

 

1. 게자 안다는 1953년부터 1958년까지 클라라 하스킬과 듀오 피아노 연주를 했고, 이때 그녀로부터 모차르트에 대한 깊은 감명을 받고 평생을 모차르트 연구에 매진한다. 결국 그는 모차르트 피협 전곡 녹음이라는 대업을 최초로 달성한 자가 된다.

 

2. 안다가 11살 되던 해, 그는 빌헬름 박하우스를 만나 연주를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연주를 들은 박하우스는 주저없이 그가 프란츠 리스트 음악원에서 특별 장학금을 받고 연주활동을 할 수 있도록 알선해준다.

 

3. 그곳에서 안다는 피아노를 넘어서 음악의 구도, 나아가 인생철학의 초석을 닦게 된다.

 

 

 

 

세 사람은 모두 음악 앞에서 초연했고, 삶 앞에서 겸연쩍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1. 게자 안다는 농부들을 존경했다. 농부들의 추수를 돕거나 나무 베는 일에 즐겁게 동참했다. 그들에게 밭을 가는 법을 배우고, 어떻게 들보를 만드는지 물었다.

 

2. 빌헬름 박하우스의 집에는 매우 슬퍼 보이는 광부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사람들이 그림에 대한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내 일이 그보다는 힘들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3. 사람들이 그녀의 연주를 칭송하면, 클라라 하스킬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다. "나는 청소부가 잘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할 줄 아는 거라고는 피아노 연주 밖에 없어요"

 

 

 

 

세 사람은 죽음 마저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숭고했다.

 

1. 1960년 겨울,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하스킬은 바이올리니스트 그뤼미오와의 협연을 대성황리에 마쳤다. 같은 달 6일, 하스킬은 다음 협연을 위해 벨기에 브뤼셀 역에 도착했다. 지독한 불운이 찾아왔다. 기차에서 내리던 중 계단에서 크게 넘어졌고, 곧 혼수상태에 빠졌다. 의식불명에서 잠시 깨어난 그녀는 여동생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내일 연주는 어렵겠다. 그뤼미오씨에게 미안하다고 꼭 전해줘." 그리고 숨을 거두기 직전 한 마디를 남겼다. "그래도 손가락은 멀쩡하잖니"

 

2. 1969년 6월 28일, 박하우스는 오스트리아 알프스의 작은 마을에서 연주회를 갖는다. 베토벤 18번을 연주하는 도중, 관객들에게 “잠시 쉬고 싶습니다”라는 짧은 사과의 인사를 하고 잠시 연주를 멈춘다. 심장발작 증세가 온 것이다. 모든 악장을 완주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의사는 연주를 중단하라고 이야기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는 다시 관객 앞으로 나아가 베토벤 대신 슈베르트 즉흥곡 D.935-2로 연주회를 마쳤다. 곧장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때는 늦었다. 1주일 후 그는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다.

 

3. 1974년, 안다는 식도암 판정을 받았다. 런던에서 엄청난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는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나서는 연주를 계속했다. 놀랍게도 다음 해에 병이 크게 완화되었고, 그의 실력은 더욱 성장했다. 안다는 연주 여행을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오중주 “송어”를 연주한지 일주일 후, 런던에서 병세에 대한 낙관적인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이튿날 취리히의 집에서 출혈로 사망했다. 1976년 6월 13일의 일이다.

 

그들의 무한도전은 나를 무념무상으로 웃게 해주고, 그들의 음악은 나를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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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무엇을 들었습니까?

<선생님의 세 곡을 들었어요. 아디오스 노니노, 무무키, 리베르탱고. 너무나 인상깊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들을 곡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삼십대의 제가 듣기에는 너무나 먼 그런 느낌 말이죠. 어쩌면 선생님의 곡들은 제가 육십칠십이 되어도 들을 수 없는 곡일지도 모르겠네요.

> 왜 그런 생각을 했죠?

< 글쎄요.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어요. 다만, 다만 말이죠. 선생님의 반도네온이 가슴을 훔쳐갑니다. 전혀 다른 세상으로 가서는 영영 돌아올 것 같지 않은 곳으로 마음 덩어리를 한 줌 뚝 떼어가는, 그런 구구절절한 느낌이 있어요. 제가 만들어 놓은 세계에 선생님이 없습니다. 전혀 다른 별에 발을 딛은 순간이 찾아온 거에요. 반도네온을 아예 접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선생님의 반도네온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어떤 장면 같아요.

> 특별한 장면이라도 떠오릅니까?

< 암요. 이베리아 반도요. 저는 리스본의 어느 허름한 술집에 앉아있네요. 탱고를 추고 있는 한 여인이 있어요. 이미 저는 적포도주를 한참 마셔 정신이 몽롱하군요. 어디서 온지도 기억이 나질 않아요.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아까 춤추던 그 여인이 곁에 다가와 잔을 들고 수작을 거네요. 별로 웃기지도 않은데 손과 발짓으로 서로 깔깔대며 이야기를 나누네요.

> 저로서는 영광이군요. 제 잔도 받으세요.

<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장면에 등장하는 사나이는 엄밀히 따지면 제가 아닙니다. 저는 베토벤, 모짜르트, 쇼팽의 집에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집을 사랑해요. 선생님의 음악은 너무 뜨거워요. 그렇다고 베토벤이 뜨겁지 않다는 게 아닙니다. 선생님의 반도네온은 당장이라도 떠날 여인처럼 너무 두렵고 달구어진 빨강색의 치마에요. 30대의 저로선 가질 수 없는 음악입니다. 그래도 가끔 찾아와 선생님을 뵙고 갈께요. 대신 술은 마시지 않겠습니다.

> 언제든지요.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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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다는 건 '나 밖에 없다'는 주변으로부터의 쓸쓸함, 소외감이다. 그것은 지금 내가 어떤 공간, 어떤 시간에서 느껴지는 찰나의 감정이다. 외부와의 이질감을 의식한 나로 빠져든 '나'이다. 그것이 잠시 머물때는 우수의 감정으로 머물다 가겠지만, 심각해지면 우울증으로 빠지는 그런 성질의 것이다.


고독하다는 것은 외롭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말 그대로 '외로운 나'이다. 고독하다는 것은 '외롭다'를 넘어서 '외로운 나' 그 자체를 홀로 깨닫고 있는 상태이다. 낙엽을 밟으며 '아, 외롭다' 하며 눈물짓는 것과는 달리, 그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나를 한발 물러서 지켜보고 있는 '나'인 것이다. 외로운 나로부터 빠져나와 그 '나'를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자아의 발현이다.

오늘 고독한 그림 하나를 우연히 만났다. 넉넉하게 펼쳐진 푸르스름한 밭의 끝자락으로 구릉같은 산들이 희멀겋게 번져있고, 하늘에는 듬성듬성 먹구름이 끼었다. 그리고 그 밭이 시작되는 한 켠에 작은 사람 하나가 서 있다. 그림 이름이 '귀농당년'이다. 고향을 등졌던 한 사람이 다시 돌아온 모양이다. 곱게 간 밭에는 빼곡하게 새싹이 자라고 있다.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은 밭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산을 보는 것인지, 어떤 상념에 젖어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만 작가가 사람을 자연의 대척점에 두지 않고 하나의 작은 연결점으로 두었다는 의도는 분명히 알 수 있다.

'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이 그림이 뭔하는 바가 아닌 것 같다. '지금의 나를 지켜본 적 있는가?' 이 질문이 더 걸맞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자연은 대자연이 아니다. 작가의 사람은 자연 위에 우뚝하게 선 존재도 아니다. 그냥 자연과 그냥 사람이 어우러진 그 상태만 표현해 두었다. 앞으로 새싹은 자랄 것이고, 사람은 수확을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해야겠지만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것 같진 않다. '밭과 산과 하늘을 지켜 보고 있는 나'에 집중해야 한다. '외로운 내가 있다'의 명제는 여기서 성립된다.

'외롭고 고달픈 내가 지금 이곳에 서 있다'고 한 발 물러서 보는 것이야말로 나를 크게, 혹은 작게 왜곡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 개지 않은 하늘이 있고, 단풍이 물들지 않은 산이 있고, 열매를 맺지 않은 새싹이 있는 것처럼 아직 거둘 것이 없는 내가 있는 것을 그대로 볼 줄 아는 마음가짐. 그것이 이 그림의 아름다움이다.

 

<작품: 귀농당년_74.5x104cm_Oil on canvas_임동식_2009-2011>

    임동식 - 사유의 경치Ⅱ / 2013. 11. 13 - 11. 30 / LEE HWAIK GALLERY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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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의 클래식은 도대체 왜 듣는거야?"


친구들이 종종 내게 묻는 질문이다. 묻는 투로 봐서는 질문이라기보다는 거의 질타에 가깝다. '그 졸음오는 재미없는 음악을 들으면 니가 잘난 것처럼 보여서 그런거야?'라는 비아냥도 꽤 담겨있는 것 같다. 아예 없다고 한다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거다. 실제로 클래식을 들어서 주변으로부터 덕 아닌 덕을 본 적도 몇 번 있으니 그것도 아주 조금 첨가되었다고 하면 맞겠다. 재즈 클래식도 아닌 주로 18-19세기의 낭만주의 음악을 선호하는 까닭에 늙은이라는 소리도 적지 않게 들었다. 노친네라고 놀려도 나는 할 말이 없다. 남들 홍대 클럽가서 최신 음악에 흔들대며 젊음을 만끽할 시기에, 지산 롹 페스티벌 가서 두 손 치켜 올려들고 반 정신나간 놈처럼 헤드빙 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그 시덥지 않은 클래식이라니! 그럼에도 나는 클래식을 듣는다. 그것도 아주 깊고 진지하게. 


이유를 뭉뚱그려 말하자면 이렇다. 아무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삼십대 사이에서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거나 작곡을 공부하는 극소수의 인간들을 제외하면 우리 세대 전체를 통틀어 클래식을 듣는 사람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내 주변만 돌아봐도 클래식을 듣는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여기서 '그냥 그게 그건가 보다'하고 듣는 사람은 감상자로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엄밀히 말하면 능동적 감상자가 아니라 '그냥 틀어서 나오면 좋은 건가보다' 하고 한 귀로 흘려 보내는 수동적인 부류이기 때문이다. 마치 맛좋은 레스토랑에 와서 정말 최고급의 마르게리타 피자를 먹고도 '이 피자나 저 피자나 그게 그거네' 생각하면서 막상 나갈 때는 동료에게 '야~여기 피자맛 기가 막히네' 하는 사람들과 같다고 보면 되겠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문제가 있다는 건 절대 아니다. 단지 클래식 애호가는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한 애호의 이유가 된다. 한번 상상을 해보자. 당신은 온통 인스턴트식 정원으로 뒤덮인 인공 숲 사이를 매일같이 거닐다 어느날 우연히 나무와 나무 사이에 빼꼼 열려 있는 낡아빠진 문을 발견한 거다. 조심스레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이 곳은 인기척이라고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 신비의 숲이라는 사실을 직감하게 된다. 사람들을 단숨에 휘어잡을 만한 화려한 나무나 꽃은 없다. 대신 수백년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고고한 고목나무들이 장대비처럼 내려앉아 마법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경이로운 장면을 만날 수 있다.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하다. 신선한 공기가 몸의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사색에 빠지기 좋은 나만의 아지트인 것이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나는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남들과 즐기는 시간보다 나 혼자 보내는 시간에 더 애정을 두었다. 요즘 것에 관한 그 무언가에 대해 주변의 누군가와 공유하고 함께 즐기기보다는 이미 저 세상 사람들이 된 먼 누군가와 단독으로 만나는 것이 훨씬 더 신났고 가치있게 느껴졌다. 저 세상 사람들과 교류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책과 음악. 오래된 것일수록 더 끌렸다. 시류를 따라가는 것들은 최대한 배제했다. 최대한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서 그 속에서 스스로 사색에 잠겨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 그 가운데 클래식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천재의 분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하찮은 평민이었기에 10대의 클래식 감상에서 그다지 특별한 무언가를 얻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저 들어서 마음이 편안하고 좋은 것들을 택해서 집중적으로 든는 것, 그것 뿐이었다. 모차르트, 차이코프스키, 요한 슈트라우스, 드보르작과 같은 누구라도 들어서 그 정도는 알 수 있을 법한 유명한 작곡가들 위주로 감상했다. 여기서 집중적으로 듣는다는 의미는 학습이 전제된 의도적인 측면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 그저 좋은 것을 습관적으로 곁에 두는 게 전부였다. 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내가 택한 클래식을 제외한 그 어떤 음악도 듣지 않았다. 그저 매일같이 똑같은 테이프를 돌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서 하루를 마감하는 것. 그것으로 족했다. 이러한 나만의 습성은 오늘날 클래식에 더욱더 몰입하게 되는데에 중요한 몫을 했다. 


이런 나만의 습성은 초등학교 생활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는 것. 연주는 감상만큼 즐겁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바이올린은 재미있었지만, 피아노는 최악이었다. 가르치는 피아노 선생도 너무 기계적인데다가 억지로 동그라미 표시를 해 가면서 연습한다는 건 정말 구속 중의 구속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런 경험과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나의 밑바탕, 머릿 속 심연의 바다에 굵직한 음악적 지층을 형성한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바이올린 합주부 생활은 클래식이 안겨주는 엄청난 스케일을 잘 빨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어 주었다. 지금도 기억난다. 바이올린 교사가 쉬는 시간이면 기가 막히게 연주했던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 


내 인생에서 클래식만 들은 건 결코 아니었다. 클래식으로 돌아오기까지 나는 수많은 음악의 산맥을 넘나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거추장스럽고, 그냥 여기저기 장르에 기웃기웃대었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클래식 다음으로 접한 것은 팝, 그 중에서도 비틀즈였다. 똘기충만한 비틀즈의 음악은 다른 장르로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가교 역할이 되어 주었다. 그들이 실험한 갖가지 형식들이 어떤 음악도 거부감 없이 흡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렇게 나는 이미 은퇴한지 한참 된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을 재주목했고 그들이 남기고 떠난 모든 앨범을 수집했다. 교실이데아에 젖어있던 나는 곧 롹의 세계에 급격히 빠져들었고, 대학교에 입학하기 무섭게 롹커가 되었다. 군입대 전까지 나는 오직 롹만 들었다. 가요를 듣지 않았다면 그것 역시 완전 사기라고 봐야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풍류에 그쳤다. 놀고 마시고 즐길 때 불러대는 니나노의 느낌 정도로 가요감상의 레벨을 맞춰 두었다. 


힙합, 트립합, 일렉트로닉 등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적지 않은 분야를 건드렸다. 그런데 그것들 역시 대중의 귀에 익숙한 범위를 훨씬 넘어선 그 이면의 세계에 놓여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투팍이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다고 하지만 누가 손수 투팍의 앨범을 차곡차곡 모아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와 비트를 즐길 생각을 하겠나. 어떤 면에서 보면 클래식을 듣는 이유나 롹을 듣는 이유나 힙합을 듣는 이유나 다 비슷비슷한 맥락이다. 남들이 최대한 기웃대지 않는 영역에서 나는 최대한 나 자신에게 신성성을 안겨줄 수 있는 대상을 찾고 그것을 신봉하고 경외를 표했다. 


클래식에서 나의 줄기는 피아노다. 피아노 소나타, 변주곡, 야상곡에서부터 이중주, 삼중주까지 가릴 것 없이 다 듣는다. 그 중에서도 단연 피아노협주곡을 가장 좋아한다. 오케스트라의 몰아치는 파도 속에서 홀로 당당하게 버티고 앉아 호탕하게 건반을 쓸어내리는 비르투오소의 모습이 가장 나를 사로잡는 포인트다. 똑같은 악보를 놓고 쳐도 각자가 지닌 성향에 따라 곡을 천차만별로 해석된다. 똑같은 바둑판에서 흰돌, 검은돌이 격돌하는 데에서도 수십만개의 경우의 수가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무궁무진한 세계에 빠져들어 버렸다. 이곳은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나만의 안식처다. 


당돌한 꿈도 꿔본다. 이렇게 10년 정도 듣다보면 정말 클래식 애호가라는 명함도 부끄럽지 않게 내밀 수 있을 날이 오겠지. 이렇게 30년 정도 피아노를 치다보면 나 역시 언젠가 동네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 수 있을 정도의 깜냥은 되겠지. 요즘 작품에 자꾸 동기화가 되어 나도 모르게 자꾸 볼륨을 높이다 보니 청각에 무리가 온 것 같다. 당분간 이어폰을 자제하고 오디오로 감상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도박보다 무서운 중독이다.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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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교가 무엇인지 보여주마- 쇼팽 연습곡

 

쇼팽 이전에도 연습곡은 존재했다. 오늘날까지도 피아노 학원의 바이블로 우뚝 서 있는 체르니가 대표적인 선구자다. 쇼팽과 피아노에서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는 '피아노의 귀신' 리스트도 어렸을 적 체르니에게 탄탄한 기본기를 사사했다. 피아니스트에게 연습곡은 다소 지루한 과정이지만 반드시 넘어가야 하는 필수 코스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은 연습곡의 수준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단단히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연습곡의 끝판을 완성한 것이다. 그의 연습곡은 결국 공연장 연주곡의 반열에 올라섰다.

 

쇼팽이 활약하던 시기는 낭만주의 시대로, 피아노가 독립된 악기로 인정받아 이제 막 기악으로서 꽃을 피우던 시기였다. 쇼팽과 리스트의 초절정 기교의 곡들을 들어보면 딱 그 생각 밖엔 들지 않는다. '어디 쳐볼 수 있으면 쳐봐라'. 락으로 따지면 잉위 맘스틴과 임페리테리의 끝을 모르는 속주를 듣는 느낌이다. 가공할만한 속도감, 그 가운데에서도 씨알머리하나 엇나가지 않는 정교함. 이 정점에서 쇼팽은 생각한 것 같다. '어? 그러고 보니 피아노 기본기 교재는 있어도, 피아노 기교 교재는 없네?' 

 

총 24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 곡들이 작곡된 시기는 정확치 않지만 작품 10은 1829년~1936년 사이에, 작품 25는 1832년에서 1936년 사이에 작곡된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그는 1810년에 태어났다. 그러니까 다 20대에 쓰여진 곡이다. 이미 그는 청년 시기에 피아노의 꼭대기에 올라서서 후학을 염두한 연습곡을 지은 것이다. 리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쇼팽 역시 파가니니의 영향을 크게 받아 이 연습곡을 완성했다. 화려한 연주기교에 더해 '피아노의 시인' 특유의 시적 표현을 톡톡히 담아냈다. 당대 보수파들에게 '예술의 파괴'라고 욕 꽤나 먹었지만, 슈만과 리스트에게는 오히려 극찬받았다. 낭만주의가 무엇인지 교육적으로 몸소 보여준 쇼팽의 결정체라 하겠다.

 

냉철한 해석, 연습곡은 연습곡으로 끝나야 한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클래식 초보자'도 들어보면 어디서 들어본 듯한 곡들이 여러 개 걸릴 것이다. 그만큼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고 보면 되겠다. 작품의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음반이 출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전문가들이 단연 탑클래스로 손꼽는 명반이 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의 연주다.  

 

1942년 출생, 올해 나이 일흔 하나, 백발이 성한 할아버지다. 이 분도 천재다.(세상엔 참 천재도 많다;;;) 불과 15살에 제네바 콩쿠르에서 2위로 입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렇다면 그 때 1위는 누가 했을까? 혜성처럼 등장한 '피아노의 여신' 마르타 아르헤리치다. 이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우리는 라이벌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은 한번도 없다. 그러나 대중의 시선은 이미 그와 그녀를 세기의 라이벌로 정의내렸다.

 

아르헤리치가 열정의 심볼이라면, 폴리니는 냉철의 아이콘이다. 똑같은 쇼팽을 연주해도 완전히 다른 해석이 나온다. 아르헤리치가 연주한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 3장을 들어보라. 듣는 사람이 제압당한다. 엄청난 카리스마로 시작부터 좌석에 앉아있는 청중을 꽁꽁 묶어버린다. 폴리니는 다르다. 열정으로 대중을 휘어잡기보다는 표준적인 감성으로 작품의 실체를 밝고 명확하게 이끌어낸다. 그가 서른살에 녹음한 쇼팽의 연습곡도 다르지 않다.

 

한 치의 오차 없이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 굴러간다. 손이 기계같이 느껴질 정도다. 음량 배분에서도 절대적인 안정감을 추구하고 있고, 핑거링 역시 냉정함을 고수하고 있다. 앨범 쟈켓의 표정을 봐도 알 수 있다. 주어진 곡을 주어진 대로 칠 뿐이라는 담담한 얼굴을 짓고 있다. 혹자는 의구심을 품어 볼 수도 있다. '감성과 서정을 중시했던 쇼팽도 과연 이렇게 연주했을까요?' 폴리니의 연주를 듣고 난 나의 대답은 이렇다. '연습곡은 연습곡일 뿐이다'. 

 

폴리니는 '쇼팽'의 연습곡보다는 쇼팽의 '연습곡'에 초점을 둔 것이다. 아무리 쇼팽이라고 해도 기교와 시적 감정의 표현을 담아내는 교재에서는 표현의 중립을 지켰을 것이라는 확신이 폴리니의 곡에 그대로 담겨있다. 이렇게 얘기해도 이건 너무 차갑고 이성적이지 않냐고 불평하는 혹자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할수없다. 아무리 따져봐도 이 이상 쇼팽 연습곡을 바이블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마음이 갈피를 못잡고 싱숭생숭할 때 중립과 냉정을 찾고 싶다면 이 곡 한번 들어봐라.

 

[쇼팽 에튀드 Op. 10/25/DG 413794-2]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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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면 늘 아이들을 위한  체험코너가 있습니다. 그곳은 늘 엄마와 아이들로 북적북적대죠. 뭔가를 만들기도 하고, 그리기도 하고, 스탬프를 찍기도 하고 기타 등등 요새는 체험놀이도 부쩍 발전해서 별의 별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님들. 여기서 하나 팁을 드리도록 하죠. 아이들이 체험놀이할 때 뒷전에서 쉬지 말고 아이들을 유심히 살펴보세요. 거기에 아이들의 지금의 성향과 앞으로의 미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실제 예를 하나 드리도록 하죠 후후. 


군산근대역사박물관에서 쌍천 이영춘 박사를 기리는 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 농촌위생운동에 크게 이바지한 군산의 대표적인 위인이죠. 내용을 아는 친구들도 있겠고, 모르는 친구들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건 크게 중요하진 않아요. 중요한 건 아이들이 전시회를 보고 나서 하는 체험놀이의 결과물입니다. 마침 그곳에서는 이영춘 박사의 밑그림을 주고 색칠놀이를 할 수 있도록 해 두었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그림도 아이들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이 점을 잘 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겁니다!!! (이 그림들을 모두 아이들이 그렸다는 전제 하에서 얘기합니다) 수백장의 그림 중에서 특징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들만 보여드리도록 하죠 후후. 




아주 스탠다드한 학생입니다. 원래 사진을 그냥 따라 그린 케이스라고 할 수 있죠. 반듯하고 말 잘듣는 아이의 전형적인 케이스입니다. 정해진 메뉴얼에 맞추어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기 개성이나 그런 것들은 그림에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냥 주어진 여건에서 개척없이 순응할 스타일이라는 얘기죠. 어머니가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시고, 아니라고 하신다면 무언가 일상에서 할 수 없는 다른 교육이 필요한 그런 아이입니다. 다음 그림 보시죠. 





네. 이 친구 불만이 있습니다. 리본은 그렇다 치고 입을 보십시오. 시뻘건 색으로 입을 아예 뭉개버렸군요. 왼쪽 눈썹이 아예 코 밑으로 내려 앉았습니다. 굉장히 화가 나 보여요. 배트맨 다크나이트의 조커가 생각나네요. "Why so serious???" 이런 친구들의 경우 어머니는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아이가 어떤 점이 불만이 있는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다음 보시죠. 




이 친구 보십시오! 돈을 돌같이 보고 살아오신 이영춘 박사님께 "돈 좀 있냐!"는 멘트를 과감하게 갖다 붙였습니다! 네. 전형적인 무법자 스타일이네요. 그런데 돈 좀 있냐고 묻는 사람이 안경도 깨지고 쌍코피까지 터졌습니다. 학교 내에서 개구쟁이인데다가 싸움이 잦은 아이일 가능성이 높겠네요. 위 학생들과는 달리 이름도 쓰지 않았습니다. 활발 그 자체겠죠. 이런 모습이 좋으시면 그냥 두셔도 관계는 없습니다만...자 다음 갑니다. 





꽤 재미있는 친구입니다. 영화 혹성탈출을 봤던 걸까요? 아니면 멋진 턱수염을 그려넣은 걸까요? 아무튼 뭐하나 일반적인 것이 하나 없는 판을 깨버린 친구입니다. 그리고 학위모 위에 자신의 이름을 커다랗게 써 넣었습니다. 자아도 굉장히 강한 것 같구요. 자기 세계가 굉장히 독특하고 강한 아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예술적 기질은 없습니다. 예능으로 가면 가능성이 별로 없으니 이 아이는 잘 잡아주어야겠죠. 다음요. 





화려한 인생을 꿈꾸고 있군요. 머리부터 상의까지 알록달록에 체크무늬까지 스펙터클합니다. 색안경도 빨강과 파랑의 대비색을 썼습니다. 아래 위로 자신의 이름을 분명하게 적어 넣었구요. 반과 번호도 넣었습니다. 커서...밤문화...자세히 말하면 클럽과 나이트를 좋아할 수 있겠습니다. 아이가 춤이나 노래에 관심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겠군요. 넥스트!





..........네...박사님을 여자로 만들었군요. 실명을 밝혀드릴 순 없지만 남자이름은 확실합니다. 긴 노랑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어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왜 남자를 여자로...했을까요? 좋아하는 여자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남자의 심리상 정말 좋아하는 여자를 이런 식으로 폄하하지는 않습니다. 굉장히 독창적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네. 그만두도록 하죠. 다음요!





네..드래곤볼에 나오는 사이어인 베지터를 그렸습니다. 한쪽 눈가에는 상대의 전투력을 측정하는 스카우터를 장착했군요. 측정결과 상대의 전투력이 6,000,000인 것으로 나왔습니다. "대단하군" 한마디 날리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눈이나 입이 굉장히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상대보다 전투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람한 팔뚝까지 그려넣은 것을 보십시오. 이 아이는 만화에 일단 미쳤습니다. 드래곤볼은 적어도 90년대 만화이거든요. 어떤 매체를 통해서 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로 대단합니다. 그저 평범하게 자랄 스타일은 아니네요. 오늘의 레전드로 임명합니다.


자, 어떻습니까? 똑같은 밑그림을 주어도 아이들은 제각기 자신이 그리는 세상에 비추어 그림을 재해석했습니다. 획일적인 삶을 살고 있는 어른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이죠. 당신의 아이는 어떻습니까? 내일부터 유심히 체험놀이하는 당신의 자녀를 지켜보십시오. 그리고 체험놀이의 결과물과 아이의 행동을 비교해서 관찰해보십시오. 아이의 현재와 미래가 보입니다. 미술치료는 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무궁한 발전을 소망하겠습니다!


P.S. 그런데 이분...최근 나는 가수다에 나왔던 가수 김○○ 닮지 않았나요???


Written by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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