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2.26 15:38



한때 공사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소위 노가다라는 것을 한 것인데 새벽 5시 30분에 출발해 오후 5시에 작업이 마무리 되고는 했다.

어느 날 오후 5시가 되어 집에 가기 위해 마무리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멀리서 같이 일하는 형님이 날 보며 갑자기 “아이템풀 좀 줘”이러는 거다. 순간 ‘이양반이 날도 안 더운데 더위를 먹었나? 한참 일하는 사람한테 왜 아이템풀을 달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공사현장에서 아이템풀이라니? 그런 이름의 공구가 따로 있었나 싶었다. 결국 내가 “뭐요?”라고 되묻자 그 형님은 다시 한 번 “아이템풀 달라고!!”하는 것이다.


아이템풀이 무엇이던가? 90년대 초등학교도 아닌 국민학교 시절 구슬치기, 팽이치기, 땅따먹기 하며 놀던 때 적당히 있는 집 자식들이 풀던 가정용 학습지 아니던가.

나는 해본 적 없지만 주변 친구들은 일주일에 한 두 번씩 찾아오는 아이템풀 선생님 때문에 항상 스트레스였다. 잘 놀다가 갑자기 엄마의 “아이템풀 선생님 오셨다”라는 한마디에 함께 놀던 친구들을 뒤로한 체 집으로 향해야 했으니 말이다. 뭐 지금의 ‘빨간펜 선생님 오셨다’ 이런 거였다.


부족하진 않지만 넉넉지 않은 집 아들이었던 나는 나름 부러움의 한 대상이었다. 그래서 친구의 학습지를 대신 풀어 준적도 더러 있다. 여기서 조금 설명을 더하면 요즘 아이들 학습지야 그림도 있고 컬러풀하지만 당시 아이템풀은 정말 주구장창 수학문제가 있었다. 첫 페이지부터 끝까지 문제만 말이다. 지금 하라고 해도 난 못할 것을 내 친구들은 그나마 잘 참고 했던 거 같다.


문득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하는 ‘응답하라 1997’을 보니 ‘이젠 내 어린 시절이 복고가 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이템풀을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시기도 됐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 80년대에도 사람이 태어났냐고 나를 약 올리던 형들처럼 말이다.

아, 참고로 그 형님이 찾던 건 ‘아이템풀’이 아닌 ‘라인 테이프’였다.


written by 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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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해적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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