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여유롭지 않은 살림에 철없는 투정으로 엄마는 시내 게임점에서 게임기를 사주셨는데 그것이 나의 첫 게임기였다. 저번에도 말했듯이 엄마가 사주신 첫 게임기는 패밀리라는 8비트게임기였다. 정식으론 ‘Family Computer(FC)’로 패미콤이라 불렸는데 대부분 패밀리라고 불렀다. 


당시 기억으로는 게임기만 5만원정도를 주고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의 5만원과 당시의 5만원은 가치는 상당히 달랐다. 오락실 게임 한판에 50원, 100원했고, 친구와 나눠먹는 재미가 있던 ‘쌍쌍바’는 200원이었으며, 아빠 자동차 기름값으로 5천원, 만원을 가지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지금 따지면 그 5만원은 20만원이나 30만원의 가치였던 것 같다. 아무튼 지금 생각하면 왜 그리 철없이 투정부려 엄마를 힘들게 했는지 창피할 따름이다. 그래도 당시 나는 그런 것보다 게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고 기뻤을 뿐이다.


게임기를 가졌다고 해도 나의 게임 생활은 여유롭지 못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은 소위 말하는 단칸방이었는데 방 하나에 부엌이 딸린 그런 집이었다. 식구가 많지 않았던 터라 사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단지, TV가 하나였기에 항상 아빠의 뉴스 시청으로 인해 만화를 보는 건 꿈도 못 꿨다.

잠깐 방영하는 만화도 못 보는 상황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더욱이 없었다. 나에게 게임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빠르게 학교를 다녀와 아빠가 퇴근하기 전까지였다. 아니면 아빠가 주무실 때 하는 수밖엔 없었는데 그것도 시끄럽다며 못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게임을 하는 시간보다 게임기를 들고 비어있는 친구네 집을 전전하기일수였다. 나름 상호 절충이요 상부상조를 실천한 셈이었다.


한번은 게임은 하고 싶은데 친구네 집도, 우리 집도 여의치 않았다. 그냥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 게임을 열망했던 우리에게 포기는 있을 수 없었다. 아마 당시 열정을 우리 엄마가 봤다면 “그렇게 공부를 해봐라. 서울대를 가겠다.”고 하셨을 거다. 아무튼 그 열망과 열정에서 나온 것이 친구네 공장 잠입이었다. 

친구의 아버지는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그곳에는 잠을 잘 수 있는 작은 방이 하나가 있었는데 물론 그 안에는 TV도 있었다. 우리는 그 TV를 노렸고, 더불어 늦은 시간이라 모두 퇴근하고 없을 것도 확실했으며 누구의 간섭도 없을 것이 당연했다. 단지, 고작 초등학생이었던 우리가 담을 넘기에는 담이 너무 높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직접적으로 공장의 담을 넘을 수는 없었지만 공장 옆 건물옥상을 통해 넘어넘어 가는 것은 가능해 보였다. 게임기를 넣은 가방은 둘레매고, 일단 옆 건물의 담부터 넘어 옥상으로 올라 공장의 옥상으로 넘어들어 갔다. 떨어지면 다리하나 당연 부러질 것 같은 높이었지만 어린나이 철없음의 용기를 누가 말리겠는가. 다행히 지금까지 내 다리에 깁스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잠입의 성공은 방해 없는 곳에서 둘 만의 게임세계가 열렸고 밤 깊어가는 줄 모르고 원없이 게임을 즐겼다. 이후 친구 부모님이나 우리 부모님이나 이 사실을 알면 부러지지 않은 내 다리를 부러트렸을 것이기에 다시 공장의 담을 넘은 적은 없었다. 


게임기가 없던 아이들의 최고의 바람은 게임기요 게임기를 가진 아이들 최고의 바람은 게임할 수 있는 TV와 내 방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매번 무엇 하나 부족했던 시절이라 게임기 하나만으로도 난 감사했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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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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