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민학교 졸업생이다'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3.01.29 등교 그리고 뽑기와 불량식품
  2. 2013.01.10 등교 준비
  3. 2012.12.11 나는 마지막 국민학교 졸업생이다



학교를 가기 전에 책과 공책, 필통 말고도 꼭 함께 준비해서 가야하는 게 있었다. 다름 아닌 손걸레였다. 손걸레의 용도는 학교의 모든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 종례할 때쯤 모두들 책상 밑에 앉아 준비해 온 손걸레와 왁스를 꺼내 바닥을 닦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학교는 바닥은 짙은 갈색의 나무 바닥이었는데 학교가 끝날 때쯤이면 모두들 마루 같은 바닥에 앉아 왁스칠 후 손걸레로 자기자리를 닦고는 했다. 그래서 손걸레가 꼭 필요했다. 대부분 친구들은 학교 근처 풍산문방구에서 샀는데 나는 엄마가 예쁜 문양으로 되어 있는 천으로 손수 바느질해 만들어줬다. 문방구에서 사는 손걸레는 다 똑같이 생겼고 두께도 얇아 걸레질을 하다가 바닥의 튀어나온 가시에 찔리기도 했는데 엄마가 만들어 준 내 손걸레는 두꺼워 그럴 염려가 없었다. 나름 아이들에게 자랑거리였다.


손걸레도 챙겼으면 실내화가방을 손목에 걸고 학교에 간다. 깜빡하고 실내화가방을 안 챙기면 큰일이다. 학교 내에는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가 없어서 신발을 벗고 양말 상태로 있어야 한다. 가끔씩 실내화가 없는 아이들을 선생님이 혼내고는 했다.



실내화가방을 있는 대로 흔들어 대며 학교로 간다. 학교를 가는 시간은 대략 걸어서 30분 정도다. 사실 바로 학교로 가면 금방 갈 수 있다. 근데 친구들과 꼭 들러야 하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위에서 말한 풍산문방구.


학교를 가는 길에는 3군대의 문방구가 있다. 우선 집근처에 있는 평촌문방구’, 조금 학교를 돌아가면 나오는 풍산문방구’, 그리고 마지막으로 슈퍼와 같이 운영하던 동주슈퍼가 있다. 이 세 문방구 중에서도 풍산문방구와 동주슈퍼가 짱이다. 왜냐면 풍산문방구는 다양한 뽑기와 짱깨뽀가 있고, 동주슈퍼에는 많은 종류의 불량식품 때문이다.


우선 먼저 들리는 풍산문방구에서 뽑기를 한다. 커다란 종이에 스테이플러 고정되어 있는 작은 쪽지들 중 하나를 뽑는다. 그리곤 쪽지를 열어보면 순위가 있는데 순위대로 다양한 상품이 있었다. 근데 나는 한 번도 좋은 게 걸려본 적이 없다. 나는 꼭 석수를 받고 싶었는데 한 번도 받아 본적이 없다.




5학년 형들은 종이에 있는 뽑기를 하지 않았다. 형들은 짱깨뽀를 통해서 한 번에 여러 장 받을 수 있는 걸 했는데 가위바위보만 잘하면 10장을 받는 형들도 있다. 짱깨뽀에서 이겨 뽑기가 나올 때 소리가 나는 정말 좋아한다. “텅컹 텅컹하는 소리를 내는데 흡사 기계가 바로 뽑아내는 듯 한 소리를 낸다. 나온 종이를 살짝 꺾어서 열어보면 꼴등이 대부분이었다. 뽑기의 1등상품은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자동차였다. 근데 한 번도 걸린 사람을 본적이 없다.

풍산문방구에서 뽑기 한 판 했으면 빠르게 움직여야한다. 풍산문방구에 들리기 위해 조금 일찍 나왔지만 형들 하는 거 구경하느라 조금 늦었다. 빨리 동주슈퍼에 가야한다.



동주슈퍼에 가서 아침에 엄마한테 받은 300원 중 100원으로 학교에서 먹을 불량식품을 사야한다. 나는 많은 불량식품 중에서 특히 꺼벙이를 좋아한다. 친구들은 밭두렁을 좋아하는데 나는 너무 딱딱해서 싫다. 꺼벙이를 좋아한다고 해서 맨날 꺼벙이만 먹는 건 아니다.

가끔은 짝꿍을 사서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학교 끝날 때 먹을 때도 있었다. 돈이 없을 땐 친구랑 50원씩 보태서 하나를 사 나눠서 먹기도 한다. 짝꿍의 두 가지 맛 중에서 나는 보라색 맛을 좋아한다. 그래서 친구랑 같이 사면 친구는 빨강색을 줬다.


다른 친구들은 아폴로를 사기도 했고 쫀듸기를 사기도 했는데 쫀듸기와 아폴로는 먹는 게 불편해서 많이 먹지는 않았다. 어떤 친구는 둘둘 말아 놓은 껌 테이프를 사기도 했는데 난 왜먹는 지 잘 모를 정도로 맛이 별로였다. 근데 사실 돈이 없어서 못 먹은 게 많았다. 그래서 나중에 꼭 돈 많으면 피져, 월드컵, 쫄쫄이, 똘똘이, 씨씨, 맥주사탕도 다 사먹을 생각이다.


나는 꺼벙이를 사면 빨리 봉지를 뜯어서 왼쪽 주머니에 몽땅 쏟아 넣었다. 그리고는 학교에 가면서 주머니에서 하나씩 꺼내 먹기도 했고 학교에 가서 하나씩 꺼내 먹기도 했다. 한번은 돈이 많아서 꺼벙이두 개를 사서 한 주머니에 다 넣었는데 그 때의 그 빵빵한 주머니의 두둑함(?)을 잊을 수가 없다. 근데 저번에 주머니에 구멍이 난줄 모르고 쏟아 넣었다가 바지춤으로 다 흘러 내려온 적도 있었다. 그래서 주머니에 넣을 땐 주머니가 빵꾸 안 났는지 꼭 확인을 해야 한다.


불량식품을 가지고 학교를 갈 때는 잘 숨겨야한다. 왜냐면 교문 앞에서 꼭 주번 형들이 서 있었는데 갖고 있는 것을 보면 뺏었다. 그리고 교문 앞에서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안 하면 막 뭐라 했다. 그래서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른 체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을~”하면서 맹세를 하고는 했다. 그렇게 하면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코멘터리+


지금 생각하면 학교에 등교하는 어린 학생들에게 국기에 대한 맹세를 시켰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가 불량식품이라고 불렸던 과자들은 사실 식품식양청의 심의(?) 통과한 과자들이었는데 왜 불량이라는 단어가 붙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오히려 추억의 과자가 됐다.


그리고 손걸레와 항상 같이 가지고 다녀야했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왁스다. 왁스도 비누왁스도 있었고 물 왁스도 있었는데 나는 비누왁스를 좋아했다. 왁스가 없는 친구는 옆 짝꿍의 왁스를 빌려 쓰기도 했다. 그리고 걸레질 할 때 나무 바닥의 가시가 가끔 손에 박혀 아팠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쫀듸기는 구워 먹어야 맛이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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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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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0 17:31

내 등교의 시작은 책가방 챙기기로 시작됐다. 전날 자기 전에 챙겨 놓으면 편한 것을 부지런하지 못한 성격에 맨날 아침에 부랴부랴 싸기 바빴다. 물론 이것도 오전반 일 경우에만 해당하는 사항이었다.

우리학교는 학교건물은 크지 않은데 학생은 많아 오전반 오후반으로 나눠서 학교에 갔다. 오전반은 말 그대로 오전에 학교에 가서 오후에 끝나는 반이었고 오후반은 12시쯤 등교해서 5시쯤 끝났다. 이게 한 주마다 바뀌고는 했다. 


둘 다 장단점은 있었다. 오전반은 아침잠 많은 나에게는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었다. 거기에 책가방 챙기다 보면 항상 시간이 빠듯해진다. 그래도 좋은 건 무엇보다 일찍 끝나서 애들하고 맘대로 놀 수 있다는 거였다. 오후반은 늦게 학교를 가니 늦잠을 잘 수 있다는 점이 최고의 장점이었다. 그런데 오후반은 오전반 애들 놀고 있을 때 학교를 가야하니 정말 가기 싫었다.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건지 매번 오전반이면 오후반 애들이 부러웠고 오후반이면 놀다가 학교가야 하게 너무 싫었다. 조삼모사가 따로 없었다.


한번은 오후반이라 일찍 일어나(이상하게 오후반엔 아침에 잘 일어난다) 우리 동네의 아이들의 성지인 88오락실에서 신나게 놀고 있었다. 나름 게임 좀 하는 녀석이었던 나는 ‘슈퍼 마리오3’에 빠져서 시간가는 줄도 모른 체 하고 있었다. 근데 빠져도 너무 빠져 학교 갈 시간인데도 게임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뒷목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뒤 돌아보니 양손을 팔짱을 낀 체 어머니가 눈을 얇게 뜨시고는 날 내려다보고 계셨다. 속으로 ‘이젠 난 죽었다’를 남발하는 동시에 그대로 집에 끌려가 죽도록 혼났다. 물론 그 덕에 학교는 늦지 않고 잘 갔다.


나의 책가방은 인기 절정의 가방인 ‘2020 원더키디’ 가방이었다. 파란색 배경에 주인공인 ‘아이캔’이 멋진 총을 들고 있었고, 미모(?)의 여주인공인 ‘예나’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가방을 보고만 있어도 절로 학교에 가고 싶어졌다. 가방과 함께 나의 마음을 항상 흐뭇하게 해줬던 것이 또 있었는데 바로 3단 변신 필통이었다. 


이 3단 변신 필통으로 말하자면 일단 필통 외부에 버튼을 누를 때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하고는 했는데 ‘탁’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돋보기가 튀어나왔고, 다른 버튼을 누르면 멋진 모습을 갖춘 연필들이 미사일 발사대에 거치된 것처럼 파바박 튀어나오곤 했다. 이 필통이 있으면 연필이 부러져도 상관없었다. 나의 자랑이었던 3단변신 필통은 오른쪽 끝 버튼을 누르면 연필 깎기가 ‘팍’하고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모든 버튼을 눌러 모든 기능을 활성화(?) 했을 때의 모습은 흡사 대서양에 당당히 서있는 항공모함 같았다. 최고였다.


근데 생각해보면 3단 변신 필통의 연필 깎기는 사용한 적이 별로 없다. 왜냐하면 우리 집에는 멋진 ‘샤파’연필 깎기가 있어서 연필을 꽂고 몇 바퀴 휘휘 돌리면 아주 뾰족하게 연필이 깎였기 때문이다. 이 역시 나의 자랑이었다. 

샤파 연필 깎기는 연필이 작으면 고정이 되지 않아서 잘 안 깎였는데 이럴 땐 모나미 볼펜 펜대를 분리해 라이터 불로 살짝 달군 후 몽당연필 뒤에 꽂아 넣으면 새 연필 마냥 길어졌다. 이것이 엄마표 연필깍지였다. 연필깍지 연결 후 연필 깎기에 넣고 고정 후 다시 깎으면 기가 막히게 잘 깎였다. 엄마표 연필깍지는 나중에 빼서 다른 연필에도 끼워 넣을 수 있어서 참 편리했다.


이렇게 그날 공부할 바른 생활, 산수, 말하기 듣기, 쓰기 책을 잘 챙기고, 이에 맞는 공책을 책가방에 잘 넣으면 학교 갈 준비는 끝이었다. 아, 물론 꼭 필통은 챙겨야 한다. 필통 놓고 가면 짝꿍이 못된 아이면 연필을 잘 안 빌려주기 때문이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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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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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지금은 모두들 초등학교를 다니지만 내가 초등교육을 받을 시기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였다.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국민학생이니?”라고 물어보면 “네?”하고 반문이 돌아온다. 아마 생전 처음 듣는 단어일 테니 되묻는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


초등학교로 바뀐 건 1996년 이후다. 일제강점기 일본왕의 칙령으로 ‘황국신민의 학교’라는 의미인 ‘국민학교’로 불렸는데 광복이후에도 그대로 사용했다. 이후 민족정기회복차원에서 명칭을 국민에서 초등학교로 변경했다.

물론 나는 그 변경사항 없이 그대로 국민학교라는 이름으로 초등교육을 마쳤다. 내가 졸업한 이후 아이들은 초등학교 졸업일지 몰라도 난 어쨌든 초등학교를 다닌 적은 없다.


처음엔 초등학교라는 게 입에 착착 붙질 않아 주구장창 국민학교라고 말하곤 했다. 근데 이것도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고 익숙해지니 국민학교라는 말이 더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지고 있다. 지금 쓰고 있는 한글 프로그램만 해도 국민학교라는 단어만 써도 알아서 초등학교로 척척 바꿔주고 있어 일일이 고치는 것이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컴퓨터도 국민학교라는 단어가 어색한 것이다.


아픈 의미를 지니고 시대 속에 잊혀 진 단어지만 나에겐 그냥 어린 시절이다. 국민학교를 나왔다고 내가 일본의 정신을 이어 받은 것도 아니고 일본의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철없는 어린 시절이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풋풋하고 때 묻지 않았던 때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어 그립고 아쉬운 그런 시절. 넉넉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고 부러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었다. 꿈으로 가득하던 시절, 그 꿈 많던 시절의 나는 마지막 국민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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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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