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4.03.14 백수의 겨울
  2. 2012.12.16 Last christmas
  3. 2012.11.21 호빵은 따뜻하다
  4. 2012.11.11 겨울은 살아 온 날에 대한 추억이다
2014.03.14 22:43




겨울은 잔인한 계절이다. 여유롭고 있는 자야 설경이 아름다고 낭만적인 계절일지 모르지만 겨울은 없으면 없을수록 잔인해진다. 특히 백수에게 겨울은 더욱 혹독하고 잔인한 계절이다. 겨울이 백수들에게 지옥인 건 일단 춥기 때문이다. 


추워서 어딜 나갈 수가 없다. 날이나 따뜻하면 산책도하고 공원에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지만 한겨울에 공원가면 얼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니 자연스레 집에 뒹구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럼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방구들 무너져 이놈아!!”하시며 등짝 스매시를 날리신다. 


여기서 어머니의 잔소리 강도는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 길수록 강도가 높아진다. 초기에는 넋두리 식으로 “이제 나이도 있는데 빨리 좋은 자리 잡아야할 텐데.”, “너만 취직을 하면 내가 걱정이 없겠다.” 정도의 잔소리다.

 

백수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식 존재 자체의 부정을 시작하시며 생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예를 들어 “어휴~ 귀신은 뭐하나 몰라 저놈 안 잡아가고” 식으로 사신에게 죽음을 요청하기도 하며 “내가 저걸 낳고 미역국을 먹었으니 내가 미쳤지”, “으휴~ 저런 게 도대체 어디서 튀어나왔나 몰라!” 식의 자식존재를 부정하신다. 물론 이런 잔소리를 들을 때쯤이면 이미 백수생활에 익숙해졌기에 큰 멘탈의 손상은 없다.


백수생활이 장기화되었을 땐 오히려 어머니의 잔소리가 줄어든다. 다만 얼굴만 보면 그저 한숨만 쉬신다. 이쯤 되면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죄인이 따로 없다.

본론으로 돌아와 어머니의 잔소리를 피해 잠시 외출이라도 하려면 옷이 문제다. 밖에 나갈 일이 많이 없다보니 옷을 살 일도 없다. 여름이면 그냥 천 쪼가리 몇 개 걸고 나가겠지만 겨울엔 답이 없다. 언제산지도 기억 없는 옷들로 꽁꽁 싸매고 나가도 갈 곳이 없으니 춥다. 돈 없고 갈 곳 없는 백수에게 겨울은 뭘 어떻게 해도 추울 뿐이다.


그래도 백수가 겨울 내내 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여름보다 겨울에 공식적인 외출이 많을 수 있는데 바로 연말연시 모임들 때문이다. 그러나 백수에게 연말모임은 그리 즐거운 자리는 아니다. 


동네서 가볍게 친구들과 만난다면 얼굴에 철판 깔고 친구들에게 빌붙기 쿠폰을 사용하겠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의 회비는 차마 피할 수가 없다. 물론 모든 상황을 아는 친구들이야 회비보다 얼굴 한번 비춰주는 선에서 모든 걸 용납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참 자리하기가 어렵다. 이와 비슷하게 지인의 ‘결혼’이라는 비보를 들을 때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백수에게 겨울이 잔혹한 건 명절이 있는 탓도 있다. 신정이야 그냥 넘어간다지만 온 친인척이 다 모이는 구정연휴엔 심한 고행의 길을 걷게 된다. 만나는 친척어른들은 하나 빠짐없이 “취업은 했니?”라며 물어오게 되는데 여기서부턴 마음을 비우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그래도 백수인 본인의 선에서 끝내는 잔소리는 그저 “알겠습니다.”하면 넘어갈 일이지만 간혹 부모님을 언급하시며 “이제 부모님 나이도 있는데 니가 이러고 있으면 되니? 집에만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라!”라고 하실 때면 잘 잡고 있던 멘탈이 흔들리기 마련이다. 거기에 함께 온 사촌이 꽤나 근사한 직장에 들어 갔다면 어느새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인이 되어 있다.



예전 뉴스에서는 청년 실업에 대한 기사를 자주 다뤘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기사를 본지 꽤 지난 거 같다. 생각해보면 세상에 이슈가 될 정도의 문제인가 싶다. 사실 백수짓도 젊었을 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는가? 근데 언제부턴가 우리는 백수를 사회적 문제로 다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백수는 죄인이 아니다. 빈둥거릴 수 있을 때 빈둥거려야한다. 하루 종일 잠만 자도 좋고 게임을 해도 좋다. 갈 곳 없어도 그냥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도 좋다. 백수 때 아니면 이런 일들은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언젠간 이 시간들이 삶의 힘이 되고 위로가 된다. 


다시 말하지만 백수는 죄인이 아니다. 그래도 어머니의 잔소리는 피할 수 없으니 감내하고 상황이 조금 힘들더라도 당당지자! 백수에게도 겨울이 지나면 봄은 오니까.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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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6 20:34



“겨울이면 무엇이 생각나세요?” 이렇게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Wham의 ‘Last christmas’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고 대답할 것이다. 내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노래지만 내가 처음 들었을 땐 나의 첫 스무 살의 겨울이었다. 

내가 가장 빛나던 시절이었고 성인으로서 발돋움의 설렘과 겨울의 푸근함이 만나 한껏 들떠있던 때였다. 오는 눈만 봐도 두근거림에 밖을 뛰다닐 정도로 풋풋함이 남아있던 시절이었다. Last christmas를 처음 들었을 당시에도 그 풋풋함과 두근거림 그리고 설렘이 함께했다. 


눈 오던 스무 살 겨울. 내가 좋아하는 누나와 함께 탄 버스에서 난 누나의 이어폰을 통해 Last christmas를 들었다. 누나가 듣고 있던 이어폰 한쪽을 뺏어 내 귀에 꽂자 처음이지만 참으로 따듯한 멜로디가 나오고 있었다.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영어지만 그래도 똑똑히 잘 들리는 단어는 ‘Last christmas’라는 단어. 고개를 돌려고 나는 누나에게 물었다. “아직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왜 캐럴을 듣고 있어?” 누나는 어린아이 달래듯 “이 노래는 캐럴이 아니고 팝송이란다.” 팝은커녕 국내 가요도 잘 안 듣던 나로선 크리스마스가 들어가니 당연히 캐럴인줄 알았던 것 같다. 


그 해 겨울. 그 사람과 난 연인이 됐고 함께 오고가는 버스 안에서 Last christmas를 함께 듣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도 스무 살 밖에 안 된 나로서는 가장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첫 성인으로 맞는 겨울, 첫 여자 친구 그리고 첫눈. 하는 대부분이 처음이어서 인지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고 설랬다. 그리고 행복했다.

그 해 겨울이 끝날 때쯤 나는 그 사람과 이별을 했다. 수원 어딘가에 있는 커피숍에서 이별을 통보 받았다. “우리 그냥 누나 동생사이로 지냈으면 좋겠어.” 아이러니하게도 이별통보를 받은 그 커피숍에서도 Last christmas가 따뜻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이 한 바퀴 돌아 다시 그 노래 나올 때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나와 그 사람은 이별을 했다. 첫 이별인 만큼 많이도 아팠다. 죽을 만큼. 이별 후 나는 Last christmas를 듣지 않았다. 

다음 해 더운 여름날 나는 입대를 했다. 이별에 대한 홧김은 아니었지만 예정보다 빠른 입대였다. 입대 후 선임 절반 정도를 전역시켰을 때 쯤 Last christmas를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겨울은 아니었지만 그 노래를 듣고 있자니 그리움에 잠시 먹먹했다. 그 사람에 대한 그리움인지 통칭 싸제의 겨울에 대한 그리움인지는 잘 몰랐지만 아무튼 노래엔 그리움이 가득했다.


상당히 선임이 된 후에도 나는 줄곧 Last christmas를 듣고는 했다. 잘 때도, 내무실에서 쉴 때도. 그러자 어느 날 한 후임이 내게 물었다. “겨울도 아닌데 왜 이렇게 캐럴을 들으십니까?” 나는 어린아이 달래듯 말했다. “이 노래는 캐럴이 아니고 팝송이란다.” 


예비역이 끝난 지금에도 내 이어폰에는 여지없이 Last christmas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 사람 이어폰에서 따사로이 흘러나왔던 멜로디처럼 올 해 겨울도 여전히 흘러나오고 있다. 그 해 겨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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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1 04:43



뭐랄까. 차가운 바람이 볼이 아리도록 불어도 겨울은 따뜻하다고 말한 것 같다. 하지만 겨울은 따뜻하지 않다. 춥고 쓸쓸함의 대명사다. 그래도 나에게 겨울은 따뜻했다. 정확히는 나를 따뜻하게 했던 것들이 많았다. 호빵도 그중 하나다. 나를 따뜻하게 하는 것. 

겨울을 가장 먼저 알리는 것이 호빵이다. 내 입에서 호호 입김 나올 때쯤 슈퍼든 편의점이든 모락모락 피어나는 호빵이 겨울을 알린다. 


거리 걷다 호빵 연기 피어나면 ‘이제 겨울이 오나’한다. 그리고 그 즈음이면 어머니가 장보며 호빵 한 봉지를 사오시고는 한다. 그러면 확실한 거다. 겨울이 왔다고.

사실 호빵은 찐빵이다. 맛도 비슷하고 만드는 형태도 비슷하다. 달달한 단팥을 넣은 동글동글한 흰 빵에 넣은 모양이 딱 찐빵이다. 단지 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가정에서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찐빵이 필요했고 삼립의 창립자인 허창성이 일본을 방문해 만든 것이 호빵이다. 

호빵이라는 이름 자체도 예쁘다. ‘뜨거워서 호호 분다’, ‘온 가족이 웃으며 함께 먹는다’는 의미란다. 어쩌면 호빵의 사회적 탄생이 찐빵의 매출을 떨어지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찐빵세대가 아닌 나에겐 새로운 추억이요 트렌드였다. 또는 찐빵 세대인 어머니와의 대화를 이어줄 작은 통로였는지도 모르겠다. 


내 나이쯤 된 사람이라면 호빵하면 다른 것 보다 당시 TV에서 울려 퍼지던 CM송을 기억할 것이다. 가수 김도향씨가 부른 노래인데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하는 노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노래가 TV에서 나오곤 했는데 요즘엔 통 못들은 거 같다. 한간에는 이 노래 때문에 매출이 늘었다고 하니 호빵하면 생각나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언제였을까? 내방 없이 단칸방에 세 식구 함께 살던 시절 이유는 기억 없지만 아버지께 굉장히 혼난 적이 있다. 책도 날라 오고 매도 오가던 사이 나는 나름 살겠다는 심정으로 옷도 갖춰 입지 못하고 슬리퍼만 신고 도망 나온 적이 있다. 한 겨울이니 추운 건 당연했다. 흔한 잠바대기 하나 못 걸쳐으니 말이다. 


도망 나와 갈 곳도 딱히 없어 동네 이곳저곳 돌아다녔는데 너무나 추웠다. 손발은 이미 꽁꽁 얼어 손발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전쟁 난민만큼이나 처량하고 불쌍했다. 추위피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주머니에 동전 몇 개 있는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정확힌 기억 없지만 아마도 삼백원 정도였던 거 같은데 삼백원으로 할 수 있는 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친구네 골목 어귀를 돌 때 쯤이었을까? 구석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피어나는 호빵 연기에 귀신 홀린 것 마냥 동전을 털어 호빵을 샀다. 그리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 장독대에 쪼그리고 앉아 호빵의 온기로 손을 녹였다. 호빵을 샀지만 먹을 수 없었다. 먹으면 그 온기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혹여 아버지께 들킬까 장독대 뒤에 숨어서 호빵의 온기로 추위를 잊기 위해 양손으로 꼬옥 붙잡고 있었다. 조금 지나 어머니 퇴근길에 숨어 있는 나를 보고 집에 데리고 들어갈 때 그때서야 나는 호빵을 먹을 수 있었다. 그 호빵은 이미 나에게 모든 온기를 전해주고 난 뒤라 차갑기 그지없었지만 말이다.


매번 생각난다. 호빵 연기 피어날 때면 그 시절 도망쳐 나와 샀던 따뜻했던 호빵을 말이다. 그때 그 호빵은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것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가장 따뜻한 것. 

지금도 겨울이 따뜻하다고 느끼는 이유도 겨울에 호빵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춥지만 따뜻한 호빵. 그래서 호빵의 따뜻한 기억에 내 겨울은 올해도 따뜻하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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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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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입동이 지났다. 지났다고 표현할 정도로 긴 날도 아니지만 겨울이라고 달력에서 먼저 알려준다. 동결. 겨울은 확실히 모든 것이 멈춘다.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난 학교도 얼어가는 물 마냥 조심스럽게 흐른다. 회사도 한해 마무리라며 의기투합보단 훈훈한 기운이 돈다.


가을 내 화려하게 수놓았던 나무들의 가지에는 앙상함만 가득해 처량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조금 있으면 하얀 눈꽃이 필 나무가 불쌍하기까지는 않다. 세탁소 들러 여름 내 맡겨 두었던  외투들 찾아오며 다시 느낀다. ‘겨울이 왔구나’하고.

입에서 피어나는 하얀 입김 호호 불며 겨울을 입감한다. 하얀 눈 올 때면 알 수 없는 설렘에 집에 붙어 있을 수가 없다. 기대감도 가득하다. 새 학기 준비하며 새 공책, 새 연필, 새해. 설렘 가득하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아쉬운 게 겨울이다.

한해 마무리한다는 나름 자기합리화적인 변명으로 수만은 술자리에 참여한다. 연일 이어지는 술자리로 속은 속대로 아파 ‘아, 내년에는 술 좀 줄여야지’라는 부질없는 다짐도 해본다. 속은 아프지만 그래도 빠질 수 없다. 나름 중요한 연내 행사기 때문이다.


아무리 추운 날에도 길가의 허름한 포장마차 오뎅 국물이면 따뜻하다. 옷깃 사이로 스멀스멀 넘어오는 겨울바람도 두툼한 목도리 하나면 따뜻하다. 누군가의 체온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사람이 따뜻하다는 건 겨울만이 알려준다. 그러고 보면 오히려 겨울이 꼭 추운 것만은 아니다.


겨울은 살아온 날, 지나온 날의 추억이다. 지나온 날 들에 대해 돌아보고 다시 돌아보고 다짐하고 기대하고. 웃기도 울기도, 힘들던 기억도 한 번에 쏟아 나온다. 무언가 아쉽고, 누군가 그립고… 새 것의 설레임과 지나간 날에 대한 아쉬움이 항상 공존했다. 매번 나의 겨울은 그래왔다.


올해 겨울도 그리 큰 변화 없이 왔다. 거리 포장마차의 오뎅도 다시 김을 모락모락 내기 시작했고 서랍 속 목도리 꺼내 나름 겨울준비도 했다. 단지, 달라진 거라면 나이가 나이인지라 술자리만큼 늘어난 결혼식에 다니는 것뿐이다. 그렇게 또 내 앞에 찾아왔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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